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三會一歸’ 일승 이르는 예경 장엄 돋보여

연재를 시작하며

한국불교는 1,600여 년에 이르는 공식기록의 역사를 이어왔다. 2016년 12월 현재 전국의 사찰 수는 22,000여 곳에 이르고, 그 중 965 곳을 전통사찰로 지정하고 있다.

국가지정문화재인 국보와 보물 2,388점 중 불교문화재는 1,389 점으로 약 60%를 차지한다. 전통문화유산에서 불교문화유산의 비중을 실감할 수 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우리 문화재가 2016년 12월 현재 석굴암 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을 비롯해서 총 44건에 이르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문화재청은 지난 2017년 1월 한국의 전통산사 7곳의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의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등재 신청서를 제출했다. 등재를 추진 중인 7곳의 전통산사는 양산 영축산 통도사, 안동 천등산 봉정사, 영주 봉황산 부석사, 보은 속리산 법주사, 공주 태화산 마곡사, 순천 조계산 선암사, 해남 두륜산 대흥사 등이다. 작년에 7곳 전통산사에 대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현지 실사과정을 거쳤고, 올해 7월쯤에 있을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최종 등재여부 결정을 앞두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기준은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창의성으로 빚은 ‘탁월한 보편가치성(OUV;Outstanding Universal Value)’, 재질, 기법 등에서의 오랜 전통의 ‘진정성(authenticity)’, 문화유산의 가치를 충분히 드러내는 제반 요소들의 집합적 ‘완전성(integrity)’에 주목한다. 산사 7곳의 세계유산 등재를 앞두고 이 연재도 한국산사가 간직한 탁월한 보편 가치성, 진정성, 완전성의 관점에서 한국 전통산사의 장엄세계를 조명하고자 한다. 한국산사의 독특한 자연입지와 가람경영, 건축, 장엄의 종교적 교의와 예술세계 등을 살피게 될 것이다. 산사에 깃든 화엄의 빛이 세계유산의 반석에 올라 만고상청하길 발원하며 연재의 문을 연다.

카오스 속의 질서

영축산 통도사는 한국불교, 혹은 한국 전통사찰에 구현한 교리체계의 전모를 살피는 데 대단한 실증을 제공한다. 가람에 경영한 다양한 건축들은 언뜻 보면 비정형의 무질서 배치로 다가온다. 전통건축의 집합적 군집성이 두드러진 까닭에 불교건축의 종합 전시장에 가깝다.

하지만 가람경영에 내재된 큰 흐름과 지향은 분명하고도 뚜렷하다. 거룩한 중심으로 향하는 기승전결(起承轉結)의 방식이다. 일주문에서 천왕문까지 영역, 천왕문에서 불이문까지 하로전(下爐殿) 영역, 불이문에서 오층석탑까지 중로전(中爐殿) 영역, 적멸보궁(대웅전)과 금강계단이 있는 상로전(上爐殿) 영역에 이르는 기승전‘금강계단’의 방식이다. 진입동선이 내부로 향할수록 공간은 조금씩 높이를 더하고, 가람의 크기는 줄어들다가 적멸보궁의 공간에서 나선형으로 회전하는 독특한 동선이다. 금강계단에서도 무시무종의 우요삼잡 회전동선을 갖추고 있음은 물론이다. 깊이와 높이의 정점에 적멸보궁과 일체화한 금강계단이 있다. 이 같은 심층적이고 중증적인 전개 방식은 해인사의 기승전‘장경판전’과 부석사의 기승전‘무량수전’의 경영방식과 일맥상통한 것이다. 그 같은 진입동선은 일주문-천왕문-불이문-법당으로 귀결해서 삼회일귀(三會一歸)의 일승에 이르는 확고부동한 중도의 길이자 예경의 길이다.

세 영역의 가람배치

통도사 가람의 중심 축선은 일주문에서 대웅전에 이르는 진입 동서축이다. 그 동서방향 중심축에 세 동선의 남북방향 보조축을 경영하고 있다. 중심축이 수직이라면 보조축은 수평이다. 전체가람은 그 세 보조축에 의해 상로전, 중로전, 하로전의 세 개의 노전(爐殿)으로 나뉜다. 노전은 전법향의 등불을 밝힌 법당의 구성체를 총칭한다. 가람을 세 노전으로 운영한 방식은 대단히 독창적이다. 세 개의 노전으로 불리지만 실상은 세 도량의 건축집합을 구축한 불국토다. 불국토엔 저마다의 교리와 장엄세계를 구현한 금당(金堂)들이 있다. 낱낱의 건축은 독립적인 세계종(世界種)으로 특유의 개별성을 띄지만, 전체로는 연화장세계해의 불국만다라를 이룬다. 분리와 통합의 유기체로 이해할 수 있다. 부분이면서 전체인 ‘일즉다 다즉일’의 화엄 건축원리를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부분과 전체가 상입상즉(相入相卽)한 중중무진의 불국토 표현에 다름 아니다.

