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월정사가 종교라는 이유로 강원도 문화행사 사업서 배제되면서 산문폐쇄까지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불교 자료사진>

2018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불교를 비롯한 종교계가 나서서 대중 홍보와 관심을 독려하지만 정작 개최지 평창의 랜드마크인 오대산과 월정사는 홀대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월정사는 종교라는 이유만으로 강원도 문화행사 사업서 철저히 배제되면서 급기야 산문폐쇄라는 초강수 대책까지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올림픽 성공개최를 위해 불교계에 협조를 구한 최문순 강원지사의 행보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2018평창동계올림픽 맞아
강원도 행사 20여개 펼쳐도
오대산과 월정사는 全無

평창 랜드마크 월정사지만
종교 이유로 사업서 배제
“종교·문화 혼동, 국가망신”

강원도청이 평창올림픽과 패럴림픽 기간에 주관하는 문화올림픽 프로그램은 △K-pop페스티벌 △DMZ평화예술제 △한일중 문화교류 △평창겨울음악제 △미디어아트전시 △오륜별빛문화 예술거리 △옻·한지 축제 △동양화 교류전 △윈터 댄싱카니발 △단종국장 재현 △대도호부사행차 △망월제 등 25가지다. 이 행사들은 평창을 비롯해 강릉, 원주, 철원, 양구, 화천, 영월 등 강원도 각지서 펼쳐지지만 정작 올림픽 개최도시 평창의 중심인 오대산과 월정사 관련 사업은 전무하다.

월정사에 따르면 문화올림픽을 위해 사업제안을 해달라는 평창군 요청에 따라 오대산과 불교전통문화를 바탕으로 한 ‘아름다운만남’ 사업계획서를 지난해부터 꾸준히 제출했지만 한 번도 채택되지 않았다. 종교라는 이유로 기재부와 강원도가 사업서 배제시켰다는 게 월정사 측 주장이다. 또한 최문순 강원지사가 2016년 12월 강원도종교평화협의회와 MOU를 체결하면서 ‘백만등 밝히기’에 불교계가 함께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종교와 연계돼 예산을 지원할 수 없다는 기재부 입장을 그대로 수용해 불교를 외면했다는 견해도 덧붙였다.

실제 본지가 강원도청 측에 확인한 결과 ‘백만등 밝히기’는 기재부 예산을 받아 불교와 무관하게 도청이 직접 실시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강원도청 관계자는 “종교와 연계되면 기재부 예산을 받을 수 없어 등(燈) 설치는 시가지를 중심으로 지자체에서 진행한다. 국비와 지방비 총 35억 원으로 준비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월정사 제안 사업들이 종교적인 이유로 배제된 게 맞는지 묻자 “그런 것 같다. 구체적인 이유를 답하기는 곤란하다”고 즉답을 피했다.

하지만 최문순 강원지사는 지난 4월 조계종을 예방해 ‘백만등 밝히기’에 대한 불교계 협조를 요청하고, 이후 9월에는 제20차 한중일 불교우호교류 한국대회 전야제인 ‘평창올림픽 성공기원 국민화합대회’에 참석해 “스님들 도움으로 백만등 달기를 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한중일 불교계는 2018평창올림픽과 2020도쿄올림픽, 2022베이징올림픽 등 동아시아에서 잇달아 열리는 올림픽의 성공 개최를 위해 적극 성원키로 공동합의문을 발표했다. 또한 한국불교종단협의회(이하 종단협)는 최근 동지행사서도 평창올림픽 성공개최를 기원하는 퍼포먼스까지 실시하며 대중의 관심을 당부했다. 이외에도 종단협은 등 제작에 어려움을 겪는 강원도를 위해 연등회 보존위원회와 연계, 자문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결국 최 지사의 협조요청에 불교계는 적극 동참했지만 제대로 된 대우는 받지 못한 셈이다.

월정사는 12월 23일 교구종회를 열고, 문화올림픽에서 배제된 것과 관련된 입장문을 채택했다. <월정사 홈페이지 갈무리>

이처럼 최 지사와 강원도청의 상반된 행보에 불교계는 적잖은 혼란을 느끼고 있다. 강원도는 “기재부 방침으로 인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현재까지 월정사 측과 대화조차 없던 것으로 확인돼 월정사의 섭섭함이 쉽게 가시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강원도청 대변인실 관계자는 “대화가 없었던 건 예산이 확정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대변인을 통해 월정사와의 대화를 지사님께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을 단순히 종교라는 이유만으로 배제하는 정부와 지자체의 수준 낮은 문화인식에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월정사 행정실장 두엄 스님은 “유럽의 민족·문화적 배경을 이해하려면 유서 깊은 성당 등 가톨릭 시설을 꼭 방문해야 한다. 여기에 종교라는 선입관을 갖는다면 제대로 문화를 알 수 없다”면서 “하지만 우리나라는 문화는 뒷전이고, 모든 것을 종교로 해석하려 한다. 이는 대단히 잘못된 문화 접근법”이라고 지적했다.

스님은 또한 “지난 3월 월정사에서 IOC 집행위원회 만찬을 진행했고, 린드버그 조정위원장의 경우 자녀까지 템플스테이에 참가할 정도로 만족도가 높았다. 오는 3월에는 IPC 패럴림픽 집행위원회 만찬도 예정돼 있다. 호텔·레스토랑이 아닌 한국전통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앙승가대 교수 자현 스님도 “문화와 종교 개념을 혼동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전세계적으로도 문화와 종교를 혼동하진 않는데 이 같은 우리나라의 잘못된 시각은 국가적 망신이나 다름없다”며 “문화를 특정 종교의 것으로 이해하는 관점 때문에 그 지역만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제한하는 건 공무원으로서의 능력과 자질이 의심되는 일”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자현 스님은 “어느 올림픽이든 단순 행사만으론 적자를 면할 수 없고, 지속사업을 만들어내려면 문화 연계는 가장 기본적인 해결책이다. 월정사는 불교뿐만 아니라 유교, 도교 문화가 집약된 종합적 문화유산으로 접근하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한편 조계종 제4교구본사 평창 월정사(주지 정념)는 12월 23일 제44회 교구종회서 문화올림픽 추진과정서 겪은 불교계 사업 배제, 오대산사고전시관 예산 증액 무산 등에 따른 입장문을 채택했다.

월정사는 “올림픽 유치를 위해 범종단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오대산과 월정사의 유무형 자산을 제공해 한국 정신문화를 소개했다”면서 “하지만 중앙정부와 강원도는 월정사의 노력을 폄하하고 있다. 홀대와 외면, 종교편향 탓에 월정사는 불교의 자존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종교편향에 맞서 산문폐쇄 등 불교 자존을 위한 어떤 선택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현재 조계종 총무원도 월정사의 입장을 전해 듣고, 문제의 심각성을 공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총무원장 설정 스님은 28일 월정사 보고를 받고 “산문폐쇄는 큰 여파를 불러일으키는 일이나 최대한 신중하게 접근하길 바란다. 정부·강원도와 대화가 원만히 이뤄져 극단적인 상황이 오지 않도록 신경써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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