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연재를 시작하며

2002년 도난됐다가 2014년 환수된 보물 제1956호 청도 용천사 영산회상도<사진 왼쪽>와 화기들<사진 가운데·오른쪽>. 표시된 부분은 도난문화재임을 숨기기 위해 화기를 인위적으로 훼손한 것이다. 시중 불교문화재 중 인위적 작업이 추가된 것은 도난문화재로 의심해야 봐야 한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진열된 불교문화재를 관람하다 보면 어떤 인연으로 사찰에서 모시던 신상(神像)이 속세로 나와 수집이나 관람의 대상이 되었을까하는 생각이 가끔 든다. 이런 고민이 계속되는 이유는 불교 유물 관련 문헌이나 중요한 기록이 훼손된 채 전시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20여 년을 조선 후기 부처님을 만든 작가를 밝히는 연구를 하다 보니 “부처님 덕에 먹고 사는 연구자입니다”라는 자기소개로 강의를 시작하곤 한다. 불상을 제작하고 불화를 그린 작가들을 연구 주제로 삼은 것은, 작품의 양식적인 분석이나 변천 등의 연구가 전부였던 1990년대 초반에는 작가와 시주자 등 작품 저변의 사람에 대한 관심이 없는 무척 건조한 미술사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성보문화재 도난史 살펴보면…
일제강점기엔 삼국·고려 作 유출
6.25전쟁 시기 외국인 수집 대상
1960년대 지나면서 본격적 도난

연재를 통해 보여주려는 것은…
불상 조성한 조각승 연구하다보니
사찰 유출 성보들 추적까지 확장돼
畵記 삭제 등 인위적 작업된 것은
우선 도난문화재로 의심할 정황 커
도난 성보 현황, 제대로 알려볼 것

이후 불상을 만든 조각승을 중심으로 개별 불상을 연구하다보니 조성 시기, 봉안 사찰, 작가, 시주자 등을 중심으로 불상, 불화, 범종 등을 조성한 이유를 밝혀내기 시작하였다. 결국 사람 중심의 불교미술사를 추구하면서 사찰에서 유출된 문화재를 분석할 때 관련 인물들을 찾아 조성 시기와 봉안처를 확인하는 작업을 하면서 사찰을 떠난 문화재까지 연구의 폭이 넓어졌다.

그래서 이번 연재는 사찰에서 유출된 문화재 중에서도 불법적으로 도난된 문화재의 현황을 밝히려는 의도가 많다.

시중에 거래된 불교문화재 가운데 도난문화재로 의심할 수 있는 경우는 화기(畵記)를 없애거나 조성 연대와 사찰 등을 인위적으로 훼손한 불화, 보살상이나 나한상 등의 보관 장식을 일부 제거하거나 안료를 다시 칠해서 원 작품을 훼손한 경우 등 인위적인 작업이 추가된 불상, 사찰에서 도난을 신고한 불교문화재 등이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많은 불교문화재는 임진왜란으로 파괴된 사찰을 복원하기 시작한 1600년 이후에 제작된 작품이 대부분이다.

조선 후기에 건립된 사찰 내의 전각(殿閣)은 벽면의 크기가 달라서 불상과 불화의 크기, 존상 배치, 설채(設彩)법 등이 모두 달라 비슷한 작품은 많아도 동일한 작품은 없기 때문에 사진이나 관련 자료만 있다면 도난문화재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불화의 화기 일부가 남아있는 경우, 대개 작가는 당대에 작품 한 점만을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서 화기에 적혀 있는 스님이나 시주자 등을 근거로 도난 불화의 조성 시기와 봉안 사찰을 추정할 수도 있다.
이외에도 일제강점기 개별 사찰에서 정리된 재산 대장 등이 남아있어 현재 사찰의 성보목록과 비교하면 대략적인 유물 현황에 접근이 가능하다. 또한 1960년대 이후 개별 연구자들이 촬영한 사진 등은 유출문화재 연구의 가장 중요한 단서이다.

19세기 이후 사찰이나 사지(寺址)에서 유출되기 시작한 불교문화재의 현황을 살펴보면, 일제강점기에는 주로 삼국부터 고려시대 유물이 절 밖으로 유출되었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외국인들에 의해 골동 수집의 대상이 되었으며, 1960년대 후반부터는 경제발전 이후 형성된 재산가들에 의해 조선 후기 유물까지 수집 영역이 넓어지면서 조선후기에 조성된 불화, 불상, 공예품 등이 집중적으로 유출되었다.

