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선지식과의 만남 2

부끄럽지만 변하기 전의 내 모습을 먼저 말씀드려보자. 나는 외부의 자극에 지극히 민감한 감수성이 강한 청년이었기에, 정(情)도 많았고, 눈물도 많았으며, 좋아하는 사람을 굉장히 좋아하였고, 좋아하는 서책도 매우 좋아하였다. 좋은 인상의 사람에게는 쉽게 빠져들고, 괜찮다는 서책에도 쉽게 빠져들고, 그럴듯한 진리라면 쉽게 그리고 깊이 빠져 들었다. 책 내용에 빠져 들어가는 한은 그 책 내용은 엄연한 사실이요, 반드시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하였다.

조계사에 가서 참선하시는 스님들의 법문을 듣기도 하여, 선가(禪家)에서 말하는 심외무법(心外無法, 마음 밖에서 모든 것을 존재하지 않는다)이라는 말씀에 일부 공감하기도 하였지만 마음밖에 어떤 세계도 엄연히 존재하고 또 부처님의 세계도 반드시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처럼 어린시절의 나는 증애심(憎愛心), 간택심(揀擇心) 즉 사람과 사물에 잘 집착하여 사랑, 미움으로 이름을 짓고 갈등하는 마음이 어린 시절 제 마음의 주류였다 할 것인데, 이런 사랑과 미움의 갈등의 마음은 해결할 그 무엇을 찾으려 하였는데 이것이 자신도 모르게 불법을 찾게 하였는지도 모른다. 불교를 만나자마자 나는 깊이 빠져 들어갔다.

부처님 가르침에 심취해 경전을 부지런히 읽고 수행도 하느라 하며 눈 밝은 스승이 계시다면 부지런히 찾으려던 나는 친구의 소개로 당시 동국대 총장을 사임하시고 경기도 부천에 칩거하시던 백성욱 박사를 만나게 되었다.

한국인 최초로 독일에서 철학박사를 얻은 천재, 전생을 훤히 꿰뚫어 보는 숙명통(宿命通)을 하셨다는 이인(異人). 다른 사람의 마음도 훤히 다 아는 타심통(他心通)을 하셨다는 도사, 이것이 백 박사를 따라다니는 별칭이었다. 어떤 사람은 이 분을 시대의 인물이요, 당대 대 선지식이라 말하기도 하였다.

백 박사를 처음 만나 법문을 들으면서 완전히 법문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명불허전(名不虛傳)! 백 박사의 법문은 지금까지 큰스님께 듣던 법문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법문을 들으며 〈육조단경〉의 다음 구절이 생각나게 하였다.

혜능 대사가 5조 홍인 대사로부터 법을 받은 후 15년이 지난 뒤, 이제는 세상에 법을 펼 때였다. 광주 법성사에 이르니 거기는 인종법사가 있어 열반경을 강의하는 중이었다. 그 때 마침 바람이 불어와서 깃폭이 펄럭이고 있었는데 그걸 보고 한 중은 “바람이 움직인다”하고 한 중은 “깃폭이 움직인다”고 하여 서로 다투고 있었다. 혜능 대사가 듣다가 “바람의 움직임도 아니며, 깃폭의 움직임도 아니고 당신네 마음이 움직이는 것일세”하니 온 대중이 놀랐다. 이때 인종 법사 하는 말이 “당신의 법문은 황금과 같고 나의 법문은 기왓장 같소”였다.

나는 백박사님의 처음의 말씀을 듣고 “당신의 법문은 황금과 같고”라고 한 인종 법사의 말씀이 생각난 것이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었다라고 하신 혜능 대사처럼, 백 박사의 법문 역시 ‘무엇이든 마음 속에서 다 얻을 수 있다’ ‘출세건 행복이건 진리건 부귀영화건 모든 것은 마음속에 다 구족되어 있으니 마음밖에 무엇을 찾아 헤매지 말라’와 같이 일체유심조의 진리를 말했기 때문이다. 이런 특징 때문일까. 백 박사 법문은 마치 인종법사가 말하는 황금 같은 법문이라 여겨진 것이었다.

이 일체유심조 진리에 입각한 법문은 마음 밖에서 모든 것을 다 찾고 있었던 나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언제인가 조계사 법회에서 들었던 심외무법(心外無法)이라는 단어가 생각나며 마음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말씀이 정말 실감나게 된 것이었다. 마음 밖에서 무엇을 구할 필요가 없고 다 마음속에 구족되어있다는 법문, 이것은 지금까지 경전속에서 듣지 못하였던 시원한 말씀이요 희망의 말씀이요 진리의 말씀이라 생각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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