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후명 소설가(72)

불교를 자아로 글쓰기 50년

소설 〈둔황의 사랑〉 녹원상

〈촛불 렙소디〉 현대불교문학상

1994년 포교사 자격증 취득

시집 4권, 소설전집 12권 등

50년 동안 불교적 정서 작품

 

‘불교’란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그 ‘불교’를 받아들이고 간직하는 차원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누군가에겐 세상을 바라보는 철학이고, 누군가에겐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한 종교이고, 누군가에겐 이름과 옷을 바꿀 만한 귀의의 차원이기도 하다. 50년이라는 세월을 거치면서 ‘체화’됐다면, 그것은 어떤 차원의 불교일까. 소설가의 문학 속에서 일관되게 화자의 자아로 살아왔다면 그 불교는 어떤 차원의 불교일까. 자신의 소설은 모두 불국토를 향한다고 말하는, 시인이자 소설가 윤후명 작가의 불교다. 윤후명을 들여다본다.

 

혜초의 길, 윤후명의 길, 윤후명의 소설

“달밤이다. 먼 달빛으로 사막을 사자 한 마리가 가고 있다. 무거운 몸뚱어리를 이끌고 사구(砂丘)를 소리 없이 오르내린다. 〈중략〉 로울란(樓蘭)을 지났는가. 둔황(敦煌)을 지났는가. 가도 가도 끝없는 허공을 사자는 묵묵히 걷고 있다. 발을 옮길 때마다 모래 소리가 들린다. 달빛에 쓸리는 모래 소리인가. 시간에 쓸리는 모래 소리인가. 아니면 서역 삼만 리를 아득히 울어온 공후 소리인가. 그때 누군가가 중얼거린다. 아이야, 사내애였다면 혜초처럼 먼 곳으로 법(法)을 구하러 떠났다 치렴. 계집애였다면 사막 속에 곱게 단장하고 있다고 치렴. 그렇다고들 치렴.”

1982년 발표돼 1983년 소설집으로 출간됐고, 그 해에 제3회 녹원문학상을 수상한 윤후명의 소설 〈둔황의 사랑〉 중 끝부분이다. 〈둔황의 사랑〉은 윤 작가가 자신의 작품 중에서 가장 불교적이고 윤후명적인 작품이라고 말하는 소설이다.

중년의 실직자인 소설 속 화자 ‘나’는 자궁 종양으로 낙태수술을 받고 돌아온 아내와 잠이 든다. 잠든 ‘나’는 꿈속 세계로 여행한다. 서역 타클라마칸사막과 그곳을 건너가는 한 마리 사자와 신라승 혜초, 돈황 벽화 속의 비천녀 옷자락 등 환상의 세계가 등장한다. ‘나’의 하루를 그리며 현실과 꿈, 영원과 찰나, 과거와 현재 등 2분법을 뛰어넘어 세상과 삶의 본질을 꿰려한다.

작가가 꿈꾸는 세계는 혜초 스님이 구법을 위해 걸어갔던 돈황이다. 수 천 년 전의 돈황의 사자는 사자놀이로 재현되고, 용을 잃어버리고 체만 남은 공후 소리는 소녀의 음성으로 들려온다. 그리고 무거운 몸뚱어리를 이끌고 먼 달빛의 사막을 가로질러온 사자는 화자 자신이 되고, 사자의 목구멍에서 흘러나오는 쉰 목소리는 화자의 음성이 된다. “그것은 내 목소리였다.” 마지막 문장이다. 작가는 이 마지막 문장을 쓰기 위해 〈둔황의 사랑〉을 썼다고 했다. 그 마지막 문장은 아직도 ‘어려운’ 문장으로 회자된다. 하지만 윤 작가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둘 다 맞는 말이 아닐까. 그 마지막 문장을 한 글자로 줄이면 ‘나’가 되고, 그 ‘나’는 우리가 늘 찾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윤후명의 소설은 ‘나’를 찾아나서는 ‘길’이다.

“혜초의 길은 대단한 세계사의 길입니다. 혜초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의 ‘불교’를 볼 수 있습니다. 혜초의 길은 가장 불교적인 길입니다.”

