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년 기 자 회 견 문

2018년 새해를 맞아 국민여러분과 불자여러분의 가정에 행복이 함께 하길 기원드립니다.

2018년 무술년은 황금개띠의 해입니다. 총명하고 충실하며 온화하고 책임감이 강한 성품을 갖고 있는 황금개띠의 해를 맞아 국민여러분과 불자여러분들께서도 각자의 역할과 책임에 충실하며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정신은 자비와 공심입니다.

지난해 우리는 국가적 위기상황을 국민들의 지혜로 슬기롭게 극복함으로써 더 이상 특권이나 권위가 아닌 상식이 통하는 사회, 국민이 주인 되는 나라를 위한 국민적 열망을 모아 새로운 정부를 출범시켰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할 뿐 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작금의 한국사회는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위기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고위급회담이 성사되는 등 남북관계가 개선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의 상황은 매우 위중한 상황입니다. 국내 정치 또한 갈등과 정쟁으로 화합과 상생, 공존의 길은 아직 요원한 상황입니다.

한편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대형 재난으로 국민들이 희생되는 안타까운 비극이 지속적으로 발생되고 있으며, 과도한 물질주의, 개인주의로 인한 인간성 상실과 그에 따른 범죄들이 만연함으로써 사회적 불안감이 갈수록 높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재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존중과 배려입니다. 성공적 인간관계와 상생과 공존의 사회는 존중과 배려에서 시작되며, 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더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국가적 관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나만이 옳다는 탐, 진, 치 3독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결국 단절과 고립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입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모든 나라의 지도자들께서도 상대를 인정하는 존중과 배려의 마음으로 한반도의 문제를 바라봐 줄 것을 당부드립니다.

 

대탕평의 시대를 열어 수행 공동체 조계종의 대화합을 이루겠습니다.

우리 종단에는 시대적 또는 정치적 상황에 따라 불가피하게 종단의 제재로 대중들과 멀어진 출가수행자들이 있습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다시 조계종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회향하길 희망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출가수행자로서의 본분을 지키며 살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불행했던 과거의 아픈 종단 역사를 정리하고 조계종 공동체의 화합과 불교공동체의 발전을 위한 대화합, 대탕평의 조치를 시행할 것임을 밝힙니다.

물론 대탕평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사부대중의 이해와 동의가 필요합니다. 또한 종단으로부터 제재를 받았던 이들의 진정한 반성과 참회, 그리고 스스로를 낮추고 조계종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부처님 법과 중생을 위해 회향하겠다는 수행심의 회복과 종도로서의 정체성 확립이 전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대탕평을 위해 종단은 사부대중의 지혜를 모으는 탁마의 장을 신속하게 마련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부처님오신날 이전에 사부대중이 모여 조계종 공동체의 대화합을 선언하는 법석을 마련하여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서로 존중하고 화합하는 조계종 수행공동체의 새로운 출발을 선언하도록 할 것입니다.


청정승가의 수행가풍을 확립하겠습니다.

2018년 대한불교조계종은 청정승가의 수행가풍을 확립하여 수행종단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사회로부터 존경받는 승가상 구현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깨달음을 향한 구도의 길을 선택한 우리 출가 수행자들이 세속의 유혹에 흔들리는 것은 수행의 부족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출가수행자로서의 자기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함은 물론이거니와 종단운영 시스템 또한 수행자를 외호하고 수행가풍을 확립하는데 중점을 두지 못한 것이 현재 한국불교의 가장 큰 문제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종단운영의 근간을 수행중심으로 바꾸어 수행종단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고자 합니다. 이에 종도들의 지혜를 모아 입법, 사법, 행정 분야의 제도개선을 추진하겠습니다.

나아가 신심과 원력 공심을 기반으로 불교다운 불교, 존경받는 불교, 신심나는 불교로 거듭나도록 하겠습니다. 신심과 원력, 공심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제자로서 지녀야 할 가장 기본적인 마음가짐입니다. 신심은 내가 부처임을 확실히 믿고 그 믿음을 따르는 수행자로서의 신앙심이며, 원력은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 지를 가늠하는 수행자의 목적의식이며, 공심은 대중과 사찰, 그리고 종단을 섬기는 애종심입니다.
 

한국불교의 최대 문제점인 선거제도 개선을 위해 사부대중의 지혜를 모으겠습니다.

