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 개념 없는 종무, 처우 개선부터

‘종무원’은 불교신도로서 종무기관 및 일선 사찰에 근무하는 직원이다. 종무행정이나 사찰경영의 소임을 맡은 스님들은 교역직 종무원으로, 그리고 재가신도는 일반직 종무원으로 나누기도 하지만, 흔히 종무원이라고 하면 재가종무원을 지칭한다. 재가종무원은 다시금 근무기관의 소재지에 따라서 중앙종무기관의 종무원과 지방종무기관의 종무원으로 분류할 수 있다. 대한불교조계종(이하 조계종)을 사례로 삼는다면, 중앙종무기관에는 총무원, 교육원, 포교원, 중앙종회, 호계원, 불교신문사 등이 해당되며, 지방종무기관에는 교구의 본사 및 말사 등이 해당된다.

재가종무원 근무는 ‘봉사’ 아닌 ‘봉직’
이타행 전제하지만 처우도 좋아야
비정규직 수준 근무환경 이직 부추겨
출가자 감소, 능력있는 종무원이 보완

종무원의 처우 개선을 논함에 있어서는 그들이 처한 근무환경에 대한 분석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 출가종무원(교역직 종무원)과 재가종무원(일반직 종무원), 중앙종무기관의 종무원과 지방종무기관의 종무원이 처한 근무환경이 상당 부분 다르기 때문에 처우 개선도 그에 상응하게 고민하여야 하는 것이다.

출가종무원과 재가종무원에 있어서 처우 개선이 시급한 종무원은 재가종무원이라고 할 수 있다. 종단 및 사찰의 소임을 맡고 있는 출가종무원인 스님들은 비록 행정업무를 책임지거나 담당하고 있을 지라도 재가종무원과 같은 직장인의 개념을 적용하기 힘든 대상이다. 이에 조계종의 <종무원법>은 출가종무원의 근무를 ‘봉사(奉仕)’로, 재가종무원의 근무를 ‘봉직(奉職)’으로 규정하고 있다. 사전적(辭典的)으로 봉사는 ‘무보수로 남을 위하여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고 힘을 바쳐 애씀’으로, 봉직은 ‘공직에 종사함’으로 정의되고 있다. 봉사와 봉직의 정의는 모두 이타행(利他行)을 전제하고 있지만, 통념상 봉사에는 ‘무급(無給)’의 개념이, 봉직에는 ‘유급(有給)’의 개념이 내포되어 있다. 물론 스님들의 처우도 개선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처우 개선은 직장인으로서의 근무환경 개선이 아니라 승려노후복지와 같은 생활환경의 개선이다.

처우 개선의 대상을 재가종무원으로 한정하였을 때, 중앙종무기관과 지방종무기관의 재가종무원 중 처우 개선이 보다 시급한 대상은 지방종무기관의 재가종무원이다. 중앙종무기관 종무원들은 근로 시간과 임금, 퇴직 등에 있어서 근로기준법에 의한 보장과 보호를 받고 있지만, 지방종무기관 종무원의 상당수는 4대 보험도 보장받지 못하는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선 사찰의 재가종무원은 여타의 직장인과는 사뭇 다른 환경에서 근무한다. 자연환경의 입장에서는 상당수의 사찰이 번잡한 도심이 아닌 산중에 있거나 한적한 곳에 위치한 관계로 친환경적 요소가 강하다. 물론 자연환경 역시 근무환경에 있어서는 한 가지 선택 요인이 될 수 있다. 또한 직장상사가 주로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지위에 있는 집단인 스님들이라는 점도 여타의 직장인과는 다른 근무환경이다. 이와 같은 요인들은 종무원의 근무환경에 있어서 장점이 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직장인의 근무환경을 논의할 때는 급여, 복지후생, 신분보장, 인간관계 등 처우의 개선이 주요 쟁점이 된다.

우선, 인간의 기본적·일차적 욕구인 생리적·물질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데 필수 요건인 ‘급여’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현재 일선 사찰의 재가종무원 급여는 대부분 월 150-200만 원 정도가 많은데, 2017년 비정규직의 월급이 156.5만원이고, 2018년 최저임금이 시급 7,530원임을 고려할 때, 재가종무원 급여는 비정규직의 급여 수준과 유사하거나 최저임금에 머무르는 수준이다.

종종 사찰에서는 재가종무원이 받는 급여와 스님이 받는 소임비를 동일선상에서 거론하기도 한다. 재가종무원의 급여를 스님의 소임비에 기준하여 지급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재가종무원의 급여는 직장인이자 생활인으로서 받는 보수인 반면 스님이 받는 소임비는 출가자이자 수행자에 대한 보시금의 성격이 강하다. 이에 재가종무원의 급여는 일정 정도의 사회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급여가 지급되어야 한다.