기승전(起承轉)‘금강계단’
불전 배치 방위설정에 교리 수용
보편성,진정성,완전성 갖춘 단청

하로전 영역은 세 불전건물의 집합이다. 영산전, 극락보전, 약사전의 세 불전건물은 만세루와 함께 트인 ㅁ자형 공간배치를 이룬다. 하로전 영역에서 중심불전은 남향하고 있는 영산전이다. 영산전의 ‘영산(靈山)’은 세존께서 묘법연화경을 설하신 인도 왕사성 부근의 영취산이고, 통도사 주산인 영축산의 인연설화와 맥이 이어진다. 영산전은 곧 법화경을 설하신 영산회상의 장엄도량임을 상징한다. 영산전 내부 서쪽 벽면에 장엄한 희유의 견보탑품도(見寶塔品圖) 벽화는 영산전의 교의적 세계관을 여실히 드러낸다.

하로전 세 건축은 하나의 대웅보전

하로전은 영산전 석가여래, 극락보전 아미타여래, 약사전 약사여래를 모신 석가여래삼존불의 건축적 집합형식을 띄고 있다. 통상적으로 아미타여래-석가여래-약사여래의 삼존불은 규모를 갖춘 대웅(보)전의 중심불전에 함께 모신다. 강화도 전등사 대웅보전이나 완주 송광사 대웅전에서 그 같은 사례를 찾을 수 있다. 특히 논산 쌍계사 대웅전에서는 독립적인 세 닫집 장치로 삼존불을 봉안하고 있어 통도사 하로전에 구현한 종교적 교의를 해석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즉 아미타여래-칠보궁, 석가여래-적멸궁, 약사여래-만월궁으로 불상과 닫집을 독립적으로 배대해서 중심불전에 함께 모신 것이다. 그 독립적인 불상과 닫집을 건축양식으로 따로 떼내어 아미타불은 서향으로, 약사불은 동향으로, 석가모니불은 남향으로 교리체계에 맞춰 안치하면 통도사 하로전의 가람배치가 성립한다. 하로전의 세 불전을 하나로 환원하면 그 자체가 석가여래 삼존불을 모신 대웅보전이 되는 구도인 것이다.

그러면 하나의 의문이 남는다. 왜 대웅보전 하나로 통합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아마도 적멸보궁-금강계단의 강력한 중심성울 고려한 의도된 역학적 분산에 가깝다. 그리고 개별 불국토의 분리를 통하여 중생 저마다의 근기와 발원에 부응하고, 낱낱의 불국정토와 부처가 중생 바로 앞에 나투시는 불현전(佛現前)의 작용도 고려했을 터이다. 남향의 영산전은 영산회상의 법화도량을, 서향의 극락전은 서방극락정토를, 동향의 약사전은 동방유리광정토로 구현한 까닭에 불전배치 방위 설정에도 교리를 엄격히 수용한 뜻일 것이다. 분리와 통합을 통해 하로전 영역의 불국토 장엄을 구체적으로 낱낱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통도사 하로전 영역의 영산전.

조형언어로 단청장엄한 불국토

하로전 영역 세 불전의 교의적 특성은 벽화와 천정장엄 등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영산전에선 영산회의 견보탑품도, 극락전에선 반야용선도, 약사전에선 약사삼존불 벽화 등을 통해 구체적 불국정토의 환희지를 환기시킨다. 그 중 영산전의 견보탑품도는 세계불교미술사에서 차지하는 유일무이한 희소성과 탁월한 예술적 성취로 세계적인 주목 대상이다.

통도사 건축장엄을 고찰함에 있어 빠트려선 안 될 세계는 한국 고유의 보편적 단청장엄 세계다. 불전 내부는 종교적 신성함과 거룩함, 생명력을 간직한 온갖 문양과 색채의 향연이다. 불전장엄의 보편적 소재인 꽃, 물고기, 용, 봉황 등의 문양들은 단순한 자연의 묘사라든지 부정한 것을 막는 벽사(?邪)로 일의적으로 해석되는 차원을 초월한다. 화엄경 등 경전에서 밝히고 있듯이 자연의 소재를 차용한 불전장엄은 부처님께서 광명을 놓아 위신력으로 실현한 불국토의 장엄세계이다. 본질적으로는 대중의 근기에 맞춘 방편반야로 구현한 부처님의 자비이자 진리법이다. 통도사 영산전 천정은 단청이라는 시각적 조형언어로 장엄한 화엄법계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그것은 한국 전통산사에서 고유하게 지속해온 보편적 가치이며, 오랜 전통의 진정성이며, 조영법식의 완전성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한국산사의 불전장엄에 또 하나의 팔만대장경이 조형언어로 펼쳐져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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