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사신도와 주악비천, 우주천문의 세계

대웅보전 천정에 장엄한 우주천문 문양세계. 꽃과 구름, 별자리를 통해서 법계우주를 표현하고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소재와 사신도

불영사 대웅보전 장엄세계의 두드러진 특색은 내부장엄 곳곳에 고구려 고분벽화의 소재와 모티프를 풍부하게 취하고 있다는 데 있다. 고구려 고분미술의 원형을 1200여년의 시간 간극을 뛰어넘어 유사하게 재현하고 있어 놀랍다. 내부 단청장엄 곳곳에 연화문과 천문 별자리, 사신도(四神圖)를 연상케 하는 신령한 동물들, 주악비천 등 고구려 고분벽화의 소재들이 다양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사신도 벽화 중 백호와 현무도.

불영사 대웅보전의 사신도는 창방, 대들보, 천정 등 불전 내부 곳곳에 혼재한다. 용과 백호, 현무, 주작의 사신도는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나타나듯 음양오행에 근거한 네 방위의 수호신 역할을 담당한다. 좌청룡 우백호의 배치는 동쪽 창방에 용, 서쪽에 백호를 둬서 기본 방위개념을 구현하고 있다. 다만 18세기 조선의 시대정신을 반영하여 백호는 다소 해학적인 민화풍의 호작도로 묘사했고, 쌍으로 표현하는 도교적 주작은 유가적 선학의 쌍으로 대체했다. 불영사 대웅전의 사신도 중에서 특별히 눈길을 끄는 것은 현무도이다. 우선 문양의 위치부터 인상적이다. 향좌측의 대들보에 베풀었다. 대들보에 현무 문양을 베푼 사례는 매우 드물다. 이곳 외엔 마곡사 응진전 대량에서 용머리를 지닌 현무 문양을 볼 수 있다. 불영사 대량의 현무도는 어찌 보면 등에 검은 육각형 귀갑문으로 철갑을 두른 공룡 같은 느낌으로 다가올 정도로 육중하다. 수염을 휘날리며 성큼 성큼 걷는 모습이 고구려 벽화고분 강서대묘에서 익히 보던 현무도와는 다소 이질적인 모습이다.

사신도는 네 방위 수호신이자 기(氣)
별, 서수, 천인 공존하는 판타지 세계
사찰천정에 구현한 천상열차분야지도

그런데 사신도라는 것은 실존 동물의 구상화인 것이 아니라, 우주, 혹은 천계에 가득한 신령한 기운을 방위에 따라 동물의 형상으로 차용했을 따름이다. 동양미술은 서양과 달리 사실주의적 묘사나 재현보다는 내면을 드러내는 데 보다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이형사신(以形寫神)의 태도, 곧 형태를 빌려 정신을 드러내는 것이 동양미술의 조형본질이고 조형원리였다. 초현실주의적 사신도는 음양오행에 따른 방위별 수호신 역할을 하는 벽사(?邪)장치임과 동시에 공간에 흐르는 무형의 신령한 기(氣)를 드러내는 회화적 표현에 가깝다. 법당은 말 그대로 부처님, 곧 법의 집이다. 물리학적 우주는 불교 사유체계에선 법계우주로 현현한다. 법당은 법계우주의 거시체계를 지상에 구현한 상징적 공간이다. 사신도와 넝쿨 단청문양 등 초현실주의적 형상은 법계우주에 충만한 무형의 기운을 드러내는 조형언어다.

주악비천 및 공양비천도.

사방 벽면에 17분의 주악, 공양비천

법계우주에 충만한 기운은 본질적으로 우주만물에 작용하는 생명력이며, 그것은 곧 부처님의 자비력이다. 공포 포벽에 26분의 여래께서 나투시는 것도 자비력의 주체를 염두에 둔 까닭이다. 생명력이 충만하므로, 온갖 이상화 된 관념이 동원 될 수밖에 없다. 천계에 온갖 길상의 공덕장엄이 뒤따른다. 부처님 한 분의 불현전으로도 감격스러운데, 시방삼세의 부처님이 한꺼번에 나투시는 희유의 장면에서는 어떠하겠는가? 하늘에서 만다라화, 마하만다라화, 만수사화, 마하만수사화의 꽃비가 쏟아져 내리고, 공양비천과 주악비천의 예경이 울려 퍼진다. 그것은 시방세계에서 출현하신 불보살에 대한 공덕과 위신력을 찬탄하고 헌공 올리는, 환희와 신심의 외적 발현으로 보아야 한다.

대웅전 내부 사방 공포 위에 조성한 회칠 화면의 상벽은 18곳에 이른다. 상벽의 단청장엄에서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대목은 다양한 비천의 표현에 있다. 비천도는 상벽의 14곳과 충량의 2곳을 합해 총 16곳에 두루 분포하는데, 등장하는 비천은 총 17분이다. 불영사 대웅전처럼 기악비천과 가무비천, 공양비천을 불전건물 내부 사방벽면에 빙 둘러 벽화로 표현한 사례는 흔치 않다. 범어사 팔상전과 남양주 흥국사 명부전 등 서너 곳뿐이다. 사방 벽면에서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주악비천으로 인해 천계에 선율이 가득한 공감각적 효과를 연출한다.

