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굴꾼 탐욕에 사라진 옛 고승 진영들
도굴꾼 탐욕에 사라진 옛 고승 진영들
  • 최선일 문화재청 감정위원· 홍은미 옥천사 학예실장
  • 승인 2018.03.06 13: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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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상주 남장사의 도난 성보
 조계종 제8교구본사 직지사의 말사인 남장사에는 달마조사를 비롯해 32명의 조사 진영이 있었으나 지금 23점이 도난된 상황이다. 사진 왼쪽부터 달마조사진영(남장사 진영각, 1991년 도난), 진감국사진영(남장사 진영각, 1991년 도난), 월송대선사상청진영(남장사 관음전, 1991년 도난)

 

사찰에서 도난당한 수많은 불교회화 가운데 다수를 차지하는 종류는 신중도, 독성도, 산신도, 진영 등이다. 이 불화들은 규격이 작아 오려내기 쉽고, 불교적 색채가 농후하지 않아서 일반 수집가들이 선호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가운데 진영은 고승(高僧)이나 조사(祖師) 등을 그린 그림으로 영정(影幀)이라고도 부른다.

진영은 일반 초상화와 달리 신앙의 대상인 종교미술로, 스님이 살아있을 때 제작되거나 입적(入寂)한 후 불화승을 모시고 그리게 하였다. 스님이 열반하신 후, 다비에서 나온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부도를 세우고 석비(石碑)를 건립하면서 진영은 별도의 공간인 진영각(眞影閣)에 모시게 된다. 해마다 기일(忌日)이 되면 제자들과 신도들이 모여 스님을 기리는 제(祭)를 행하였다. 따라서 노장 스님들이 거주하던 사찰 진영각에는 창건주와 역대 고승들의 진영 수십여 점이 봉안된 예도 흔히 찾아 볼 수 있다.

고승 진영 32점 간직했던 남장사
현재 9점만… 대부분이 ‘오리무중’
1969년 조사엔 존재, 이후 도난

진영은 韓 조사 신앙의 중요 사료
제자리에 있을 때 바른 의미 가져

이와 같이 많은 진영이 봉안된 사찰은 유명한 산에 있는 대찰(大刹)이나 산 속의 작은 사찰이라도 고승대덕이 머물던 곳이다. 특히, 경북 지역은 산세가 깊고 풍광이 좋아 작지만 알찬 사찰들이 많은데, 문경 김룡사, 예천 용문사, 상주 남장사 등은 조선후기 고승 진영이 가장 많이 모셔졌던 곳이다. 그 가운데 상주 남장사에 있던 진영들은 가장 많은 피해를 입어 총 32점 가운데 현재 9점만이 남아있다.

남장사는 상주 노악산 중턱에 자리한 사찰로, 조계종 제8교구본사인 직지사의 말사이다. 남장사는 832년에 진감국사(眞鑑國師)가 창건하여 장백사(長柏寺)라 이름을 지었고, 1186년에 각원(覺圓) 스님이 현 위치로 옮겨 남장사라 하였다. 1203년에 금당(金堂)을 신축하고, 1473년에 중건하였지만, 임진왜란 기간 중에 소실되어 전쟁이 끝나고 1621년에 명해(明海) 스님이 영산전(靈山殿)과 1635년에 정수(正修) 스님이 금당 등을 중창하였다. 이후 1704년에 진영각(眞影閣)을 신축하고, 1709년에 민세(旻世) 스님이 영산전을 중수하였으며, 1761년에 상로전(上爐殿)을 새로 건립하였다.

또한 1856년에 진허(鎭虛) 스님이 극락전과 조사각을 중건하고, 1867년에 응월(應月) 스님이 영산전을 중수하였으며, 1889년에 보광전을 건립하였다. 남장사는 1903년에 함월(涵月) 스님이 칠성각을 건립하고, 1907년에 덕암(德巖) 스님이 염불당(念佛堂)을 세웠다.

따라서 진영과 관련된 문헌기록을 살펴보면, 1704년에 진영각을 새로 짓고, 1856년에 조사각을 중건한 것을 보면, 18세기 전반에도 상당히 많은 진영이 봉안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후기 구체적으로 어느 스님의 진영이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현재까지 파악된 진영 관련 자료를 검토해 보면, 도난 이전 진영은 진영각과 관음전에 나누어 봉안되어 있었다.

