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동북아불교미술硏·나우회 재현전 준비 답사

동북아불교미술연구소 산하 작가 모임 나우회는 2월 26일부터 3월 1일까지 도쿄국립박물관 일원서 재현전 준비를 위한 답사를 진행했다. 사진은 나우회 작가들이 오쿠라 콜렉션의 비로자나불입상을 실측 스케치하는 모습.

“이 사리기에는 수많은 탑들이 그려져 있네요. 이것은 단순히 사진만을 통해서는 알 수 없어요. 친견을 통해야만 알 수 있는 것들입니다.”

“동(銅)으로 제작된 가릉빈가는 처음 봤어요. 한국서는 만나본 적이 없는 작품입니다. 이것을 재현해보고 싶네요.”

도쿄국립박물관 동양관 4층 조선미술실. 본래 한반도에 있었으나 지금 현해탄 너머 일본의 박물관에 있는 불상 등 다양한 불교문화재들을 보고 불교미술 작가들은 연달아 감탄을 했다. 한국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불교미술 작품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오쿠라 콜렉션과 불교미술’ 주제
10월 전시 준비위해 도쿄博 답사
작가들 스케치·촬영 등 실측 진행
각 분야 작품 구상·계획들 완성해
재현은 옛 것 배우는 비움의 창작
“문화재 알리는 마중물 될 것” 강조

재현 통해 망국의 회한 녹이다
동북아불교미술연구소 산하 작가 모임 나우회(회장 한봉석)는 2월 26일부터 3월 1일까지 일본 도쿄 일원에서 답사를 진행했다. 오는 10월 월정사 성보박물관에서 ‘오쿠라 콜렉션과 불교미술’을 주제로 열리는 재현전 준비를 위해서다.

나우회 작가들은 2009년 창립 이래 4번에 걸쳐 해외 반출 문화재들에 대한 재현전을 꾸준히 개최해 왔다. 지난해에는 프랑스 기메 박물관에 있는 반출 문화재들을 재현해 많은 호평을 받았다. 그런 그들이 해외 반출 문화재의 대명사 ‘오쿠라 콜렉션’은 꼭 재현해야 할 화두이기도 했다.

‘오쿠라 콜렉션’은 일제강점기 당시 대구에서 살았던 일본의 실업가 오쿠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 1896~1964)가 한반도 등에서 도굴하거나 수집해 간 문화재 1,856점을 통칭한다. 대구서 전기회사를 운영했던 오쿠라는 1921년부터 한반도의 문화재를 수집했고, 일본 패망 이후 이를 전부 가지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의 콜렉션은 불교미술부터 신라왕관까지 그 층위가 다양했고, 일부는 일본의 국보로 지정될 정도로 가치가 높았다.

사실상 불법 반출됐던 문화재였지만,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 협정 당시 민간소장물이라는 이유로 한국의 환수 요구를 거부했다. 이후 오쿠라는 보존회를 만들어 문화재를 관리하다가 그가 죽고 난 후 아들이 1982년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했다.

나우회 작가들이 사리기를 살펴보고 있다.

옛 한반도 장인 정신 확인하다
나우회 작가들이 답사한 도쿄국립박물관 동양관의 조선미술실은 ‘오쿠라 콜렉션’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그곳에는 불상·사리함·정병 등 불교문화재부터 도자기·공예·비문까지 다양한 시대의 한국 반출 문화재들이 자리하고 있다.

작가들은 곧바로 불상 등 문화재 앞에 서서 스케치와 사진 촬영을 꼼꼼하게 진행했다. 제한된 시간, 많은 것을 보고 확인하려는 작가들의 움직임들은 매우 분주했다. 2시간 가깝게 진행한 실측 조사를 통해 작가들은 재현전 작품 주제들을 하나 둘 선정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한국서는 만나볼 수 없는 독특한 성보들도 다수 있었다.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49호 목조각장 한봉석 작가(나우회장)는 통일신라기 동(銅)으로 제작된 가릉빈가상을 주목했다. 부처님의 묘음을 노래하는 새인 가릉빈가는 일반적으로 수미단에 장엄된다. 하지만 도쿄국립박물관의 금동가릉빈가상은 단독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조성미도 매우 뛰어났다.