저는 지난 총무원장 선거를 직접 겪으면서 우리 종단의 선거제도가 얼마나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지 실감하였습니다. 우리 종단 최대의 축제이자 화합으로 승화되어야 할 총무원장 선거가 오히려 종단의 안정과 화합을 깨트리는 가슴 아픈 현장을 목도하였습니다.

당선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연적으로 시비의 분별을 논하게 되고, 무분별한 중상과 모략을 넘어 금권이 동원되는 참담한 상황이 바로 조계종 선거제도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나아가 수많은 불교의 지식인들조차도 조계종의 선거제도를 개선하지 못하면 한국불교의 미래는 없다며 우려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이에 사부대중을 비롯하여 한국불교를 걱정하는 모든 분들과 함께 조계종의 선거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열린 마음과 자세로 지혜를 모아나가겠습니다. 선거제도를 개선하지 못한다면 한국불교에 희망이 없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임기 내에 반드시 선거제도를 개선하겠습니다.

 

한국불교는 종교이기 전에 민족문화입니다.

안타깝게도 최근 들어 우리사회에서 전통문화가 홀대받는 상황이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국불교는 1700년 동안 우리 민족의 생사고락을 함께 해온 역사이자 민족의 전통문화입니다. 나아가 한국불교의 문화는 박제화 된 전시용 문화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삶이자 생활문화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9조에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민족문화의 유산으로서 역사적 의의를 가진 전통사찰과 그에 속하는 문화유산을 보존․지원함으로써 전통문화의 계승 및 민족문화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국가가 ‘전통사찰의 보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편협한 역사관과 문화관을 지닌 일부에 의해 전통문화의 계승과 민족문화의 가치보다는 종교적 잣대 또는 종교적 형평성을 이유로 민족문화를 외면하고 홀대하는 상황이 지속적으로 발생되고 있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역사와 전통문화의 정신을 살리는 것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입니다. 국가는 헌법 정신에 의거하여 전통문화를 진흥하기 위한 각종 조치에 적극 나서야 합니다.

전통문화를 종교적 잣대로 판단하는 잘못된 관행과 시각을 이제는 과감히 청산해야 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국가적 책무를 다하는 길이며, 종교간 평화와 화합을 이루는 유일무이한 길임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전통문화와 자연 유산 정책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우리 조계종은 문화․자연유산 정책 개선 내용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특히, 국립공원 내 사찰의 문화재구역입장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연공원법 개정을 제안하였으며, 자연공원 및 도시공원 등에 편입된 ‘사찰지’의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공원정책위원회’를 제안한 바 있습니다. 나아가 문화재 및 전통사찰 규제를 해소하기 위한 규제개혁위원회 또한 제안하였습니다.

일례로 국가지정 문화재의 약 23.5%(735건)을 보유하고 있는 조계종 소유 문화재에 대해서는 점단위 관리 중심인데 비하여 국가소유 문화재의 경우 면단위 관리 중심으로 민간소유 국가지정 문화재보다 월등히 많은 예산을 지원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또한 전통사찰은 국가법과 종단 내부 법으로 엄격히 관리되고 있는 공적 자산이며 그 자체로 살아있는 문화유산입니다. 이러한 전통사찰에 필수적인 유지보수를 위한 국고를 지원하면서 사찰에 자부담을 편성하도록 하고 있는 것은 국가지정 문화재와의 형평성 문제 등에 비추어 볼 때 지나친 규제의 문제로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전통문화의 유지와 보존․계승은 한국불교만의 몫이 아닙니다.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국가적 책무와 더불어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계승하는 한국불교, 나아가 전통문화를 향유할 권리를 갖고 있는 국민들과 함께 전통문화와 자연유산 정책의 개선을 위해 열린 마음으로 지혜를 모아 나가겠습니다.

 

중생의 행복을 한국불교 최고의 가치로 삼겠습니다.

한국불교는 매우 위중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 사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렇듯 위중한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사부대중의 마음과 지혜를 모아 공존과 상생, 그리고 화합의 길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 종무원들과 아침예불로 하루일과를 시작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출가수행자로서 정말로 중생을 구제하고 있는지, 그러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또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되돌아보고 있습니다.

2018년 대한불교조계종은 중생의 행복을 위해 신심과 원력, 공심으로 존경받는 한국불교로 거듭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할 것입니다. 비록 그 길이 조금은 모자라고 또 때로는 더디게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생의 행복이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이자 불교의 최상의 가치인 만큼 다소 느리고 다소 모자라더라도 사부대중의 지혜를 모아 한걸음 한걸음 내 딛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불기2562(2018)년 1월 11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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