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특집·Stop! 명절 갈등

무술년 설 명절이 다가왔다. 부푼 마음으로 고향으로 가서 가족과 친지들을 만나야겠지만, 달갑지 않을 경우도 많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 친지들이 아이러니하게도 명절 스트레스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해서다.

실제, 한 취업 포털 사이트가 직장인 및 취업준비생 289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전체의 77.5%가 ‘명절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답했을 정도다. 이 중에 절반은 “‘명절 우울증’을 겪은 바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2018년 설 명절을 맞아 종교와 성 역할, 세대에 벌어질 수 있는 갈등 유형과 해결 방안에 대해 알아봤다.

차례·제사로 인한 종교 갈등
가족 불화 원인, 이혼 사례도
이해 바탕한 가족 의식 필요

가사 노동은 남녀 공동 책임
함께 일하고 즐기는 명절을
걱정하는 어른 마음은 알지만
수직적 충고는 도움 안돼요

제사 못해 VS 전통 중요
# 불교 집안에서 자란 A씨는 아내와 종교적 이유로 갈등을 빚다가 이혼하게 됐다. 개신교 집안에서 자란 아내는 결혼 전에는 제사와 차례를 지내지 않았다. 자신과 결혼하면서 자연스럽게 차례와 제사에 참여하게 됐지만 아이 낳으면서 아내의 입장은 달라졌다. 자신의 아이가 제사와 차례에 참여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남편에게도 “나와 살라면 개종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당연히 시댁 식구들과 갈등이 빈번해졌고, 결국 부부는 이혼하게 됐다.

# B씨 집안의 종교는 요즘 말로 ‘버라이어티’하다. 큰아버지는 가톨릭, 작은 아버지는 개신교, 본인의 아버지는 불교. 이들 가족의 종교 갈등이 시작된 것은 B씨가 중학교 시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부터다. 아버지 형제들은 제사 방식을 놓고 갈등했고, 결국 서로 등을 돌리게 됐다. 그 이후 B씨의 가족들은 10여 년이 넘게 왕래 없이 각각 차례·제사를 지내오고 있다. B씨에게 가족이 모두 모인 북적북적한 명절은 남의 이야기다.

가족 간 종교 갈등은 사실상 제사와 차례를 지내는 방식에서 불거진다. 이 같은 갈등은 서구 종교가 한국에 들어오며 불거진 일들이다.

실제, 1920년 제사 문제로 한 여인이 목숨을 끊었다. 경북 영주의 주부 박 씨는 시어머니가 죽자 예법에 따라 혼실에 상식을 받들었다. 그러나 개신교 신자인 남편이 이를 중지시켰고, 이에 분개한 박 씨는 죽음으로써 시어머니에 대한 불효를 갚겠다고 냇물에 투신자살했다. 이 사건은 사회 문제화됐고, 당시 동아일보는 사설을 통해 “제사는 선조의 영혼을 위로하고 사모하는 예(禮)인데, 예수교도 영혼의 존재를 믿는 이상 그 영혼 앞에서 절하는 것이 왜 미신이며, 우상숭배인가”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미 100여 년 전부터 있어왔던 뿌리 깊은 갈등이  현대 사회에서도 쉽게 사라질 일은 없다. 다만, 변화하는 생활 방식에 맞춰 명절 문화를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 종교 문제의 경우 첨예한 사안이어서 상호간 이해와 존중이 바탕이 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의 조언이다. 제사와 벌초에만 집중하기보다는 ‘가족의 행복 추구’에 조금 더 신경을 쓰라는 것이다.

