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 부처님이 가르쳐 주신 대 정법은 실행입니다!
우리 이 부처님이 가르쳐 주신 대 정법은 실행입니다!
  • 대행 스님
  • 승인 2018.03.09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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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능력을 길러야 그 능력의 빛이 자식들한테까지 가요

 

오늘 이렇게 몇 분 안 되시지마는, 한 분이면 어떻고 두 분이면 어떻습니까. 이 도리를 공부하는 데에 옛날에 원효 대사 또는 부처님께서는 한 분이나 두 분이 있어도, 길을 가다가도 같이 앉아서 설법을 하시곤 하셨다는데 나야 뭐, 구족하죠. 허허허. 설법을 하기 이전에, 우리가 알아 두어야 할 문제가 우리 생활 속에 있다고 봅니다.

우리 불교는 법당이나 사찰에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분 생활 속에 있기 때문에 부처는 계신 겁니다.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여러분이 없다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도리를 배우는 분들에게는 왜 이것을 꼭 배워야만 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예전처럼 떡이나 놓고 밥이나 놓고 비는 그런 종교가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49년 설하실 때에 한 번도 쉼이 없이 설하셨으며 49년을 설할 때 무엇을 가르쳐 주셨던가. “너희의 마음을 깨달아야 하느니라.” 그래서 첫째 문제가 전생과 후생이 한데 함락이 돼야만이 너희가 그것을 바로 견성이라고 하고, 함락이 돼서 견성을 해 가지고 바로 자기 전생과 지금 후생이 같이 한데 혼합이 되는 그런 마음으로 우리가 공부를 진짜 해 나가는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건 뭐냐 하면 전생이자 전심! 전체 전, 전신이죠. 전신, 전생, 전심. 이것이 바로 내가 나기 이전에 내가 살던 그 전생, 전심, 전신. 몸뚱이 전신. 그렇게 해서 삼신이 같이 지금, 지금 후생과 더불어 같이 해야만이 나를 이끌어 가는 데에 조금도 손색이 없다고 했습니다.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그 길이 바로 무상한 길이죠.
무상한 길이라고 해서 허망한 길이 아니라 무상한 길입니다.
허망한 거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전생을 믿지 않습니다. 어저께에 우리가 했던 것이 전생이 한 일이고 오늘 하는 일이 후생이 하는 일이라면 내일 하는 것도 후생이 하는 일이요, 모두가 이 한 생이 전생도 되고 후생도 되고 현생도 됩니다. 그런데 전생이자 현생이자 미래, 후생 일, 이 삼생을 말입니다, 삼심으로다 모아서 삼신이 돼서 우리가 모든 일을 한꺼번에 생활 속에서 해 나갈 수 있는 그 능력을 기르라는 겁니다. 그런데 모두들 어저께는 생각도 안 하고 내일도 생각 안 하고 오늘도 생각해 보는 일이 없습니다. 그저 어떡하든지 벌이해서 먹고사는 생각만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렇게 마음먹는 대로 되느냐 하면 그게 아닙니다.

그래서 첫째, 내 전생의 그 영원한 생명의 근본을 믿는 겁니다. ‘주인공!’ 하면 삼심, 삼생, 삼신이 다 한데 합쳐져서 돌아가는 것이 바로 주인공입니다. 자기 주인공을 믿으라는데도, 자기 전생을 믿으라는데도 왜 안 믿습니까. 전생이 바로 전생에 있는 게 아니라, 접때도 얘기했지만 수박 속에 수박씨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수박 겉이라면 수박씨는 이 겉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 수박씨가 바로 전생이라면 지금 현생의 내가 그 전생을 믿어야 할 게 아닙니까? 바로 그 전생이 없다면 내가 없는 겁니다. 아주 없는 겁니다. 지금도 불가에서 모두 안락사라고 하는데 그 안락사라는 그 뜻이 뭐냐. 이 몸의, 전생의 혼을 꺼내면 이건 송장이 된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영혼이 없으면 의식이 없고 의식이 없으면 송장이 된다. 그런데 자기를 끌고 다니는 자기 전생을 그렇게 믿지를 않고 전심을 믿지 않고 항상 남의 말만 듣고….