그래서 윤 작가는 자신의 소설 〈둔황의 사랑〉의 주인공 혜초와 닮아 있다. 결국 그의 소설은 ‘나는 누구인가’를 위해 길을 떠나는 것이다. 그는 인간이란 무엇이며, 인간존재의 철학적 의미 그리고 삶의 영적, 육적 의미는 어디에 있는지 깊게 고민한다. 그리고 후작들에서도 그 고민들은 계속된다.

그래서 윤 작가의 소설은 1인칭 주인공시점을 고집한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탐구하고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일이기 때문에 화자는 자신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윤 작가는 〈둔황의 사랑〉을 통해 혜초가 열어놓은 길을 따라간다. 그리고 그 길을 온전히 받아들여서 다시 윤후명의 길을 열고자 한다. 그렇게 ‘나’를 찾아가는 일, 그런 노력과 과정이 그의 소설이며, 그의 불교다. 때문에 그의 소설들 전반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1인칭’은 문학적 1인칭이면서 불교적 1인칭이다. ‘나’를 들여다보는 불교야말로 1인칭의 서사다. 때문에 윤후명의 ‘1인칭’은 문학 이전의 것으로, 단순히 소설을 끌고 가는 장치가 아닌 윤후명의 대전제인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의 소설에서 불교를 직접적인 언어로 문장에 내세우지 않는다. 스토리와 구성보다 미학적인 문체를 추구하는 그의 소설 속에서 불교는 최상의 메타포가 된다. 직접적이지 않지만 뒷모습이 불러일으키는 궁금증처럼 그의 메타포 속을 흐르는 불교는 깊은 사유를 불러일으킨다. 불교를 풍겨서 불교로 불러들이는 것. 그것이 윤후명의 소설이다.

이후 〈부활하는 새〉, 〈원숭이는 없다〉, 장편 〈협궤열차〉 등 윤후명표 소설은 계속 된다. 그리고 그는 2007년 〈촛불 렙소디〉로 현대불교문학상을 수상한다. ‘비디오 아트’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故 백남준을 소재로 한 소설로, 이국에서 외롭게 살아야 했던 한 예술가의 생애와 그가 이룩한 퍼포먼스를 불교적 소재로 승화시켰으며, 새로운 소설적 형이상학을 추구함으로써 불교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윤후명 소설의 미학은 스토리와 구성보다는 아름다운 문체에 있다. 일명 ‘시적 글쓰기’이다. 윤후명의 소설은 소설의 요체인 스토리와 구성에 집착하지 않는다. 우선 아름다운 문장에서 시작한다. 시공을 초월하고 스토리와 구성의 경과를 초월하기도 하는 그의 문장들은 문장 자체만으로 문학이 된다. 때문에 어디를 펼쳐 읽어도 독자는 ‘글’과 만날 수 있다.

그의 소설 대부분에서 주인공은 여행 중이다. 힘겹고 고단한 현실을 떠나 여행하면서 그곳에서 만나고 본 사람과 사물들에 자신을 비춰본다. 줄거리를 위한 시공이 아니라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는 시공을 설정하여 작가가 정해준 메시지가 아닌 독자가 사유하고 확장시킬 수 있는 이미지와 아우라를 던진다. 각자의 ‘나’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것. 그것이 윤후명의 소설이다.

1983년 윤후명 작가는 소설 〈둔황의 사랑〉으로 제3회 녹원상을 수상했다. 사진 왼쪽은 故 녹원 스님.

우리의 정체성 불교에서 찾아

“불교의 핵심 오래 전 우리 땅에”

“우리불교는 인류세계사,

제대로 아는 것이 급한 불사”

 

고2 때 성균관대 백일장 장원

196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빙하의 새’ 당선으로 등단

 

윤후명의 이성(理性) 불교

윤후명의 불교는 언제부터, 어떤 이유에서 시작됐을까. 그것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그토록 오랜 세월 변치 않고 한 작가의 작품과 삶을 지배했다면 선명한 시간과 간단치 않은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작가 자신은 그에 대해 즉답하지 못한다.