이런 불교문화재는 대부분 골동 시장이나 밀매를 통하여 각 기관이나 개인에게 넘어간 것으로 볼 수 있다. 불교문화재의 도난 관련 신문 기사 중에는 ‘불도(佛徒) 가장(假裝)한 사찰 도둑, 유명 사찰 탱화(幀畵) 절도범의 행각(行脚), 절 명단 갖고 다니며 국보급 등 훔쳐… 승주 선암사에서 8천여만 원어치 훔치기도(1978년 11월 10일자 동아일보)’, ‘문화재 전문절도단 극성, 전국 유명 사찰·서원 등 무대로 보물 등 해외 반출 가능성(1993년 11월 8일자 경향신문)’ 등 수많은 불교문화재 도난 기사가 실려 있다. 결국 불교문화재에 대한 수요가 있었기 때문에 불법적인 공급이 일어난 것으로 쉽게 생각할 수 있다.

최근 문화재청과 조계종 등 불교 종단에 신고된 문화재들이 대략 30여 년이 지나면서 시중 경매 등에 출품되고 있다. 지난 2016년에는 한 사립박물관 관장이 은닉했던 수백 점의 불교문화재를 수사하여 그중 도난 신고가 된 48점에 대하여 원 봉안처로 돌려주라는 도난문화재 환원에 대한 법원의 중요한 판결이 나왔다. 그동안 법원판결이 선의 취득을 인정하거나 공소 시효가 끝난 것을 이유로 들어 도난문화재이면서도 원래 소장처로 돌아가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사찰에서 유출된 문화재의 도난 여부를 밝히는 일은 쉽지 않다. 작은 단서라도 남아있는 경우는 도난 여부를 밝혀보려고 시도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처음부터 벽에 부딪치게 된다.

더군다나 도난당한 원 위치를 밝혀내도 소유권 문제가 발생해서 소장처나 봉안처에서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열심히 사실을 밝혀내고 칭찬보다 욕을 먹을 수 있는 것이 도난문화재 연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뿌리를 잃어버린 유물의 역사를 복원한다는 것은 매우 매력적인 작업이다.

5년 이상 이 작업을 하면서 즐거운 일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경험도 있다. 몇 해 전 해외 경매를 통하여 유통된 조선 후기 불화 중에 순천 선암사에서 도난당한 ‘동악당 진영’은 문화재청과 경찰청의 빠른 대처로 국내에 환수했다. 그러나 2010년 미국 경매에 출품된 순천 선암사 ‘향서당 담휘 진영’은 이미 경매가 종료되어 다시 소재 파악이 된다고 해도 선의 취득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도난문화재가 외국 경매 등의 합법적 거래를 통하여 국내에 들어와도 원 봉안처로 돌려보내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정상적인 거래를 통해 구입한 유물을 순순히 기증을 해주는 기증자에게는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

최근 (사)한국국외문화재연구원에서 경북 지역 사찰에서 도난된 조선 후기 불교회화와 관련된 발표를 제안 받고, 6개월 동안 문화재청과 여러 불교 종단에 도난 신고된 문화재 관련 신문기사를 정리해 보았다.

관련 문헌을 찾는 동안 1983년 이전에 도난당한 내용이 현재 도난문화재 목록에서 누락된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가운데 1965년 5월 11일자 매일신문은 ‘영주 부석사에 지난 3월 도둑이 들어 국보 19호인 조사당에 봉안되었던 송운당, 봉암당, 단하당의 3폭 탱화를 비롯하여 문화재 여러 점이 도난당했다’는 사실을 기사화했다. 이 진영들을 국내외 박물관이나 개인이 소장하고 있다면 이 유물들은 그 당시 도난된 문화재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경북 청도 덕사에서 세 점의 불화를 도난당했다는 기사(1974년 10월 26일자 경향신문)가 나왔지만 해당 사찰의 도난신고는 없었다. 따라서 개별 사찰에서는 아직도 신고하지 않은 도난유물을 파악하여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에 도난사실을 신고해야 사찰로 돌아갈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다.

한편 꾸준히 진행해 온 도난문화재 연구와 경찰의 신속한 수사는 매 순간 공조가 필요하지만 이런 일을 지속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상시 기관이 없어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조금만 더 관심을 갖는 연구자와 수사기관의 의지가 있다면 더 많은 유물이 유통 과정에서 도난 여부가 밝혀져 회수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유물을 도난당한 사찰들도 자신의 역사를 되찾겠다는 적극적인 생각을 가진 스님들과 신자들도 많아져야 할 것이다. 도난문화재의 유통 근절과 문화재적 가치를 밝히기 위해 이 연재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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