신희정 창원중앙고 교사

불교평론 2월 열린논단...주제 : 붓다는 무엇을 어떻게 가르쳤을까?

종교인구 조사가 불교계에 큰 충격을 준 가운데, 불교의 종교적 본질을 잘못 이해하고 대중을 설득하려 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런 지적에 부처님은 어떻게 하셨는지 알아봐 불교의 방향성을 진단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신희정 창원중앙고 교사는 2월 22일 불교평론 열린논단서 ‘붓다는 무엇을 어떻게 가르쳤을까?’를 주제로 강의했다. 부처님을 도덕교사로 상정한 신 교사는 부처님의 교육은 즉 대화법이었다고 설명했다. 신 교사는 특히 “붓다의 교육은 즉 붓다대화법이다. 붓다대화법은 내용으로써 연기며, 동시에 형식으로써 연기이고, 내용으로써 마음이면서 동시에 형식으로써 마음 그 자체”라고 설명하며 “붓다는 표면적으로 직접전달이지만 심층적으로 간접전달이라는 이중구조로 진리를 가르쳤다. 이를 통해 끊임없이 실천 수행하기를 설득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리=박진형 기자

  

신희정 교사는… 창원중앙고 ‘윤리와 사상’ 교사. 경상대 윤리교육과, 한국교원대 석·박사 과정 졸업. 주요논문으로 〈초기불교 수행법의 도덕교육적 의의〉, 〈중학교 도덕교화서의 불교 서술 체재와 내용〉, 〈초기경전에 나타난 ‘붓다 대화법’의 도덕교육적 함의〉 등이 있다. 현재 불교 도덕교육론을 공부하고 있으며, 이를 교육 현장서 적용하고 있다. 사진제공=불교평론

부처님은 현대 도덕선생님
‘붓다 대화법’으로 교육해
괴로움(苦)을 배움기제로
끊임없이 실천·수행 유도

 

현대 교육에서 바라본 붓다의 교육
붓다는 교육자인가 아닌가? 붓다는 보통사람이 아니고, 학문과 기예를 특정한 발달 단계에 있는 대상에게 가르치지도 않는다. 그러나 교육은 사람됨을 목적으로 하고, 인격을 도야하며 도덕적 향상을 최대한 이끌어 내기 위한 행위이다. 이와 같이 교육을 정의하고 나면 아마 동서고금에서 붓다 이상의 대교육자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붓다는 오랜 실천 수행 끝에 스스로 법(法, dhamma)을 깨달은 자요, 체화된 진리부터 나오는 권위로 대면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이 깨달음에 이른 방법과 동일한 길을 안내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자로서 붓다의 면모는 붓다의 원음에 가장 가까운 초기경전에서 보다 명료하게 드러난다.

초기경전에 나타나는 붓다는 단계적 접근을 하는 현대 도덕과 교육과 유사한 목표와 방법을 승가(僧伽) 공동체 속에서 실천하는 선생이자 스승이었다. 선생으로서 붓다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초기경전은 대화체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교육이론으로 활용하고자 할 때의 강점은 대화를 통해 드러나는 ‘스승-제자-대화내용-대화방법’이 현대 도덕 교육을 가능하게 만드는 ‘교사-학생-교과내용-교수방법’과 동일한 구조를 갖는다는 점이다. 초기경전은 서양의 소크라테스가 여러 상대자와 나눈 대화들을 기록한 플라톤의 대화편과 동일한 교육적 가치를 갖는다. 그렇다면 이제 초기경전은 붓다의 ‘대화편’으로도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도덕교사로서 붓다를 상정하고, 초기경전에서 붓다는 무엇을 어떻게 가르쳤는가를 밝히고자 한다. 이것을 위하여 현 시대와 미래의 보다 좋은 삶을 위한 지혜의 스승으로서 붓다를 지금 여기에 불러내면 붓다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괴로움을 지혜롭게 해결하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혜안을 주는 인생 교사가 되어줄 것이다.

붓다는 무엇을 가르치고자 했을까?
고따마 붓다는 사문유관(四門遊觀) 후에 늙고, 병들고, 죽음의 문제에 의문을 품고 네 번째 문에서 본 수행자처럼 출가하였다. 붓다는 괴로움에 대한 철저한 공부와 수행을 통해서 진리를 깨닫고, 괴로움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상태, 즉 완전한 행복[涅槃]에 이른다. 깨달음에 이른 붓다는 괴로움을 겪고 있는 중생(衆生)들에게도 자신과 동일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길을 가르치기로 결심한다.

붓다 대화법이란 스스로 깨달음에 이른 스승 붓다가 자신과 동일한 깨달음이 제자들에게도 실현될 수 있도록 각각의 능력과 상황에 맞는 가르침을 펼친 붓다의 마음 그 자체이다. 붓다 대화법은 깨달음을 내용으로 하고, 가르침을 방법으로 한다. 붓다의 깨달음을 가르친다고 한다면 붓다 대화법을 통해서 깨달음이 드러나게 되므로 결국 붓다 대화법은 가르침이요 동시에 깨달음이다.

