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몸 아님도 없고, 내 아픔 아님도, 내 자리 아님도 없어!
한 몸 아님도 없고, 내 아픔 아님도, 내 자리 아님도 없어!
  • 대행 스님
  • 승인 2018.03.0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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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잖고 고상하고 알뜰하고 진실하고 선명하게 살아야!

본래 한마음 한몸 한자리인 참뜻

질문 스님께서는 내 몸으로부터 오는 문제나, 인간이 살아나가는 과정에서 부딪치는 역경에서 부딪침이 없이 유유히 넘어갈 수 있으려면 우리 자체가 본래 한마음 한몸 한자리인 이 참뜻을 꼭 알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 마음으로부터 일거일동 집착을 하게 되어 무명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공부해 나가야 나라는 틀을 벗어나서 공생, 공심, 공용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는지요?

답변 여러분이 생각할 때에 한마음이라는 것은 체가 없습니다. 그래서 풀 한 포기 버리지 않는 한마음이라는 것은 한 생명과도 같은 한마음입니다. 위로는 한마음을 모시고 아래로는 여러분 몸과 더불어 함께하는 겁니다. 여러분 몸속에 들어 있는 그 모습들을 보십시오. 여러분은 여러분 육신 속에, 세포 속에 들어 있는 그 생명체들을, 그 모습들을 아실 겁니다. 그리고 바깥에 있는 생명체들, 모습들도 아실 겁니다. 그러기에 내 몸속에 있는 중생들과 더불어 같이 있는 내 몸은 그 속에 들어 있는 중생들이 움죽거려 줘야만이 움죽거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더불어 같이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공평하게, 평등하게, 시공이 없이 그냥 자동적으로 찰나찰나 움죽거린다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아시겠죠. 이것을 잘 생각을 해 볼 점이 있습니다. 그래야 믿어질 테니까요.

그래서 몸은 자기가 소임을 맡은 대로 움죽거리면서 이 한 몸을 앞장세웠습니다. 모든 모습들과 마음들이, 위로는 마음들이요, 아래로는 그 모습들이 전부 한데 모여서 움죽거려 주는 그 역할을 그대로 우리는 한데 합쳐서 활용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그 마음 중심(中心), 중용(中庸), 중도(中道)라는 이름이 있기 이전, 깊은 정(定)에 들어 죽은 내 몸이여! 그대로 나투며 시공이 없이 도는 몸이로다.”라고 합니다. 그러니 위로는 일체가 되고, 한마음이 되고,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몸 아님이 없고, 내 아픔 아님이 없고, 내 자리 아님이 없고 이렇게 됩니다. 공식(共食)하고 있고, 공생(共生)하고 있죠. 공용(共用)도 하고 있고요.

멀리 생각을 하지 마세요. 내 육신을 가만히 살펴보세요. 이거는 한 별성이기 이전에 혹성이기도 합니다. 그 혹성 안에, 오대양 육대주가 돌아가는 거와 같이 오장육부가 그러하니깐요. 이것을 가까운 데 두고 모른다면은 우리는 우주의 전체, 무(無)와 유(有)의 세계의 맛을 볼 수가 없습니다. 내가 나를 알지 못한다면 남을 알지 못하고, 내가 나를 이끌어 가지 못한다면 남을 이끌어 줄 수 없습니다. ‘나’가 있기 때문에 세상이 생겼고 상대가 생겼고 가정이 생겼고 나라가 생겼고, 천태만상으로 생긴 것이 바로 나로 인해서 생겼다는 그 사실을 여러분은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어떠한 이름이나 찾고 허공이나 바라보면서 바깥 경계에 끄달리는 것이 불법이 아니며 부처님이 가르쳐 주신 뜻이 아닙니다. 돈이 있든 없든, 가난하든 부자든 막론하고 이것은 필수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돈을 많이 가져야 여기 오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이면 됩니다. 여러분이 마음이 있다는 사실, 그 마음으로 인해서 움죽거린다는 사실, 그리고 맛을 본다는 사실, 이것을 우리가 만족하게 생각하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그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수억겁 광년을 거쳐 오면서 우리는 피나는 노력을 하면서 자동적으로, 자연적으로 쫓기며 쫓으면서, 밟히며 밟으면서 인간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니 지금 인간의 모습으로서 이 모습을 벗기 전에 알아야 한다는 것은 필수적이죠. 우리가 진짜 정신 바짝 차려야 할 때입니다. 그것은 그렇게 넘어가고…, 우리가 길고 긴 하나의 음식을 놓고 여러분이 걸릴까 봐 한 조각 한 조각 잘라서 먹이는 거와 같으니 그대로 이해하고 들으십시오. 짚고 넘어가는 한 토막의 문제요. 또 한 토막을 얘기한다 하더라도 이것을 말이 아닌 참말로 들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사계절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에는 사계절 없는 마음의 봄이 와야 되겠습니다.
마음의 봄 말입니다.

