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한국불교 속 군포교, 군승파송 50년의 의미

2017년 군승의 날 법회에서 군승법사들의 서원 모습

[프롤로그] 군승파송 50년, 한국불교 속 군포교 의미

불기 2562년, 2018년은 군승(軍僧) 파송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68년 11월30일 군승이 파송되고 반세기가 흘렀다. 돌이켜보면 군불교의 역사는 한국불교의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고구려(高句麗)로부터 시작된 우리나라의 불교는 신라(新羅)로 전해져 화랑(花郞)제도가 만들어지고 그 정신은 고려(高麗)시대의 국난극복, 조선(朝鮮)시대의 승군(僧軍)으로 이어지면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함께 해 왔다. 이렇게 한국불교 역사 속에서 군불교 역사는 50년만으로 한정지을 수는 없다. 훨씬 더 오래되고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그동안 많은 공과(功過)가 있었지만 불자들이 처음에 발원했던 것처럼 수많은 군불자들과 스님, 신도의 성원으로 군불교는 발전의 발전을 거듭해 왔다.

2005년에는 종단으로부터 군종특별교구가 설치되어 보다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군포교의 인프라를 갖추게 된다. 이제 우리 군불교는 150여 명의 군승법사, 400여개의 군법당, 15만여 명의 신도를 보유한 한국불교의 명실상부한 미래가 되었다. 연간 8만 여명 수계, 2백만 명의 법회 참여인원 등 양적으로는 어느 사찰이나 교구본사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하고 있다. 내용면에서도 일요법회의 정착이나 한글법요집 사용 등 오늘날 한국불교의 법회의식의 전범(典範)을 만들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년의 시기에 군복무를 해야 하는 우리나라에서 군은 젊은 세대, 미래세대, 신세대 포교의 황금어장이라 불린다. 군포교가 중요한 이유는 불교의 미래가 인재양성에 달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청년 불자의 양성은 불교의 백년대계를 이을 중차대한 일이다.

그러나 양적으로는 거대해 보이는 군불교의 현황이자 불자들이지만 제대 이후의 신행, 불자로서의 정체성 유지문제는 큰 숙제이다. 충분한 군승요원의 확보, 군 포교 재원의 확대, 다양한 포교프로그램 마련 등 다른 과제들도 산적해 있다. 이를 위해서는 종단과 군종교구, 군승법사, 그리고 군불자들의 뜻이 하나로 모아져야 한다. 군종교구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중심으로서 그 역할을 새롭게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군승 파송 50년이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다가 올 미래의 모습이라는 점이다. 공은 공대로, 허물은 허물대로 편견 없이 평가해야 한다. 지난 50년을 객관적이면서 냉정하게 성찰할 때 비로소 앞으로 가야 할 50년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군불교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커다란 성장을 위한 새로운 준비 군승 파송 50년의 의미를 거기서 찾고자 한다.

남전 스님(조계종 군종특별교구 부교구장)

1968년 초대 군승법사 파송

[프롤로그] 황무지 군포교에 불심 씨앗 심다

50여 년 전 한국불교의 숙원은 두가지였다. 물론 종단 내적으로는 두가지가 아닌 보다 많은 어려운 과제가 있었겠지만 그 무렵 조계종단의 3대사업으로는 도제양성, 포교, 역경사업이었다. 당시 조계종단의 이 3대사업은 대단히 긴박하고도 절실하게 요구되는 최선의 사업이었다.

세상은 바뀌고 있는데, 불교계에는 현대적 교육을 받은 인재가 전무한 상태였고, 그러니 포교도 쉽지 않고 역경도 어려웠다.

1968년에 와서 불교의 군법사를 파송하게 되었으니 단순히 몇 명의 군법사가 탄생되었다는 의미를 넘어선 불교의 주가적 위상을 확보하는 뜻깊은 일이었다.

그러나 파송 초기의 군법사의 군종활동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그 어려움은 크게 다섯가지 측면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불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문제다. 조선시대의 억불에 의한 불교 침체와 승려의 신분의 하대에 의한 사회적 위상과 일제를 거쳐 해방 이후 소위 비구·대처의 분쟁은 국민적 좋은 인상을 받을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불교가 마치 미신 집단인 것 같은 잘못된 이해도 군법사의 군종활동에 대해서도, 불교가 군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적 시각이 일반적이었다.

둘째는 불교도의 무지와 은둔성이었다. 당시 장병 중에는 불교를 신앙한다고 선뜻 표현하는 군인은 그리 많지 않았다. 젊은이가 불교를 믿는다는 것이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또 초기 군법사에게는 군에서 불교활동을 할 수 있는 아무런 제도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특히 의식에 관한 것으로, 군대만이 가지고 있는 특수사항에 대한 불교의식이 마련되지 않았다.

마지막은 열악한 지원의 문제다. 군종업무는 크게 두가지 업무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군 정신권력 강화라는 군 본연의 업무이고, 둘째가 종교업무로서, 종교활동은 군업무 이외의 시간, 즉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각자 종교에 따라 활동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종교활동에 필요한 지원은 해당 교단으로부터 받는다. 그러나 초기 법사에게는 법당도 없고 장병들에게 위로를 줄만한 재정적 여건이 절대 부족했다.

그 후, 시간이 지나면서 불교에서도 각군에 군감이 배출되고 또 국방부에 군종실장이 임명되는가 하면, 부대마다 법당이 세워지고 100여 명이 넘는 법사가 활동하게 되었으니, 50명이 지난 지금에 와서 보면, 눈부신 발전을 가져온 것이다. 또한 종단 내에 군종교구를 설치하여 체계적으로 군종업무를 관장하고 있으니 그간 상상도 할 수 없는 발전이 있었음을 실감한다.

권기종 초대 파송 군승법사

2005년 조계종 군중특별교구 현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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