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행복과 108배

엊그제‘108배’를 주제로 연재를 시작한 것 같은데, 어느덧 마지막 회의 글을 쓰게 되었다. 25회에 걸쳐 글을 쓰면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결론은 “능동적이고 행복한 삶으로 변환시키는 방법으로 108배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능동적이고 행복한 삶의 길
108배 수행에 모두 담겨 있어
“현재의 삶에 한껏 집중하세요”

번뇌가 치성하던 젊은 날, 어떻게 하면 고통스러운 지금의 나에게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길을 찾다가 108배를 하게 되었고, 3천배도 하게 되었다. 하다 보니 몸이 가벼워졌고, 가볍다 보니 마음이 맑아졌다. 맑아지니 밝아졌고 밝아지다 보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보였다. 보이다 보니 지난날의 잘못을 참회하게 되었다. 참회를 하다보니 삶의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되었고, 감사하다 보니 마음 밭이 조금씩 넓어졌다. 마음 밭이 넓어지자 굳이 무엇을 바라지 않고 현재의 삶에 충실하기만 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실로 엄청난 가치관의 변화였다. 이러한 108배 자체가 주는 변화와 행복감을 함께 나누고 싶었던 것이 절수행에 대한 글을 쓰게 하지 않았나 싶다.

며칠 전 일본의 한 사찰에서 열흘 정도 정진을 하고 온 도반을 만났다. 남편의 고향인 호주에 이주해서 살고 있는 그녀는 매해 이맘때면 직장에서 장기 휴가를 얻어 한 달 정도 마음공부에 몰입하고는 한다. 올해는 어깨에 탈이 나서 치료차 휴가를 당겨쓰느라 정진하는 날이 짧아 아쉬웠다고 하는데도 안거에 들었다가 막 산문을 나온 스님처럼 맑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곳에서 공부하던 얘기를 하다가 문득 이런 얘기를 했다.

“정진을 하면서 아무런 관념 없이 현재에 집중하는 법을 익히는 것 같아요. 그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삶에 스며들 때 안심을 얻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면서 그녀가 들려준 이야기가 108배 수행의 의미를 말해주는 것 같아 마음에 남아있다. 몇 해 전 일본의 저 사찰에서 공부할 때의 일이라고 한다. 60대 중증 암환자인 한 남자분이 수술을 받는 대신 절에 와서 참선을 하다가 세상을 떠나고 싶다며 입소를 청했다. 수술을 하지 않고 정진에 전념한다면 있어도 좋다는 지도 스님의 허락을 받고 그는 각 나라에서 모인 3,40명의 도반들과 참선에 들었다. 그는 선방 문 가까이에 앉아다가 힘에 부치면 나가서 쉬기도 하고, 응급처치가 필요할 때는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기도 하며 정진했다. 나의 도반은 시시각각 육신이 허물어져 가는 그의 모습을 보며 무상한 삶과 죽음의 실체를 가까이에서 보았다고 한다. 인간이 겪는 생로병사의 모습을 여실히 보면서 무엇보다 크게 배운 바가 있다고 하는데, 삶에서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지금 여기에 아무런 분별없이 몰두하는 일이라는 것이 큰 배움이었다는 것이다.

“죽음을 거부하지 않고 두려워도 자연으로 받아들이고 스승의 인도를 받으면서 죽음을 맞이하겠다던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참으로 용기 있는 분이구나 생각했죠. 그런데 예를 들어 입가에 흘러내린 그분의 침을 닦아줄 때 자존심 상해하지 않을까, 싫어하지는 않을까, 직접 하도록 내버려두어야 하는 것 아닌가, 사실 이런 생각은 아무 소용이 없죠. 침이 흘렀으니 곁에 있던 내가 닦아주는 그 행위 외에 다른 생각은 무의미 한 거예요. 처음 그분의 시중을 들어드릴 때는 그분을 돕는다는 마음이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분한테 도움을 받고 있는 저를 발견했고, 그러다가 사실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았는데, 나중에는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아닌 그냥 서로가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었던 거예요.”

