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다림 염불공양, 보살 닮아가는 길 “오직 영가 왕생을”… 염불행자의 간절한 서원
시다림 염불공양, 보살 닮아가는 길 “오직 영가 왕생을”… 염불행자의 간절한 서원
  • 하성미 기자
  • 승인 2018.02.02 08: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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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N불교TV 염불공양회
BTN불교TV 염불공양회는?시다림 염불공양 봉사를 위해 1994년 3월 10일에 창립 됐으며, 1년에 200여 회 봉사를 이어가고 있다. 부처님오신날 행사를 비롯해 팔관회 등 부산에서 열리는 중요 행사에서 육법공양을 담당하며 장학금 전달 및 병원 법보시 후원 등 다채로운 봉사로 전법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2009년에 제21회 포교대상 원력상을 수상했으며 부산시장상 및 조계종 총무원장상을 수상했다.

육법공양ㆍ시다림 봉사 신행

부산 지역 육법공양 도맡아

1994년 염불공양회 창립

시다림 염불공양 봉사 전법

오직 ‘무주상보시’가 철칙

年 200회, 시다림 염불공양

요청 있는 곳은 어느 곳이나

재난 현장도 방문 위로, 봉사


부처님 당시 왕사성 옆엔 ‘시타림’이라는, 일종의 노천 공동묘지가 있었다. 수행자들은 더럽고 악취로 가득한 이곳에서 고행하며 수행했다. 망자를 위한 설법, ‘시다림’은 그 시타림에서 온 말이다. 결국 시다림은 주는 이나 받는 이 모두에게 생사의 법을 묻는다. 1년에 200여 회 시다림 봉사를 하며 불법의 요체인 생사의 의문에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이들이 있다. 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BTN불교TV 염불공양회(회장 하정선ㆍ이하 염불공양회)’다.

 

지장보살을 서원하며

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BTN불교TV 염불공양회는 부처님오신날 법요식과 팔관회 그리고 사명대사 추모대재 등 크고 작은 법회와 행사에서 부처님께 올리는 육법공양을 도맡아 해왔다. 부산에서 처음으로 봉행된 봉축대법회에서 육법공양을 올린 후 지금까지 그 역할을 충실히 해오고 있다.

그렇게 공덕짓기를 이어온 염불공양회의 진면목은 육법공양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들의 이름을 있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시다림 염불봉사다. 추운 겨울 새벽에 일어나 장례식장을 찾는 일은 그들에게 보통일이다. ‘시다림’ 염불 봉사를 하며 영가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해서다.

1월 29일 부산 범일동에 위치한 염불공양회 사무실에서 만난 하정선 회장은 창립할 때부터 포기하지 않는 철칙이 있다고 했다.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이다.

마음에 걸림도 없고 머무름이 없는 보시로 극락을 기원하는 염불공양회는 지옥으로 떨어지는 모든 중생을 구제할 때까지 자신의 일을 멈추지 않겠다고 서원한 지장보살을 닮았다.

“사랑하는 이를 마지막으로 보낼 때 해주지 못한 많은 것들이 떠오를 겁니다. 그 아쉬움과 후회가 사무쳐 가슴이 아픈데도 마지막에 극락왕생을 기원할 시다림도 못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부탁할 수가 없는 거죠.”

염불봉사회가 지금까지 해온 봉사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는 하 회장은 “영가의 극락왕생을 기도하기 위해 찾아 갑니다. 오직 그 의지뿐입니다”며 오직 한 가지만을 강조하고 기자에게 부탁했다. 염불공양회의 봉사는 그야말로 무주상보시이며, 누구라도 부담 없이 염불공양회를 불러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널리 알려달라는 것이다.

하정선 염불공양회 회장

 

염불일념, 극락정토 열어

염불공양회는 1994년 3월 10일에 창립됐다. 하 회장은 창립 전부터 불자 10여 명을 모아 염불공양을 위한 보살계를 운영했다. 주변 모든 이들이 어려운 일이라며 만류했으나 하 회장은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환희심에 가슴이 벅차고 두근거렸다. 반대에 부딪쳐도 염불공양만 생각하면 그 의지는 더욱 더 강해졌다. 그는 40대 때부터 부처님이 말씀하신 극락정토를 꿈꾸기 시작했다.

“주변에 상을 당한 사람이 있으면 직접 가서 닦아주고 기도도 해주는 타종교 자매가 있습니다. 우리 불자 중에는 불법에 귀의했다고 하면서도 미신에 현혹되어 초상집을 찾지 않는 불자들을 더러 봅니다. 답답한 일이죠. 부처님께서는 생과 사는 하나라 하셨으며 죽음을 맞는 이의 청법을 외면하지 않으셨어요”

하 회장이 염불공양 봉사를 시작했을 때 방해가 됐던 것은 바로 사견(邪見)이었다. 불자라고 하면서도 자신의 집안에 경조사가 다가올 때, 초상집에 가면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길까봐 전전긍긍하는 불자들을 종종 본다고 했다. 그 때마다 하 회장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자세히 보라”고 목소리를 더 높였다. 그는 부처님의 정법을 전하고자 노력했다.

