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가종무원 사기 진작이 불교 발전 원동력

승진은 직장인의 희망이자 노력의 보상이다. 승진은 책임수준이 높은 직위로 이동하는 것을 말하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보수가 오르고 보다 큰 권한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승진을 희망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노력을 한다.

종교단체에 재직하는 재가종무원에게 있어서도 승진은 희망이자 노력의 원동력이다. 하지만 한국불교의 주요 종단들은 재가종무원의 승진에 제한을 두고 있다. 조계종의 경우 중앙종무기관 재가종무원은 부국장까지만 승진할 수 있는데 비하여 출가종무원은 대부분의 부서에서 국장급부터 시작하며, 실장과 부장급은 전원 스님이다. 일반적으로 재가종무원이 20년 정도 근무했을 때 국장의 아래 직위인 차장이 될 수 있음에 비하여 중앙종무기관의 스님들은 대부분 국장에서부터 소임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상황의 문제는 스님은 국장에서부터 소임을 시작한다는 것이 아니라 재가종무원이 부국장 이상 승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마저도 부국장까지가 아니라 그 아래 직위인 차장까지만 승진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재가종무원의 승진 직위 제한은 어떠한 이유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은 합리적 인사행위인가?

종단의 한 구성원, 재가자
종단 행정 구조서 평등 추구 관건
승진의 유리장벽 철폐해야

재가종무원의 승진 직위 제한은 승(僧)과 속(俗)이라는 불교교단의 종교적 신분 질서가 세간의 행정조직에서도 이분법적으로 고착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행정조직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종교단체라고 하면 그 대표는 종교인 혹은 성직자가 되는 것이 합당하다. 그러나 실무 역량이 주요시 되는 직위와 직급이라면 출가와 재가의 구분에 의한 원천적 승진 제한은 개선의 필요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조계종의 국장 등 중앙종무기관의 중간 직위를 재가종무원에게 개방하는 것을 검토하여야 한다.

조계종의 부·실장은 사무적·행정적 업무를 처리하는 실무적 소임이 아니라 종단의 대내외 업무와 상황을 정치적으로 인식하여 판단을 내리는 정무직이다. 국장은 외견상으로는 출가와 재가의 업무 연결 고리로써 정무와 실무를 병행하는 직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정무는 총무원장 스님이 주로 부·실장 스님들과 직접 논의하여 결정하고, 실무는 재가종무원들이 업무를 전담하고 있다. 국장 스님들에 비하여, 부·실장 스님들은 법랍과 경험을 바탕으로 정무에 정통하고, 차장 및 행정관들은 다년간의 종무원 생활을 기반으로 실무에 정확하다. 이와 같은 상황은 국장 스님들이 정무와 실무의 두 영역 사이에서 애매한 입지에 놓여 있음을 추정케 한다.

재가종무원의 승진 직위 개방과 관련하여 비구니 스님들에 대한 중앙종무기관의 직위 개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불교에서 비구니 스님들의 역할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1962년 통합종단 출범 이후 비구니 스님의 종단 참여는 사실상 불가능해보였다. 그러던 관행이 2003년 비구니인 탁연 스님의 문화부장 임명으로 깨졌다. 통합종단 출범 이후 41년만이다.

제31대 총무원장 법장 스님이 시대적 요청을 반영하여 비구니 스님에게 종단 고위직을 개방한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조계종단 내 반발은 예상보다 훨씬 거셌다. 종단에서 부장 소임은 본사 주지급이기에 그 자리를 비구니한테 준다는 것은 당시 상당수 비구 스님들의 정서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와 같은 반발 정서에는 팔경계법(八敬戒法)에 대한 인지도 작용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10여년이 흐른 지금, 비구니 스님의 종단 진출은 확대 정착되는 추세이다. 이는 비구 중심의 종단 운영 관행과 비구니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기 위한 비구니 스님들의 부단한 노력의 결실이다.

오늘날 한국불교의 주요종단들은 사부대중 공동체를 선언하고 있으며, 종단의 헌법인 종헌은 종단이 사부대중으로 구성됨을 규정하고 있다. 사실 조계종의 오늘은 1994년과 1998년 종단의 혼란기에 재가자, 특히 재가종무원들이 종단의 한 구성원으로서, 그리고 한 주체로서 종무행정을 수호하였기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1994년 개혁종단 출범 시에는 재가자의 종단 진출을 확대하고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출가자의 동지적 약속도 있었으나 현재까지도 미완이다.

사부대중 공동체라고 하여서 출가와 재가,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가 절대적 평등 관계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남녀의 차이에 따른 상대적 평등이 존재하듯이 종교적으로 출가와 재가의 차이에 따른 상대적 평등은 존재하여야 한다. 그러면 재가종무원이 차장까지 밖에 승진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것은 상대적 평등인가? 종무행정은 사판의 영역으로 재가자의 업무 성격이 강한 분야이다. 다만 종무행정이 종단의 운영을 책임지는 업무이기에 그 대표권과 주요 결정에 있어서 출가자가 중요한 지위에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부국장이나 차장 등 중하위직까지로 재가종무원의 승진을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사회의 관념으로는 물론이고 불교의 관점에서도 온당한 처사라고 보기 힘들다. 오히려 불교적으로는, 한국불교가 부처님께서 혁파하고자 혼신의 노력을 다했던 ‘바라문적 신분질서’를 현대사회에 적용하려는 모양세로 비춰질 수도 있다.

