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왕 제자 인생 40년… 身心의 병을 살피다 ...“佛法은 마음의 암 치료하는 방사선”
대의왕 제자 인생 40년… 身心의 병을 살피다 ...“佛法은 마음의 암 치료하는 방사선”
  • 하성미 기자
  • 승인 2018.01.08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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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규(62·淨名) 영남대 의과대학 교수

고교 때 불연 삶의 이정표

천년 불국토 경주에서 태어나
경주고 불교학생회로 불연
불교 세계관과 불법에 충격, 매료
〈반야심경〉〈천수경〉 3일 만에 외워
고교 때, 매주 분황사서 철야정진
고1 석굴암서 서원 ‘평생 전법’

김성규 교수는… 1955년 경주에서 태어났다. 경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7년 2월 영남대 이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87년~현재 영남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경주고등학교 불교학생회를 시작으로, 1985년 대구에서 관음사 수요법회를 통해 청년 불교활동을 펼쳤으며, 1988년 법륜불자교수회, 영남대학교의료원불교신행회, 영남대학교 의과대학 불교학생회를 창립했다. 현재 사단법인 통섭불교원 이사장으로 월간지 통섭불교와 통섭불교강의를 통해 전법활동을 펼치고 있다. 저서로는 〈화두〉, 〈이것이 불교다〉, 〈우리말 유마경〉, 〈과학속의 불교, 불교속의 과학〉 등 20여 권이 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세상을 보셨다. 다름 아닌, ‘생로병사.’ 부처님의 길은 거기에서 시작됐다. 이 세상에 온 우리는 누구나 병들고 늙는다. 그리고 죽는다. 몸을 괴롭게 하는 ‘병(病)’은 중생의 가장 큰 어려움의 시작이다. 부처님이 중생의 고단함을 간파하고 걱정했듯이 여기 또 한 사람, 중생의 아픔에 마음을 낸 이가 있다. 그는 방사선종양학 전문의로서 암 치료에 평생 진력하며, 아울러 육신의 병 못지않게 중생을 괴롭히는 마음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20여 권의 우리말 경전을 출간하는 등 부처님 말씀을 전하는 일에 진력해왔다. 유마의 이름을 받은 정명(淨名) 김성규 영남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다.

 

전문의, 불경 20여 권 역경
암(癌)은 생명을 빼앗아 갈 수 있는 큰 질병이다. 지금도 많은 환자들이 죽음의 문턱에서 암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그런 암을 치료하는 방법 중에 가장 많이 행해지는 것이 방사선 치료다. 김성규 영남대 의과대학 교수는 방사선종양학 소속으로, 암 환자의 방사선 치료를 관리 감독하는 전문의이다.

김 교수는 전문의로서 암이라는 독(毒)을 해결하기 위해 평생 치료와 연구에 매진해 왔다. 아울러 그는 또 다른 독에도 관심을 쏟아왔다. 부처님이 ‘독심(毒心)’이라 불렀던 탐·진·치(貪·嗔·痴) ‘삼독’이다. 고등학교 때 처음 부처님 가르침을 만난 그는 의사가 되어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더욱 부처님 가르침을 소중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는 몸의 병 못지않게 마음의 병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몸의 병은 의술로 치료할 수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병은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마음의 병은 치료가 아니라 치유의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치유의 방법에는 부처님의 말씀이 제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부처님의 말씀을 마음의 독을 치료하는 약으로 삼아 널리 알리고자 서원했다.

그는 부처님의 말씀을 많은 대중에게 쉽게 알리는 일에서 그 일을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부처님의 말씀을 모아놓은 경전을 대중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한글로 옮기는 일에 매진했다. 지금까지 그는 경전을 비롯해 20여 권의 불서를 출간했다.

그가 경전을 번역할 때 반드시 지키는 원칙은 ‘이해하기 쉽게’이다. 그래서 〈우리말 금강경〉 〈우리말 대승기신론〉 〈우리말 유마경〉 〈반야심경 강의〉 등 한글 경전 번역에 30년 넘게 집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30여 년 전, 우리말 경전이 생소했던 당시부터 자신의 사비를 투자하며 일군 불사다.