옛날에 어느 소녀가 있었습니다. 잘 새겨들으십시오. 부모를 모시고 잘 살았는데 어느 날 아버님은 인생이 덧없다 하시고 가셨습니다. 죽었단 말입니다. 어머니는 남아서 딸을 두고 죽을 수 없다고 힘들게 버티며 살아 계시다가 어느덧 때가 되니 그 어머니마저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소녀는 홀로이 배고픔도 이기지 못하고 추움도 이기지 못해서 닥치는 대로 먹고 닥치는 대로 불을 지폈습니다. 안에서든 바깥에서든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지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그 집마저 훨훨 타 버렸습니다.

불씨는 그대로 불기둥이 돼서, 천 길이나 되게 불길이 솟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둘레는 만 둘레나 되니, 오고 가는 사람이 모두 두루 옷을 벗고 갔다 합니다. 그러니 그 불은 비바람이 쳐도 흔들리지 않으며, 바람이 분들 흔들리겠습니까, 비가 온들 꺼지겠습니까? 추운 겨울에 우박 눈이 쏟아진들 얼겠습니까? 그래서 오고 가는 사람들은 거기에서 옷을 가면서 벗고 오면서 벗고, 끊임없이 벗었다는 얘깁니다.

여러분, 애나 어른이나 가정에서도 따뜻한 데를 찾죠. 아늑한 데 찾고, 따뜻한 데 찾고, 추우면 추운 대로 따뜻한 옷을 입고, 또는 더우면 더운 대로 시원한 옷을 입죠. 이것이 그대로 자동적으로 이어지는 진리라고 봅니다. 이 한 토막의 얘기는 여러분이 잘 들으면 아주 공부하는 데 좋은 계기가 되리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그 소녀가 타 버리더니 그렇게 불기둥이 솟았다고 합니다. 불기둥이 솟으니까 오고 가는 사람이 다, 그 빛과 광력과 자력으로 충만하니 어찌 그것이 꺼지며 바람 분다고 흔들리며 그것이 얼 수가 있느냐? 항상 봄이라, 오고 가는 사람이 옷을 벗더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반복해서 이런 말을 드리는 것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고 믿고 이렇게 말을 반복합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데에 위로는 한마음이요, 아래로는 모습이 한 몸이니 아픔도 한 몸! 그래서 유마힐 거사는 문수보살이 병문안을 가니까 이렇게 말했습니다. “중생들이 나아야 내가 낫지.” 했습니다. 여러분, 간단하게 비유해서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오장육부의 세포의 생명들이 나아야, 그 모습들이 건강해야 나의 모습도 건강하겠죠. 내 마음이 건강해야 남의 마음도 건강하게 해 줄 수 있고, 내 몸이 건강해야 남의 몸도 건강하게 이끌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내 몸을 이끌어 가지 못하는 동시에 남의 몸도 이끌어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잘 음미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여기 오신 그 마음이 바로 한마음이요, 한 몸, 한자리입니다. 한자리에 앉아 계시지 않습니까? 이것을 실감하시라 이겁니다. 우리가 살아나가는 것이 그대로 심성 천체물리학이며 그대로 길이며 그대로 진리인 것입니다. 우리 살림살이가 그대로 과학인 것입니다. 심성을, 마음을 빼놓고는 어디 뭐가 있겠습니까? 마음을 여러분은 다 가지고 계시죠. 마음으로서의, 악도 거기서 나오고 선도 나오는데 사람이라면 천 가지 만 가지 천차만별로 알고 있는 게 많으니 그 악은 쓰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마음을 낼 때도, 한생각 낼 때도 남을 이익하게 낼 수 있는 마음, 한마음을 내서 말을 해 주더라도 이익한 말, 남에게 뭣을 주더라도 뒤에 받으려고 생각하고 주는 마음이 없이 내가 쓰는 물질로 생각한다면 둘이 아닌 공덕이 되지 않나 이렇게 봅니다. 이것을 받으려고 하고 이익을 보려고 하니까 싸움이 되고 부딪치고 악하게 나오고…. 그 근원이 욕심입니다. 우리가 욕심의 근원을 놓는다면 자연스럽게 습득해 가면서 체험해 가면서 아주 청정한 정(定)에서 샘물이 솟아 나와서 두두물물(頭頭物物)이라는 식대로 그대로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한자리 한 것도, 한자리 할 때는 여러분의 몸이나 내 몸이나 두루 같이, 부처님의 뜻이나 일체 조상들의 뜻이나 다 같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느 분 어느 분, 다른 분이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바로 부처님이시며 그 부처님은, 중생들이 돌봐주고 운영을 해야 사시기 때문에 그 중생들을 중생이라고 내려 보지 말라고 하는 겁니다. 중생 부처는 둘이 아니다. 한 몸 속에 부처, 중생이 있다 이겁니다.