장엄 예술가들은 처음부터 상벽과 천정을 하늘 세계로 염두에 두었음이 분명하다. 하늘 꽃비가 쏟아져 내리고, 주악비천과 함께 여러 기이한 서수들과 천인들이 공존한다. 용과 현무, 날개 달린 서수, 선학들이 비상하고, 천도(天桃)나 붉은 여의보주, 혹은 연꽃가지를 든 천인들이 신령한 서수들을 타고 헌공의 신심으로 하강하는 판타지 장면을 구현하고 있다. 익숙한 장면들이다. 조금의 심미안을 발휘한다면 도상학적인 원형질이 고구려 고분벽화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덕흥리 고분이나, 삼실총, 오회분 4호묘, 5호묘 등에서 천계장엄의 모티프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원형질을 예경과 헌공의 장엄세계로 재해석하는 놀라운 예술역량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꽃과 구름, 별자리 문양의 우주천문도

특히 외진주 영역의 빗반자 우물천정 칸칸은 생명력의 에너지로 충만한 태허의 우주 그 자체다. 다양한 꽃과 구름의 형상을 빌려 우주의 조화로운 질서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꽃과 구름은 더 이상 자연의 꽃과 구름이 아니다. 대단히 철학적이며 정신적인 차원으로 재해석하여 생명력으로 충만한 법계우주의 메타포로 활용한 것이다. 칸칸이 붉은 기운 속에, 혹은 현묘한 암흑의 천공 속에서 암흑물질 같은 불가지의 입자와 파동의 선형에너지들이 소용돌이치는 놀라운 장면들이다. 마치 현대물리학의 초끈이론이나 파동이론의 회화적 표현으로 삼아도 좋을 만큼 경이롭다. 반자틀 한 칸마다 에너지 줄기는 나선형으로 회전하며 생명의 꽃을 연속적으로 피우다가, 중앙의 중도자리에 이르러 마침내 화엄의 꽃을 피우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평면의 확장성이 특징적인 천정의 건축개념을 생명력의 기가 충만한 우주적 공간으로 장엄의 혁명을 이뤄 놓은 것이다.

사찰천정 장엄에 벽화형태로 우주천문도가 나타난다는 것은 미술사학적으로나 고고학적으로나 놀랄만한 사례다. 단지 몇 몇의 사찰천정에서 구름 속 둥근 별을 듬성듬성 그려놓은 장면이 포착된다. 구례 화엄사 원통전과 여수 흥국사 응진전, 순천 송광사 영산전 천정 등이 그 같은 유형에 해당한다.

그런데 불영사 대웅전 천정의 우물반자 단청문양은 은하와 별자리를 그려 넣은 대단히 희귀한 천문도여서 감탄을 감출 수 없다. 고인돌의 성혈(星穴:별자리를 나타낸 돌구멍)이나 비석 같은 대형 석판에 새긴 천상열차분야지도(1395년) 등의 별자리 표현과는 전혀 다른 회화적인 도상이다. 빗반자 천정 우물반자 한 칸의 크기는 대략 가로 54cm, 세로 50cm 정도다. 그 작은 크기에 우주천체를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까? 밤하늘에 가뭇가뭇한 성단이나 은하는 한 송이 꽃으로 표현하고, 은하수나 성운은 봉긋봉긋한 구름 형상으로 대범하게 차용했다. 그 사이사이에 오행에 따른 3원 28수의 상징적인 별자리를 그려 넣은 파격적인 구도를 취했다. 3원 28수는 천구의 중심부에 자미원 등 3원을 배치하고, 달이 움직이는 길 따라 동서남북 네 방위에 각각 일곱 별자리씩 구역으로 나눈 동양의 전통 천문세계관이다. 그 어마어마한 세계를 천정반자 한 칸에 담아냈다. 온 우주의 영상과 지식이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에 들어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천상의 나무에 화사하게 핀 꽃

자연에서 빌린 꽃의 생김은 연꽃, 국화, 난초, 매화 등인데, 대여섯 송이 꽃떨기 가지로 우주를 표현한 발상이 대범하다. 고사리 새순 줄기처럼 나선형으로 돌돌 말려 연속적으로 만개한 꽃송이 은하들은 금빛으로 찬란히 빛난다. 한 가지에서 다섯 송이, 혹은 여섯 송이씩 꽃다지를 이룬 형상이 심오한 철학적 깊이와 심미적 아름다움을 안겨준다. 꽃가지가 분화하는 변곡점마다 새싹이 촉을 뾰족이 내밀어 생명의 영원성을 암시하고, 꽃차례와 잎차례 곳곳에 스멀스멀하게 꿈틀대는 미묘한 기운을 묘사하고 있어 단청문양의 심오함을 극대화 한다. 그런 회화적 장면들은 고구려 벽화고분 덕화리 1호분, 오회분 4호묘 등의 별자리 표현에서나 살필 수 있던 고도의 정신적인 문양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의 천문역사 측면에서도 유의미한 실증자료로도 활용할 수 있는 귀중한 천문 문양세계라 할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간과해서는 안 될 본질적인 관점이 남아 있다. 우물천정에 장엄한 천문도 단청문양은 28수 성수도 자체를 표현하는 데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별자리는 성스러운 하늘세계에 실현한 이상향의 상징적 소재로 활용한 부차적인 개념이다. 보다 본질적인 문양은 만개한 꽃봉오리다. 그 꽃은 지고지순의 선과 미로 정화한 귀의적인 불국토이다. 빗반자 별자리 단청문양의 꽃은 바로 영산회에서 미륵보살께서 ‘천상의 나무에 화사하게 핀 꽃’으로 비유한 불국토를 상징하는 회화적 표현인 것이다. 꽃의 묘사에 초현실적 관념의 추상성을 극대화하고, 불변의 물질성을 가진 금니 안료로 채색한 뜻도 거기에 있다. 자연의 꽃이 아니라, 불교 교의체계로 재해석한 불국 화엄의 꽃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