‘복지후생’은 기업이 주체가 되어 종업원과 그 가족을 대상으로 제공하는 각종의 복지시설과 제도를 포괄하는 간접적 보상의 개념이다. 연가, 월차, 출산휴가, 병가휴가 등의 휴가체계 구비와 보건, 교육, 휴양 등과 관련된 복지시설 제공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휴가체계와 복지시설보다 기초적인 복지후생은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 4대 보험의 보장이다. 4대 보험은 국가법령에 의한 강제성을 띠고 있어 근로자가 의무적으로 적용받아야 하는 사회보험제도이다. 요즘에는 체인점이나 대기업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4대 보험은 보장해주는 추세이지만 아쉽게도 재가종무원의 상당수는 4대 보험을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 4대 보험은 직장인의 생활 안정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기본적인 복지후생제도이다. 4대 보험 미보장 직장은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직장으로 인식되며, 직업적 선호도 역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만큼 사찰의 4대 보험 미보장은 재가종무원의 직업적 자긍심을 훼손하는 요인이자 자신의 직장에 대한 사회적 위축감을 유발하는 요인이 된다. 재가종무원이 불교신도로서 봉사직이 아닌 직업군이 되기 위해서는 여타의 직장인들은 기본적으로 제공받는 4대 보험이 필수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신분보장’은 종무원이 형의 선고나 징계처분 또는 그 밖의 법이 정한 사유와 절차에 의하지 않고는 면직이나 기타 신분상의 불이익 처분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법적인 보장을 의미한다. 그러나 일선 사찰의 재가종무원 신분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임명과 해임 등 종무원의 주요 인사가 합리적 절차가 아니라 주지 스님의 자의(恣意)에 따라 이루어질 수 있는 근무환경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사행위 중에서도 고용주가 고용 계약을 해지하고 피고용자를 직장이나 일터에서 내보내는 해고(解雇)는 근로자뿐 아니라 그 가족의 생계와 직결되는 중대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근로기준법 등 사회법은 해고의 자유를 폭넓게 제한할 뿐 아니라 그 남용을 방지하고 있다. 하지만 사찰에서의 종무원 해고는 보다 자유롭게 남용되고 있다. 주지 스님의 부임에 따른 기존 종무원의 해고는 다반사이다. 또한 주지 스님의 개인 뜻에 맞지 않거나 의견 충돌이 있을 때도 종무원의 해고는 어렵지 않게 이루어진다. 조계종의 <종무원법>은 종법이 정하는 징계사유에 해당하는 경우 이외에는 재가종무원의 정년을 보장하고 있으며, 그 정년은 65세로 하고 있다. 그러나 종단을 막론하고 재가종무원의 정년은 대부분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다.

일선 사찰에서 재가종무원이 신분을 제대로 보장받기 위해서는 우선, 고용 시에 근로조건을 명시한 근로계약서를 의무적으로 작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근로기준법>은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에 근로자에게 업무내용, 임금, 근로시간 등의 근로조건을 명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휴일, 연차 유급휴가 등의 근로조건도 명시하도록 되어 있다. 현재 근로계약서의 작성도 이루어지지 않는 불교계의 고용 관행에서는 근무조건을 명시한 근로계약서의 작성을 의무화하는 것이 부당한 대우와 해고로부터 재가종무원의 신분을 보장해줄 수 있는 최우선 과제이다.

급여, 복지후생, 신분보장과 더불어 ‘인간관계’는 근로자의 근무환경을 결정짓는 요인이다. 급여, 복지후생, 신분보장이 제도적 측면에서 근무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라면, 인간관계는 감정적 측면에서 근무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직장은 사람들이 모여서 일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상사와 부하간 그리고 동료와 동료간에 반감이나 호감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감정들은 종종 직장 내 갈등을 유발하게 되고, 그 갈등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힘든 직장생활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재가종무원들은 일반 직장인과는 달리 상사가 주로 스님이라는 남다른 직장 내 인간관계로 인하여 종종 어려운 상황을 겪고는 한다. 주지 스님 등 소임자 스님과 재가종무원간에는 상사와 부하라는 직장 내 직급 서열 관계뿐 아니라 스님과 신도라는 종교 내 신분 관계도 함께 존재한다. 직장의 직급 서열도 녹록치 않은 관계이지만 종교 내 스님과 신도 간 신분 관계는 보다 더 견고한 질서로 유지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재가종무원은 소임자 스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불합리한 문제가 있더라도 참아야만 하는 입장에 놓이고는 한다. 그리고 이런 갈등이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심화되면 결국 재가종무원이 사직을 하고 절을 떠나는 수밖에 없다.

이의 개선을 위해서는 소임자 스님의 재가종무원에 대한 인식과 태도의 전환이 필요하다. 소임자 스님과 재가종무원의 관계가 계급적 관계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소임자 스님이 종교인-출가자-수행자로서 재가종무원을 보다 인간적으로 이해하고 포용해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현재 재가종무원에게 제공되는 최저 임금 수준의 급여, 4대 보험도 제공 안 되는 복지후생,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수준의 신분보장, 고착화된 계급적 인간관계 등은 사회적 근로환경으로는 매우 열악한 수준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처우로는 우수 재가종무원의 신규 고용은 고사하고 현 재직자들조차도 이직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선 사찰 재가종무원의 처우가 쉽사리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일선 사찰에서 재가종무원의 열악하고 부당한 처우 개선 요구는 속인(俗人)의 신심 부족에서 나오는 불만으로 치부되고는 한다. 재가종무원들은 기업체의 직원과는 달리 단결권 행사에 많은 제약을 받는데다 다른 직업으로의 이직도 어렵기 때문에 처우가 부당하더라도 온전히 감내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주지하다시피 현재 한국불교종단들의 최대 난제는 출가자의 감소 문제이다. 그런데 출가자의 감소는 곧 재가종무원의 역할 확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사찰의 한정된 인력 속에서 출가자가 감소하면 재가종무원의 역할은 확대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욱이 사찰이 신행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문화와 복지의 공간으로까지 기능이 확대되는 사회적 흐름 속에서 스님의 역량에만 의존하는 사찰운영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다. 즉 출가자의 감소 문제와 사찰의 사회적 기능 확대 문제는 우수한 재가종무원 양성이라는 과제와 맞물려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재가종무원의 열악한 처우에 대한 개선의 노력이 없이 우수한 종무행정역량을 갖춘 인재를 양성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이는 불자로서 긍지를 갖고 향후 재가종무원으로 봉직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기만하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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