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부처님의 안목

안목(眼目)은 세상을 보는 눈이다. 중생의 눈으로 보면 중생의 안목이고, 부처님의 눈으로 보면 부처님의 안목이다. 중생의 안목을 버리고 부처님의 안목을 갖는다는 것은 부처님처럼 살아가는 일이니 부처님처럼 산다는 것은 바로 그 분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바로 경전을 읽는 것이다. 수많은 경전 속에서 우리들을 따뜻하게 어머니처럼 보듬어주시기도 하고, 엄한 아버지가 되어 심한 꾸지람도 마다하지 않으시는 부처님을 언제나 만날 수 있다. 심지어 무문자설(無問自說), 제자들이 질문을 하지 않았음에도 먼저 우리를 향해 〈아미타경〉을 설법하시는 것을 보면 중생을 향한 애틋한 마음이 느껴진다.

부처님이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수많은 방편과 설법들이 다 경전 속에 오롯이 담겨져 우리들 곁에 팔만대장경의 모습으로 있다. 수많은 경전들 속에서 무엇을 읽어야 하는지도 큰 숙제처럼 느껴진다.

부처님의 열반을 가까이에서 본 모든 이들이 눈물을 흘렸다. 슬퍼하는 이들을 보며 어리석은 비구가 갑자기 울지 말라며 오히려 그동안 잔소리를 너무 많이 들었는데 부처님이 돌아가셨으니 이제 그런 잔소리는 안 듣게 되었으니 이것이야 말로 자유를 얻었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가섭존자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 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도 이런 말이 나온다면 오랜 세월이 지나면 무엇을 부처님법이라 말할 지 난감했다. 속히 대중들과 부처님이 설하신 계율과 경전을 정비해야 할 필요성을 느껴 대중을 모아 의견을 구했다. 그리고 번뇌가 다한 무학(無學)의 아라한과를 증득한 499명을 뽑고 제1차 결집을 선언한다. 마가다국의 아자타삿투왕은 이미 부처님 열반 후 제자들이 자기 나라로 옮겨 올 것이라고 예상하고는 모든 사원들을 정비하고 있었다. 가섭존자가 왕을 만나 라지기하 베바라 언덕의 칠엽굴에서 부처님의 말씀을 모두 모으는 결집의 의지를 보이자 왕은 감동하여 결집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공양하며 후원한 인연으로 맹세한 인연으로 결집하는 동안 스님들은 탁발을 나가지 않아도 되었다.

계율과 경전을 결집한다는 소문은 온 세상에 퍼졌다. 먼저 우바리존자가 부처님이 말씀하신 모든 계율을 조목조목 설하며 이 계율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진 상황을 자세히 밝히니 모든 대중들은 한 점 의혹이 없었다. 모두 함께 아름다운 목소리로 합송(合誦)을 하며 율장을 정비했다. 그 뒤 아난존자가 부처님이 설하신 모든 설법을 부처님처럼 차근차근 말씀하였다. 대중들은 이 법문을 들으며 마치 부처님이 돌아오신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좋아서 즐거운 마음으로 모두 함께 합창하듯이 외우며 즐거워했다. 45년간의 설법은 이렇게 7개월 만에 경과 율을 모두 결집한 것이다.

이렇게 결집된 경전이 바로 〈아함경〉이다. 아함(阿含)은 아아가마(agama), 가르침, 가르침이 전해짐이란 의미를 담고 있으니 ‘부처님의 가르침이 전해지다’가 바로 아함인 것이다.

오랫동안 아함을 대승경전에 빗대어 소승과 대승으로 상대적으로 낮추어 불렀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부처님이 중생과 가장 가까이서 교화한 사랑스런 경전으로 만나야 한다.

보통 아함을 동북아시아 일대에서 읽혀진 한역(漢譯)에서는 장편으로 구성된 〈장아함〉 22권(30경), 〈중아함〉60권(22경), 〈잡아함〉50권(1,362경), 〈증일아함〉50권(472경)의 4가지가 있다.

동남아시아 일대에서 읽힌 빨리어로 된 니까야(Nikya) 는 〈장부, 디가니까야〉 34경, 〈중부, 맛지마니까야〉 152경, 〈상응부, 상윳따니까야〉2,875경, 〈증지부, 앙굿따라니까야〉2198경, 〈소부, 쿳다까니까야〉15경로 구성되어져 있다. 이 둘은 서로 유사성은 있으나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세월따라 조금씩 변했다고 해도 부처님의 아름다운 마음씨, 따뜻한 말들이 상처받고 힘들어 하던 모든 이들의 가슴에 아로새겨진 그 때, 그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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