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말류선의 폐단-능엄주 유행

 

한국禪, 송말·원대 선불교 답습
선불교에서 능엄주 독송은 잘못

남송 말, 원나라 선불교는 선종오가(五家)의 말류(末流)였다. 이 시기 선불교는 주술적인 티벳 라마교 등 갖가지 이물질이 유입되어 ‘밀교적인 선(禪)’으로 변색·변질되었다. 음식으로 말하면 잡탕·짬뽕·비빔밥이 된 것이다.

그로 인하여 조계 혜능에서 발원한 조원일적수(曹源一適水, 한 방울의 물)는 전례가 없이 오염되어 탁류(濁流)가 되어 있었다. 상류인 당대 조사선과 송대 공안·간화선은 만가(輓歌)를 합창해야만 했다. 그 혼탁한 말류선(末流禪)이 고려 후기 원 지배기에 대거 우리나라에 유입되었다. 조선시대는 물론, 근현대까지도 오늘날 한국의 선불교는 남송 말-원대 말류선의 모습에서 변하지 않았다. 면면을 들여다보면 사상적으로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다.

남송 말-원나라 선불교는 사상적·정신적으로 쇠락한 선이었다. 이 시기 선원총림의 방장(주지)들은 총림에 앉아 있는 날이 드물었다. 부처의 혜명을 잇고 불법을 수호한다는 그럴싸한 명분으로 날이면 날마다 정치인들과 분주하게 왕래했다. 그러나 기실(其實) 그들의 행동은 양어가추(揚於家醜, 허물을 드러내어 禪門을 격하시킴)에 지나지 않았고, 여속교통(與俗交通, 세상 사람들과 사귐)으로써 부처님의 혜명을 빠르게 단축시키고 있었다.

어쩌다 방장이 귀사(歸寺)하여 납자들이 문법(聞法)과 청익(請益, 가르침)을 요청하면, 방장은 “시간이 없으니 가능한 한 짧게 질문하라”고 했다. 우선 정치적으로 분망하다 보니 정안(正眼)을 갖출 수 있는 시간이 없었고, 축적할 수 있는 시간도 없었다. 납자들의 질문에 답할 능력도 상실했다. 이들 대부분은 임제종 계통의 방장들이었고, 그리고 이들 가운데는 도교의 도사들처럼 머리와 수염을 길게 기른 이들도 적지 않았다.

남송 후기에 중국 천동산 천동사에 가서 약 3년 반 동안 좌선 수행을 했던 에이헤이지(永平寺)의 선승 도겐(道元, 1200-1253)이 그러한 모습을 보고 스승인 천동여정 선사에게 “총림의 주지(장로)들이 왜 머리를 기릅니까?”라고 묻자, 여정 선사는 “모두 짐승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라고 대답하고 있다.

남송 후기-원대(元代) 선종사원(총림)은 티벳 밀교의 영향을 받아서 점점 주술적인 선종으로 변질되어 갔다. 이 시기 ‘불립문자, 직지인심, 견성성불’을 표방하고 있는 선원총림에서 진언·다라니 독송이 성행했는데, 그 가운데서도 가장 많이 독송된 것은 최장편 다라니인 ‘능엄주’였다.

특히 하안거 때에는 선원총림에 능엄주 독송을 위한 능엄단(楞嚴壇)을 차려 놓고 하루 세 번 능엄주를 독송했다. 하안거 90일 동안 척사(斥邪), 즉 마장(魔障)이 없이 안거를 무사히 마칠 것을 기원하기 위한 것(“楞嚴會乃祈保安居.” 〈칙수백장청규〉, ‘능엄회’)으로, 선원의 모든 대중들이 참석했다. 이것을 ‘능엄회(楞嚴會)’라고 했는데, 소임 가운데 ‘능엄두(楞嚴頭)’는 능엄주를 선창하면서 능엄회와 능엄단을 관리하는 소임이었다.

능엄단은 하안거 2일 전인 4월 13일에 설치하여 해제 2일 전인 7월 13일에 회향해서 마치는데, 아침 공양 후에는 대중 모두가 대웅전에 마련된 능엄단으로 가서 능엄두의 선창으로 능엄주를 독송한다. 만일 아침 공양 후에 급한 일이 있는 날에는 점심 공양 후인 오시(午時, 12시 경)에 모여 독송한다. 능엄주는 전문 427구로 되어 있는데, 418구까지는 제불과 신들의 명호이며, 끝 8구가 정주(正呪)로 이것을 ‘8구 다라니’라고도 한다.