중심, 중용, 중도, 바로 정(定)에 든다면, 정에서 나오는 거 정에다 도로 놓는다면 그 씀씀이가 바로 유유하고 여여하고, 천 가지 만 가지에 부딪치지 않고, 시공이 없고, 윤회에 걸림이 없고 생사에도 걸림이 없습니다. 오늘 죽는다 하더라도 빙그레 웃고 죽기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고 사는 것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사는 것이 없기 때문에 죽는 것이 없다 함은, 즉 말하자면 하늘을 받칠 불기둥이 있고 한 발로 디뎠다면 그것은 그대로 밝기 때문에, 그대로 자력이 있기 때문에, 그대로 빛이 있기 때문에 그대로 여여하며 그대로 삶과 죽음이라는 언어도 붙지 않는 그러한 자리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할 때는 되나 못 되나 말씀드리는 것 같지만 저는 이 말씀 한마디 한마디 드릴 때마다…, 즉 만 골짜기에서 흐르는 더러운 물이나 깨끗한 물이나 바다로 한데 모이듯이, 그 바다로 모여서 가라앉혀서 유유히 돌듯이 이렇게 하시라는 뜻입니다. 즉 말하자면 한마디 한마디가 아마도 한 방울의 피인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이 여직껏 걸어오신 그 피 한 방울이 그렇게 에누리 없다는 사실 말입니다. 아마도 여러분이 갖다 주시는 게 한 방울의 피라면 나를 위해서 갖다 준 바도 없고, 바로 자길 위해서 갖다 준 거기 때문에 나는 받은 새가 없고 자긴 가져갔으니 준 새가 없다 이겁니다. 비유하자면 가게에 뭐를 사러 가면은 내가 물건을 가져왔으니깐 돈을 준 새가 없고 또 물건을 줬으니까 받은 새가 없듯이 우리는 지금 서로서로 공식(共食)하면서 주고받으며 사는 것입니다.

