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상 속 불교문화, 유레카!
차례상 속 불교문화, 유레카!
  • 노덕현 기자
  • 승인 2018.02.12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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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특집] 불교 설문화
유교문화로만 여겨져 왔던 설 차례상 속에도 불교에서 전래된 문화가 자리하고 있다. 무심코 지내 온 차례, 불자로서 공양의 마음을 가지고 올리는 것은 어떨까. 노덕현 기자

불교와 향문화

사찰에서 조석예불에 반드시 들어가는 것으로 오분향례(五分香禮)가 있다. 계향(戒香) 정향(定香) 혜향(慧香) 해탈향(解脫香) 해탈지견향(解脫知見香) 등 부처님이 지닌 다섯가지 공덕인 오분법신을 향(香)에 비유한 것이다. 이처럼 불교에서 향은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불교에서 향을 피우면 그 향기가 백천만억 떨어져 있는 부처님 세계까지 널리 퍼진다고 한다. 부처님들이 향기를 맡고 사바세계의 법문을 듣거나 공양하는 이들을 알게 되는 공덕이 있다고 한다. 즉 향은 부처님 세계와 사바세계를 연결해주는 매개체인 것이다.

부처님께 올리는 향(香)ㆍ등(燈)ㆍ차(茶)ㆍ꽃(花)ㆍ과일(果)ㆍ쌀(米) 등 육법공양 중 향을 제일 처음으로 삼는 것도 이 이유다.

향은 본디 고대 인도나 이집트 같은 더운 지방에서 처음 사용됐다. 향은 산스크리트어로 ‘Gandha’라고 하며, 인도에서는 습한 기후에서 종교행사시 장엄함을 나타내는 한편 벌레를 쫓고 악취를 지우기 위한 실용적인 용도로 사용됐다.

향은 중국으로 건너와 건타(乾陀)ㆍ건두(健杜) 등으로 음역됐으며 보다 다양한 의식에 사용됐다.

그 이후 불교가 본격적으로 한반도에 전래된다. 우리나라에 향이 들어온 것은 고구려에 불교를 전래한 묵호자(墨胡子) 스님 때였다. 〈삼국유사〉에는 “양나라서 향물(香物)을 보내왔는데, 사용법을 몰랐다. 승려 묵호자가 이름과 사용법을 전했고, 불에 사르면 향내가 몹시 풍겨 신성에 정성이 통했다”고 전한다.

향은 우리나라에서 법회 등 불교행사서 중점적으로 사용됐으며, 이후 민간에도 널리 퍼진다. 이후 조선조를 거치며 유교의례 등에도 향을 사용했다. 수행의 방편으로 거처하는 방 안에 향불을 피우기도 했다.

향은 불교적으로 그 무엇보다 자신의 몸을 태워 주위를 맑게 하기에 희생과 화합을 상징한다. 또 등불의 광명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향기를 나누기에 깨달음을 전하는 ‘해탈향(解脫香)’이라고도 불린다.

불교와 차문화 

설 차례에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일본식 술을 올리는 문화가 자리했지만 우리 전통에는 예로부터 차가 올랐다.

신라 경덕왕 때 충담(忠談) 스님은 매년 양기 충만한 3월 3일과 9월 9일에 다구(茶具)를 들고 남산에 올라 미륵세존께 차를 올렸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이 전한다. 신라의 불상과 탑ㆍ부도에 차를 공양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듯이, 차는 불교와 불가분의 관계다. 차의 특성과 정신적인 수행을 강조하는 불교의 특성을 연관 짓지 않더라도 음주가 금지된 스님들은 차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차는 본디 우리나라의 고유의 식물은 아니었다. 차는 삼국 말에 중국 땅에서 전래되었다. 한국에 차가 전래된 시기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나, 삼한시대에 백산차라고 불리는 차가 있었음을 보아 삼한시대부터 우리의 토착 차(茶)문화가 싹트게 된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오늘날 차는 본래 중국의 특산품으로 다른 문화와 함께 신라에 유입하여 재배하게 된 것이다.

차를 공양하는 다공(茶供) 의식에는 중국 백장선사(百丈禪師)의 ‘백장청규(百丈淸規)’가 있는데 이것은 우리나라나 일본을 막론하고 다례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화엄경〉에서도 차가 향화(香花)와 더불어 중요한 불공 수단 중 하나로 본다. 조선시대 불교의식을 적은 문헌에서는 다게(茶偈)가 많이 나타나지만 막상 다례란 단어가 나타나기는 조선 중기 때이다.

조선초에 술과 차를 함께 또는 선택적으로 사용한 과도기를 거쳐 점차 ‘헌다’라는 용어는 그대로 두면서 물을 쓰게 된 것이다. 술보다 차는 당시 고급기호품으로 일반 백성들이 접근하기 어려웠다. 차를 불교 산물로 여겼던 이유와 함께 제사의 보편성에서 술문화가 발달된 것이다. 올해 설에는 정신적, 신체적으로 맑게 해주는 효능을 지닌 차를 올리는 것이 어떨까.

불교와 절 문화

인류의 역사와 제사문화는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이중 자신을 낮추는 절 문화는 다양한 문화권에서 발달했다. 동맹(東盟)이라는 제천 행사를 치렀던 고구려의 벽화를 보면 남녀가 한복을 입고 엎드려 절하는 장면이 나온다. 특히 만주의 집안 우산리 고구려 고분 벽화 중 장천 1호 벽화에는 부처님을 향해 절하는 불교의식이 표현돼 있다.

본래 불교에서는 부처님 뜻에 따라 제식주의에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인도문화에서 공경의 문화로 불교 속 예배문화가 자리하게 됐다.

불교에서 예배는 경건한 보리심을 증진하는 신행의 기본이다. 절은 삼보(三寶)에 대한 예경과 상대방을 존경하는 마음의 표현이다. 자신을 스스로 낮추는 하심의 수행방법 중 하나다. 절 자체로도 하나의 훌륭한 수행법이다.

조계종 신도교재 〈불교입문〉에는 “예부터 절을 많이 하면 건강과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남들에게서 신뢰와 호감을 얻으며, 스스로 두려움이 없어지고, 부처님께서 항상 보호해주시며, 훌륭한 위엄을 갖추게 되고, 죽어서 극락에 태어나며, 마침내 깨달음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면서 절이 가져다주는 공덕을 설명한다.

절은 반배와 오체투지, 고두례 순으로 올린다. 오체투지를 하기 전과 마친 뒤에 하는 반배는 법당 앞에서 불탑에 절할 때, 절 입구에서 법당을 향하여 절할 때, 길에서 스님이나 법우를 만났을 때, 법당에 들어가거나 나오기 전에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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