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마음을 가져오라/혜담 지음/불광 펴냄/2만원

삶의 회의를 씻고 확철대오 하겠다는 원력으로 출가 수행을 시작한 혜담 스님〈사진〉은 은사인 광덕 스님의 지도로 ‘마하반야바라밀 염송수행’과도 만나고, 반야사상의 체계를 연구하기 위해 일본 유학을 떠났다. 하지만 학문적 시각으로 불교 교리에 접근하는 학승의 한계를 절감하고, 귀국 후에는 더욱 조사어록에 전일해 화두참구에 몰두했다. 그렇게 20여 년 동안 조사들의 화두가 자신의 것이 되는 시간을 보내며 달마와 혜능의 선사상을 체득해 갔다.

하지만 이 과정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 마음을 다잡지 못해 갈등이 밀려오는 순간도 있었고, 깨달음이 아닌 것을 깨달음으로 착각하기도 했다. 수행에 몰두한 나머지 뇌혈관이 터져 생사의 갈림길에 선 적도 있었다. 이 가운데에서도 중생 제도 실천을 위해 전법교화에 매진하고, 저술 활동도 활발히 펼쳤다. 이처럼 혜담 스님이 수행자로 걸어온 지난 반세기는 실로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을 실천하는 삶 그 자체였다.

“선불교는 달마의 심종교와 대면하는 것”
선은 불교 일파가 아닌 인류의 지적 유산

혜담 스님은 “이제 조금 눈이 열린 것 같다”라고 담담히 말한다. 역대 조사들과 은사 광덕 스님이 말한 ‘번뇌가 다 한 것이 부처가 아니라, 번뇌가 본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 부처’임을 여실히 관(觀)한 스님의 고백이다.

이 책은 깨친 선승의 ‘할(喝)’이라기보다 묵묵히 걸어온 수행과정을 후배들에게 들려주기 위한 회고록이자, 선승으로서 조사어록을 정리한 지침서이다.

달마 대사로부터 시작되는 선(禪)은 인도불교와는 다른 중국적 성격을 지닌 불교 사상이다. 중국불교는 7~8세기 사이에 그 철학의 일단을 매듭짓고 새로운 불교사상운동을 전개했다. 이 운동은 중국적 불교의 색채를 발하며 선불교를 낳았다. 따라서 선불교는 중국불교의 탄생을 의미 한다. 혜담 스님은 이것을 ‘달마의 심종교’의 탄생이라고 이름 붙였다. ‘달마의 심종교’인 선은 예기치 않게도 중국을 넘어 국제성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불교서 파생했지만 새로운 사상이라고도 볼 수 있는 선은 중국은 물론, 한국과 일본 등 동북아시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스님은 이러한 관점서 볼 때 “선은 이제 불교의 일파가 아니라, 그것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인류의 지적 유산임을 자각해야 한다”고 주창한다. 이처럼 파격적 주장을 내세우는 근거는 조사의 사상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과는 다른 차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선종 이전의 불교에서는 아라한의 깨달음서 부처를 찾았다면, 선종은 오직 마음에서 부처를 찾는 데 결을 달리한다. 초기불교와는 다른 달마 대사의 심종교 기본 골격은 이입(二入)과 사행(四行)서 보다 분명해진다. 이입이란 이입(理入)과 행입(行入)이다. 본래 부처라는 이법(理法)과 그 자리에 이르기 위한 행위로서의 수행법을 말한다. 사행은 ‘본래로 돌아가기 위한 네 가지 실천’을 가리킨다. 첫째는 보원행(報怨行)으로 수행하면서 겪는 장애나 역경은 전생에 지은 과보임을 알고, 괴로움을 만나더라도 마음에 두지 않는 수행이다. 둘째는 수연행(隨緣行)으로 모든 것에는 자성이 없고 인연에 따라 움직인다는 진실을 깨닫기 위한 수행이다. 셋째는 무소구행(無所求行)으로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어떠한 보상도 바라지 않고, 일체 대상에 집착하지 않는 수행이다. 넷째는 칭법행(稱法行)으로 자기 자신이 본래 청정하다는 도리를 깨닫는 수행이다. 초조 달마의 수행법에는 사념처(四念處) 등에서 말하는 부정관(不淨觀)이 없다. 본래 자성이 불성이고 더러움도 깨끗함도 없기 때문이다.

한국불교 선종 계통의 선사들은 모두 달마 대사의 심종교인 이입사행의 계승자라고 할 수 있다. 달마 대사의 심종교는 육조혜능에 의해 선불교라는 옷을 입고 인도불교와는 결이 다른 중국불교로 정통성을 확보했다. 선종은 달마 대사가 심종교로 시작하고 혜능 대사가 일으켜 세웠다는 사실에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 책서 혜담 스님은 선불교와 기존 불교의 우위를 논하려 하거나 조사들의 뛰어남만을 부각시키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경계하고 불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통찰하도록 유도한다.

달마의 사상도, 그를 가장 잘 계승한 혜능도 결국 이야기하려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혜능은 진여본성(眞如本性)을 강조한다. 본래 마음이란 진여본성이고, 진여본성은 불성(佛性)이다. 이 진여본성인 불성을 보면 그 자리가 그대로 해탈이다. 이는 혜능 대사의 불성사상을 가장 잘 나타낸 말로, ‘본성을 보고 난 후에 다른 수행을 하여 열반이나 해탈을 증득하는 것이 아니라, 본성을 본 그 자체가 성불이고 해탈이며 열반’이라는 뜻이다.

이 책은 선종의 교리적 해석이나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저자의 스승인 광덕 스님의 가르침과 달마, 혜능의 사상을 통섭하며 지금까지 걸어온 수행의 길을 응집하여 결국, 출가 당시의 물음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불교의 답이다. 무엇에도 얽힘 없는 자유자재한 삶, 그러기 위해 자기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안목을 키우는 지혜, 그것이다.

혜담 스님은 서문을 통해 스승인 광덕 스님의 가르침을 인용했다. “부처님 가르침이 틀림없이 무상, 고, 공, 무아, 혹은 부정, 무, 무아이긴 하지만 이것은 현상에 대해서 범부들이 집착하기 때문에 범부들의 그릇된 생각을 버리게 하기 위해서 말씀하시는 것이지, 당신이 깨달은 궁극적 진실을 말한 게 아니다. 부정(不淨)에 대한 가르침, 고(苦)의 가르침, 무상(無常)의 가르침은 불법이며 부처님의 말씀이긴 하지만 부처님의 진실한 깨달음 자체는 아니다. 그러면 부처님 법문에서 무엇이 진실인가? 아시다시피 부처님은 법신(法身)이다. 번뇌가 다하고 번뇌가 끊어진 것이 아니라 번뇌가 본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라고.

▲저자 혜담 스님은?

1949년 경남 울산서 태어난 혜담 스님은 부산 금정산 범어사서 광덕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동국대 불교대학 승가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해군군종법사 대위 전역하였고, 일본 불교대학 대학원에서 〈대품반야경에 있어서의 반야바라밀 연구〉로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선우도량 공동대표, 조계종 총무원 호법부장·재심호계위원, 불교신문 논설위원, 불광사 주지를 역임한 그는 현재 경기도 검단산 각화사 주지, 재단법인 대각회 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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