붓다의 대화편에서 표면적으로 빈번하게 드러나는 내용은 괴로움이다. 하지만 붓다는 괴로움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가르친 것이 아니라 괴로움[苦, dukkha]이 주는 진리[=四聖諦]를 가르쳤다. 붓다는 괴로움을 배움 기제로 활용한 것이다. 괴로움은 모든 인간이 가지는 공통 요소이다. 붓다는 괴로움이 생기고 사라지는 과정을 바른 앎과 봄을 통하여 체득한 연기(緣起)를 가르치고자 하였다. 붓다의 깨달음은 괴로움이라는 결과가 도대체 어디서부터 생겨난 것인가,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과 같은 붓다도 피해갈 수 없는 자신의 괴로움과 절박하게 지속적으로 만나는 구도 과정에서 발견한 연기이다. 정리해보면 붓다의 교육, 즉 붓다 대화법은 내용으로써 연기이면서 동시에 형식으로써 연기 또한 내용으로써 마음이면서 동시에 형식으로써 마음 그 자체이다.

붓다는 괴로움을 통해 나 자신과 만나고 이때 괴로움을 경험하는 나는 연기된 마음임을 알고 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붓다는 연기를 보는 자는 진리를 보고, 진리를 보는 자는 연기를 본다고 말했던 것이다. 도덕과 교육에서 바라볼 때 이 과정은 자신의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괴로움을 도덕적 탐구 대상으로 삼는 ‘앎을 전제로 한 봄’으로써 도덕적 성찰과 다름없다.

붓다의 대화편에서는 반드시 앎이 먼저이고 봄이 이어지는 순서로만 설해진다. 이를 활용한다면 그동안 도덕과 교육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도덕적 성찰은 적극적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붓다 대화법은 도덕적 성찰 전통을 이끄는 스승의 면모와 마음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초기불교의 붓다에 의해 빈번하게 가르쳐지고 있는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의 삼특상(三特相)은 가치와 당위의 문제가 얽혀있는 인간의 실존적 삶을 대변하는 논증구조이다. 이것은 무아에 대한 이해와 수행의 실천 윤리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윤리적 선택을 고려한 붓다의 기획으로 볼 수 있다. 붓다는 괴로움이라는 심리적 기제를 진리로 삼아 고통 받는 인간의 존재를 직시하게 하였다. 붓다는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하는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의미 물음을 우리 자신에게 스스로 던지게 하였다. 도덕적 성찰을 통한 무아의 이해와 실천은 탐진치(貪瞋癡)를 일으키는 갈애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마음에서 지켜보는 것이다.

붓다는 어떻게 가르쳤을까?
생로병사와 같은 피할 수 없는 괴로움[苦苦]을 겪으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인간은 고통이 오면 일단 피하고 싶을 것이다. 경험적으로도 우리는 괴로움을 겪을 때 그것을 직시하는 일이 쉽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또한 우리는 좋아하는 것을 즐기기를 원하고 아예 그 즐기기에 집착하고 그것을 목표로 살아가고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고(苦, dukkha)는 성스러운 진리임[苦苦聖諦]’을 알게 해주고 고통의 생성과 소멸 과정에 작용하는 연기를 보도록 가르치는 일은 쉽지 않은 붓다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더욱이 붓다의 가르침은 대화로써 완결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각자의 고통은 붓다에게 기대어 해소될 수 없고 스스로 그 소멸에 이르는 길, 즉 8정도를 닦아야 해소되기 때문이다.

붓다는 괴로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가르칠 수밖에 없다. 이때 붓다의 교육원리는 간접전달과 비교하거나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 ‘직접전달’로 이해될 것이다. 하지만 붓다 대화법은 표면적으로는 직접전달이지만, 심층적으로는 간접전달이라는 이중구조를 띤다. 직접전달과 간접전달이라는 이중구조는 고(苦)를 통해 연기(緣起)라는 진리를 알고보고 이를 실천하게 하려는 붓다의 마음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붓다 대화법은 교육적 전달 차원에서 끝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간접전달과 직접전달이라는 연기적 이중구조를 사용하여 끊임없이 실천 수행하기를 설득한 것이다.

붓다 대화법은 설득의 이중구조 속에서 교육적 참의미가 드러난다. 1차 설득은 완결된 가르침이 되는 ‘앎과 봄의 탁월함’에 도달하기 위한 선정 수행으로 유도한다. 완결된 가르침은 깨달음 상태를 의미한다. 이것은 모든 이에게 적용되고 초기불교 대화편 전체에 흐르는 핵심적인 가르침이기에 대화 상대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반복’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완결된 가르침이 제자들에게 실현되지는 못한다. 붓다의 가르침은 본래 차별이 없어 평등하지만 가르침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제자들의 능력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가르침을 듣는 사람에게 제약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때문에 2차 설득이 발생한다. 이 때 붓다는 제자의 능력과 때에 따라 적절한 표현과 다양한 방법으로 특수성을 띠는 가르침을 펼친다. 특수성을 발휘하는 붓다 대화법은 ‘대기설법(對機說法)’과 ‘차제설법(次第說法)’으로 나타난다. 동일한 내용이라도 질문, 비유, 과제 탐구, 무기(無記) 등으로 나타나는 다양한 붓다의 가르침은 2차 설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붓다 대화법의 존재 의미와 실현은 대화 상대자로서 학생에 의해 결정된다. 상대방 없는 대화가 있을 수 없듯이 붓다 대화법도 그 법이 구현될 누군가가 있을 때에만 법이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학생 차원에서 붓다 대화법은 설득의 이중구조를 적극적으로 요청한다. 아마도 학생 차원에서 붓다의 설득이 이중구조로 되어 있지 않다면 붓다 대화법은 ‘이해의 차원’에 머물러 ‘체득의 차원’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본능적으로 회피하고 싶은 고통과 감각적 즐거움에 매여 그것이 괴로움인지도 모르는 자들에게 붓다의 가르침은 일차적으로 직접전달이어야 한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