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조형언어로 표현한 불국만다라

대웅전 천정 구조와 단청장엄

영산전에 법화경과 부처님 행적벽화

통도사 가람은 한국 사찰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불전건축의 종합 전시장이라 하여도 지나침이 없다. 그것은 1300여 년의 시간에 걸쳐 형성된 변용과 통합의 산물로 이해할 수 있다. 불전건축의 다양성만큼이나 조형을 통한 장엄 세계도 풍부하다. 벽화, 불단, 꽃살문, 닫집, 단청, 천정장엄 등에서 수적, 질적인 측면을 아울러 고밀도로 분포한다. 한국사찰에 구현한 거의 모든 불전건축과 장엄세계가 집약되어 있다.

통도사의 장엄세계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사찰벽화의 총체적 경영에 있다. 대웅전, 영산전, 용화전, 대광명전, 약사전, 관음전, 극락보전, 명부전, 응진전, 해장보각, 삼성각, 안양암 북극전 등 12곳의 전각에 걸쳐 500여 점의 벽화가 현존한다. 세계 불교미술사에 유일무이한 견보탑품도를 비롯하여 반야용선도, 석씨원류응화사적 벽화, 아미타여래삼존도, 약사여래삼존도, 수월관음도, 지장보살삼존도, 금강역사도, 고사인물도, 주악비천도, 〈서유기〉 벽화, 용 봉황 사자도, 호작도, 연화도, 〈삼국지연의〉의 삼고초려도까지 교리적 세계관에서 민화풍의 화조도까지 불전장엄 소재를 망라한다. 특히 영산전과 용화전, 명부전의 벽화들은 국내 다른 사찰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희귀한 소재들이라 주목을 끈다.

불전건축 종합전시장 통도사
전각 위계질서 부여는 필연
천정 단청장엄으로 화룡점정

영산전에선 견보탑품도와 석씨원류응화사적도가 단연 돋보인다. 견보탑품도는 법화경 제11품 ‘견보탑품’의 내용을 담은 변상도다. 석가모니 부처께서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하실 때 부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증명하기 위해 허공으로 솟구친 칠보탑의 장면을 압축한 탁월한 벽화다. 공포 벽면 칸칸이 그려 넣은 석씨원류응화사적도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행적과 용수스님 등 부처님의 전법제자들의 행적을 표현한 별지화로 총 48점에 이른다. 그 역시 판화가 아닌 사찰벽화로는 보기 어려운 장면이다. 영산전의 벽화들은 미술사적 가치와 희소성으로 인해 2011년 보물로 지정됐다.

용화전 화반에 생명력의 연꽃밭 표현

용화전 좌우 벽면에 조성한 소설 〈서유기〉 관련 7점 벽화도 예사롭지 않다. 특히 동쪽 중앙 칸 벽면에 베푼 ‘현장병성건대회(玄裝秉誠建大會)’는 구도, 색채운영에서 회화적 완성도를 갖춘 수작이다. 당 태종의 명을 받아 현장스님의 주도로 수많은 원혼들을 달래는 성대한 수륙재 장면의 벽화다. 수륙재의 대회장에는 세 기의 번이 휘날린다. 나무청정법신비로자나불, 나무원만보신노사나불, 나무천백억화신석가모니불의 삼신불 명호가 선명하다. 서쪽 벽면에는 수륙재를 주관할 고승을 선발하는 장면과 납치된 현장 스님을 찾아 나선 손오공이 머리 셋, 팔 여섯인 삼두육비(三頭六臂)의 형상으로 광분하는 장면을 두루 표현하고 있다. 서사를 담은 사찰벽화임에도 그 구성과 채색기법이 탄탄하고 충실한 묘사력도 돋보인다. 그 같은 채색기법은 용화전 천정장엄에서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우물천정 칸칸이 모란, 연꽃, 국화 모양을 이용한 중대팔엽원의 단청문양이 빛난다. 문양은 대단히 세련되고 정교한, 흠 잡을 데 없는 명작이다. 천정으로 향한 시선은 대들보 위 천정을 받치고 있는 커다란 직사각형 화반(花盤)에 저절로 이어진다. 화반은 보통 꽃 문양의 조각 받침이다. 때때로 人자형 받침이나, 구름 문양, 드물게는 사자, 코끼리, 불꽃문양을 취하기도 한다. 하지만 용화전의 화반은 가로로 긴 직사각형 모양이다. 화반의 평평한 양면은 훌륭한 장엄미술의 화면으로 활용됐다. 화반은 낮은 부조(浮彫)로 돋을새김한 완벽에 가까운 좌우대칭 형태다. 화면은 연꽃과 온갖 수생생물로 가득한 연지다. 거북, 게, 개구리, 물고기, 조개 등의 생명력으로 가득하다. 예천 용문사 대장전 윤장대 꽃살문의 연지 장면과 영주 성혈사 나한전 어칸 통판투조꽃살문을 떠올리게 한다. 연지수금문양은 사찰 꽃살문이나 기단, 초석 등에선 종종 볼 수 있지만 용화전처럼 대들보 위 화반에서 만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런 희귀한 장면들은 용화전 앞 봉발탑(奉鉢塔) 석조 조형물의 경우도 마찬가지 사례다. 봉발탑은 연꽃 문양의 간주석 위에 밥그릇 모양의 발우를 얹은 형태다. 발우는 공양 때 사용하는 밥그릇이지만, 선가의 전법과정이나 조형장엄에서는 스승이 제자에게 법을 전하는 전법의 고귀한 상징이기도 하다. 용화전은 56억 7천만 년 후에 도솔천에서 하생하여 용화삼회로 중생을 구제하기로 수기된 미륵불의 불전이다. 석가모니 부처께서 미륵보살에게 미래불로 수기하셨다. 봉발탑엔 가섭제자에게 미래의 미륵불에 발우를 전할 것을 의탁하신 뜻이 담겨 있다. 어제의 빛을 오늘에 담아 내일에 전하고 있는 갸륵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명부전에 문학작품 소재의 민화벽화

