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사자후경〉

〈중아함〉은 계빈국 구담승가제바의 번역으로 60권 222경이 있고, 〈맛지마 니까야〉는 152경으로 되어 있다. 짧은 에세이 정도의 길이를 지닌 가르침으로 사성제, 12인연을 중심으로 설명되는 인연과 비유. 불교수행의 목적인 열반과 수행법으로 제자들이 어떤 정신과 가치관을 지니고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부처님의 답변이다. 중아함 제 5권에서 3, 사리자상응품, 24경인 〈사자후경〉에서 제자를 대하는 다정한 부처님을 만날 수 있다.

사위국 급고독원에서 부처님은 제자들과 안거를 마치며 경행할 때, 사리불이 만행(萬行)을 떠나도록 허락해 달라고 청한다. 그러자 부처님은 불교를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불자를 만들고, 아직 해탈하지 못한 이들과 반열반에 들지 못한 수행자를 만나거든 반드시 그를 해탈시켜 반열반의 세계에 들게 해야 한다며 흔쾌히 허락하셨다.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사명감에 불타는 사리불은 즉시 떠났다. 몇 시간 후, 평소 수행을 잘 하던 제자가 부처님을 찾아와 오만방자하게 부처님께 따졌다. 사연인즉, 안거기간동안 사리불에게 업신여김을 당해 힘들었지만 대중을 번거롭게 하지 않으려고 해제 때까지 기다렸는데 포교하러 만행을 갔다는 말을 들으니, 부처님이 사리불을 과대평가했다며 문제제기를 했다.

마음의 상처를 입은 제자의 말을 듣던 부처님은 즉시에 사리불에게 돌아오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아난존자는 도량에 남아있는 제자 500명에게 오늘 총명한 사리불이 이 난감한 상황을 극복하는 지혜의 설법, 사자후를 할 것만 같으니 이 멋진 법문을 놓치지 말고 들어야 한다며 대중을 강당에 모이게 했다.

드디어 강당으로 들어온 사리불에게 부처님은 왜 도반을 업신여기고 모욕했는가 물으셨다.

“존경하는 부처님. 저는 부처님처럼 살고자 서원한 제자입니다. 그런 제가 부처님 뜻과 반대로 산다는 것은 생각해 본적도 없습니다, 함께 수행하는 도반을 업신여기며 누구를 제도하고자 만행을 나가겠습니까. 불교를 만나기 전엔 그랬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뿔 없이도 살아가는 법을 알게 된 뿔 잘린 온순한 소처럼, 두 손을 잃었지만 세상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자립하게 된 겸손한 전타라자 동자처럼, 예전의 고통을 기억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만나는 이들이 뿔 없는 소에게 경계심을 일으키지 않고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고 먹을 것을 주며 사랑하고, 두 손을 잃은 동자에게도 사람들은 사랑으로 그를 보살핍니다. 새삼 옛날 고통을 기억하고 원한과 성냄으로 남은 인생을 살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나 한량없는 선행을 닦으며 행복하게 지냅니다. 또 자연인 땅(地)과, 물(水)과 불(火), 그리고 바람(風), 마당을 쓰는 빗자루, 모든 것을 다 닦는 걸레도 깨끗한 것이나 더러운 것, 즉 대변과 소변, 눈물과 침을 만나도 다 받아들입니다. 그로인해 미움과 사랑의 감정이 생기지 않으니 더러워하지도 않고 부끄러워하지도, 창피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며칠 동안 목욕하지 않으면 몸 곳곳에서 악취가 날 것이니 제가 늙지 않고 영원히 청춘으로 살 수 없음을 압니다, 그래서 저는 속히 공부해서 몸에 대한 애착을 여의고 수행할 것을 서원하고 있사옵니다. 결코 저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리불에게 상처 입었다고 생각했던 제자는 부끄러웠다. 다시는 사랑과 미움으로 흔들리지 않는 제자로 살겠다하자 부처님은 사리불에게 이 도반의 참회를 받아들이고 화해하라고 말씀하신다.

상처 입은 제자의 마음을 헤아려 상수제자를 불러들이는 부처님의 모습은 니편 내편 따지는 우리들 입장에서 보자니 너무도 든든하고 자애롭다. 사리불도 그 제자도, 함께 지켜본 아난과 500명의 제자들이 소통과 화해를 뛰어 넘는 수행자의 길을 열어가는 이야기에 가슴이 아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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