“굳이 시간과 이유를 대야 한다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리고 그 이유를 대야 한다면, 지녀야 할 이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랬다. 윤 작가는 불교를 지성으로서 바라보아야 할 가장 큰 이성으로 생각했다. 어릴 적 어머니에 의해 쥐여진 신앙도 아니었고, 고단한 삶에서 찾은 신행도 아니었고, 작품을 쓰기 위한 소재나 방편은 더욱 아니었다. 그의 불교는 목적이 있는 방법론이 아닌, 윤후명이라는 인간이 필요하고 충분하기 위한 방법론이었다. 그 방법론이 소설의 방법론으로 옮겨지고 구체화 된 것이었다. 그렇게 불교가 윤후명의 방법론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윤후명이라는 작가가 ‘우리’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의 글쓰기는 ‘나’가 속해 있는 ‘우리’에서 시작된다. 자신을 국수주의자라고 말하는 그는 우리의 정체성을 해결하는 일이 윤후명 글쓰기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그 ‘우리’가 곧 각자의 ‘나’이고 윤후명이라는 것이다.

“저는 ‘우리’글을 쓰고 싶었어요. 우리의 언어로 ‘우리’를 쓰기 위해선 우리의 정체성을 제대로 알아야 가능하다고 생각했고요. 그리고 우리의 정체성에서 가장 우선인 것을 찾는다면 그것은 당연히 불교라고 생각했죠. 그 오랜 세월과 간단치 않은 역사를 함께 했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우리의 ‘것’이며, 그것이 곧 ‘우리’인 것이죠.”

그랬다. 그는 불교를 작가로서 추구해야 할 것, 지녀야 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 이유는 오랜 세월 우리와 함께 했다는 시간적 명분과 함께 불교의 위대함에 있었다. 그리고 그 위대함의 근거는 불교가 인류세계사라는 것이다. 석가모니의 인도에서 시작되어 아쇼카왕의 시절과 알렉산더가 지나간 간다라와 터키를 거치고 중국을 거쳐 우리 땅까지, 그리고 큐슈에 이르는, 그 웅장한 역사가 우리 땅에서 지속됐고, 그 핵심이 우리 땅에 오래 전에 와 있다는 것이다. 그 증거가 경주라는 것이다. 그 위대함에 대해 우리는 잘 알지 못한 채 살고 있고, 주목하는 눈이 없음을 그는 안타까워했다. 그는 역사로 인정받지 못하는 가야의 시절까지 엄연한 우리의 불교로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의 정체에 관한 그의 포용은 그토록 진지한 것이다. 그의 소설 〈삼국유사 읽는 호텔〉은 그 진지한 믿음의 실천이다.

그렇게 윤후명이 지닌 불교는 자신의 모습을 설명할 수 있고, 우리를 설명할 수 있는 결론이다. 그는 좀 더 ‘우리’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우리의 정체성인 불교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1992년 조계사불교대학에 입학에 불교 공부를 다시 했고, 1994년에는 포교사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2007년 〈촛불 렙소디〉로 현대불교문학상 수상.
1984년 〈누란〉으로 소설문학상 수상(사진 좌).

윤후명의 문학 50년

윤 작가는 1946년 강릉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대학백일장과 〈학원〉지 공모 등을 통해 문학의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2학년 때 성균관대 백일장에 장원하면서 시인의 꿈을 품었다. 그리고 196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빙하의 새’가 당선되어 문단에 섰다.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후, 1969년 강은교, 김형영, 박건한 시인과 시 동인지 〈70년대〉를 창간했으며, 1977년 첫 시집 〈명궁〉을 출간했다. 시집 해설 〈캄캄한 세계 속에서의 완강함〉에서 문학평론가 김종철은 “대부분 한(恨)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그의 시에서 가장 현저한 것은 애상이나 자기만족적인 슬픔의 제스처가 아니라 오히려 끝없이 불안한 긴장된 분위기”라고 평했다. 아마도 그 ‘긴장된 분위기’는 불완전한 ‘나’의 표현들이 아닐까. 그렇듯 그의 시들 전반에 흐르는 정서 역시 ‘길에 서있는 윤후명’이다.

“날새의 제일 유심히 반짝이는/ 두 눈깔을 꿰뚫음에/ 공명(共鳴)하며 하룻밤을 흔들린 이의/ 사무치는 뜬 눈의 웃음/ 드넓고 광포해라,/ 새가 온 들을 채어 쥐고/ 한 기운으로 푸드드득 오를 때/ 활짝 당겨 개이는 먼오금/ 숲과 들을 벗어나 휘달려 / 그는 죽음의 사랑에 접근한다”

첫 시집의 표제시 ‘명궁’의 부분이다. 시인 윤후명은 시에서도 본질적인 핵심을 꿰뚫으려 한다.