“대중이 못 알아듣는데 부처님 말씀이 아무리 좋으면 뭐해요. 한글만 알면 경전을 읽고 이해 할 수 있도록 번역하는 일이 제 일이었습니다.”

평생 부처님 말씀을 전하겠다고 서원한 김 교수에게 “왜 전하느냐?”는 우문(愚問)을 던지자 그는 “너무 좋아서요.”라고 했다. “경비는 어느 정도 들었냐?”는 또 다른 우문에 김 교수는 “내 돈이라는 것도 없고 남의 돈이라고 구분 할 것도 없는 일이다”고 답했다. 이어 “집에서 안 쫓겨 난 것도 정말 다행이죠.”라며 쑥스러운 듯 맑은 미소로 답했다.

 

자연과학으로 전법 모색 
1월 2일 대구 영남대학교 병원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그의 연구실엔 책으로 가득했다. 벽면 사방을 책으로 둘러싼 것도 모자라 넓은 그의 책상은 연구 자료로 뒤 덮여 책상 모서리 만 겨우 보일 정도였다. 책 더미 위로 김 교수가 얼굴을 내밀었다. 기자의 마음을 읽었는지 그는 “책상 위가 이래 보여도 어디에 무슨 자료와 책이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어서 불편하지 않아요.”라며 환한 웃음으로 기자를 맞았다.

“집필에 들어가면 얼만 되어 책상과 연구실이 이 모양이 됩니다. 치워도 별 소용이 없지요.”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김 교수는 1987년부터 현재까지 영남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일하고 있다. 경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영남대학교에서 이학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방사선종양학의 의학물리분야의 개척자로 불린다. 2004년~2007년 한국의학물리학회 회장으로 재임할 당시 그는 코엑스에서 열린 세계의학물리 및 의용생체공학학술총회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는데, 세계 87개국에서 2천여 명이 참가하는 세계학술총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함으로서 한국 물리의학 분야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 공로로 그는 2007년 제5회 장한 한국인상에서 대상을 받았으며, 세계 3대 인명사전 중 하나인 ‘마르퀴즈 후즈 후 인더 월드(Marquis Who's Who in the World)’ 2016년 판에 등재 됐다. ‘마르퀴즈 후즈 후 인더 월드’는 1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인명사전으로 매년 각 분야에 탁월한 업적을 이룬 인물을 선정해 프로필과 함께 등재하는데, 선정 기준이 엄격해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2017년에는 ‘마르퀴즈 후즈 후’ 공로상을 수상했으며 또 다른 인명사전인 IBC(International Biographical Centre of Cambridge, England)에 과학 분야 세계 리더(World Leader of the Science)로 등재 됐다.

물리 의학자로서 암과 사투를 벌이는 환자에게 더 나은 치료법을 제공하며 한국 의학을 널리 선양한 그는 책 더미 속에서 자신이 집필한 책 20여 권을 내밀었다. 그 책들의 주제는 모두 불교였다. 그는 불교가 모든 연구의 근본이며 목표가 됐으며 삶의 이정표가 됐다고 했다.

1990년에 김 교수가 처음으로 발간한 책은 〈불교적 깨달음과 과학적 깨달음〉이다. 이 책을 통해 김 교수는 불교와 과학을 접목해 불교가 논리적이고 증명 가능한 분야임을 강조하려 애썼다. 김 교수는 30년 전 불교 상황을 설명하며 기복과 미신이 가득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깊이 있는 불교를 전해 체계적인 이해를 높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기복과 미신이 가득한 그 때 당시 불교는 깊이 있는 불교 내용을 전할 수가 없었어요. 과학적으로 불교를 이해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일반인에게는 어려워 보이는 자연과학과 불교를 접목해 김 교수는 불교를 최대한 쉽게 설명하려 노력했다. 그 흔적으로 〈불교적 깨달음과 과학적 깨달음〉에는 ‘빛 보다 빠른 아이’가 선재동자로 나온다. 빛 보다 빠르기에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있는 과학 세계를 방문하고 설명한다. 이 책은 출간 된 후 두 달간 자연과학계 베스트셀러였다.

