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띠빳타나 수행/ 우 냐나로까 사야도 법문/ 비구 감비라냐나 정리/ 민족사 펴냄/1만 5천원

이 책은 행복에 대한 답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자유롭고 평온 속에서 살아가도록 인도한다. 현대사회는 우리들에게 참으로 갖가지 힘, 즉 스트레스를 가한다. 그 압력을 우리들로서는 감당해낼 수 없을 때가 종종 있다. 그렇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문명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필립 짐 바르도라는 심리학자는 그의 저서 〈심리학과 삶〉에서 사람이 주변 환경서 받는 여러 가지 스트레스에 대해 반응하는 네 가지 단계를 설명한다.

 감정적인 단계: 슬픔, 의기소침, 성냄, 짜증, 좌절감
 행동 단계: 생산성과 집중력이 떨어지고, 건망증이 있으며,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다.
 생리적 단계: 주로 신체적인 긴장을 말하는데 이것이 발전하면 통증, 위궤양, 고혈압 등 갖가지 질병이 된다.
 인지의 단계: 자신을 지나치게 소중하게 생각하거나 스스로에 대한 신뢰감을 상실한 경우, 그 결과 자기 자신이 아무 쓸모없고 희망도 없다는 감정에 빠져들어 최악의 경우 자살까지 하게 된다.

마음 관찰 순간에는 집착 일어나지 않는다
마음 통찰 순간에는 혼침에 빠지지 않는다
마음 구조와 역할 이해하는 실천 행위가 수행

 

“스트레스는 강한 자아의식의 산물”

사람들이 이와 같은 스트레스와 고통을 맛보게 되는 것은 강한 자아의식으로 인하여 자아에 집착해 마음이 불분명해져서 균형 잡히지 않고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자아의식이 강하게 작용하는 이유는 마음이 탐욕에 지나치게 집착해서이다. 그것은 때로는 격렬하게 화를 내게 이끈다. 또한 이해의 부족, 무지 때문에 탐욕이 일어난다. 탐욕은 무지에 의존되어 있다.

마음을 사띠해 관찰하는 순간에는, 수행자는 어떤 것에 대한 기대를 멈출 수 있다. 그러므로 열렬한 집착은 일어나지 않는다. 마음 통찰을 하는 동안은 절대로 성냄의 현상은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마음 통찰을 하는 순간에는 수행자가 게을러지거나 혼침에 빠지지 않는다.

그와 같이 정진하는 수행자의 마음이 탐욕과 성냄, 무지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 있기 때문에 마음이 분명해져 있으며 따라서 마음이 균형되고 안정돼 있다. 그러므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되는 것이다.

 

“육체적 고통과 질병이 치유되다”

우리 몸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드레날린을 분출시키고, 맥박과 혈압이 올라가고, 근육에 혈액이 증가된다. 이와 같은 반응은 어떤 신체적인 위협에 대처하거나 위험으로부터 도망가게 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계속 이와 같은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이와 상관되는 질병의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다. 위빳사나 수행은 신체의 맥박을 줄이고, 긴장을 누그러뜨린다. 많은 의학학술 보고들이 명상 수행의 건강 효과를 입증하고 있다. 명상 수행은 특별히 고혈압, 과민성 대장 증후군, 불면증, 우울증 같은 스트레스와 연결되는 질병과 통증 그리고 불안증이 곁들여 있는 질병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고하고 있다.

최근에 의학자들은 고혈압 환자들이 명상 수행요법을 통해서 혈압과 맥박을 낮췄을 뿐만 아니라 좁아진 심장동맥이 정상으로 되돌아왔다고 보고했다. 똑같은 시간을 명상 대신 식이요법을 시행한 환자들은 혈압은 낮아졌으나 관상동맥에는 변화가 없었다는 보고도 아울러 참고할 만하다. 현대는 참으로 바쁘게 살고 있는 시대이다. 바쁘게 사는 것은 행복하게 살기 위함인데, 행복이란 결국 마음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마음에 대한 이해 없이 외부로부터 행복을 얻기는 어렵다. 마음 구조와 역할에 대한 이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의미이다. 이 마음의 구조와 역할을 이해하는 실천적 행위가 곧 수행이다.

따라서 행복을 얻기 위한 것이 인생의 목적이라면 우리는 반드시 수행을 통해서만 행복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행복의 본질을 이해해야만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어떤 수단보다 우선적으로 수행을 삶 안에 끌어안아야 한다. 수행을 통해 얻는 삶의 유익함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물론 이 수행의 유익함을 초기 단계에서 일부 수행자들은 분명하게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 정도 사띠와 삼매가 깊어져 지혜의 맛을 조금씩 보게 되었을 때 수행자는 다음과 같은 유익함을 얻게 될 것이다.

 

“마음이 분명하고 안정되어 평안해지다”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불분명한 마음의 상태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마음이 선명하지 못하고, 확실하지는 않으나 항상 무엇인가를 찾고 있으며 들떠 있다. 또한 온갖 생각이 자기도 모르게 일어났다가 사라졌다가 하는 것이 반복된다. 그래서 불분명하며 불안한 마음속에서 생활하는 것 같다. 이렇게 생활하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다. 그러면 그러한 상태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탐욕이라는 열렬한 바람이 있기 때문에, 격렬하거나 미세한 성냄이 있기 때문에, 미혹이라는 이해의 부족, 무지가 있기 때문이다. 불만스러운 마음이 일어날 때, 마음이 무엇인가를 찾고 있을 때,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고 들떠 있을 때, 또한 온갖 생각이 일어날 때, 불안한 마음이 일어날 때, 그 마음의 상태와 작용을 알아차리고 그것에 집중해 바로 그 마음을 관찰해야 한다. 마음은 여러 가지 작용을 하지만 한 순간에 한 번만 일어났다 사라진다. 동시에 여러 마음 작용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마음이 작용하는 속도가 너무나 빠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정적인 마음 작용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알아차려서 밀착 관찰하면’, 그러한 정적인 마음의 작용은 멈추게 된다. 나아가서 그 부정적인 마음의 원인인 열렬한 바람 혹은 격렬하거나 미세한 화가 사라진다. 더욱 ‘알아차려서 밀착해 관찰’로 나아가면 수행자의 마음은 안정과 평안 그리고 평온과 평화로움으로 나아가게 된다. 더욱 수행이 진보되면 탐욕과 성냄 그리고 미혹의 원인인 무지의 뿌리가 점점 잘려나가 마침내는 매우 자유롭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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