“부처님이 말씀 하신 것을 따르고 지켜서 자유롭기를 원했습니다. 부처님의 가피로 우리가 잘 되는지 잘못 되는지 자세히 보라고 더 크게 말했습니다. 정법을 전한다는 마음에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하 회장은 보살계 활동이 많이 알려지지 않아 안타까웠다. 많은 시간이 흐른 어느 날, 하 회장은 염불공양 봉사를 널리 알릴 기회를 잡게 된다. 하 회장의 남편인 우판수씨가 BTN불교TV 부산지사 초대 지사장을 맡게 된 것이다. 하 회장은 남편을 염불공양 봉사를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는 정식으로 염불공양회를 창립했고 발대식까지 열며 염불공양회를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염불공양회가 점점 더 알려지게 됐고, 염불공양회는 부르는 곳이 어디든 마다 않고 찾아갔다. 20년 전에는 장례 문화도 지금 같지 않아 집에 시신을 둔 채 염불공양회를 부르는 경우도 많았다.

시다림 염불봉사 중인 염불공양회 회원들

한 여름에 회원들이 부산 산복도로 좁은 길을 따라 올라가면 상주는 다락방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회원들이 모여 앉기조차 힘든 곳에는 시신이 있었고 덮을 것이 부족해 시신을 다 덮지 못했다. 덮어주지 못한 시신의 다리를 보며 그들은 한 시간 동안 염불을 했다. 시신이 바람을 맞으면 붓기 때문에 선풍기조차 켤 수 없었던 그들은 땀으로 흠뻑 젖어야 했다. 하지만 염불공양회는 출상 때나 임종 때나 시다림을 듣고자 하는 인연이 있으면 어디든 찾아갔다. 염불공양회는 1년에 200여 회 시다림 봉사를 한다. 병과 사고로 인한 개인적인 임종은 물론 재난으로 인한 참사 현장에도 찾아간다.

염불공양회는 2006년 7월에 강원도도 방문했다. 당시 강원도 전역에는 물폭탄이 쏟아졌다. 집중호우로 주택 781채가 침수 됐고 1천 9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마실 물조차 없어 수재민들은 빗물을 받아 마시며 겨우 연명을 해야 했다. 그래서 이재민들은 배탈과 설사 등으로 힘겨운 시간을 겪어야 했다. 사망자만 23명이었고, 찾지 못한 시신도 있었다.

염불공양회는 수재가 발생한 3일 후 강원도 인제군을 바로 방문했다. 재해로 인해 제대로 장례를 치를 수 없는 이재민들을 위해 〈천수경〉과 〈금강경〉을 독송하며 영가의 극락왕생을 기원했다.

컨테이너 박스에 임시 거처를 마련한 이재민에게는 위로금과 이불 그리고 옷 등을 전달했고 시신을 찾지 못한 유가족들에게는 특별 성금도 전했다.

염불공양회 회원들은 2002년 태풍 매미가 부산을 강타했을 때에도 가덕도를 찾는 등 재난 현장을 찾았다. 모두가 벗어나고 싶어 하는 재난 현장에서 일주일을 머물며 기도하고 도배, 쌀 전달, 학교 축구공 기증 등의 봉사도 진행했다. 회원들은 슬픔의 현장에서 부처님의 법을 많이 알게 된다고 했다.

“부처님께서는 고집멸도를 설하셨습니다. 고통을 피하려 하지 마십시오. 고통 속에서 희망을 보며 새 삶을 찾게 됩니다. 무엇이 고통이며 무엇이 기쁨입니까? 생과 사가 하나입니다. 극심한 상실의 고통 속에 부처님의 법으로 희망을 전하는 것이 저희 사명입니다”

봉사공덕 부처님 가피로 돌아와

50여 명 주부회원, 스스로 가입

장학금 19년 동안 2억여 원 전달

20여 년 병원 경전 보시

폐 수술 미뤄가며 봉사활동

수술 미룬 것이 복으로 돌아와

“염불공양 등 봉사단체 많아지길”

 