또 한 가지는, 내가 항상 여러분한테 이렇게 말합니다. 꿈을 꾸거나 이렇게 살아가면서 누구의 얘기를 듣거나 이래도 나쁘게 생각하지 마라. 잘되는 거 못되는 걸 떠나서 내가 주장하는 생각으로 그냥 나가면 그게 법이다 이겁니다. 남이 잘됐다거나 못됐다거나 너는 나쁘다, 너는 좋다 이런 걸 다 떨쳐 버리고, 망상에 그냥 개입하지 말고 내가 주장하는 대로, 꿈을 꿔서 나쁜 생각이 들어가더라도 주인공에 맡기고 ‘야! 나쁜 생각이 왜 들어? 내가 모든 좋은 생각을 하면 좋게 돌아지는데.’ 하고선 좋은 생각을 해서 거기 탁 맡겨 놓으면 좋게 그냥 돌아가는데 ‘아이고, 이거 이렇게 되면 이거 어쩌나.’ 하곤 그냥 그럭하면 그렇게 일이 돌아와 닥쳐! 그래서 한생각 하는 게 그렇게 중요하단 얘깁니다.

여러분은 지금 마음의 도리를 배우는 것입니다. 딴 거 배우라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의 재산을 가져오라는 것도 아니요, 여러분이 이 마음공부를 해서 여러분이 이익을 보라는 거고, 여러분의 깨달음을 가져오라는 거고, 여러분의 몸을 보존하라는 거고 가정을 보존하라는 거고…. 자식들을 이끌어 가고, 위로는 부모의 묵은 빚을 갚고 은혜를 갚고 자식들에게 햇빛을 주라는 것은, 내가 능력을 길러야 자식들한테도 능력의 그 빛이 거기까지 간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능력을 기르지 않고는 자식들이 뿌리가 깊게 박히고 건전하고 건실하게 자랄 수가 없습니다. 왜, 그 혈통이요, 그 핏줄이라고 그러죠? 어머니 아버지의 그 혈통과 그 핏줄이 어디 가겠습니까? 우리가 마음을 닦으면 그 마음으로 인해서 이 모든 혈통과 피 전체가 전부 바꿔질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생명의 의식들이 여러분의 그 모든 인연에 따라서 뭉쳐진 업덩어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모든 게, 악이고 선이고 나쁜 거고 다, 화내고 뭐 이런 것도 전부 거기서 나오는 건데, 전자의 과거에 살 때에 인연에 따라서 온 겁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주먹을 불끈 쥐고 건전하게 살아나가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막 그냥 건전치 못하고 이리 왕 저리 왕, 돈 한 푼이라도 생기면 이리 쓰고 저리 쓰고 해서 방탕하고 이러는 사람이 있기도 합니다. 그것이 과거의 인연으로 인해서 그렇게 생기는 겁니다. 그것을 고치고 그것을 제재해 나가려면 내 마음이 나를 바로 이끌어 갈 수 있고 다스려 갈 수 있는 그런 마음이 있어야만 됩니다.

또 둘째는 다스려 가면서 여기다가 모든 것을 한마음으로 맡겨 놔야 됩니다. 왜냐하면 악업 선업을 다 지닌 인과로서 이렇게 뭉쳐진 이 참, 개수로 따질 수가 없이 많은 그 의식들이 여기에 지금 수효가 헤아릴 수가 없는데, 그러면 헤아릴 수 없는 그 모습은 또 얼마나 많겠습니까? 모습들이 그렇게 많고 그런데 그 모습과 의식, 생명 그것들이 모두, 그 많은 생명들이 내가 마음먹는 대로 따라갑니다, 이게. 그렇기 때문에 엊그저께도 그랬지만 남뿐이 아니라, 다리가 아파서 내가 걷지 못한다 이럴 때 ‘야! 한마음 주인공 심부름을 하는데 아니, 이 다리가 이렇게 아파서 어떡하니?’ 이렇게 생각을 하고선 탁 맡겨 놓고 그렇게 하면 벌써 이 속에서 알아듣습니다. 알아들어서 이 다리가 금방 괜찮아질 수가 있습니다. 참, 아주 그게 진실하고 아주 근면하고 건실한 생각이죠. 다리뿐이 아닙니다. 어떠한 문제도 안 되는 게 없습니다.

