⑧ 선지식에 대한 의심

무슨 생각이든지 다 부처님께 바칠 수 있다면 선지식에 대한 의심까지 부처님께 바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다른 어려운 것, 힘든 것은 다 바칠 수 있어도 무슨 생각이든지 부처님께 바치라고 말한 선지식에 대한 의심을 바치기 힘들었다. 선지식이 의심된다면 어찌 선지식이 시키는 바치는 일이 제대로 될까?사실 군에서 제대하고 백 박사님 문중으로 출가할 당시, 어머님께서는 출가를 강력히 만류하셨다.

먹고 살기가 힘든 가정 형편에 집안을 책임질 사람이 출가수도를 한다면 출가를 방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백 박사가 도인이라고? 너 정말 그 말을 믿느냐? 내가 얼마 전 부천에 가서 백 박사님 소문을 들었더니 함께 있는 딸 뻘의 젊은 여자와 함께 산다하는데, 네가 말한 백 박사가 청정도인이라면 어찌 애욕을 해탈지 못하고 젊은 여자와 살수 있단 말이냐? 그런 사람이 어찌 도인이라 믿고 출가를 해.

이렇게 퍼붓는 어머니의 이야기에 마음이 심하게 요동치며 출가하여 공부하려는 마음이 위축되는 순간 부처님 욕하는 소리를 들어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기를 태산같이 하라던 선지식의 법문이 생각났다. “어머니,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동네 사람들은 잘못 안 것이에요. 선생님 제자 중 김씨 성을 가진 도반이 그러는데 백 선생님께서는 70세가 넘도록 상좌도 두시지 않고 홀로 사시는 청정비구라 해요. 그 젊은 여자란 동국대 총장 시절부터 비서로 일하던 사람이에요. 부인이 아닌데 동네 사람들이 잘못 오해한 것이에요.”이런 말로 얼버무렸다. 그런데 출가하여 각종 분별심을 잘 바치며 이제는 어떤 분별심에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라고 생각되던 어느 날, 막연하게 선지식에 대해 가졌던 불신에 결정적으로 쐐기를 박는 일이 벌어졌다.

선지식이 계신 도량에는 나보다 1년 이상 먼저 들어온 김씨, 이씨 성을 가진 두 도반이 있었다. 어느 날 몹시 고단하여 금강경을 읽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고단함에 못이겨 두 도반들 보다 먼저 잠이 들었다. 잠결에 두 사람이 이야기 소리에 후닥 잠이 깨게 되었다.“선생님 곁에 자주 드나드는 그 젊은 여자는 누구지?”이씨가 김씨 도반에게 물었다.“그 사람 동국대 있을 때 선생님 비서로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 여자는 사모님(선생님 부인)이라는 거야.

김씨 성을 가진 도반은 아주 태연히 대답하는 것이었다. 김씨 성을 가진 도반은 백 박사님을 청정비구라고 나에게 소개했던 사람이었다.‘비서가 아니야 사모님이야.’이 말을 듣는 순간 어설픈 선잠이 확 달아났다.‘, 내가 속았구나! 선생님께도 속았고 도반에게도 속았구나!’1년 전 눈물로 나의 출가를 극구 만류하던 어머니 생각이 떠오르며 거의 뚠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이튿날 아침, 금강경을 읽는 둥 마는 둥 맥이 빠진 상태에서 겨우 우유를 식히려고 선생님이 계신 아래채로 내려가려는데, 저 아래 약 20m 앞에 선지식과 그 사모님이라는 문제의 여자가 나란히 문을 나와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은 불쾌감을 느끼면서 내 입에서 에이~ 더러운 것들하는 불경스런 말이 저절로 떠올랐다. 피가 거꾸로 솟는 것같았다.이때 놀랄만한 일이 벌어졌다. 20여 미터 되는 먼 곳에서 선지식께서는 큰 목소리로 우렁차게 어이 이 사람, 어제 밤에 큰 일 치렀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우렁찬 큰 소리에 나는 순간 정신이 확 들면서 졸도할 것 같은 어지러운 마음도 순간적으로 가라 앉았다.‘, 엊저녁에 큰 일 치렀네.’ 그려면 선지식께서는 내가 밤새 잠을 못잔 사연을 정말 아시고 하신 말씀인가? 중생도 분별심을 닦아 분별심이 사라지면 부처님처럼 다 알게 된다더니 선생님께서도 부처님께서 아시듯 내 마음을 다 알고 하시는 말씀인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 아시는 타심통의 도사라더니 정말 선지식께서는 정말 타심통을 하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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