그냥 서로가 할 일을 하고 있을 뿐! 그렇다. 삶은 그렇게 이렇다 저렇다 하는 분별없이 순간순간 할 일을 다 할 뿐인 것이다. 그것이 무심으로 사는 삶이며 무심일 때 가장 자연스러운 최선의 삶이 되는 것이다.

십오륙 년 전, 큰아이가 중학교에 다니던 겨울의 일이다. 해인사에 다녀오면서 문경에 있는 절에 가기 위해 산길에 들어섰는데 갑자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날도 어둑어둑해질 때 산속에서 그것도 재를 넘는 데 눈을 만났으니 정말 난감한 일이었다. 나중엔 폭설로 변해 앞이 보이지 않았고 길이 미끄러워 브레이크를 밟은 채 내리막길을 내려가는데, 온갖 생각이 다 올라왔다. 조금 일찍 가겠다고 대로를 놔두고 산길로 들어온 일이 후회막급이었고, 이러다가 옆 계곡으로 떨어지면 어쩌나, 눈이 그치지 않으면 이 산속에서 어쩌나, 마을이 보이려면 얼마를 더 가야 하나, 별별 생각을 다 하며 두려움에 떨던 나는 딸의 외침을 듣고 정신을 차렸다.

“엄마! 우리 관세음보살을 부르자.”

이럴 때 아이들이 어른보다 훨씬 지혜롭다. ‘그렇지, 염불!’ 염불에 정신을 집중하자 마음이 안정되었다. 뒤에서 천천히 따라오는 몇 대의 차들도 위로가 되었다. 기다시피한 채 산속 길을 내려온 지 한 삼십 분 지났을까 드디어 저 멀리 마을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빠르게 산길을 내려온 것에 얼마나 안심이 되었는지, 그때의 일을 두고두고 잊지 못한다. 인생에서도 그렇게 생각보다 빠르게 위기의 순간이 지나간다는 것, 삶의 순간순간에 필요한 것은 그때 필요한 일을 할 뿐, 과거나 미래 등 다른 생각은 사실 불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그때의 일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선지식들은 말한다. 삶은 오직 모를 뿐이라고, 그러므로 정성을 다해나갈 뿐 다른 게 없다고. 그런데 그 정성을 다해 나아가는 것이 간단하지가 않다. 한두 번의 경험이나 생각, 누군가의 가르침 가지고는 궁극적인 해결이 안 된다. 그래서 우리는 108배를 하고 참선을 하고 염불을 한다. 그 수없는 연습 과정을 거쳐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108배, 3000배에 정성을 다해 몰입했던 순수무잡의 경험을 삶에 대입시키기 위해 수행을 하는 것이다. 고양이가 쥐를 잡듯 병아리가 알을 품듯 그러한 집중과 정성으로 인생을 살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고 선지식들은 말한다. 또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들을 다양하게 들려주지만, 들을 때 잠시 위로될 뿐 내 것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108배를 하고 3000배를 지속적으로 하며 내 몸으로 익히면, 저 금쪽같은 말씀들이 백번 옳은 말씀으로 다가오고, 드디어는 내 것이 된다. 명백히 몸과 마음으로 익힌 108배의 힘인 것이다.

108배로 변화된 삶을 사는 사람들

108배의 힘을 경험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108배 연재가 나가자 많은 분들이 108배를 하고 있음을 알려왔다. 도반 한 분은 아들이 절하는 방석에서 손자가 앉아 노는 감동적인 사진을 보여주었다. 멀리 미국에서 치과의사를 하고 있는 아들이 유학시절부터 시작해서 결혼해 아이를 낳고 취업을 한 지금까지 108배를 하고 있다는데, 유학생활의 어려운 고비들을 넘기고 유능한 의사가 되는 데 108배가 한 몫을 한 것 같아, 누구에게나 절을 권하고 있는 나로서는 아주 고무적인 얘기로 다가왔다.