문학평론가 이승하는 평문 〈70년대 우리 시〉에서 “1970년대 가장 특이한 서정시집은 〈명궁〉이었다. 현실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이 시단의 주류를 형성했던 시기에 이러한 초월적 에스프리는 단연 이체를 띠었다.”고 〈명궁〉의 문학사적 의미를 찾았다. 그랬다. 윤 작가는 시에서도 윤후명의 방법론에 충실했다. 아름다운 문장을 추구하는 작가 윤후명에게 소설이 마당이라면 시는 날개다. 그 후로 윤 작가는 〈홀로 등불을 상처 위에 켜다〉 〈쇠물닭의 책〉 〈강릉 별빛〉 시집을 출간했다.

시인 등단 후 10여 년 간 삼중당, 샘터사, 삼성출판사, 계몽사, 독서신문사, 현암사 등 여러 출판사를 거치며 힘겨운 시절을 맞기도 했다. 가난도 있었고, 방황과 그로 인한 병마도 있었다. 윤 작가는 10여 년 간의 방황을 접고 197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산역〉이 당선되면서 시와 소설을 병행한다. 〈둔황의 사랑〉 〈부활하는 새〉 〈원숭이는 없다〉 〈오늘은 내일의 젊은 날〉 등 지금까지 12권의 소설전집을 출간했다. 그리고 얼마 전, 그의 문학 50년을 정리하는 〈시인 소설가 화가 윤후명 문학 50년-문학나무〉을 출간했다.

그리고 그는 그림에도 일가를 이뤘다. 개인전 2회와 초대전, 다수의 단체전 등에 작품을 전시하며 활동 중이다.

1982, 윤후명 저 〈둔황의 사랑〉
2007, 윤후명 저 〈삼국유사 읽는 호텔〉

 

 

 

 

 

 

 

“우리 불교 제대로 아는 게 급한 불사”

“스님의 일대기도 필요 하겠지만 좀 더 깊은 관찰에서 시작되는 글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우리 불교가 어떤 불교인지를 알 수 있는, 그리고 그 사실들을 보편화할 수 있는 그런 글들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알아가는 게 가장 급한 불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앞서 말했던 것처럼 우리 불교가 인류세계사임을 깊이 인식하고 작은 불교와 큰 불교가 어우러지기를 바랐다. 우리의 정체성을 제대로 알아야 당당해질 수 있다고 했다. 글을 쓰는 사람은 당당한 글을 쓸 수 있게 되고, 불교를 전하는 사람 역시 당당하고 제대로 된 불교를 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윤후명의 불교는 철저히 객관적이고 구체적이다. 그러면서도 감각적인 사고가 그 배경이다. 그 아득한 시절로부터 전해오는 막연한 지난 시간을 알아듣고 받아 적고 있는 것이다.

그는 매주 아내와 함께 절에 간다. 부모님의 위패를 모신 서울 조계사 마당을 거닐고 나무 옆에 나무처럼 서있다 돌아온다. 절 마당만 거닐다 오는 것이 신행의 전부라고 말하는 그이지만 왠지 그의 불교가 만만해 보이지 않는 것이 ‘우리’에겐 고마운 일이다.

윤후명은? 1946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했고 196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빙하의 새’가 당선됐다. 1969년 시 동인지 〈70년대〉를 창간했고, 삼중당을 시작으로 10년 동안 여러 출판사에서 근무했다. 1977년 첫 시집 〈명궁〉을 출간했다. 197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산역〉이 당선되어 소설가와 시인의 길을 병행한다. 저서로 〈명궁〉 등 시집 4권이 있고, 〈둔황의 사랑〉 등 12권의 소설전집이 있다. 그외 산문집 〈이 몹쓸 그립은 것아〉 등과 장편동화 〈너도밤나무 나도밤나무〉가 있다. 1983년 〈둔황의 사랑〉으로 제3회 녹원문학상, 1984년 〈누란〉으로 제3회 소설문학작품상, 1994년 〈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로 제39회 현대문학상, 1995년 〈하얀 배〉로 제19회 이상문학상, 2007년 제10회 김동리 문학상과 현대불교문학상을 수상했다. 문학비단길 고문과 국민대 문창대학원 겸임교수, 체코 브르노 콘서바토리(한국) 교수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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