여러분이 또 아주 자세히 알아 둬야 할 거는, 인연에 따라서 여기 뭉친 그것이, 여러분이 마음먹는 대로 분산돼서, 예를 들어서 여러분이 사대가 흩어져서 없어지면 그 의식들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여러분의 차원대로 그 의식들이 모였다가 흩어질 때는 전부 지네다 독사다 개구리다 뭐, 두꺼비다 벌레다 지렁이다 하고 수많은 것들로 나갑니다. 즉 말하자면 질척질척한 데서 낳는 거. 화해서 낳는 거, 태로 낳는 거, 알로 낳는 거, 이게 사생입니다, 사생! 사생으로 전부 나가는데, 어떤 것이 될지 그거를 모릅니다. 여러분이 마음먹고 행하고 말하고 이렇게 산 것이 그대로 그게 영향을 받아서, 원자에서 입자가 되고 입자에서 분자가 되고 분자에서 화해 가지고 그냥 수만 개씩 나가듯이, 쓰레기통에서 수만 개가 우르르르 생명이 생기듯 그렇게 해서, 즉 말하자면 어떤 거는 지네가 되고 어떤 거는 지렁이가 되고 어떤 거는 독사가 되고 이렇게 해서 모두 나갑니다. 사생이 사는 게 다 우리 인간 사는 거와 똑같이 비유가 됩니다. 어떤 거는 아프지 않습니까? 벌레라고 밟으면 안 아픕니까? 우리 인간은 또 밟히면 안 아픕니까? 모두가 아프고 고통이고 고입니다.

요새 내가 여기 와서 허리가 아파 보니까, 나 그렇게 허리 아픈 거 처음입니다. 허리가 아파 보니까 야 참, 이렇게 앉을 수도 없고 설 수도 없고 그런데 참 난감합디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하니까 ‘어허! 내가 여기 조금 더 있으라고 하는 모양이로구나. 그렇지!’ 그러고서는 껄껄 웃으면서, 속으로 웃으면서 ‘그냥 난 더 있다 가겠다.’ 그랬더니, 아니나 달라요? 내가 갔더라면 큰일 날 뻔한 일이 있었어요. 일이! 우리 회장님은 아시겠지만 말이에요. 허허. 아 글쎄, 갔더라면 되올 수도 없고 어떡할 뻔했습니까? 그래서 ‘자기 끌고 다니는 참자기는 참 일등이로구나.’ 그럭하고 나니까 허리가 일어나지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 몸뚱이를 누가 끌고 다닙니까? 예? 여러분이 다 여러분을 끌고 다니는 겁니다.

그러니 거기에서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고, 보세요. 이게 수가 없지 않습니까? 간단하게 말해도 16억이라는 숫자가 나오는데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16억만 되는 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하나의 의식 속에서 남을 탓하는 마음도 생기고 남을 원망하는 생각도 생기고 속상한 생각도 생기고 뭐, 강도질할 생각도 생기고 별일이 다 생기죠. 남에게 약을 먹여서 죽이고 싶은 생각도 있고 그런 생각이 다 나는데 거기에 말리지 마시라 이겁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말려서 이 짓도 하고 저 짓도 하고 이렇게 되면 그런 사람에 한해서는, 죽어서 사대가 흩어지면 수많은 구더기가 헤아릴 수 없이 생기듯이, 그냥 거기서 지네도 되고 독사도 되고 별거 다 됩니다, 그게 흩어져 가지고.

그리고 그렇게 흩어져서 자기의 마음 차원대로 또 모입니다. 그래서 무간지옥이라는 게 뭐냐? 이 흙 속에서 벌레로 나서 다시 탄생 못하는 것이 바로 무간지옥입니다. 독사지옥이 뭐냐? 독사가 돼 가지고 다시는 다른 모습으로다가 화하지 못하는 그게 독사지옥입니다. 딴 데 지옥이 있는 게 아니라 이 자리에 천당도 있고, 이 자리에서 승천도 하는 거고, 이 자리에 지옥도 있고, 바로 독사지옥도 여기 있고 다 그렇습니다. 이 독사지옥이 돼서 왜 벗어나지 못하느냐? 독사가 되면 독사가 되는 대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 습이 있어서. 그런 데다가 독사 엄마, 아빠가 새끼들을 오물오물하게 낳아 놓으면 그 엄마 아빠를 산 채로 뜯어 먹고 이 새끼는 삽니다. 자랍니다, 그렇게 무섭게. 그러기에 독사지옥이라고 그럽니다. 아니, 그것이 딴 데 있는 게 아니라 생물학적으로도 그렇게 돼 있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그걸 까맣게 모릅니다. 내가 죽으면 그냥 ‘죽나 보다’ 이렇게 생각하지 죽어서 그렇게 그냥 내가 마음 쓴 대로 그렇게 되는 줄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다 모든 거를 맡겨 놓으면…, 여러분이 카세트 틀어 보시죠. 카세트를 틀어 보시고는 거기다가 다른 노래를 넣기 위해서 거기다가 또 넣으면 그 앞서 노래가 없어지죠. 그와 같이 내 전자의 과거의 업이 있다면 그렇게 주인공에다 모든 걸 맡겨 놓으면 앞서 게 다 무너진다 이겁니다. 그리고 이 속에 들어 있는 의식들이 악으로 가는 게 아니라 전부 선의로, 한마음으로 뭉쳐서 자기를 돌보는 보현신이 됩니다, 전부. 보살이 된다 이겁니다.

