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주인공을 의심치 마시고 계발하셔야 됩니다

 

(지난 호에 이어서)

그냥 묵묵히 일체를 나와 같이 보는 마음으로만 할 수 있다면, 그건 바로 실천이 되는 거죠. 우리가 “공부, 공부” 하지만 사실 공부라는 이름도 붙이지 말고, 지금 바깥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일들, 그건 불쌍한 게 아니라 애처롭습니다. 여러분은 산 사람, 산 물질만 봐도 애처로운 일이 많은데, 죽은 영령들이 부모 자식을 위해서 자기를 던지는 마음, 애처롭게 끌고 다니는 그 마음, 세상에 그렇게 애처로울 수가 없습니다. 인연이 뭐고 사랑이 뭐길래, 자식이 뭐고 부모가 뭐길래, 남편이 뭐고 아내가 뭐길래 그렇게들 인연줄이 질기고 질겨서 그걸 놓지 못해 붙들고 애처롭게 피를 흘리는지, 그런 일들이 한두 건이 아닙니다.

‘아이고, 나 좀 어떻게 해 주십시오.’ 제발 좀 이러지 말고,
죽으면 죽고 살면 살지 어차피 한 번 죽을 거
뭐 또 죽을까 봐 그렇게 살려 달라고 애를 씁니까?

그러니 사람사람이 누구나가 몰라서 그렇지 여기서도 살고 있고 저 별성에도 살고 있다. 여기 모습대로 거기도 그 모습을 가지고 사는데 그건 화신(化身)입니다. 여기는 이것이 육신이지만, 그 모습들은 화신으로서 모두 보현보살(普賢菩薩)로 화해서 영계들이나 산 사람들이나 다 보호하고 있어요. 그래서 여기에서 화(化)해서 직속 왕래를 해 보세요. 얼마나 떳떳한가. ‘그런 일이 어디 있을까?’ 이러죠? 그런 일이 왜 없습니까? 빛보다 더 빨리 왕래를 하는데. 그러니 여러분은 기복으로만 만날 빌고 ‘아이고, 나 좀 어떻게 해 주십시오.’ 제발 좀 이러지 말고, 죽으면 죽고 살면 살지 어차피 한 번 죽을 거 뭐 또 죽을까 봐 그렇게 살려 달라고 애를 씁니까?

나는 이날까지 나 살려 달라고 빌어 본 예가 없어. 항상 그전에는 아무 생각도 없이 오직 팔랑개비 대만 쥐고 다녔다고. 그게 돌아가든 안 돌아가든 나하고는 상관이 없어. 그 대만 쥐고 다녔으니까. 그러니까 우선 내가 대를 쥐면은 나한테도 바람이 있지. 지수화풍이 다 내 안에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건 저절로 돌아갈 거라고. 나는 그 대만 붙들고 다녔기 때문에 내 육신이 고통을 받든지 안 받든지, 죽든지 살든지 상관을 안 했으니까 고통이 없었다 이 소리예요.

우리도 악과 선을 다 놓을 수 있다면 또는 집안에서 병 문제가 생겼어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죠. 어떤 사람이 엊그저께 이렇게 말하더군요. “스님, 지금 간암으로 도저히 살아날 수가 없다는데 이걸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대답을 해야 되겠어요? 그래서 여기가 병원이냐고, 의사가 있느냐고 그러니까, “지난번 여섯 달 전에도 우린 그렇게 해서 스님한테 말씀을 했더니 스님이….” “난 모르는 일인데.” 하니까, 스님이 “아휴, 나아야지. 자식들이 어린데 나아야지.” 했대요, 글쎄. 그랬더니 나았대요.

