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암호화폐와 불교

새로운 수행공동체의 가능성

지난 몇 달 동안 암호화폐는 한국 사회의 주요 이슈였다. 사람들의 욕망과 결합되어 투기에 가까운 광풍이 불면서 암호화폐는 그 부정적인 측면이 두드려졌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암호화폐가 가진 이념과 가치를 강조하면서 새로운 기술이 가져올 새 시대의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다른 기술들이 모두 그러하듯이 암호화폐도 사용하는 이와 상황에 따라 긍정/부정의 양 측면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암호화폐는 불교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 불교와 암호화폐에 대한 논의를 하기에 앞서 암호화폐가 무엇인지 간단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스템 유지 공동체가 관건

암호화폐는 가상통화, 가상화폐, 암호통화라는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데, 일단 실재세계에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가상세계에 존재하기에 가상이며, 암호체계로 만들어진 코드이기 때문에 암호라는 명칭을 갖는다. 화폐처럼 지불수단으로 사용될 수도 있지만, 그 자체가 금처럼 가치를 가지는 것도 아니고, 정부의 보증에 의해서 발행되는 게 아니다. 2016년도 1월에 발표한 국제통화기금(IMF)의 <가상통화와 그 너머:초기 고려사항들>이라는 보고서에 의하면, 디지털 통화에 가상통화가 있으며, 암호 통화(Crypto Currency)는 그 하부의 범주에 분류되어있다. 디지털 통화는 페이팔을 비롯한 온라인상의 통화를 말하며, 가상통화는 디지털 통화 가운데에서 법정통화가 아닌 자체 화폐 단위로 거래되는 게임머니 등을 말한다. 암호통화는 가상통화 가운데에서 화폐를 발행하고 신용을 보증해 줄 중앙정부가 없이 암호코드에 기반하여 발행되는 통화를 말한다.

인드라망에 서로 연결된 구조
사이버 불교공동체에 적용 가능
사이버 명상 참여, 동기 부여
전 지구적 수행 공동체 구성

암호화폐는 간단하게 말하면 블록체인 시스템이 작업을 수행하는 데 기여한 참여자들에게 주는 보상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블록체인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한다. 현재의 금융시스템에서는 중앙컴퓨터에 모든 거래정보를 보관하고 있기에 정보의 변조, 또는 해킹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이 위험을 제거하고 온라인상에서 복제되지 않고, 해킹되지 않는 데이터 저장시스템으로 개발된 것이 블록체인이다. 블록체인이란 각각의 데이터 블록을 체인처럼 연결시켰다라는 의미로, 보안을 위해 블록체인 개발자들은 분산저장과 체인 방식을 사용한다. 블록체인은 금융데이터를 하나의 중앙 컴퓨터가 아닌 네트워크에 참여한 참여자들의 컴퓨터에 같은 자료들을 분산 저장하고, 새로 송금데이터가 생성되었을 때 이를 전송하여 송금내용이 적법한지 확인한다. 이 확인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채굴자라 불리는 참여자가 자신의 컴퓨터의 일부를 검증과정의 계산에 사용할 수 있게 내어주어 블록의 생성을 돕는다. 생성된 블록에 새롭게 이루어진 송금데이터들을 기록하고 이전의 장부에 연결시키면, 이렇게 만들어진 데이터는 변조할 수 없는 불변의 데이터가 된다. 이전의 데이터들과 체인처럼 연결되어 여러 컴퓨터에 동시에 저장된 기록의 변화는 다른 컴퓨터들의 검증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암호화폐는 검증과정에 참여하여 블록을 생성하는 데 처음으로 성공한 사람이 갖게 되는 보상금으로, 새로 생성한 블록에 다른 송금기록들과 함께 기록에 남는다. 한번 기록된 기록은 변질되지 않기에 돈의 흐름을 추적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암호화폐의 주요 가치는 변조가 불가능하다는 데에 있다. 이론적으로는 빠른 속도의 컴퓨터를 가진 이가 있다면 변조를 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모든 컴퓨터들의 검증속도를 뛰어 넘을 수 있는 기술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또한 암호화폐는 무엇보다도 중앙 통제 센터가 없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기존의 통화는 국가의 보증에 따라 각 국가가 필요에 따라 발행해왔으며 국가가 통제해왔다. 그러나, 암호통화는 국가의 보증이 필요하지 않으며, 수학적 문제를 풀어주면 통화가 발행되기에 국가나 특정집단에 의한 통제가 불가능 하다. 이런 특성 때문에, 암호화폐를 기존의 중앙 집중적 세계관을 해체하고, 공유와 평등의 세계관을 상징하는 하나의 사회운동의 기폭제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암호화폐 체계에는 중앙통제 센터가 없는 대신에 각각의 통화를 공유하고 시스템을 받쳐주는 공동체가 존재하며, 암호화폐는 이 새로운 경제공동체를 만들고 유지하는 구심점 역할을 한다. 실제로 암호화폐 가운데에 하나인 스팀달러는 스팀 공동체가 커지면서 공동체원들 간의 화폐로 사용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암호화폐는 단순히 불변의 데이터를 보관하는 시스템이나 일확천금의 투기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대안적 통화시스템을 중심으로 새로운 공동체를 제안하는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다.