14년째 서울 가정법원에서 상담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선업 스님(한국명상지도자협회 이사)은 “설과 추석 등 명절 이후 이혼 소송들이 평소보다 2~3배 증가한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종교 갈등으로 인한 이혼 사례도 적지 않다”면서 “가족 간 종교 일치율이 늘어가고 있지만, 아직도 제사 문제를 두고 갈등을 겪는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스님은 명절 문화를 전통·관습·종교보다는 ‘가족 행복’에 초점을 맞출 것을 제안했다. 선업 스님은 “가족들이 모여 간소하되 정성스러운 차례를 준비하고 우애를 다질 수 있는 가족캠프를 떠나는 것이 좋다. 또한 의례 준비는 함께 하되 참가 여부를 본인 선택에 맡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며 “가장 중요한 점은 가족들이 서로 불편하지 않고 즐겁게 모일 수 있는 명절 자리로 만드는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은 여자만 VS 도와주고 있잖아
“명절을 앞두고 시어머니와 한바탕했어요. 그래서 남편이 부인만 시댁에 안 간다고 했고, 명절에 시댁에 가지 않았죠. 완벽한 명절이었어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 ‘B급 며느리’에 나오는 대사 중 일부다. 여성의 사회 참여와 지위가 올라가기는 했지만, 명절에는 여전히 약자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 경찰청의 통계에 따르면 2014~2017년 명절 연휴에 접수된 가정 폭력 신고는 3만 1157건이다. 이는 연휴 하루 평균 974건의 가정 폭력이 발생한 것이다. 평소 발생하는 평균 신고 건수인 676건보다 40%이상 많은 것이다.

명절 갈등이 가정 파탄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많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지난 2016년 설과 추석 전후 10일간 접수된 이혼 신청은 하루 평균 577건이다. 평시 하루 평균 이혼신청이 298건임을 감안하면 두 배가량 되는 수치다.

이 같은 갈등은 명절이라는 특수성에 기인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전문가들은 “평소 쌓였던 부부 갈등이 명절 때 폭발하면서 이혼소송까지 이어질 때가 많다”고 진단한다.

옥복연 종교와젠더연구소장은 “성 역할을 두고 벌어지는 갈등은 단순히 고부 문제를 넘어서 다양한 가족 내 문제가 얽혀 있다”면서 “요즘 남편들이 명절 가사 노동을 돕는다고 하는 데 애초 가사는 돕는 게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옥 소장은 부처님이 설한 남편의 의무를 설명했다. 부처님은 남편들이 아내를 존중하고 경멸하지 말 것을 설했다. 옥 소장은 “부처님은 아내를 존중하기 위해 호칭을 잘 가려 사용할 것을 강조했다. 또한 아내를 노예나 하인 대하듯 경멸하지 말라고도 했다”며 “이는 부부가 역할을 떠나 평등한 관계임을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명절에 마지못해 가사노동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평소부터 ‘함께 하는 것’이라는 생각과 습관을 갖는다면 명절 갈등이 발생한 요지는 줄어든다. 현재 가사 분담 문화와 의식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진심으로 걱정 VS 잔소리 그만
명절이 불편한 사람들 중에는 취준생이나 솔로 직장인들이 많다. 지난해 취업 전문 포털 잡코리아 조사에 따르면 취준생의 48.3%는 명절 친지 모임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불참 이유 1위는 ‘취업준비(55.8%·복수응답)’였다. 취준생들은 또 ‘현재 상황이 자랑스럽지 못해서(47%)’, ‘친지들과의 만남이 불편하고 부담스러워서(33.8%)’등을 이유로 꼽았다.

취업 전문 포털 인쿠르트의 지난해 조사 결과도 비슷했다. 조사 참여 남녀 대학생·취준생 중 24%가량은 가족·친인척과의 갈등을 명절이 힘든 이유로 꼽았다. 위계·수직적으로 내려오는 충고와 걱정은 젊은 사람들에게는 부담이거나 오지랖 넓은 충고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노량진에서 고시생들을 위한 힐링상담센터 마음충전소를 운영하고 있는 마가 스님은 “경기 침체와 청년 실업 문제로 요즘 젊은이들은 명절 연휴를 마냥 반길 수 없다”면서 “이 점을 이해한다면 취업·학업·결혼 문제 등을 인사로 꺼내지 않는 것이 어른으로서의 배려”라고 강조했다.

이어 “대화에 있어 세대 간 갈등은 늘 존재한다”면서 “본인은 걱정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상대방의 지나친 간섭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상대방에게 질문하기보다는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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