그러는데도 이거를 모르고 말입니다, 그저 여기 오시면 무슨, 그냥 벌어다 떼돈을 갖다가 여기 주는 것도 아니고 살림을 다 갖다 여기 주는 것도 아니고 시간을 그냥 모조리 잡아먹는 것도 아닙니다. 토요일 저녁이나 일요일 저녁에 와서 그저 서로 뭐를 이렇게 묻기도 하고 토론도 하고 책도 좀 보다가 모르면 서로 문답도 하고 이렇게 해서 자기가 증득을 하는 겁니다. 누가 이거를 갖다 주는 것도 아니고 누가 대신 밥 먹어 주지도 못하죠. 그와 같이 대신해 주는 게 없습니다. 대신 죽어 주는 것도 없고.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똥 눠 주는 것도 없고 대신 자 주는 것도 없습니다.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그 길이 바로 무상한 길이죠. 무상한 길이라고 해서 허망한 길이 아니라 무상한 길입니다. 허망한 거는 하나도 없습니다. 왜? 끝도 없고 시발점도 없고 종점도 없는 둥근 이 진리 속에서 그대로 쳇바퀴 돌듯 흘러 도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렇게 돌아가면서 그 고덩어리를 짊어지고 그렇게 애를 쓰고 살아야만 됩니까? 이 고를 면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남녀를 막론해 놓고, 늙고 젊고를 막론해 놓고.

이렇게 우리가 인연이 돼서 이렇게 설법해 주는 그런 중들도 드뭅니다. 그저 목탁이나 쳐 주고 염불이나 해 줄 생각이나 하고 환갑잔치 뭐, 저거 해서 돈 얼마 얼마 청해선 계 모아 가지고 구경들이나 다니고 그러지 그렇게 신경 안 씁니다. 그런데 나는 왜 이러냐. 오늘도 수차에 전화가 왔는데, 서울에서, 뉴욕에서, L.A.에서, 뭐 사방 군데에서 어디 있는 데를 찾아서 그렇게 합니다. 내가 나를 생각해 본 예는 없습니다. 왜? 나는 없습니다. 왜? 그 사람과 나와 둘이 아닌 까닭입니다.

둘이 아닌 까닭은, 지금은 듣기만 하고 그러시는데,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마는 둘이 아닌 까닭은 수없는 억겁을 거쳐 오면서 우리가 진화되면서 야, 짐승이 됐으면 짐승의 자식이 되기도 하고 짐승의 어미가 되기도 하고 아비가 되기도 하고 친척이 되기도 하고 그렇게 해서 우리가 꽁지 떨어진 지 얼마나 됐겠습니까? 꽁지 떨어진 자리 있죠? 누구나가 다. 그렇게 해서 우리 인간까지 진화돼서 예까지 오도록, 자식 안 돼 본 예가 없고 부모 안 돼 본 예가 없고 형제 안 돼 본 예가 없다 이겁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내 부모냐, 어떤 것이 내 자식이냐는 얘깁니다. 그러면 나 아닌 게 어디 하나라도 있습니까? 내 부모 아닌 게 없고, 내 자식 아닌 게 없고, 내 형제 아닌 게 없고, 나 아닌 게 없고, 내 아픔 아닌 게 없고…. 야! 어떻게 남이 아픈 거를 보고 내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거는 누구나가 다 차원이 다르겠죠. 그런데 난 안 그렇습니다. 나만 안 그런 게 아닙니다. 우리 지금 이 공부 하는 중들도 그렇고 신도들도 그렇고 다 그렇습니다. 근데 신도님들이야 가정을 가지고 있으니까 좀 저거 한 예가 있겠지만 그래도 가정을 가지고 있는 그 장소에 바로 부처님은 계신 겁니다. 자기가 있으니까.