이 진영에 대해서는 20세기 전반에 작성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 상주 남장자 재산대장에 ‘달마조사(達摩祖師), 나옹존자(懶翁尊者), 진감국사(眞鑑國師), 환적선사(幻寂禪師), 청허화상(淸虛和尙), 사명화상(泗溟和尙), 조영당(昭影堂), 백설당(栢雪堂), 백봉당(白峰堂), 만성당(晩醒堂), 상남당(尙南堂), 인월당(印月堂), 환성당(喚醒堂), 포월당(抱月堂), 취진당(醉眞堂), 월송당(月松堂), 계허당(桂虛堂), 환응당(喚應堂), 쌍운당(雙雲堂), 충허당(?虛堂), 취봉당(醉峰堂), 쌍월당(雙月堂), 성파당(星波堂), 성파당(性波堂), 쌍원당(雙圓堂), 계허당(繼虛堂), 기암당(奇岩堂), 은봉당(隱峰堂), 남월당(南月堂), 성봉당(聖峯堂), 노은당(盧隱堂), 응월당(應月堂)’으로 총 32점의 진영이 봉안되어 있었다. 1932년 12월에 조선총독부 관보에 실린 소장품목록에 조사영탱이 31점으로 줄어들었지만, 정영호 교수가 조사해서 간행한 〈상주지역 고적조사보고서(단국대 출판부, 1969)〉에 남장사 유적과 유물을 구체적으로 언급해 놓았다.

도난 이전, 응향각에 봉안된 진영 가운데 달마조사진영의 하단에 ‘嘉慶十七年□□」月十八日南長寺□」宗像同時新□…」成奉安于…’라는 화기가 적혀 있고, 화면의 구성과 자세 및 색의 사용 등이 유사한 진영은 1812년(가경17)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 진영들의 크기는 약간이 차이가 있지만, 세로 114㎝×가로 78.7㎝와 세로131.3㎝×가로83.6㎝로 나뉘어져 진영의 조성시기와 작가를 추정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그리고 관음전에 봉안된 진영은 총 20점으로, 20세기 전반에 작성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재산대장과 정영호 교수의 조사 자료에 따르면 1969년까지 진영들이 보존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진영각과 관음전에 봉안되어 있던 진영은 1991년 2월 27일에 도난당해 〈불교문화재 도난문화재 증보판(2017)〉에 22점이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도난된 진영 22점 가운데 노은당대선사장현 진영과 쌍원당대선사민관 진영은 현재 관음선원에 소장되어 있다(〈한국의 사찰문화재 경상북도Ⅱ①〉).

이외에도 관음선원에 기암당대선사연 진영, 남월당대선사수행 진영, 성파당대선사도언 진영, 성파당대선사우삼 진영, 은봉당대선사서규 진영, 응월당대선사인문 진영, 취봉당대선사포현 진영이 봉안되어 있기에 32점 가운데 9점이 남장사에 남아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따라서 원래 있던 32점 가운데 9점이 남아있고 총 23점이 없어진 것으로 보면 될 것이다. 이 가운데 포월당초민대사 진영, 쌍월당대선사채붕 진영, 성봉당대선사길선 진영은 도난된 상황이라면 사찰에서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이나 종단에 도난 신고를 추가해야 할 것이다.

현재 없어졌지만 사진이 확인되지 않는 진영 일부는 정영호 교수의 보고서를 참조하면 규격과 화면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쌍월당대선사채붕 진영에 대해서는 ‘118.6㎝×81.4㎝로, 뒤에는 칠폭(七幅)병풍을 두르고 수놓은 자리에 앉아 있는데 우수(右手)로는 염주(念珠)를 넘기고 있으며 좌수(左手)로 가늘고 긴 석장(錫杖)을 잡고 있다. 목에는 뚜렷한 삼도(三道)의 표식이 있음이 흥미롭다’라고 쓰여 있다. 대략 화문석 위에 앉아 있으며 염주와 석장을 든 자세를 취한 작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앞으로 도난 이전에 촬영된 사진만 구한다면 진영의 형태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밝혀질 것이다.

사찰에서 외부로 유출된 진영은 박물관이나 개인의 수집과 관람의 대상이지만, 고승 진영은 선불교의 융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조사 신앙의 예배 대상이라서 한국불교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유물이다. 따라서 진영들이 가지고 있는 한국불교의 표상과 종교적인 상징성을 올바로 찾기 위해서는 사찰 밖으로 유출된 진영들의 현황이 시급하게 공개되고 연구되었으면 한다.

사찰을 떠나 속세에 있더라도 단지 아취로서의 수집과 작품 관람의 대상이 아닌 한국불교에 족적을 남긴 큰스님의 삶과 사상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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