매일 새벽, 108배를 하고 있다는 여성 번역가 한 분은 다리를 다쳐 병원엘 가게 되었는데, 절을 하다가는 무릎에 큰 무리가 올 거라면서 절대로 절을 하지 말라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듣고는 혹시나 늙어 고생할까봐 108배를 반으로 줄여 54배를 했다. 그런데 영 마음도 몸도 개운하지가 않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108배를 하기 시작한지 십여 년이 넘었는데, 오늘날 108배가 주는 그 기쁨은 말할 수 없이 크다는 것이다. 108배를 해서 나중에 혹여 관절염으로 고생하더라도, 지금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 108배를 선택하겠다는 것이 그녀의 절 수행에 대한 신념이다.

또 한 거사님은 어머니가 신심 깊은 불자로 한평생 수행을 하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무늬만 불자이다가 몇 해 전 본 책 한 권에서‘한 번의 참 절을 하기 위해 만 번의 헛 절을 한다’는 내용을 보고 절을 하기 시작했다. 출근하기 전에 3배부터 시작한 절이 108배가 되었다가 3년이 지난 지금은 매일 3백배를 하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건강이다. 절을 하고 출근을 할 때는 세포 하나하나가 다 깨어나는 느낌이 들고, 몸이 따뜻해져서 기분이 좋다고 한다. 젊을 때부터 소화력이 약해 바짝 말랐던 몸이 절을 하고 나서 조금씩 불어나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보기 좋게 체중이 늘고, 주위 사람들에게 나이 들수록 멋있어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무언가를 바라고 성취하기 위해 절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욕심을 내려놓는 것이 절수행이라는 걸 안 것도 큰 수확이라고 했다.

등산 애호가였던 거사님 한 분은 칠십 세가 넘어 뇌출혈을 겪고 나서 등산도 못 다니고 변변한 운동을 못하다보니 팔을 뒤로 돌리기도 어려울 만큼 몸이 굳어졌다. 매일 108배를 하며 몸은 근육을 썼더니 팔을 자유자재로 움직이게 되고 건강이 좋아졌다며 좋아했다.

딸의 결혼을 앞두고 백일 동안 매일 1080배를 하면서 성에 차지 않던 결혼을 축복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된 내 친구, 새로운 일을 앞두고 21일 동안 매일 108배를 하면서 전의를 다진 스물아홉 살의 내 큰 딸,‘괜찮아 108배가 있으니까!’하고 언제든 힘들 때마다 108배를 하는 작은 딸도 108배 동지다.

턱관절로 고생하다가 절을 해서 관절 치료는 물론 성형한 것보다 더 멋지고 예쁜 턱을 갖게 되었다는 어느 아버지와 딸도 있고, 오래 잘못된 자세로 인해 틀어진 골반이 제 자리로 돌아온 사람도 있었다. 집중력과 정신력을 키우고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 매일 아침 108배를 하고 있다는 영화배우 문소리씨, 매일 새벽 6백배를 하며 부도의 위기를 이겨내고 사업체를 큰 기업으로 도약시킨 기업인도 있다. 무명 속을 헤매는 중생으로부터의 환골탈태를 염원하며 매일 새벽 산사를 찾아 1080배를 하는 한의사, 새 생명의 탄생을 기다리며 공손한 마음으로 108배를 하고 있는 새댁, 자식을 위해 수천 번 무릎을 꿇으며 절하는 부모님들도 있다. 숭산스님은 여행 중 비행기 안에서도 1080배를 하며 평생 매일 해온 1080배를 거르지 않았다고 한다. 스승에게 화두를 받기 위해 3천배를 했던 스님들은 아직도 매일 108배를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108배를 하면서 자신을 변화시켜 가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108배,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지금 바로 실천해보시길 바라며, 마지막 글을 마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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