그래서 법당에 와서만 말을 잘해야 하고 또 생각을 잘해야 하고 그런 게 아니라 변소간에 앉아서라도 또는 집의 안방에서라도, 일을 하면서라도, 나가서 작업을 하면서라도 ‘아하! 지금 내 영원한 이 한마음의 주인공이 아니었더라면’, 즉 말하자면 이 속의 생명들이 아니면 내가 지금 이 껍데기가 어떻게 돌아다닙니까? 그러니 ‘한마음의 주인공 그 자체가 아니었더라면’, ‘일심이 아니었더라면’, 한마음의 일심이거든, 이게 전체. 그러니까 ‘그 한마음의 일심이 아니었더라면 내가 지금 어떻게 작업을 하고 일을 하고 다니나. 감사하구나. 오늘도 우리 식구를 이끌어 주고 이러는 거는 한마음의 주인공밖에 없구나.’ 이렇게 믿고 다니시라 이겁니다. 그건 왜냐하면 나를 믿으라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이름을 믿으랍니까, 허공을 믿으랍니까, 형상을 믿으랍니까, 고깃덩어리를 믿으랍니까? 자기 전생의 그 영원한 자기의 근본 주인공을 믿으라는 겁니다, 자기를 지금도 끌고 다니는. 끌고 다니기만 합니까?

우리 이 부처님이 가르쳐 주신 대 정법은 뭐냐? 실행입니다. 실천과 실행! 실천, 실행을 하는 것인데 우리가 지금 이렇게 하는 것을 듣고 ‘주인공!’ 하고 모두 실험을 해 보세요. 내 가정에 어떠한 거, 내 자식을 위한다든가 내 부모를 위한다든가, 내 몸을 생각한다든가 뭐, 어디 아프다든가, 일이 안된다든가 무슨 재판이 걸렸다든가 어떠한 문제가 언제 어느 때 앞에 닥칠지도 모르거든요. 여기는 또 차를 타고 다니니 그것도 위험하고 그러니까 모든 거는 거기에 맡겨 놓고 이렇게 한번 실험을 해 보고 실천을 해 보는 데에 아주 목적이 큰 것이 있습니다. 어떻게 실천 없이 자기가 체험을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하나하나 자기한테, 자기 가정에서 오는 문제를 실험해 보시라 이겁니다.

어떤 사람이 가게를 크게 합니다. 딴 사람은 일요일 날 가게를 봐야 하니까 일요일 날도 못 나온다 이겁니다. 그런데 그 남편은 설법할 때 한두 번 왔다 갔습니다. 왔다 가더니 “여보게! 한두 시간 문 닫았다고 해서, 한두 시간 더 팔아서 우리가 하늘로 올라가는 게 아니지 않나? 우리 둘이 문 닫아 놓고 가세.” 그래서 인제 빠지지 않고 법회 날은 옵니다. 그런데 그렇게 문 닫고 와서 설법을 듣고 가는 날은 문 닫지 않았을 때보다 곱을 더 판다 이거야. 두 시간 비웠던 것보다 곱을 판다 이겁니다. 이렇게 실천과 실행을 하고 체험을 하고 들어가는 데는 그냥 뭐, 감탄합니다.

이렇게 실천을 하면서 실험을 하는데, 실험을 하고 체험을 하는데 알래스카도 여러분이 지금 현재로 볼 때는 ‘알래스카가 개발될 것도 없고 앞으로 여기야 뭐, 만날 그렇겠지.’ 이렇게 생각하시죠? 여러분이 마음공부를 하면서 한번 생각을 달리 해 보세요. 이 생활 지금 돌아가는 현상만 보고 끄달리지 마시고 내 마음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한번 해 보시면서 나간다면 그대로 이어질 겁니다. ‘이건 뭐, 아무리 내가 생각해도 안돼.’ 안되긴 뭐가 안돼요? 아니, 자기가 사량으로 안된다는 건 말이 안 돼. ‘허허, 이건 모든 게 전생에 바로 내가 살던 내 영혼의 근본이 한마음이 돼서 전부 나가니까 이거는 그렇게 해야겠다.’ 하고 무찌르고 나가는 거야. 마음이라는 게 주먹 불끈 쥐고 한번 칼을 뺐으면 드는 거지. 그런데 무슨 뭐가 어떠니 뭐가 어때서 못사느니 뭐가 어때서 안되느니 이러고는 야단들입니다, 응?