그러니까 지금도 그게 문제라고요. 나한테 물어서 되는 줄 아니 이걸 어떡하면 좋아요? 물론 ‘나무때기 시집을 보내느니 내가 가지.’ 할 때가 없는 건 아니에요. 그러나 내가 수해를 그렇게 원주에서 겪어 봤는데 병만 고쳐 주는 게 여러분을 살리는 길이 아니야. 그건 잠시 잠깐 병이 나았으니까 잘 살겠지만 영원토록 끊임없는 이 진리 속에서 여러분이 그 업보를 스스로 녹이지 않는다면 항시 그런 게 닥쳐오니까 말이에요. 잠시 잠깐 그렇게 해 줬다고 나한테 고맙다고, 그런 소리도 듣기 싫다고, 응. 여러분을 이끌어서 여러분이 진짜로 어딜 가나 하다못해 돼지 새끼, 벌레 새끼 하나라도 건질 수 있는 능력을 기르라는 거지, 누가 나를 믿으랬습니까? 나는 한 번도 그런 말 한 예가 없어요. 자기 주인공, 즉 자기를 믿으라고 했지. 그저 생각이 없는 짐승이나 생각이 있는 짐승이나, 생각이 없는 영계나 생각이 있는 영계나 그 참혹하고 애처로운 영령들, 그 애처롭고 참혹한 우리 산 넋들, 이것을 어떻게….

우리가 또 영령이라고 하는 것은 도심이 아닙니다. 그건 아셔야 됩니다. “영, 혼, 넋” 이렇게 부르죠. 이런 거는 업식으로서 많이 살던 습이 한데 뭉쳐진 그 덩어리라. 어떠한 업식이야. 그 업식이 영령들이야, 그게 다. 그러니 중생이라 이 소리지. 그 참혹한 꼴을 보세요. 내용적인 것은 다 말을 못하지만 그거 한 가지만 보더라도 사생(四生)의 종류, 또 용도대로 그러한 문제가 덩달아 일어나고 있으니 사람만 그런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도 사람은 갖추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게 잘못된 건가, 저게 잘못된 건가.’ 이렇게 보기라도 하고 생각을 하고 있지만 만약에 여러분이 업식만 가지고 있는 그런 중생이라면 이다음에 죽어서 사람으로만 태어나라는 보장을 누가 하며, 또는 사람 속에서도 업식이 뭉쳐진 것이 사람인데, 사람 이 자체가 바로 중생들의 소굴이거든. 여기에서도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될 참인데 사람도 못 된다면 부처 될 일은 까마득하지 않으냐 이거야. 부처의 뜻을 알려면. 그러니 누가 보장을 못합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우선 병만 낫는 게 문제가 아니라 여러분 스스로가 공부를 해야 돼요. 죽든 살든 여러분이 ‘주인공’ 하면 벌써 스님과 첨보된다는 걸 아셔야 돼요. 스님하고만 첨보된게 아닙니다. 저 은하계의 별성들이 다 첨보되어 있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한마음이라, 응. 한마음이라는 걸 소홀히 생각하고 조그맣게 쓰지 말고 좀 더 지혜로운 지각을 가지고서 좀 널리 쓸 수 있는 그런 아량, 지혜, 자비를 가지고 넓게 포용하라는 얘깁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가지고 우리가 항상 한 말 되하고 한 말 되하고 그러지만 여러분이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경에도 있지만, 몇백 년 전에, 아니 삼천 년 전이라고 합시다. 부처님께서 그때 방편으로 하셨으니까. 계율을 지키고 안 지키고 그것을 다 놔야 된다 하는 경도 있을 거고, 또는 계율을 아주 돈독하게 지키라 하는 경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도리를 다 알고 나면은 계율을 지키라고 말을 안 해도 범하지 않으니까 지킨다, 안 지킨다 이런 게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모두 지키는 게 돼요.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범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러나 계율을 지킨다고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오계(五戒)도 못 지켜요. 계율이라는 거에 걸려서 말이죠. 나는 오계(五戒)를 설할 때도 그렇게 말하죠. 때에 따라서 부득이 살생을 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있는데 그거는 살생이 아니다. 부모를 위해서 하다못해 물고기 한 마리를 죽였다 할 때에 그것은 내 살, 내 생명, 내 마음이기 때문이다. 이 도리를 알라 이랬죠.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가서 괜히 남을 죽이는 게 아니거든. 죽여서만 죽이는 게 아닌 일이 또 있죠. 남의 식구들을 몽땅 짓밟아 버리는 거, 하나 죽이면 식구가 전부 못 살고 죽는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화엄경이나 법화경이나 금강경이나 그런 경들은 전부 무의 법을 말했어요. 무의 법에서 말하고 유의 법에서 말하고 한데 합쳐서 현실로 내놓은 것이 법화경이에요. 또 금강경이나 화엄경을 종합해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이 반야심경입니다. 글자 수는 적지만 편집할 때 딱 간추려서 해 놓은 거죠, 중요한 것만. 그러니까 반야심경을 읽을 때에도 뜻을 잘 알고 보면 거기에는 금강경도 들어 있고, 법화경도 들어 있고, 화엄경도 들어 있고 다 들어 있어요. 또 아까 천수경, 뜻으로, 우리말로 풀어 놓은 거를 읽었죠? 그것이 전부 설법입니다.

