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건축학도 호기심, 의상을 만나다
한 건축학도 호기심, 의상을 만나다
  • 김주일 기자
  • 승인 2018.01.12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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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대사 구법 건축순례행기/김승제 지음/조계종출판사 펴냄/2만원

〈의상대사 구법 건축순례행기〉. 1983년 동경 유학시절 이미 정해놓은 책 제목이다. 의상대사에 대한 국내 기존 연구는 비교적 활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상대사에 대한 초기 역사적 자료는 매우 적었다. 더욱이 의상의 활동 행적에 대한 기록이 저마다 달라 더욱 혼란스러웠다. 저자가 매우 궁금해한 부분 즉 바로 의상이 입당해 귀국하기까지 당나라에서의 수행 과정에 대한 구체적 내용의 저술은 더욱 찾을 수가 없었다. 의상은 구법을 위해 두 차례에 걸친 어려운 과정을 거쳐 입당에 성공해 장안 종남산에 자리 잡은 지상사에 가서 화엄 2대 교주인 지엄을 만났다. 저자는 의상이 어떠한 행로를 통해 당으로 이동했고, 유학생활은 어떠했는지, 또한 귀국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등에 대해 궁금증을 계속 품고 있었다.

저자는 1988년부터 광운대와 원광대 건축학과서 한국건축사를 강의했다. 이 책의 일부는 그의 강의 내용이다. 2007년부터는 청도 이공대학 국제학부 건축학과 강의를 맡아 연간 4~5차례 중국을 방문하는 인연을 이어왔다. 때마침 저자의 연구실에 중국 유학생이 입학 하면서 중국에서의 의상대사 행적에 대한 궁금증의 해답을 찾는 작업이 시작됐다.

당나라 승려 이동에 대한 규제 엄격
의상, 입당후 신라 귀국까지 행적 추정

하지만 의상대사에 대한 연구 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기존의 옛 자료를 통해 신라와 중국에서의 행적을 추이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기존의 등주(登州) 도착설이 아닌 양주(揚州) 도착설을 뒷받침하는 기록을 찾을 수 있었다. 물론 의상대사와의 직접적인 자료는 아니지만 당나라 당시 양주 대명사(大明寺)의 큰 스님인 감진(鑒眞, 688-763)이 일본 승려들의 간절한 요청을 받아들여 753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천태종의 시조가 된다는 기록이 있다. 그후 838년 엔닌(圓仁, 794-864)은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847년에 일본으로 귀국하면서 당나라에서 겪은 내용을 기록한 〈입당구법순례행기〉를 저술했다.

교토 서북쪽 도가노오산에 있는 고산사 금당

고대에 바다를 건넌다는 것은 죽음을 무릅쓰고 가는 험난한 길이었음에 틀림 없다. 엔닌의 저술을 살피니 배를 타고 일본을 출발해 황해를 건너 양주에 도착한 후 다시 장안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장안서 귀국까지 다사다난한 당시의 상황 설명이 자세히 기록돼 있었다. 그동안 안개 속에 가려져 있던 궁금증이 한번에 걷히는 듯했다. 저자는 곧 엔닌이 다녀온 그 길이 바로 의상대사가 이미 다녀온 길이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당나라 시대에는 승려들의 이동에 대한 규제 제한 등이 엄격히 이루어진 점과 당시 장안으로 가는 것은 극히 제한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되기 때문이었다. 중국에서 의상의 행적에 대한 자료는 찾아볼 수 없으나 기존의 애매모호하고 서로 다른 내용의 입당 과정을 정리하면서 의상대사의 입당 후 신라로 귀국하기까지의 행적을 추정할 수 있었다.

저자는 〈의상전교〉 〈부석본비〉 〈송고승전〉 〈백화도량발원문약해〉 〈해동고승전〉 〈입당구법순례행기〉(엔닌)를 비롯한 방대한 자료를 분석, 정리했다. 그리고 2016년 의상의 발자취를 탐방하는 현지답사서 얻은 확신으로 기존의 학설과는 다른 제안을 한다.

첫째, 의상은 남양반도서 배편으로 황해를 지나 항해해 양주(揚州)에 도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둘째, 의상은 1차 입당시기까지 아직 정식 수계를 받지 않은 사도승(私度僧) 단계였을 것이다. 의상을 제대로 연구하기 위해, 그에 앞서 저자에게 불교의 이해는 필수였다. 저자는 부처님의 생애에서 시작해 기본 불교교리를 공부했다. 이어 동북아시아불교사를 탐구했고, 영주 부석사와 석굴암, 낙산사 홍련암 등 불교건축을 세밀하게 관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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