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N 바이올리스니스트

콘(KoN)은… 서울예고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및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원 석사를 졸업했고, 한국 최초의 집시바이올리니스트이자 뮤지컬 배우, 싱어송라이터, 작곡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이다. 2010년 첫 앨범 ‘Nuevo Gypsy(누에보 집시)’를 발표했으며, 뮤지컬 ‘모비딕’, ‘FAME’ 등 다수 뮤지컬에 출연했다. 2012년 일본에서 ‘Nuevo Impacto(누에보 임팩토)’를 발표했으며, 드라마 ‘스즈코의 사랑’, ‘붉은 실의 여자’에 출연했다. 국내외의 각종 음악 페스티벌에도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JTBC ‘히든싱어 시즌3’의 이적 편 우승했다. 2011년 일본 데뷔에 이어 2015년 중국, 2016년에는 헝가리에서도 공연활동을 시작하며 명실상부한 한류 아티스트로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추계예술대학교에서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음악은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도 오랜 세월 인류 곁에 있는 것 중의 하나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인류의 삶에 깊이 관여해왔다. 위로해 왔다. 그래서 음악은 인간의 가장 오래된 종교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오래 전부터 우리는 슬프거나 행복할 때 노래를 불러야 했고, 음악을 들어야 했다. 해서 음악을 만들고 들려주는 일이야말로 공덕 중의 공덕일지 모른다. 음표 위에서 고민하는 일이야말로 커다란 이타일지 모른다. 자신의 음표가 이타가 되기를 바라며 음표 위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는 이가 있다. 이미 ‘한류’의 이름이 된 그 이름은 우리나라 최초의 집시바이올리니스트 KoN(콘ㆍKorean on the Note-음표 위의 한국인)이다. 

음악으로 불자와 만나다
2017년 11월 24일, 서울 광화문 KT스퀘어 드림홀. 영화 ‘대부’의 ‘사랑의 테마(Love theme from the Godfather)’가 흐르고 있다. 작은 바이올린 하나가 빚어내는 선율에 무대와 객석은 하나가 되기 시작한다. 바이올린의 주인은 KoN(이하 콘). BBS 불교방송의 인기 프로그램인 ‘주석 스님의 마음대로 라디오-이하 마음대로’가 마련한 ‘Memories 2017 송년음악회’다.
이날 콘은 올해의 성악가상을 수상한 소프라노 김지현, 팬텀싱어 시즌2로 유명한 바리톤 김주택, 피아니스트 이영민과 함께 출연해 영화 대부의 ‘사랑의 테마’를 비롯해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인생의 회전목마’, 헝가리언 댄스 No.5를 연주했으며, 앵콜로 이적의 ‘걱정말아요’를 노래했다.
“왠지 절에 가면 분위기가 다르잖아요. 마음도 편안해지고 경건해지고. 그 날의 공연도 그랬던 것 같아요. 늘 서는 무대이지만 왠지 그날은 산사에 간 것처럼 왠지 다른 분위기였어요. 여느 무대와는 다른 기분이었어요.”
왜 그는 그 무대를 다른 무대와는 다른 무대로 느꼈을까. 아마도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지난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절마당의 적요를 알고, 처마 끝에서 들려오는 풍경소리를 들을 줄 알고, 좌복 위에서 누릴 수 있는 신성한 시간을 살아봤기 때문이리라.
중국, 일본, 헝가리 등에서 이미 한류의 이름이 된 콘은 그 동안 수많은 무대 위에 섰지만 불자들과 함께 하는, 불자를 위한 무대는 처음이었다. 산문에서의 시간이 산문 밖과 다르듯이 그 날의 무대는 콘에게 그런 것이었다. 그렇게 콘은 불자들과 음악으로는 처음 만났다. 그날 콘의 이름은 BoN(본ㆍ음표 위의 불자-Buddhist on the Note)이었다.   