그러니 ‘나를 깨닫게 해 주소서.’ 하는 것도 바깥으로 하지 마세요. 바깥에 누가 있습니까? 그 자리는 천(天)·지(地)·인(人)하고 연결돼 있으니깐요. 천·지·인이 따로 있다고 보지 마세요. 전부 한데 있죠. 그것에서 알게 되면은 대천세계(大千世界)를 알게 됩니다.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대천 연화장불(大千蓮華藏佛)과 연결돼요. 그래서 우리가 이것을 다 벗어나게 되면 여러분이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고, 과거로 돌아가서 일을 해도 되고, 미래로 돌아가서 일을 해도 되고 이렇게 삼세(三世)를 굴릴 수 있다 이런 겁니다. 여러분, 그걸 거짓말로 알지 마세요.

만약에 여러분이 “아휴, 스님! 이런 게 이렇게 이렇게 돼 있습니다.” 이런 얘기를 하면은 어떤 때는 과거로 돌아가야 되거든요. 삼 년 과거로 돌아가는 수도 있고 삼십, 삼백 년 과거로 돌아가는 수도 있어요. 그런데 과거는 수명이 길고 현실은 수명이 짧습니다. 과거는 오백 년이라고 해도 되고 십만 년이라고 해도 되지만, 오백 년이다 하면 여기는 한 달도 될 수 있고 일 년도 될 수 있어요. 보통 수명이 일 년이다 하면은 과거는 오백 년이라고 해도 돼. 또 거기서 일 년이다 하면은 여기는 하루밖에 안 돼. 또 하루라 하면 여긴 한 찰나밖에 안 되는 거지. 그러니까 한 찰나도 한 찰나가 없으니까 한 찰나라는 건 아예 그냥 없는 거를 말하고, 없기 때문에 한 찰나다 이겁니다. 지금 여러분이 살림하는 데 걸음 떼어 놓으시는데 한 찰나에 떼어 놓으시죠?

그래서 과거도 떼어 놓은 발자취는 이미 지나갔으니 없고, 미래도 아직 오지 않았으니 없다고 하는 겁니다. 공부 시작하는 분들한테 그렇게 말을 해 드립니다.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고 현실도 없다 하는 것은, 이 공부는 과거고 현실이고 미래고 마음대로 운행을 하기 때문입니다. 둘이 아니기 때문에 없다고 그랬습니다. 삼세심(三世心)이 일심(一心)이요, 일심이 삼세심이니라. 그래서 사천세계(四千世界)가 바로 원심(圓心)이야, 원심! (주먹을 쥐어 보이시고) 그래 그것을 다 포용하면은 원심력을 얻어서 전체 구정토를 왕래하고 그 별성과 더불어 같이 운행하고 같이 공존할 수 있는 그러한 위치가 되면은 바로 그것을 불(佛)이라고 해도 좋고 자유인이라고 해도 좋아요.

어떠한 악의 덩어리가, 마음들이 모여서 한 덩어리가 돼 가지고선 보이지 않는 데 다니면서 사람을 해칠 수 있다고 그랬습니다. 그러한 무리들이 있을 때 둘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악이 바로 내가 된단 말입니다. 업식으로 몸뚱이가 뭉쳐졌다고 그랬죠? 즉 말하자면 이 마음이라는 건 보이지 않는 겁니다. 스무 개, 백 개, 천 개, 백억으로 돼 가지고선 누구를 살리려면 그 사람 속으로 들어가야 살린단 말입니다. 그러니 나 하나 가지곤 안 되죠. 그러니까 여러분과 나와 둘이 아니다 하는 얘깁니다.