마음의 봄날을 맞이하려면

질문 그토록 혹독하던 추위가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고 낮 동안에는 따스한 봄기운을 느낄 수 있는 계절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저의 몸과 마음은 늙음이라는 족쇄가 채워져서, 밝고 건강하지 못하고 움츠리고 나약하기까지 합니다. 어떻게 수행해 나가야 시간과 공간의 굴레에서 벗어나 사계절이 없는 마음의 봄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답변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사계절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에는 사계절 없는 마음의 봄이 와야 되겠습니다. 마음의 봄 말입니다. 사계절이 있는데 겨울이 좋은 사람은 겨울로 쫓아가고 여름이 좋은 사람은 여름으로 쫓아가고, 가을로 봄으로 사방으로 흩어져서 쫓아다니곤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은 근본에서 나오는 것이니까, 일체 만법이 들고 나는 그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니까 그 근본 한군데에서 봄날을 맞이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곤충에서부터 사람에 이르기까지 사생에 대한 문제가 천차만별로 돼 있는데 천차만별로 돼 있는 그 마음 자체가 사계절 없는 마음의 봄이 된다면 얼마나 자유스럽고 좋겠습니까. 여러분은 이 뜻을 알지 못하고, 과거에 수억겁을 거치며 쫓고 쫓기면서 살아온 악업 선업을 잔뜩 짊어지고 이 세상에 나서 지금 모두 살고들 계십니다. 내가 이 자리에 있으면 이 자리에 있는 거지, 과거가 따로 없고 미래가 따로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는 지나갔으니까 없을 것이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니까 없을 것이고 현재는 공했기 때문에 없을 것이다 이겁니다. 그러니 공한 이 자리에서 내 마음의 봄을 찾지 못한다면 인간으로서 자유스럽게 살지 못하며, 항상 얘기드리지마는 악업 선업의 업식 속에서, 고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이 공부를 모르셨다 하더라도, 내가 나의 주인공을 믿지 않아도, 믿어도 일단 지금 가랑잎이 떨어질 때가 차차차차 와 가지고 지금 가을의 벌판을 걷고 있거든요. 그런데 뭣이 그렇게 원통해서 내 주인공 내가 믿으라는데 왜 못 믿느냐 이겁니다. 그래서 노인네가 되셨으면 애가 될 거고 애가 됐으면 늙어질 겁니다. 여러분은 영원하게 죽고 사는 게 없을 겁니다. 내가 그런 소린 가끔 잘합니다. 낙엽은 떨어졌을지언정 어찌 나무뿌리가 죽을 수 있겠는가. 그 나무는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고 그래서 가랑잎은 다 떨어졌지만 그 나무는 자긍하며 내 마음의 봄이라고 생각하면서 봄을 기다리고 있죠. 영락없이 봄이 오면 물이 오르고 벌써 싹이 트고 그러죠. 그래서 우리는 그런 물질 아닌 참나를 발견함으로써 바로 현상으로 나오는 겁니다. 여러분이 물질 아닌 내 주인공과 물질인 나와 둘이 아니게 공존하고 있는 그 자기 주인공을 진짜로 믿는다면 무의 생각, 무심으로 보이지 않는 데, 남이 모르는 데 생각을 했어도 모두가 이게 현상으로, 바깥으로 내가 행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생활이 과학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딴 데 가서 찾지 마시고 생활 속에서 찾아야 합니다.

악한 일을 하지 않으려면

질문 제가 살면서 서원을 세우기를 ‘나로 인해서 딴 사람의 마음이 상하지 않게끔 하고, 단 하나의 악한 일도 하지 않겠다.’ 발원하면서 걸어왔는데 부족하다 보니 어떻게 딴 사람에게 거슬리는 짓을 할 때가 많은가 봅니다. 참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질문드립니다.