어머니와 불교
“그날 절에 가면 맛있는 것들을 많이 먹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래서 좋았죠.”
콘이 음악으로 불자를 만나고, 그 무대를 색다르게 느꼈던 것은 관객이 불자들이어서만은 아니다. 본인이 불가의 정서를 지니고 있기 때이다. 고요한 마당과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 없이도 무대를 그렇게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어머니를 따라 절에 다녔다. 초파일날 절에 가는 것을 좋아했던 아이였다.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갔었고, 그곳에서 큰스님들을 보았고, 어머니와 법문을 나누어 들었고, 좌복 위에서 잠이 들었던 아이였다. 그리고 어머니의 불교를 보며 자란 아이였다. 
“어릴 때였어요. 한 살 위인 형이 많이 아팠어요. 죽을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어요. 여러 병원을 찾았지만 형의 병세는 간단한 것이 아니었어요.”
콘에겐 형이 한 명 있다. 콘과 콘의 형이 네 살, 다섯 살 때였다. 열병에 걸린 콘의 형은 가망이 없었다. 콘의 어머니는 나무가 하는 말이라도 들어야 할 형편이었다. 불심이 깊었던 콘의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기댄 것은 부처님이었으며,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콘의 어머니는 입에서 입으로 건너온 어느 스님의 이름을 듣게 된다. 
“어느 날, 어머니의 도반이 어머니께 스님 한 분을 소개했어요. 마지막으로 만나 보라고.”
콘의 어머니는 그 날로 길을 나섰다. 기차를 타고, 산을 넘고 들을 건너서 스님의 이름을 찾아갔다. 아들을 살리겠다는 일념 하나였다. 콘의 어머니는 스님을 만났고, 콘의 형은 건강을 회복했다. 그것이 우연이든 가피든 그런 어머니의 모습은 어린 콘에게 분명한 ‘나이테’가 됐다. 그런 나이테를 가진 콘에게, 더구나 그 섬세한 음악을 하는 콘이었기에 그 객석의 미묘한 설정 하나가 콘을 산사로 데려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어지는 불연
콘은 12월 24일 부산 복합문화공간 ‘쿠무다’ 카페에서 공연을 했다. 쿠무다의 주인은 다름 아닌 ‘마음대로’를 진행하는 주석 스님이다. 그렇다. 그 공연은 주석 스님과의 인연에서 비롯됐다. 
“송년음악회에서 처음 알게 됐어요.”
콘은 BBS ‘마음대로’ 송년음악회에서 스님을 처음 만났다. 불과 한 달 전의 일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인연 같아요. 설명할 수 없지만 그래요.”
불연은 그런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것 같지만 들여다보면 오랫동안 기다린 시간이 있었고, 오랫동안 기다려야 할 것 같지만 불현듯 다가오는 것이 불연이다.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이 불연인 것이다. 콘과 주석 스님과의 인연 역시 그렇다. 그것을 불현듯 다가온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콘의 지난 삶과 출가 수행자인 주석 스님의 삶을 놓고 보면 반으로 쪼개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쿠무다’무대는 콘의 불자와의 두 번째 만남이었다. 사실 무대의 크기만 놓고 보면 콘에게는 작은 무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KoN이 아닌 BoN에겐 작지 않은 무대다. 음악이라는 것이 우리의 오래된 ‘위로’라면 음표 위에서 고민하는 이에게 ‘큰 무대’와 ‘작은 무대’가 따로 있을 수 없는 것이다.

2015. 10. 4. 콘이 윤형렬의 나눔콘서트 ‘동행’에서 콘서트명과 동명인 자신의 자작곡 ‘동행(Going together)’을 연주하고 있다.

KoN이 하고 싶은 음악
“무아지경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매번 그럴 수는 없지만 그런 무대가 있어요. 30분, 1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게 연주할 때가 있어요. 그렇게 연주하고 무대에서 내려오면 설명할 수 없는 즐거움을 누리게 돼요.”
그는 늘 그런 연주를 하고 싶다. 그리고 늘 그럴 수 없어서 고민한다. 그것이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그것이 콘이 하고 싶은 음악이라고 했다. ‘나’를 모두 없앤 음악. 하지만 그런 콘으로 가득 찬 음악. ‘나’는 비우고 음악은 가득 찬. 그것이 콘이 하고 싶은 음악이다.
콘은 대학에서 서양음악을 공부하면서 종교에 대한 생각을 꾸준히 해왔다. 어떻게 연주할 것인가. 어떻게 연주해야 나의 음악이 누군가에게, 또 나에게 위로가 될 것인가. 늘 그는 음표 위에서, 네 개의 현 위에서 고민했다. 불교는 물론이고 영혼과 닿아있는 것들이면 모두 두드렸다. 
“불교가 좋은 것은, 나를 기다려주는 것 같아서 좋아요. 내가 주인공이라서 좋아요. 비울 수 있는 시간을 기다려 주고 내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 같아요. 결국 제가 하는 일이지만 그렇게 생각하게 해주는 게 불교인 것 같아요. 나의 삶과 음악이 전부 불교에서 출발하는 것도 아니고, 그럴 수도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하는 음악이 서양음악이고 보면 더욱 그렇죠. 절대적인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불교는 비워냄으로써 가득 찬 것을 기대할 수 있게 해요.”
연주는 손으로 하는 것이지만 현 위로 올라가는 손가락은 영혼의 소관이고, 마음의 소관이다. 결국 연주는 손가락으로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영혼이 품은 빛깔과 마음이 지닌 방향이 있을 때, 연주자는 바이올린을 잡을 수 있고 활을 켤 수 있는 것이다. 순간순간 바람처럼 사라지는, 그 보이지 않는 영혼의 숨소리를 들려주는 것이 아마도 연주자가 할 일일 것이다. 좌복 위에 앉은 수좌가 한 걸음 한 걸음에 어김없는 마음을 실어야 하는 것처럼 연주자는 음표 하나하나에 어김없는 영혼을 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연주’보다는 ‘하고 싶은 연주’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마음을 비워야 하는 것이다. 
“늘 무대에 서야 하는 연주자에게 일초일초의 마음은 바로 수행자의 한 걸음 한 걸음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한 순간의 어긋남이 그동안 잘 몰고 온 마음을 한 순간에 날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죠.”