봉사는 작은 정성으로…정성 모여 큰 회향

염불공양회 회원들은 모두 주부 불자다. 50여 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후원 회원 150여 명이 든든하게 뒤를 받치고 있다. 모두 봉사가 좋아서 스스로 찾아 온 이들이다. 염불공양회 사무실을 방문하자 5~6명의 회원들이 우편발송 봉사를 하기 위해 모여 있었다. 후원 회원에게 보내는 우편물 발송 준비로 손놀림이 분주했다. 갑자기 우편 봉사 중에 하 회장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회원들이 회비 외에 더 많은 금액을 보시 한 것이 화근이다. 하 회장의 “왜 보시를 더 했느냐”는 질문에 회원들은 묵묵부답이다. 하 회장은 “남편들이 열심히 노력해 벌어온 돈이기 때문에 계획을 잘 세워서 써야 한다”며 “봉사하는 회원들의 기본 회비만으로도 괜찮다. 부담이 없어야 한다”고 회원들에게 말하고 다독거렸다. 가난해도 꾸준하게 염불 봉사를 할 수 있을 정도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염불공양회는 가난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말은 ‘가난’이라고 했지만 회장과 회원들은 23년 간 작은 정성이 모여 큰일을 해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염불공양회는 매년 대학생 5명에게 100만 원, 고등학생 10명에게 50만 원 등 장학금을 전달해 왔다. 이번 2월에도 장학금을 전달했으며 올해를 포함해 19년 동안 총 2억 원에 이르는 장학금을 전달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부산대학병원에는 20여 년 동안 경전을 보시하고 있다.

회원들은 처음 봉사 내용을 들었을 때 ‘정말 내가 해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도반들이 함께 했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고 했다.

강행순(57) 회원은 주부의 역할에 충실하고 싶었다. 그리고 부처님의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봉사 자리도 원했다.

“10년 전 처음 가입 했어요. 평소 사찰을 다니며 공부했지만 늘 무언가 부족한 자신을 봐야 했고, 그런 자신이 답답했어요. 어느 날, 언니로부터 전해들은 염불봉사회는 감동이었어요. 하지만 왠지 너무 큰 활동처럼 느껴져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염불봉사회는 회원들에게 큰 희생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함께 시간을 내서 봉사할 수 있도록 서로를 배려해줬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회원들은 봉사활동을 하면서부터 오히려 가족들의 이해와 협조를 받는다고 했다. 염불공양회 활동 원칙 중에 제일이 ‘가정 우선’이다. 봉사활동으로 인해 자신의 가정을 소홀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인터뷰 중에도 하 회장은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협조해주고 이해해주는 회원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감사 한다”고 했다.

강지원(60) 회원은 “새벽에 출상을 하는 날에는 세시에 일어나 아침상을 준비하는데, 남편이 출근길에 태워주며 응원해 준다”며 “봉사활동은 가족의 이해와 응원이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했다. 아울러 생활 가운데 사경과 경전 독송 수행으로 더욱 깊어지는 자신을 보는 건 기본이다. 회원들은 〈금강경〉을 사경하고 읽으며 매일 천 원씩 저금통에 넣는다. 그렇게 모은 돈은 장학금으로 쓰고, 사경은 염불공양 할 때 영가를 위해 사용한다. 그들은 모두 봉사하고 있는 시간이 너무나 행복하고, 봉사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봉사의 보람으로 인해 또 한 번 행복해진다고 했다.

최말순(58) 회원은 “시다림 염불봉사에서 매번 죽음을 마주해서인지 욕심이 없어지고 새로운 눈으로 살아갈 수 있어 다툼이 없다”고 했다.

양명숙(61) 회원은 “가족들이 돌아가시고 난 후 염불공양회가 왔었다”며 “큰일을 치르고 나니 봉사라는 것이 얼마나 거룩한 일인지 알 수 있었다”고 했다.

하 회장은 부처님의 가피에 대해 이야기하려다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말을 이었다. 하 회장은 폐에 천공이 있었다. 수술이 급했다. 하지만 육법공양과 염불공양회 일로 하루하루가 바빴던 하 회장은 수술을 차일피일 미뤘다. 그런데 오히려 수술을 미뤘던 것이 잘 된 일이 되었다.

“10년 전부터 각혈이 멈추더군요. 근래 병원을 다시 가보니 의사가 그러더군요. 그 때 수술을 안 하고 견딘 것이 오히려 잘됐다고요. 만일 폐를 절단 했다면 지금은 제대로 된 생활을 못하고 있을 거라고요”

하 회장은 부처님 가피라는 말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봉사활동을 통해 깊이 알게 됐다.

2016년 사명대사 추모재에서 육법공양하는 염불공양회

 

아미타부처님의 서원 닮아

법장비구는 “만약 제가 부처가 되어서도 그 땅에 지옥, 아귀, 축생이 있다면 부처가 되지 않겠습니다”고 서원했다. 아미타부처님의 48대원 가운데 첫 번째인 무삼악취원(無三惡趣願)이다. 법장비구는 법장보살이라고도 불리며 대승의 여러 부처들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아미타불의 본생이다.

하 회장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그러자 하 회장은 염불공양회 창립 때 만들었던 발원문 내용을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답했다. “모두가 외면하는 그늘진 곳을 부처님의 말씀으로 밝히고, 일심으로 염불해 대중을 극락정토로 이끌고 싶습니다. 아울러 저희와 같은 단체가 많아지길 바랍니다.”

믿음으로 극락을 안내하는 염불행자의 서원이다. 아미타부처님의 자비를 닮은 대서원의 모습이다.

2016년 부처님오신날 제등행렬에 참여한 염불공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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