그래서 아프면 자기가 병원 의사가 되라 이겁니다. 이거를 가르치기 위해서 지금 내가 여기 이렇게 알래스카에 집을 지니고 이렇게 여러분이 단 한 명이 있다 해도 이렇게 하는 겁니다. 야! 내가 아프면 바로 이 주인공이 나를 끌고 다니는데, 내가 심부름하는데, 즉 말하자면 여러분 가정에 오븐이 없으면 데워 먹을 수도 없죠? 하하하…. 여러분 몸뚱이가 없으면 어떻게 다 하고 삽니까? 사랑하고. 그와 같습니다. 그러니까 아프면 여러분이 바로 약사가 되고 의사가 되고, 또 가난하면 관세음이 되고, 명이 짧으면 칠성이 되고, 내가 먼 길을 떠나게 되면 바로 지신이 되고, 또 배를 타고 멀리 갈 때는 용신이 되라 이겁니다. 자기뿐이 아니라 자기 식구들도 어느 때 어딜 갈는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좋은 데로 승천하라고 할 때는…, 누구든지 좋습니다. 죽었을 때도 ‘야! 너는 부처님의 은덕으로 주인공 한마음으로서 모든 그 마음이 한데 모여서 승천해라.’ 이러면 승천이 되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지장이 되는 겁니다, 또. 순간순간 바뀝니다. 여러분 가정에서 할머니가 될 수 있고 엄마가 될 수 있고 아내가 될 수 있고 남의 딸이 될 수 있고 남의 며느리가 될 수 있고, 이름이 오죽이나 많습니까? 그 이름 많은 것대로 여러분은 지금 행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듯이 그게 행해지는 겁니다, 순간순간 바꿔지면서.

이렇게 이거는 돈을 줘도, 은과 금을 줘도 사지 못하는 도리거늘, 어찌 내가 무슨 일을 한다고 해서, 돈 한 푼을 더 벌기 위해서 이 중요한 시간을 빼먹느냐 이겁니다. 세상에, 이 중요한 시간을, 요 시간에 돈을 조금 더 벌면 뭘 하고 돈을 조금 덜 벌면 뭘 하느냐 이겁니다.

인생이 그렇게 끝 간 데 없이 살아나가면서 구르는데 여러분은 지금 가지가지 가지가 많고 뿌리가 있습니다. 이파리가 많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위로는 자기를 낳아 주고 길러 주고 가르쳐 주신 그 은혜를 생각해서라도 항상 이 도리를 공부해서 칠월 칠석이면 생각 한 번만 해도 천도가 되게끔 하고 백중이면 백중대로 생각을 해서 그 묵은 빚을 갚고, 팔월 추석이나 이런 때도 꼭 자기가 뭐를 많이 차려 놓고 해서가 아닙니다. 하다못해 촛불을 하나 켜 놓고 내가 물 한 그릇을 떠 놓고 향 한 개비를 피워 놓더라도, 내가 아주 깊은 생각으로 깊이 절을 일 배만 하더라도, 일 배만 하면서 내가 그 생각을 하더라도 다 은혜를 갚고 또 자식들한테도 베풀어 줄 수 있다 이겁니다. 여러분이 이 몸뚱이만 귀하다고 이렇게 애를 쓰고, 나무 심어 놓은 거 아주 거죽만 이렇게 좋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이 뿌리가 썩어 들어가는 데는 별 수 없는 거죠.

지금 이 공부를 하려고 사방에서 야단들인데, 알래스카는 알래스카대로 이렇게 오면 한가한 겁니다. 지금 나는 어디에서 부르지 않아서 안 가는 게 아닙니다. 여기도 내 사랑, 여기도 내 몸, 여기도 바로 내 자리, 어디든 다 한자리. 내가 정말이지, 하다못해 김치, 국, 나물거리 또는 반찬을 해 가지고 오시는 그거를 생각하면 그 마음이, 그 음식을 먹어서 맛이 아닙니다. 우리 중들이 더 먹으면 어떻고 덜 먹으면 어떻습니까? 상관이 없습니다. 그보다 더할 때도, 나물 뜯어다가 깡통에다 삶아서 소금 뿌려서 날콩 몇 알갱이 거기 넣어서 부황 나지 말라고 그렇게 끓여서 먹고들 한때를 지냈는데, 무슨 먹는 게 그렇게 중요해서 그걸 먹고 살 양으로 내가 그렇게 가져오는 걸 저거 하겠습니까마는 그 마음이 말입니다, 은혜가 태산 같은 겁니다. 세상에 어느 누가 그거를 그렇게 알뜰히 해서 가져오시겠습니까? 공짜는 하나도 없습니다. 공짜가 있다고 공짜를 바라서는 절대로 아니 됩니다. (다음 호에 계속)

※위 법문은 대행 스님께서 1991년 3월 2일 알래스카지원 법회에서 설법하신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 hanmaum.org)에서도 같은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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