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一條拄杖橫靑天<일조주장횡청천>하니
敎外別傳一乘傳<교외별전일승전>이라.
正法妙心眞實相<정법묘심진실상>은
描也描不成 <묘야묘불성>이요
畵也畵不也<화야화불야>로다.

한 막대기 주장자가 푸른 하늘을 비끼니
49년 설(說)한 밖에 달리 일승법(一乘法)을 전함이로다.
바른 진리의 법, 묘한 마음, 참되고 실다운 모습은
모방할래야 모방할 수가 없고
그릴래야 그릴 수 없음이로다.

금일은 정유년 동안거(冬安居) 해제일(解制日)입니다.

혹한(酷寒)의 삼동구순동안 세간(世間)과 단절하고 산문(山門)을 폐쇄(閉鎖)하고 정진(精進)하고 정진한 것은 오직 자신의 본성(本性)을 밝히기 위해서였습니다.

금일 해제일이 도래하여 결제 때 가졌던 결연(決然)한 의지로 정진하였다면, 눈 밝은 안목자(眼目者)가 출현해서 대장부의 활개를 쳐야 할 것이나, 그렇지 않다면 삼동의 안거를 돌아보고 점검하여 견성에 대한 다시 각오를 다져서 바위처럼 움직이지 말고 각자의 본참화두를 참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파도에 백번 밀려나도 다시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돛단배가 마침내 순풍을 만나 신대륙에 도착하듯이, 수행자는 번뇌 망상이 팥죽 끓듯이 일어날 때마다 화두를 챙기고 의심하는 백절불굴(百折不屈)의 의지를 가져야 만이 화두가 순일해지고 마침내 마음의 고향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화두(話頭)가 있는 이는 각자의 화두를 챙기되, 화두가 없는 이는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 이 화두를 일상생활 하는 가운데에, 앉으나 서나, 가나 오나, 일체처일체시(一切處一切時)에 챙기고 의심해야 할 것입니다.

화두를 챙길 때는 아주 또렷하게 화두의 의심을 지어가야만 가지가지의 생각이 침범하지 못하고 혼침(昏沈)도 달아나 버립니다.

만약 털끝만큼이라도 다른 생각이 있거나 게으른 생각이 있으면 화두는 벌써 십만 팔 천리 밖으로 달아나 버리고 과거의 습기(習氣)로 인한 다른 생각이 마음 가운데 자리 잡고서 주인노릇을 하고 있게 됩니다.

그러니 모든 반연(攀緣)은 끊고 시비장단(是非長短)은 모두 내려놓고, 견성하고 말겠다는 확고한 대신심(大信心)과 불타는 대용맹심(大勇猛心)을 내어, 간절하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각자의 화두를 챙기고 의심하여, 번뇌와 망상이 들어올 틈이 없도록 혼신의 노력을 쏟아야 합니다.

그렇게 정성껏 잡도리하다 보면 문득 참의심이 발동하게 됩니다. 그때는 보는 것도 잊어버리고 듣는 것도 잊어버리고, 시냇물이 끊어지지 않고 흐르는 것처럼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일 년이고 지속되다가, 홀연히 보는 찰나에 듣는 찰나에 화두가 박살나게 되고, 억겁다생(億劫多生)에 지은 업(業)이 빙소와해(氷消瓦解)되어, 몰록 마음의 고향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중국의 당나라 시대에 위산선사(潙山禪師)는 천오백 대중을 지도하는 총림(叢林)의 방장(方丈)이셨습니다.

일일(一日)에 앙산(仰山) 스님이 불법사태를 만나서 머리를 기르고 속복(俗服)을 입고 찾아와서 예를 올리니, 위산선사가 물으셨다.

“깊은 우물에 떨어져 밧줄을 의지하지 않고 어떻게 나오려는고?” 하니,

앙산스님이 “선사님!”

하고 부르니, 위산 선사께서 흡족해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앙산스님이

“선사님! 제가 머리를 기르고 속복을 입고 있는 것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고 물으니,

위산선사께서

“그대의 외형은 논하지 아니하고, 그대의 바른 안목을 귀하게 여길 따름이네.”라고 하셨다.

이 부처님 법(法)은 형색이야 어떻든 간에 오직 바른 진리의 안목(眼目)을 갖추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 후 앙산스님은 위산선사의 제자가 되어 15년간 모시고 시봉한 후에 선법을 크게 선양(宣揚)하셨다.