2016년, 헝가리 집시음악 콘서트에서 한국인 최초로 공연하는 모습.

노래하고 연기하는 K-클래식 한류 주역
서울예고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및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원 석사를 졸업한 콘은 한국 최초의 집시바이올리니스트이자 뮤지컬 배우, 싱어송라이터, 작곡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이다.
콘은 전공했던 클래식 바이올린을 토대로 집시, 탱고, 재즈 등 여러 음악장르를 섭렵하여 ‘새로운 집시’라는 뜻의 ‘누에보 집시(Nuevo Gypsy)’ 장르를 만들었으며, 2010년 첫 앨범 ‘Nuevo Gypsy(누에보 집시)’를 발표하여 한국 클래식 음악 시장에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이 앨범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 되었던 집시바이올린 앨범으로,  콘이 직접 전 곡을 작곡, 연주, 프로듀싱해서 더욱 화제가 됐다. 2013년 발매한 ‘Nuevo Gypsy(누에보 집시)’ 2집 앨범 역시 콘이 전 곡을 작곡, 연주, 프로듀싱하면서 음악적 완성도를 높였다. 그런 콘은 현재 명실상부한 한국 최고의 집시바이올리니스트로 인정받고 있다.  
한편, 바이올린 이외에도 콘은 여러 분야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면서 다양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 최초의 액터 뮤지션 뮤지컬 ‘모비딕’에서 주연 퀴퀘그 역을 맡아 뮤지컬 배우로도 큰 호평을 받았으며, 그 뒤 브로드웨이 뮤지컬 ‘FAME’에서 슐로모 메첸바움 역을, 창작 음악극 ‘Fatal Invitation’에서는 작곡, 음악감독 및 주연인 파가니니 역할을 맡았으며, 창작 뮤지컬 ‘오필리어’에도 출연하는 등 뮤지컬 배우와 음악감독으로서도 크게 활약했다. 
또한 일본에서는 드라마 ‘스즈코의 사랑’, ‘붉은 실의 여자’에 출연하며 배우로서의 재능을 인정받았으며, 특히 드라마 ‘붉은 실의 여자’에서는 OST에 참여해 작곡, 메인 테마 연주 등 1인 5역을 소화함으로써 일본 관계자들로 부터 재능을 인정받았다. 특히 이 드라마에서 콘이 일본 여가수 카라시마 미도리와 듀엣으로 녹음한 주제가 ‘사랑은 어디에(愛はどこに)’는 뮤직비디오로도 큰 인기를 얻었으며, 콘의 일본 데뷔 앨범 ‘Nuevo Impacto(누에보 임팩토)’에 수록되면서 가수로서도 화제가 되었다.      
이외에도 콘은 양방언, 이와오 후루사와, 니시무라 유키에, 마츠나가 타카시 등 국내외 유명 뮤지션들과 공연, 콜라보레이션, 음반 작업 등 활발한 교류 및 활동을 보여주고 있으며, 하이 서울 페스티벌, 예술의 전당 재즈 페스티벌, 동경 스프링 뮤직 페스티벌 등 국내외의 각종 음악 페스티벌에도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JTBC에서 방영된 ‘히든싱어 시즌3’의 이적 편에 출연해 뛰어난 노래솜씨와 모창능력으로 우승을 차지, 왕중왕전 에 진출하여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노래 싱글 앨범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면 돼’, ‘그대는 어디에’를 발표했다. 
2011년 일본 데뷔에 이어 2015년 중국, 2016년에는 헝가리에서도 공연활동을 시작하며 명실상부한 한류 아티스트로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그는 집시 음악의 종주국인 헝가리에서 그의 집시음악을 인정받았다. 콘의 자작곡을 현지인들은 헝가리의 집시음악으로 착각했을 정도다.
그 외에도 콘은 집시 음악 팀인 ‘KoN & 집시카라반’, 크로스오버 음악 팀인 ‘KoN & 프렌즈’를 이끄는 한편, 추계예술대학교에서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나에게 불교는 오솔길 끝에서 기다리는 벤치”
“불교는 나에게 벤치 같은 것이죠. 오솔길 끝에서 기다리는. 저의 시간은 늘 화려하게 보이죠. 무대에 서는 시간만큼은 늘 주인공이고요. 나를 바라보는 수많은 관객들 속에서 살죠. 하지만 그 화려한 시간이 끝나고 무대를 내려오면 그 화려했던 시간만큼의 허무가 기다리고 있죠. 그래서 ‘나이롱 불자’인 저에겐 더욱 부처님의 ‘무(無)’가 필요한지도 모르겠어요.”
그는 자신을 ‘나이롱 불자’라고 했다. 어머니의 그늘이 있어 그나마 절 마당이라도 걸었다고 했다. 그는 다시 음표 위로 돌아가 고단한 길을 걸어야 한다. 누군가의 위로를 위해서 다시 바이올린을 잡아야 한다. 그에게 음표는 놓을 수 없는 화두요, 무대는 떠날 수 없는 좌복이다.

2017년 부다페스트 봄 축제에서 연주하는 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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