그런데 이른바 “살불살조(殺佛殺祖)”, 즉 “부처도 죽이고 조사도 죽인다”고 강조하는 선불교, “번뇌 망상을 단칼에 잘라 두 조각 내버린다[一刀兩斷]”. “단번에 모두 깨닫고 닦아 버린다[頓悟頓修]”. 그리고 ‘불립문자’라고 하여 ‘경전도 휴지에 불과하다’고 대성일갈(大聲一喝)하면서, 하안거 90일 동안 하루 세 번 밀교의 다라니인 ‘능엄주’를 독송한다는 것은 선불교의 이념·철학·사상·정신과는 정말 맞지 않는 일이다.

더구나 선불교는 모든 현상을 공(空)·공성(空性)으로 파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형상도 없는 ‘마(魔)’를 물리치기 위하여 능엄주를 독송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는 선의 정신이 투철하지 못한 것이고 근기가 허약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당대 조사선에서는 불상도 필요 없다고 모시지 않았는데, 원대에 이르러 능엄주를 독송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생긴 것은 첫째 반야지혜에 투철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더 나아가 선의 정신이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 강병호

‘마(魔)’ ‘마장(魔障)’이란 외부에서 침입해 오는 것이 아니다. 마(魔)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번뇌마(번뇌장)’와 ‘사량분별심[所知障]이 곧 ‘마’이다. 성성하게 화두를 참구하면 저절로 없어질 마를 쫓아버리겠다고 능엄주를 독송하고 있었으니 실망스러운 일이다. 금강석과 같은 반야지혜는 완전히 사장(死藏)되어 단 10%도 가동되지 못한 것이다. 그러고도 이들이 정녕 격외의 소식을 깨닫겠다고 나선 기개가 하늘을 찌른다는 출격(出格) 대장부인가?

당대(唐代)는 물론 북송 때까지도 선원에서는 능엄주 같은 것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북송 말인 1103년에 편찬된 장로종색의 〈선원청규〉에는 〈능엄경〉이나 〈능엄주〉에 대한 언급이 일체 없다. 그 어디에도 능엄주를 독송하라’는 말이나 문구는 찾아볼 수 없다. 말하자면 이때까지만 해도 선종사원에서 능엄주는 전혀 중시되지 않았던 것이다. 적어도 남송 중기까지도 능엄주는 독송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로부터 170년 뒤인 1274년 즉 남송이 망하기 5년 전에 편찬된 〈총림교정청규총요(叢林校定淸規總要)〉(함순청규라고도 함)에서 처음으로 하안거 결제 때 능엄주를 독송하는 능엄회에 대한 기사(記事)가 나오고 있다. 이어 원나라 초기인 1311년(원의 건국은 1264년임)에 편찬된 일함의 〈선림비용청규(禪林備用淸規)〉 그리고 원 순제 지원 4년(고려 충숙왕 7년)인 1338년에 편찬된 〈칙수백장청규〉에는 능엄주와 능엄회에 대해 빈번하게 언급하고 있다.

〈칙수백장청규〉 절랍장에 안거 때는 능엄단을 차려 놓고 능엄주를 독송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원나라 라마교의 영향 등으로 선원에서 능엄주를 독송하게 된 것인데, 밀교의 능엄주를 선원에서 독송하고 있었으니 칼날 같은 지혜가 번뜩이던 선의 정신은 사실상 여기서 죽었다고 해도 하등에 원통할 것도 없다.

밀교나 기타 불교종파에서 능엄주를 독송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하지만 ‘경전도 휴지에 불과하다’고 ‘마루가 꺼질 정도’로 큰 소리를 치는 선사들이 천신들의 이름이 적지 않게 나열되어 있는 능엄주를 독송하였으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일 종명(宗名)이 ‘밀교선종’ 또는 ‘다라니선종’이라면 비판의 대상 자체가 될 수 없다.