영산전 단청장엄의 빛이 법화경과 석가모니 행적을 담은 진채이고, 용화전 단청이 전법(傳法)과 구법(求法)의 행적을 담은 빛이라 할 때, 명부전 단청장엄은 민화풍의 채색화로 특징 지을 수 있다. 명부전엔 내부 벽면과 포벽, 외부 포벽에 걸쳐 다양한 민화 소재의 별지화가 현존한다. 산수도, 화조도를 비롯하여 봉황도, 호작도, 청룡, 송학 등 다채롭고, 붓질도 대단히 치밀하고 힘차다. 그림 자체만으로도 회화적 완성도가 높다. 내부 좌우 벽과 전면의 세 벽면에 베푼 회화들은 여러 소재들로 엮은 온전한 민화병풍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그 중 특별한 것은 문학작품을 모티프로 하여 회화적으로 표현한 벽화들이다. 중국 당시(唐詩) 속 비경을 담은 ‘풍교야박도’라든지, 소설 〈별주부전〉을 모티프로 삼은 수궁도, 〈삼국지〉에 나오는 장면인 삼고초려도 등이 그런 사례다. 성스러운 건축공간에 그 같은 소재들은 의아스러울 수 있다. 불전장엄에 시대의 다양한 관심과 요구를 광폭적으로 수용한 한국불교 특유의 습합과 포용력의 방증이 아니겠는가? 또 어쩌면 이 명부전의 벽화들은 조선후기 민화들의 근저와 사회적 확장 범위 등을 고증할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지도 모르겠다. 특히 자장율사의 진영을 모신 해장보각 천정 널판의 쌍 희자 ‘囍’와 복 ‘福’자 문자도(文字圖), 대광명전의 고사인물도와 산수도 등은 민화와 불교 단청 별지화 사이의 이행과정, 채색기법 등의 논의에 다양한 연구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건축집합에서 위계성의 질서부여는 필연적이다. 건축집합은 중심을 향한 질서 있는 축선과 동선을 갖춘다. 궁궐이나 서원, 향교의 건축집합에서도 위계적 연계성을 구축하고 있다. 건축에서 위계질서는 건축의 크기, 형태, 위치, 내부장엄 및 장식, 색채운영 등의 장치로 규범화 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럴 때 통도사 위계질서의 최상위는 대웅전, 곧 적멸보궁과 일체화 된 금강계단일 수밖에 없다. 통도사 대웅전이 보궁의 지위로 극대화 될 수 있는 것은 본질적으로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금강계단의 불멸의 위상 때문이겠지만, 인간의 신앙적 의지로 치목한 건축학적 관점에서도 분명해 보인다. 건축의 크기, 형태, 위치, 장엄 등에서 비교불가의 확고부동한 중심성의 권위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적멸보궁 천정은 한국의 시스티나성당

적멸보궁은 통도사 가람배치 주축의 궁극적 정점에 위치한다. 건축 규모에서도 최대이고, 형태면에서는 사면 모두 정면성을 갖춘 정자(丁字)형의 독특함으로 강력한 중심성을 환기시킨다.

건축장엄에서도 다른 불전건물과 확연히 구별하는 장치를 마련해 두었다. 기단부 면석 칸칸이 높은 양감의 연꽃을 돋을새김 하였고, 계단 소맷돌과 경계석에도 형이상학적 형태로 재해석한 연화를 조각하여 연화장세계의 불국토임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대웅전 편액을 단 동쪽 중앙 칸 창호도 특별한 정성으로 치목한 솟을꽃살문이다. 모란, 연꽃, 국화 형상을 관념적 추상의 형태로 이상화해서 꽃의 물리성을 초월하고 있다. 신령한 온갖 기운으로 경영한 장대한 불단장엄, 지붕 위 금속제 보주탑, 지붕을 덮은 철재 기와, 수막새 기와에 얹은 도자기 연봉 등도 통도사내 다른 불전건물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중심성의 위계장치다. 특히 1785년 제작연도를 새긴 철재기와는 통도사 적멸보궁에서만 보이는 국내 유일의 건축장엄이다. 철의 물리성을 빌려 만고불변의 시간성의 염원을 담았다.

적멸보궁의 장엄세계에서 불후의 명작은 천정의 단청장엄에 있다.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 천정 프레스코 벽화에 비견될 만큼 웅장하고 성스러운 아름다움으로 고색창연하다. 엄격한 기하학적 대칭과 금빛 색채의 하늘꽃, 신령한 범자진언의 반복적 울림, 사방 포벽 칸칸마다 나투시는 불보살들, 대들보의 면마다 꿈틀대는 열 여섯 용의 힘찬 용틀임 등으로 장식한 적멸의 코스모폴리탄이다. 佛과 法과 장엄은 체-용-상의 통일체처럼 불이(不二)의 삼위일체다. 경전 속 부처님의 장엄세계가 부처님의 위신력과 공덕에 의한 법의 방편반야라 할 때, 승장 등 예술장인들에 의해 지상에 현현한 통도사 장엄세계는 조형언어로 표현한 거대한 불국 만다라의 세계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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