한 작가는 “자세히 보면 가릉빈가의 머리가 살짝 옆으로 돌아갔다. 이에 맞춰 목의 영락도 비틀어져 있다. 매우 세심한 표현”이라며 “이를 목조각으로 재현해 보려한다. 현 가릉빈가상에는 바라가 있는데 손의 기물을 바꿔서 ‘극락조’ 연작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불교 소조 작품을 주로 만들고 있는 노정용 작가는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금동비로자나불입상을 재현키로 작품 주제를 정했다. 이 역시 오쿠라가 일제강점기 반출한 불교문화재로 그 조형이 매우 독특하다. 통일신라시대의 비로자나불은 좌상이 일반적이지만 드물게 입상도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국립경주박물관 등 몇 곳에만 금동비로자나불입상이 확인될 정도다.

노 작가는 “통일신라시대 비로자나불상은 좌상이 대부분이지 입상은 쉽게 만날 수 없다”며 “이를 소조로 만들어 보려 한다. 좋은 소조상이 나오면 이후 주물로 금동 불상으로도 재현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에서 드물게 수은도금을 이어오고 있는 오세종 작가는 조선미술실 한켠에 있는 금동팔각사리탑을 주목했다. 통일신라기 제작된 금동팔각사리탑은 광양서 출토됐으며, 뚜껑에는 당초문이, 사리기 몸통에는 팔부신중이 매우 세밀하게 음각돼 있다. 덮개에는 특이하게 공양보살이 손잡이로 만들어졌다.

오 작가는 “사리기 몸통에 새겨진 팔부신중부터 덮개의 공양보살상의 디테일이 매우 섬세하다. 특히 손잡이에 공양보살상을 조성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면서 “현재 감은사지 사리함을 재현 중인데 사리함 시리즈를 연작으로 제작하려 한다”고 작품 구상 계획을 설명했다.

불교미술과는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일본에 의해 해외로 반출됐던 문화재들을 재현하려는 작가들도 있었다. 경북무형문화재 제37호 대목장 김범식 작가는 1918년 하세가와 조선총독부 2대 총독이 자신의 고향인 아와쿠니시로 불법 반출한 벽제관 육각정을 1/10 스케일(Scale)로 재현을 진행하고 있다. 벽제관은 임진왜란 당시 이여송이 이끄는 명나라 군대를 왜군이 크게 이겼던 승전지였다.

이에 대해 김 작가는 “일본 총독이 일종의 전리품으로 한국에 있던 문화재를 해체해 일본으로 불법 반출했다. 이는 한반도 역사를 폄훼하고 우리의 민족혼을 말살하려 한 것”이라며 “이를 후손들에 상기시키고 싶었다”고 밝혔다.

천한봉 도예 명장의 딸로 그 뒤를 계승하고 있는 도예가 천경희 작가는 흑유(黑釉)를 이용해 문화재 재현을 진행할 계획이다. 천 작가는 “흑유는 산화철 20% 이상이 있어야 구현이 가능하다. 사발이나 자라병들로 재현하려 한다”고 말했다.

재현을 통한 한국문화재 傳法
나우회 작가들이 문화재 재현 작품을 매년 선보이는 이유는 옛 장인의 정신과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나우회 전시를 기획·담당하고 있는 최선숙 동북아불교미술연구소 사무국장은 “재현은 작가 자신에게 스스로를 비울 수 있게 해주는 기회”라면서 “옛 선현이 만든 작품 안에 담긴 정신과 기술을 찾고, 자신의 잘못된 훈습을 버릴 수 있게 한다. 이를 통해 작가들은 전통의 계승과 새로운 창작의 열정을 가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나우회장 한 작가 역시 “원작자의 마음을 읽기 위해서 ‘그 동안의 나’를 버려야 하는 공부가 필수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당시 장인들이 대중에게 줬던 감동을 재현해서 현재 시대의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문화재를 바르게 재현하고 바르게 알려서 문화재 알리기의 마중물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한편, 나우회는 2010년 7월 경기도 남양주 흥국사에서 고불식을 갖고 창립했다. 2010년 10월 27일 첫 전시인 전통문화의 둘레길 만들기 기획전 ‘극락정토, 미타의 미소’전을 시작으로 2014년부터는 해외 반출 문화재들을 재현하는 전시를 이어오고 있다. 오는 2020년에는 창립 10주년을 맞아 ‘따로 또 같이’를 주제로 대형 전시회를 주제로 기념 재현전을 개최할 계획이다. 

한 작가가 불상을 실측 스케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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