답변 한 가정에서 식구가 모여 살면서 생기는 제일 어려운 문제를 한번 얘기해 보죠. 자손들이 공부를 안 하거나 말썽을 일으키는 수가 있고, 부부지간에도 어려운 문제가 많죠? 그냥 증오하면서도 말은 못하고, 말을 하려니 싸움이 일어나고 이러니까 그냥 참다 참다 가슴이 멍이 들게 되는 수도 많고요. 그런데 자식들이 속을 썩인다고 해서 그것을 거죽으로 “요놈의 새끼야, 왜 공부를 안 하느냐?” 남편이 그런다 해서 “당신은 왜 이렇게 내 복장을 썩이느냐?” 하는 식으로 해서는 아니 됩니다. 그런다면 항상 대립이 되기 때문에 쌍방이 업을 더 많이 짓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하느냐. 아들이라는 것, 남편이라는 것이 전부 가설이 돼 있습니다. 이게 인연줄의 가설입니다. 생명이 둘이 아니듯이 내 주인공과 저 주인공이 둘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내 주인공에다 모든 것을 맡기면서 ‘자식이나 남편이나 모두가 주인공 자체는 둘이 아니니까, 그저 주인공 당신만이 그렇게 안 하게끔 할 수 있고, 당신만이 공부 잘하게 이끌어 줄 수 있지 않은가!’라고 한다면 그것이 바로 내가 여기서 불을 켜는 것과 같아서 저쪽에도 불이 전부 들어오는 거예요. 그렇게 하고 거죽으로는 부드럽게 말하고 부드러운 행동을 하면서 그저 잘 이끌어 가면 따뜻한 데로 고이게 돼 있거든요. 애도 어른도 다 그렇습니다. 배고프면 배부르게 먹을 데로 고여 들고, 또 추울 때는 따뜻한 데로, 부드러운 데로 고여 들게 돼 있거든요. ‘그래도 내 가정이라는 이 울타리가 참, 아주 제일 좋구나.’ 하고선 가정으로 얼른 들어오게 돼 있어요. 이게 그냥 말하는 게 아닙니다. 뒷면의 인연의 줄이, 법망의 줄이 이어져서 불을 켜 주니까, 그 마음과 마음이 연결돼서 불이 들어오니까 전부 마음이 바뀌는 거죠.

이런 분이 있었죠. 직장 일이 끝나도 집에 들어가고 싶질 않고 괜히 마음이 헛헛하고 그렇다는 거예요. 그래서 술집 가서 술 한잔 흥건하게 먹고 집에 들어가는데도 다 귀찮고 다 메어다 패대기치고 싶고 그렇대요. 이것을 억지로는 못하죠. 어떡합니까? 그래서 나는 그분의 부인에게 그랬어요. “당신 남편이 미운 게 아니라 당신 남편의 업이 미워. 그런데 당신의 업도 그 남편의 업도 둘이 똑같지? 어느 하나도 기울고 트는 게 없어. 보는 놈이나 하는 놈이나 똑같다 이거야.” 하하하…. 그러니까 깡통은 깡통끼리 모였다 이 소리죠. “그러니까 그 업을 모두 없애려면 남편 탓하지 말고 내 탓으로 돌리고, 자식이 그렇더라도 내 탓으로 돌리고 모든 것을 거기다 놓고 녹여라. 그러면 거기까지도 녹여진다.” 그랬어요. 그런데 하루는 남편이 들어오더니 “내가 왜 이랬는지 몰라. 내가 괜히 술 먹어서 돈 없애고 세간 부수고…, 내가 미쳤나 봐. 여보, 나 참 미쳤나 봐.” 그러고는 수박 한 덩이를 건네주면서 “이거 술 먹을 걸로 수박 사 왔지.” 하하하! “아니, 소쿠리 하나만 부서져도 내 손해인데, 내가 또 사다 놓아야 될 텐데, 손해나는 일을 괜히 했어.” 그러고는 아주 우스워서 죽겠다고 그러더라는 거죠. 그날부터 가정이 화목해지고 좋아져서 잘 살게 됐더랍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뭐라고 그러셨는 줄 아십니까? “상구보리 하화중생 하라. 위로는 네 자성불을 섬기고 아래로는 네 몸속에 있는 중생들을 제도해라. 그러면 몸속에 있는 중생들이 제도가 돼서 천백억화신으로 화해서 나투느니라. 털구멍을 통하고 눈구멍을 통해 나투면서 모든 사람에게 약사도 되고 칠성도 되고 산신도 되고 지장도 되고 용신, 지신까지도 돼 주느니라. 누가 응해 달라고 하든지 응신이 돼서 전부 천백억으로 나투느니라.” 이러셨단 말입니다. 이해가 가십니까? 하하하…. 여러분도 그렇게 돼 있다는 겁니다. 머리 깎은 스님들만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여러분도 그렇게 공부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유마힐 거사 아시죠? 왜 그렇게 된 줄 아십니까? 여러분을 가르치기 위해서 유마힐 거사도 그렇게 나오신 것입니다. 그게 다 부처님들입니다. 머리 깎고 입산한 사람이나 입산을 안 한 사람이나 마음 닦는 것은 같다는 그 뜻을 여러분 앞에 보여 주고 또 여러분도 공부하라 하는 뜻에서 나신 게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내 마음을 내가 다스려서 내 몸속에 들어 있는 중생들을 제도해야죠. 모두가 그렇게 해서 시급히 업식들을 녹이고 다스리면서 실천을 해 나가는 이러한 공부가 됐으면 합니다.