분산 시스템은 화엄세계 연상

암호화폐는 그 속성과 구조 측면에서 불교사상과 접점을 갖는다. 우선 암호화폐의 가상성은 무아(無我)를 아(我)로 집착하고 욕망을 내고 괴로움을 내는 인간 마음의 메커니즘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상품으로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숫자에 불과한 허상의 암호화폐에 사람들은 의미를 부여하고, 소유하고자 하고, 그로 인해 희비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괴로움을 느낀다. 그런데, 블록체인기술의 개발이유가 나의 소유권을 불변의 돌에 새기는 것처럼, 새겨놓고 보장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암호화폐가 욕망의 메카니즘을 보여주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또한 암호화폐/블록체인 기술의 분산저장과 네트워크 연결 구조는 의외로 화엄적 세계를 연상시킨다. 블록체인 기술에서 모든 데이터는 개개의 컴퓨터가 보유하고 있으면서 서로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다. 이는 마치 인드라의 망에서 각각의 구슬들이 서로서로를 비추면서 연결되어 있는 것과 유사한 구조를 보인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개개의 컴퓨터가 인드라 망의 구슬처럼 서로서로를 비추는 것이라기보다는 데이터라는 공통분모를 같이 공유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이는 화엄에서 이야기하는, 개별개체들이 서로 서로 각각의 특성을 지니면서 서로 융섭하는 사사무애 법계라기보다는 오히려 데이터라는 이치를 담지한 이사무애 법계와 같다. 화엄의 구조와 유사성을 보이지만, 사사무애적 인드라망의 구조의 단계로 보기에는 미흡하다. 그러나 각 블록 데이터의 안전성과 영원불변성이 블록체인 전체와의 연결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은 존재하는 것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는 전체 법계의 세계가 영원한 것과 유사성을 보인다. 디지털 네트워크의 세계는 종종 화엄의 세계와 유사하다 일컬어지는데, 암호화폐의 블록체인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불교와 이 같은 접점을 갖는 암호화폐/블록체인 기술은 불교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2017년 8월 하이테크 불교를 지향하는 로토스 네트워크(Lotos network)는 암호화폐 기술을 받아들여 사이버 불교공동체에서 사용할 카르마 토큰스(Karma tokens)를 제안했다. 이들의 시도는 최초의 제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여러 측면에서 한계를 갖는다. 일단 이들의 시스템은 불교적이라 하기 어렵다. 이들이 제안한 암호화폐는 이더리움을 베이스로 한 코인이지만, 앞서 언급한 게임머니 수준의 가상통화와 유사한 성격을 갖는다. 카르마 토큰스는 사이버 불교 공동체에서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 수업료를 지불할 때 구매하며, 학생들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사이버 명상에 참여할 때 보상으로도 받는다. 카르마 토큰스는 국경이 없는 암호화폐의 특성을 갖기에 공통통화 체계 하에서 전 세계의 불교 수행자들이 손쉽게 불교의 가르침을 제공하고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명상에 대한 보상을 준다는 점은 불교적이라 하기 어려우며, 오히려 그들이 비판하는 자본주의적, 상업주의적이라 볼 수 있다. 또한 그들이 카르마 토큰스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은 금전흐름의 투명성은 미국 내 불교도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 이들의 주장에는 기성조직이 금전적 불투명성을 가지고 있기에 문제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데, 미국 내 현실과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로터스 네트워크의 궁극적 목표는 암호화폐를 기반으로 한 불교도들 간의 탈중앙집중화된 경제공동체를 구축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불교의 현실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하고 기존불교의 문제점을 잘못 설정한 결과, 아직은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추구하는 수행공동체의 투명한 경영과 가상화폐를 활용한 글로벌 수행공동체는 미래 불교 수행경제 공동체의 탄생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암호화폐와 이를 뒷받침하는 블록체인 기술은 불교의 화엄적 세계관과 유사성을 보이면서 허상에 집착하는 고통의 윤회의 메카니즘을 잘보여주고 있다. 나아가 그 기술이 제시하고 있는 탈중심적이며 분권적 세계관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새로운 경제질서를 가진 공동체를 구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주고 있다. 비록 그 시작은 인간의 소유욕을 지켜주기 위한 것었으나, 잘 사용한다면, 암호화폐는 로토스 네트워크를 시작한 이들이 꿈꾼 이상적인 전지구적 수행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기술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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