바라문적 사회질서란 사회의 최상위 계급으로 군림했던 종교 의례와 제사의 권리를 독점했던 종교 사제인 ‘바라문’을 정점으로 하여, 정치력과 경제력을 장악했던 왕족인 ‘크샤트리아’가 차상위 계층을, 농업·목축업·상업에 종사했던 서민인 ‘바이샤’가 그 다음 계층을, 그리고 비천한 노역에 종사했던 노예인 ‘수드라’가 사회의 최하위 계층을 구성하는 사성(四姓)으로 이루어진 계급사회적 신분제도를 지칭한다. 물론 태어남에 의하여 한 번 정해진 계층은 바뀌지 않는다.

종무행정은 출가 스님이 아닌 재가 신도의 본분사(本分事)임에도 불구하고, 재가종무원의 승진 직위를 중하위 직위로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일견 인도 계급사회의 고착적 신분제도인 바라문적 사회질서를 오늘날 한국불교사회에 적용하려는 것으로 이해될 여지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종교조직으로서의 대표성 내지 상징성이 아니라 업무의 현장성이 중요한 분야의 직위에 대해서는 재가종무원의 승진 직위를 현재보다 상위직으로 개방하여야 한다.

그렇다면 재가종무원의 승진 직위를 개방함으로 인하여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무엇인가? 우선, 재가종무원의 ‘인사적체 해소’와 그들의 ‘종무행정 경험의 활용’을 손꼽을 수 있다. 현재 조계종 재가종무원의 최고 직위인 차장은 5명 정도이다. 그리고 그에 준하는 경력을 갖춘 상당수의 인력들은 팀장 내지 행정관의 직위에 있다.

차장들은 보통 20년 이상 근무한 50대 초중반이며, 종무행정 경험이 풍부한 팀장 및 행정관들 역시 20년 전후로 근무한 40-50대의 인력들이다. 50대 초중반의 차장은 종헌에 보장된 정년인 65세까지는 근무연한이 10년 이상 남는다. 여기에서 인사적체의 문제가 발생한다. 차장과 연배나 근무기간이 비슷한 팀장 및 행정관들도 승진을 해야 하기 때문에 10년 이상 근무연한이 남은 차장은 다시금 이전의 직위로 내려가거나 퇴직에 직면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재가종무원의 승진 직위 개방은 만연한 인사적체의 숨통을 틔워주는 방안이 될 수 있다. 비록 그것이 한 두 개의 직위일 수도 있으나 승진이 가능한 상위 직위가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차장급 재가종무원의 근무기간이 연장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차장급 재가종무원의 조기퇴직을 방지함으로써 그들이 가진 풍부한 종무행정 경험을 지속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 종무원은 종교단체에서 근무하는 특수한 전문인력이기 때문에 경력과 경험을 갖춘 사람을 모집하기도 양성하기도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20년 이상 근무경력을 갖춘 장기근무 재가종무원의 퇴직을 막아 경험을 종단에서 지속적으로 활용한다는 것은 불교종단발전에 기여하는 방안이다.

그 다음의 효과로는 재가종무원의 ‘사기 앙양’을 들 수 있다. 사기란 자발적·적극적인 근무의욕·근무태도를 의미한다. 사기는 물질적 보수, 성공감, 안정감, 인정감 등에 의하여 앙양될 수 있다. 승진은 이와 같은 사기 앙양의 요인을 두루 갖추고 있다.

승진은 보수의 상승으로 인한 안정감과 더불어 지위의 상승으로 인한 성공감을 준다. 그리고 이와 같은 보수와 지위의 상승은 자신이 조직으로부터 인정받았다는 느낌을 준다. 이에 재가종무원의 승진 직위 개방은 좋은 사기앙양 방안이 된다.

그런데 일선사찰 재가종무원과는 달리 중앙종무기관 재가종무원의 고용 안정성은 공무원처럼 ‘철밥통’이 되어가고 있다는 교계의 날선 목소리를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 고용 안정성이 증대된다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일이다. 그러나 그에 상응하는 재가종무원의 책임의식과 업무능력의 제고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며, 그들이 그렇게 부응하지 못할 경우에는 합리적·합법적 절차를 갖춰서 퇴직시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갖춰져야 할 것이다.

재가종무원에 대한 승진 직위 개방을 출가종무원의 고유 영역을 침해하는 것으로 오인해서는 안 된다. 또한 그것이 출가 스님과 재가 신도간에 소위 밥그릇 싸움처럼 인식되어서는 더욱 곤란하다. 재가종무원의 승진 직위 개방은 재가종무원이 본분사에 충실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현실적 방안이자, 그를 통하여 출가와 재가가 순치(脣齒)의 관계로써 사부대중 공동체를 실현해나가는 상징적 방안이 될 수 있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