그러니 아웅다웅하고 싸우고 “요놈의 자식, 왜 공부는 안 하고 요렇게 나가서 돌아다니기만 하면서 집에 안 들어오느냐?” 하고 그냥 밖으로만 야단하면 점점 더 나빠집니다. 그러지 말고 안에다 놓고 “얘! 너 밥이나 먹고 다니니? 잠은 어떻게 자니? 집에 들어와서 자야 편안하지 않겠니?” 이렇게 아주 부드럽고 인의롭게 말해 주세요. 봄에 꽃 피듯이 말입니다. 겨울에는 보잘것없었던 고목이 봄이 되어 잎이 나오고 꽃이 피듯이 말입니다. 이렇게 마음속에서 향기가 나오고 조건 없는 사랑을 할 때에 비로소 조건 없이 모든 게 들어옵니다.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질문 보왕삼매론에 보면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하는 마음이 생기나니,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종교를 믿고 시주를 하고 절에 열심히 다니는 것은 근심과 고난에서 벗어나서 보다 더 부유하고 지혜롭고 여유로운 생활을 하기 위해서 투자를 하는 것인데 어찌 이와 같은 말씀을 하셨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답변 지금 가만히 보세요. 덮어놓고 종교라 이름만 붙여 놓으면은 그냥 뭐, 아우성을 치고 손을 들고 손뼉을 치고 미친 사람들처럼 이렇게 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그런 일이 있다면 절대로 부처님께서는 용납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은 자기가 이 세상에 부모의 혈육을 받고 나와서, 뜻을 받고 나와서, 고상하고 누(累)가 되지 않게, 자기가 누가 되면은 전체가 누가 되니까 누가 되지 않게 살아나가는 것이 아주 고상한 제일가는 동물이라고 했습니다. 점잖고 고상하고 알뜰하고 진실하고 선명하게 살아도, 이 모습을 가지고는 얼마 살 수가 없는 건데….

여러분이 지금 늦었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지금이라도 아주 감사하게 생각하시고 이 몸이 있을 때에, 이 몸이 있어야 상대도 있는 거니까 공부가 되는 거지 몸이 없으면 상대가 없기 때문에 부딪침도 없고, 보는 거 듣는 것도 부딪침이 없어서 공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살아 있을 때 여러분이 다른 데다 정신 팔지 마시고 오직 한 생을 점프해서라도, ‘내가 한 생을 버리고라도, 한 생을 점프해서 내가 탈피하겠다’ 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피안의 세계가 바로 탈피의, 그 얽히지 않는 탈피의 세계라고 봅니다. 우리가 그냥 살아나가는 데 가정의 안유나 원하고, 나의 에고나 없애기 위해서 다니지 마십시오. 우리가 막다른 골목에 들어가 보지 않는다면 되돌아나올 수가 없고,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고통을 받아 보지 않은 사람은 남의 고통이라는 걸 하나도 모르기 때문에 귀합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고통이라는 걸 무섭게 생각하지 마시고 ‘이거는 공부할 수 있는 재료구나, 너무나 감사하구나!’ 하고 거기다 놓을 때에 그냥 용광로에 들어가서 녹아지듯 녹아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진리를 배우는 데 세 가지의 어긋남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는 진리에 순응해야 하고, 둘째는 부처님의 뜻을 따라야 하고, 셋째는 시대에 따라야 한다는 얘깁니다. 이 세 가지가 어긋날 때에는 부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과 같아서 그거는 불제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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