“소설 〈어린왕자〉에서 모티브를 얻어 선재동자를 빛 보다 빠른 아이로 정해 시간 공간을 넘나들며 불교의 인과법과 물리학을 엮어 설명했습니다. 어린왕자는 누구나 아는 동화로 접근하기 좋은 구조라 생각했지요.”

 

한국의 의학물리 분야 개척 

방사선종양학 전문의로 암 연구
세계학술총회 성공적으로 이끌며
한국 물리의학 분야 세계 알려

“마음의 병 삼독치료는 불법으로”

전문의 재직하며 30여 년 역경
〈반야심경 강의〉 등 20여 권 출간
“쉬운 경전 만들어 전법하고 싶어”
평생 의료와 역경으로 서원 실천

알기 쉬운 우리말 경전, 전법 서원!
김 교수가 부처님 말씀과 처음 만난 것은 경주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처음 시험을 치렀던 3월 말이었다. 그는 1955년 경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천년 불국토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고향 경주는 아침에 눈을 뜨면 언제 어디서나 부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자연스럽게 법당을 다녔다. 그 오래 전의 일들은 지금의 김 교수를 있게 했다. 김 교수는 자라면서 문화와 사상에 관심이 많아 많은 책을 읽고, 깊이 사고하며 공부에 깊이 빠져들었다. 김 교수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경주고등학교에 입학하는데, 그것이 김 교수가 부처님과 만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불교학생회를 알게 된 것이다. 그는 불교학생회에 들어갔고 불교에 눈뜨게 됐다.

“학교에서 처음 시험을 칠 때 3학년 선배가 제 옆에 앉았습니다. 저희 학교는 당시 학년을 섞어 앉아 시험을 치렀는데 시험을 마칠 때 선배가 불교학생회를 추천했어요. 그렇게 처음 발을 들여놓은 불교모임에서 상상 할 수 없었던 불교의 깊이를 알게 되었고, 그동안 읽고 생각했던 세계관이 모두 무너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 후 〈반야심경〉과 〈천수경〉을 3일 만에 외우고, 거듭되는 공부에서 새로운 세계를 경험했다. 그는 매주 토요일마다 분황사를 찾아 밤이 새도록 참선을 했으며 선방을 찾아다녔다.

“고등학교 때 분황사 법당에서 불교학생회모임을 했습니다. 당시 분황사 주지 스님이 현재 죽림정사 조실인 도문 스님이셨는데 그 뛰어나심에 감동했지요. 그 인연을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그 때 경주고등학교 불교학생회 학생들은 서울대, 연세대 그리고 고려대 등에 진학 했고 출가한 학생들도 있어 한국 불교에 새로운 바람이 불게 한 원동력이 됐습니다. 출가한 분들이 서울대 캠퍼스를 다니는 모습도 보였지요. 그 때 선배님이 지금 정토회의 법륜 스님이시고 동국대 총장이신 보광 스님,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 우학 스님이세요. 그 외에 선방에서 현재 공부하는 스님들까지 포함하면 그 영향력은 대단했지요.”

김 교수는 고등학교 1학년 7월에 도반들과 방문했던 석굴암에서 부처님께 서원했다. 부처님의 말씀이 너무 좋아 환희로웠던 그 순간들을 돌아보며 부처님의 말씀을 널리 알리겠다는 평생소원을 갖게 됐다. 그 서원이 48년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김 교수는 불교 우화 〈백유경〉을 현대적 감각으로 해설한 〈부처가 되는 100가지 방법〉, 불교의 진수인 선불교에 대한 화두여행 〈화두〉, 불교에 대한 이해를 불교사적으로 살펴본 〈이것이 불교다〉 등을 출간했다. 경전에 대한 해설서도 끊임없이 남겼다. 부처님께 그래도 밥값을 했다며 스스로 인정 할 수 있었던 책 〈부처님이 깨친 연기를 이야기하다〉를 펴내고선 그는 부처님께 감사의 절을 올렸다. 그는 집필과 출간 뿐 아니라 2년 동안 한 주도 빠짐없이 강의한 내용을 정리해 불교대특강 CD 108개를 출시하기도 했다.