그러나 당 중기 백장회해가 처음으로 선원총림을 만들 때는, 그리고 당 말까지도 선종사원에서는 불전은 물론 불상도 모시지 않았다. 기도, 염불, 불공 등은 일체 하지 않았다. 선원총림은 그 목적이 깨달은 부처를 만드는 곳이지 기도, 불공 등 기복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북송 때까지도 살불살조의 조사선 정신은 살아 있었다. 그러나 남송 후기-원대에 와서는 선의 정신을 망각하고 능엄주 등 진언밀교의 다라니를 독송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사실 중국 선종은 남송-원대를 거치면서 여러 차례 정치적인 요인으로 그 정신이 퇴색하여 명청시대에는 무자화두의 간화선은 사라지고 염불자수(念佛者誰, 염불하는 자는 누구인가?)의 염불선이 형성되었다.

우리나라 선원에서도 능엄주를 독송했다. 이것은 원나라 선불교의 오류를 그대로 답습한 것인데, 아무리 ‘원 지배 시기’라고 해도 이런 것까지 답습할 필요가 있는가? 그보다는 정견과 정안이 부족해서 나타난 현상이기에 더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능엄주 독송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확철대오, 살불살조를 외치는 선원총림에서 화두삼매가 잘 되지 않아서 능엄주를 외우고, 마(魔, 마장)를 물리치기 위해서 능엄주를 외운다는 것은 간화선의 정체성을 상실한 것이기 때문이다. 선수행자라면 당연히 화두를 들어서 삼매로 들어가야 하고, 마(魔)나 마장을 물리쳐야 하지 않겠는가?

또한 선원에서 무슨 경전이든 독송해야 한다면 당연히 〈유마경〉이나 반야지혜의 경전인 〈금강경〉, 또는 〈화엄경〉 등 사상적으로 선종의 바탕이 된 경전을 우선적으로 독송해야 한다. 더 나아가 〈육조단경〉, 〈임제록〉, 〈조주록〉같은 선사들의 어록을 독송해야 한다. 그래야만 반야지혜를 갖출 수 있고, 정견과 정안을 갖추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금강경〉과 〈유마경〉, 〈화엄경〉 등 대승경전은 중국 선불교의 사상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준 경전이다. 특히 〈유마경〉은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 ‘생사즉열반’이라는 명구 하나만으로도 ‘생사와 번뇌’란 염오(厭惡)해야 할 대상이 아니고 그것을 뒤집으면 곧 깨달음이 된다는 것을 극명하게 설파한 경전이다. 또한 ‘유마의 침묵(沈默)’에서는 ‘진리는 무언(無言)’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었고, “중생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고 하여, 보살정신과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님[不二]을 보여준 경전이다.

이런 수행에 도움이 되는 경전들은 ‘불립문자’라고 하면서 독송하지도 않고 밀교의 다라니인 능엄주를 독송한다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된다. 능엄주 독송은 밀교수행법으로는 맞을지는 몰라도, 공안과 화두를 참구하는 선불교에서는 큰 착각이고 오류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런 안목으로 어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수 있겠는가?

참선수행에서 ‘마(魔)’란 곧 선병(禪病)이다. 선병은 정견(正見)과 정안(正眼) 등 안목이 부족해서 겪게 되는 정신적 오판·오류라고 할 수 있다. 또 자신의 의식 속에 나타나는 환영(幻影)ㆍ환청(幻聽)ㆍ환시(幻視) 등 착시현상도 선병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정견이 확립되지 못해서, 어리석기 때문에 생긴다. 정도(正道)를 모르고 정도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선종에서 반야지혜를 중시한 것은 이런 선병과 마(魔)를 대치하기 위한 것이었다. 반야지혜에 투철하면 나타나지도 않을 일들을 가지고 분주하게 정신을 괴롭히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나를 더 곁들인다면, 깨달으면 어떤 신통력 같은 것을 얻으리라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 또한 큰 착각이다. 그것도 선병, 마(魔)의 한 가지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실 우리나라 수행자들 가운데는 적지 않은 이들이 이 병(신통술, 신통력)에 걸려 있다고 보이는데, 만일 이런 기대를 갖고 수행을 하고 있다면 엉뚱한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즉 삿된 선이다. 선에 대한 바른 안목을 가지고 수행을 했다면 선병이나 마(魔)란 일어날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 ‘마(魔)’란 마음이 허황되면, 빈틈이 생기면 마가 침입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일체유심조, 일체가 마음에서 만들어졌듯 마도 오로지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낸 병이라는 것을 체득할 때 본분사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