또한 일일(一日)에 임제스님의 법제자인 삼성(三聖) 스님이 위산(潙山)선사의 회상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 큰 회상에서 살림살이를 드러내놓지 않고 대중들과 같이 묵묵히 수행생활을 하면 여러 해 동안 지내셨다.

하루는 앙산 혜적(仰山慧寂)스님께서 삼성스님에게 물으시되,

“수좌의 이름이 무엇인고?”

하시니, 삼성스님이 대답했다.

“혜적(慧寂)입니다.”

“혜적은 내 이름일세.”

“예, 제 이름은 혜연(慧然)입니다.”

앙산스님과 삼성스님이 이렇게 멋진 거량을 하셨다.

이처럼 삼성스님이 삼년간 일여(一如)하게 정진을 잘 지어갔는데, 하루는 위산선사께서 시자(侍者)를 시켜 물어보셨다.

시자가 삼성스님의 문 앞에 이르러 조그마한 막대기를 들어 보이면서,

“스님께서 이 막대기를 들 수 있겠습니까?”

하니, 삼성스님이

“조실스님이 일이 있구나!”

하고 답을 하였다.

시자가 돌아가서 위산 도인께 아뢰니 위산 도인께서,

“다시 가서 종전과 같이 말을 해 보아라.”

하시니, 시자가 삼성스님의 문 앞에 가서 다시 조그마한 막대기를 들어 보이면서,

“이것을 들 수 있겠습니까?”

하니, 삼성스님이

“재범불용(再犯不容)이라. 다시 범한즉 용서치 않음이로다.” 하였다.

시자가 돌아가서 위산 도인께 아뢰니 크게 좋아하셨다.

며칠이 지나서 삼성스님이 위산 도인께 하직 인사를

드리니, 위산 도인께서 법을 부치시기 위해,

“시자야, 주장자(拄杖子)와 불자(拂子)를 가져오너라.”

하시니, 삼성스님이 말했다.

“저의 스승은 있습니다.”

“누구인가?”

“임제(臨濟) 선사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제자를 두었으니, 임제선사는 복도 많으시구나.”

또한 설봉스님의 법을 이은 운문선사는 일찍이 출가하여 견성하겠다는 확고한 신심과 각오로 참선수행에 몰두하였다. 당시의 선지식인 목주선사를 참례하고는 팔부(八部)의 안목(眼目)이 열렸고, 설봉스님의 회상(會上)에서 일대사(一大事)를 해결하여 인가(認可)를 받고 법(法)을 잇게 되었다.

그 후 운문선사의 법이 중국전체에 널리 펴져서 선사의 법제자가 20명에 이르니, 운문종파를 이루게 되고 선사의 선법(禪法)이 널리 융성하였다.

세월이 흘러 운문(雲門) 선사께서 세연(世緣)이 다해가니 제자들을 모아 놓고,

어떠한 것이 부처님의 진리의 도(道)인가?

어떠한 것이 제바종(提婆宗)인가?

어떠한 것이 취모검(吹毛劍)인가?

이 세 가지 법문을 물으셨다.

여러 제자들이 훌륭한 답을 했지만, 그 중에서 파릉(巴陵)스님의 답이,

어떠한 것이 부처님의 진리의 도(道)인가?

“눈 밝은 사람이 우물에 빠졌습니다.”

어떠한 것이 제바종(提婆宗) 인가?

“은쟁반 위에 눈이 소복히 쌓였습니다.”

어떠한 것이 취모검(吹毛劍)인가?

“산호(珊瑚)나무 가지가지에 달이 주렁주렁 매달렸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운문 선사께서 이 답처(答處)를 듣고 매우 기뻐하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열반(涅槃)에 든 후, 너희들은 기일(忌日)에 제사상에다 갖가지 음식을 차리지 말고

항상 이 세 마디 법문을 일러주길 바란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이여!

이 법문을 안다면 한 산중의 방장이 될 자격이 있음이라.

답할 자가 있으면 답을 가지고 오너라.

필경(畢竟)에 진리의 일구(一句)는 어떠한가?

與奪自在能幾幾(여탈자재능기기)아

天上人間無等匹(천상인간무등필)이로다

주고 빼앗는 자재의 기봉을 갖춘 이가 몇몇이나 될꼬

천상세계와 인간세계에 짝할 자가 없음이로다.

[주장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고 하좌(下座) 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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