특히 눈에 띄는 그의 출간은 우리말로 번역한 〈묘법연화경〉 〈우리말 유마경〉 〈우리말 대승기신론〉 〈우리말 금강경독송집〉 등 한글로 재해석한 경전들이다. 수많은 책들 가운데 우리말 경전이 많은 이유를 묻자 김 교수는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반야심경〉을 고등학교 때는 한문으로 모두 읽고 독송을 했었습니다. 그 후 한 번은 우리말 한글로 번역한 경전을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분명 한문보다 쉬운 한글인데 반복해 읽어도 이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나 난해했던 거죠.”

김 교수는 난해한 번역서가 나오는 이유에 대해 번역자가 명확한 이해를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경전 번역을 마치며 김 교수는 〈우리말 유마경〉 서문에 번역 이유를 밝혔다.

“경전은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쉽게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하며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가 읽어 이해 할 수 없는 경전은 이미 경전이 아닙니다. 경전이 이 땅의 역사 속에서 살아 있기 위해서는 몇 백 년이 걸리더라도 번역되어야 합니다.”

 

불교 중흥이 곧 민족 중흥!
경전 번역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불교 전법을 위해서 책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승가대학교에서 강의했을 뿐 아니라 일반 불교대학교에서 강의를 이어갔다. 또 1985년 대구에서 관음사 수요법회를 통해 청년불교운동을 진행했고 1988년 법륜불자교수회를 조직하고 현재 회장을 맡고 있다. 이번 생을 안 태어난 샘 치고 참선하다 죽자는 ‘이 뭣고’ 백년결사운동의 지도법사로 활동하며 영남대학교의료원 불교신행회 창립 및 영남대학교 의과대학 불교학생회를 창립했다.

2010년부터는 21세기 불교의 패러다임에 주목하며 사단법인 통섭불교원을 설립하고 인터넷불교교육원 통섭불교사이버대학(http://www. tongsub.com)을 운영하고 있다.

“경주고등학교 불교학생회 모토가 ‘불교중흥, 민족중흥’입니다. 불교가 중흥해야 곧 대한민국이 중흥한다는 뜻이죠. 이 시대 불교가 살아남고 부처님 말씀이 계속 전해지도록 불자들은 깨어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서부터 전법을 시작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김 교수는 사회 속에 불교를 심고 지켜내기 위한 노력으로 교육 시스템을 강조하며 교과부 인정을 받은 불교전문대학교와 대학원이 지속적으로 세워져야 한다고 진단하고 강조했다.

〈법화경〉 제16 ‘여래수량품’을 보면 양의병자(良醫病子)의 비유가 나온다. 의사인 아버지가 여행을 간 사이 자식들이 독약을 마셔버렸다. 좋은 약을 만들어 주었지만 마시지 않는 자식도 등장한다. 이 때 약은 〈법화경〉으로 부처님 경전을 의미했다. 경전이 있지만 읽지 않으면 마음의 독을 해결할 수 없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반복해서 읽어도 효과가 없는 것이다. 읽어도 이해 할 수 없고 모른다면 치료 될 수 없다. 아기에게 약을 먹일 때는 시럽을 넣어 달게 만든다. 어린 아기를 사랑하는 부모는 어떻게든 약을 먹이려 애쓴다. 그 사랑이 바로 부처님 마음이다. 지혜롭고 어질었던 부처님의 사랑이다. 바른 번역으로, 쉬운 언어로 부처님의 사랑을 전하려 노력한 김성규 교수의 마음도 그와 같은 것이다.

법륜불자교수회 법회 후 기념 사진. 두 번째 줄 우측 5번째가 김성규 교수.
(사)통섭불교원 설립 개원식. 왼쪽 5번째가 김성규 교수.
2014년 제1회 원광화랑연구소 학술대회 강의 모습
법륜불자교수회 학술대회 기념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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