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것 아닌 것들의 소소한 행복이 나를 기쁘게 하고 들뜨게 한다. 노랑나비가 여린 날갯짓으로 양지바른 담장에 기대어 졸고 있는 나에게 다가온다. 천지창조의 비밀이 노랑나비의 출현으로 풀리고 있다.

따스한 햇살을 빨아들이며 매화나무 가지에서는 꽃망울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톱과 망치로 작업하다 엄지손톱 깊이 나무가시가 하나 박혔는데 쓰리고 아프다. 봄볕은 돌아가신 어머님만 그리운 게 아닌가보다. 미안했던 일, 고맙고 감사했던 얼굴도 아지랑이 속에서 피어오른다.

있는 듯 없는 듯 살지만 마음 편하다
곰곰이 생각하면 난 행복한 스님이다

산이 쩡쩡 울릴 만큼 바위벽의 얼음이 녹아내리면 여전(旅錢) 한 닢 마련 없이도 어디론지 떠나고 싶다. 남은 미역국에 밥 말아 먹으니 세상이 배안에 담겨 부족함 없이 행복하다.

누군가 법당의 부처님 앞에 사과 한 알을 놓고 가 그 사과로 후식까지 즐기고 있으니 이만하면 산골 늙은이의 화려한 점심을 마친 셈이다.

오전에는 수원에서 왔다는 어떤 할머니가 정다운 스님을 찾아 사자암엘 다녀갔다. 사주 관상의 권위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자칭 도사 할머니는 글쎄 정다운이 사자암에 없는 것은 예견하지 못함인지 헛걸음을 한 셈이다.

익산에 산다는 어느 할머니는 전화기 속에서 ‘징 징 징’ 울고 있다. 딸이 시집간 후 간암 말기로 판정을 받아 사위와 이혼하고 딸아이 하나 기르다가 작년 이맘때 세상을 떠났다는 것, 본인도 국가에서 매달 지급되는 돈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어 딸의 49재도 치르지 못했다는 것, ‘가난이 원수’라며 죽은 딸이 꿈에 자주 나타나니 천도재를 지내고 싶다는 것, 그런데 돈이 없으니 어쩌면 좋겠냐며 울먹이고 있는 것.

나도 울먹이며 말하였다. 그럼 그 죽은 딸의 어린 딸은 누구랑 살고 있느냐고. 초등학교 2학년인 손녀딸은 외할머니와 함께 지낸다는 것.

하여, 동정이 아닌 편안한 마음으로 천도재 날짜를 알려 주었고 손녀딸에게도 사자암 운영회에서 용돈을 마련해 주겠다며 배3개, 사과3개만 준비하고 다른 일체 준비물이나 비용은 사자암의 운영회에서 기꺼이 책임질 터이니 빈손으로 오시라며 마음을 덮혀 드렸던 것, 사자암에는 49재나 천도재가 가뭄에 콩 나듯 1년에 서너 차례 있게 된다. 내용은 다르긴 하나 대개는 사연있는 자들의 희망에 의해 이루어진다. 당연히 경제부담 없고 목탁 울리는 시간이 10분 안팎이다.

목탁 염불소리로 귀신 오지 않는다며 죽은 자를 위함보다는 산자를 위한 종교의례임을 미리 밝혀둔다. 사자암에서 14년을 머물고 있지만 신도들에게 권선문 한차례 내민 적 없고 대학입시 합격기도 한번 치룬바 없다.

목마를 때는 자신이 물 마셔야 목마름이 가시고 오줌 마려울 때도 자신이 화장실에 다녀와야 개운한 이치를 여러 차례 설명해 사자암 신도들은 자기 불공은 자기가 법당에서 절하며 염불하며 축원까지 하고 있다.

주지도 바쁘다. 사자암에는 공양주가 없어 세끼니 식사담당은 주지 몫이다. 풀 뽑고 마당 쓸며 도량의 허드렛일도 머슴처럼 부지런히 일 잘하는 주지 담당이다. 거기다가 주말이면 찾아드는 다양한 방문객과 인생 상담, 신앙상담 등 대화자가 되어야하고 이웃처럼 친구처럼 편한 대화를 해야 한다. 산이 텅텅 비어있는 날엔 사자암 주지는 빨래나 바느질을 즐긴다. 늙디 늙은 할배이지만 시력과 청력이 정상이다. 사자암에는 주지 도반이 많은데 진돗개 2마리 고양이 13마리가 좋은 스승이자 착한 벗이다.

할 일 없는 늙은이로 있는 듯이 없는 듯이 살고 있지만 마음이 편하다. 조건 없이 행복하다. 개운한 자유를 누리고 있다. 글쎄, 있으면 있는 대로 행복하고 없으면 없는 대로 자유롭기 때문이다. 꾸미거나 드러냄 없이 감추거나 속이는 일 없이 바람 부는 대로 꽃잎 지는 대로 순리에 순응하며 자연인으로 살고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자암 주지 향봉이는 복이 골고루 넘칠 만큼 행복한 스님이다.

생활이 가난하나 불편하지 않고 바람이 없으므로 목마름이나 배고픔이 없다. 울고 싶을 때는 잔잔히 울고 기분 좋은 날은 유행가도 부른다. 넘침과 부족함 없이 날마다 좋은날의 평화, 행복, 자유 누리는 오늘의 주인공으로 살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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