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법정스님 찻잔<끝>

스님을 뵌 지 이십 몇 년이 됐지만 스님께서는 내게 무엇을 해달라고 말씀하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강원도 오두막에 사실 때는 스님의 건강이 염려되어 휴대폰을 구해드리려고 했지만 스님께서 거절하셨다. 스님은 강원도에서 서울에 오시면 주로 길상사에서 손님을 맞았다. 그런 뒤 보원요 김기철 선생 댁을 들렀다 가시곤 했다.

김기철 선생은 법정 스님께서 좋아하는 도예가이자 안사람의 스승이다. 스님은 나를 만날 때마다 “요즘은 보살이 운전을 잘 하는가?”하고 물으셨다. 출가 전 여동생에게 잘 해주지 못한 미안함이 있어서인지 여성에게는 사뭇 애틋하셨다. 여성단체의 소식지 등에서 원고청탁을 하면 거절하지 못하시는 것도 그런 까닭인 듯했다. 샘터사에서 발행하는 〈엄마랑 아기랑〉에 주신 글도 마찬가지였다. 읽은 지 오래되어 잘 기억나지 않지만 ‘과일을 잘 깎는 여성이 살림도 살뜰하게 잘할 것이다’라는 내용의 글이었던 것 같다.

스님께 인사드리러 길상사에 갈 때는 주로 나 혼자였는데 그날은 안사람과 동행했다. 안사람이 스님을 찾아뵙는 것이 예의일 것 같아서였다. 길상사 행지실에서 차담을 나눌 때는 길상사 주지스님이 항상 차를 우려내는 팽주(烹主)가 되었다. 스님께서 웃으시면서 갑자기 안사람을 놀라게 하는 말씀을 하셨다.

일러스트 정윤경.

“무량광보살이 만든 다기를 왜 나한테 가져오지 않지요?”

“예, 다음번에 올 때 반드시 준비해오겠습니다.”

안사람은 얼떨결에 다기를 가져오겠다고 약속했다. 무량광은 스님께서 지어주신 법명이었다. 내가 무염이니 무(無)자 돌림으로 짓겠다고 무량광으로 지어주셨다. 안사람이 집에 돌아와서 말했다.

“사실은 진즉 스님께 드리고 싶었지만 차마 내놓을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그러나 약속했으니 되돌릴 수는 없었다. 안사람은 다관 1개와 찻잔 5개, 수구 1개를 세트로 맞추어서 포장지에 싸두었다. 안사람의 도자기는 김기철 선생 풍(風)으로 찻잔 이름은 ‘법정 스님 찻잔’이었다. 김기철 선생이 스님의 조언을 받아들여 만든 찻잔 형태이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 붙였다.

어제 어떤 스님이 안사람의 찻잔을 보고는 술잔과 무엇이 다른지 설명해주고 갔다. 찻잔입술이 있는 까닭은 차를 천천히 마셔야 하기 때문. 술은 입안에 털어 넣듯 마시므로 굳이 술잔입술이 필요 없다는 것. 수긍이 가는 설명이었다.

아무튼 안사람은 자신이 만든 다기를 스님께 드렸는데, 어느 날 길상사를 다녀온 사람이 스님의 유품에 포함되어 있더라고 전해주었다. 안사람은 지금 만든 다기라면 더 좋아하셨을 텐데 하고 아쉬워하지만 정성을 다했다면, 선심초심(禪心初心)이듯 진실한 마음이 찻잔에 무심코 담겨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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