이걸 참 어떻게 되짚어서 얘길 해 드려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이거는 우리 생활이 그대로 천체심성과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박사님들이 천체물리학을 연구하고 그러지마는 이것은 물질로써 연구하는 것이지, 연구하는 사람들이 옆에 누가 와 앉아 있어도 못 보는 걸 어떡합니까? 전자의 선배들이 지금 후배가 연구하는 데 와 앉아 있어도 몰라. 주욱들 앉아 있어도 몰라. 그럼 그 노릇은 어떡합니까? 둘이 아닌 까닭에 알기 때문에, 알기 때문에 그것이 인연줄이라는 얘깁니다. 아는 마음을 가지고 죽었기 때문에. 선배가 후배에게 참, ‘뒷받침을 해 줬으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그런 수가 있죠.

옛날에도 그런 예가 있었죠. 어느 의학 박사가 말입니다, 죽었는데, 참 그 후배들을 가르치고 싶어서 무척 애썼는데 후배들은 도대체 그런 데는 관심이 없거든요. 그런데 영국의 어떤 남자가 그런 데 관심이 있어서 항상 공부하니까 그냥 그 박사가 그 사람이 돼 버렸어요. 그 남자는 그 박사가 전자에 자기가 죽어서 자기가 바로 태어난 줄 알고 아예 그렇게 했거든요. 그랬기 때문에 타의에서 들어와도 자의로 만들 수 있다는 겁니다. 아시겠어요? 타의의 선배가 죽어서 영령으로서 나한테 침입을 했어도 선의적으로 침입을 했기 때문에 오히려 좋게 만들었죠. 그러나 진짜 공부는 악의적으로 했든 선의적으로 했든 그것을 받아들여서 모든 걸 내 걸로 삼아야 된다는 얘깁니다. ‘주인공이다’라는 걸 아주 거기에다가 딱 놓고 ‘이게 주인공에서 나오는 거지.’ 한다면 그게 자의가 되거든요.

이것을 체험을 안 해 본 분들은 모를 겁니다. 그것이 수많은 악마라도 다 나를 만들 수가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공부를 한 사람들이 많다면 천지가 편안해. 천지가 다 편안하면 백성이 편안해. 모든 사생(四生)이 다 편안하고, 사람 될 율이 100% 더 많게 되고, 그 몹쓸 인연들이 다 없어지고 그렇게 됨으로써 불국토를 맞이할 수 있지 않겠는가. 불국토(佛國土)가 다른 게 불국토입니까? 여러분이 참, 꿰뚫어서 자기를 자기가 먼저 알고 또는 남을 알고 상대를 알고 함으로써 둘이 아니게 공존하는 줄 알고 화합이 돼서 돌아가는 거야. 그래서 만 가지 향이 나고, 만 가지 꽃이 피게 되고, 만 가지 열매가 맺고, 만 가지 맛을 아니 이것이 불국토다 이거야.

여러분의 주인공을 의심치 마시고 계발하셔야 됩니다. 여러분의 주인공을 의심치 마세요. 여러분의 주인공은 광대무변한 뜻을 그대로 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겁니다. 수억겁을 거쳐 나왔기 때문에 경험을 살려서 바로 여러분을 이끌어 갈 수 있는 능력도 거기에 있는 거고, 여러분을 이끌어서 누진(漏盡)으로부터 오신통을 그대로 하는 것만이, 우리 지금도 오신통을 하고 가지만요, 그 오신통도 떠나서 모든 걸 자유스럽게 자유인이 되게끔 이끌어 갈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주인공밖엔 없으니까요.

나를 믿는다고요? 나는 길잡이일 뿐이에요. 여러분이 진짜로 자기를 믿는다면 나도 거기 첨보되어 있고, 저 부처님 형상도 여러분의 형상이에요. 그리고 여러분이 만들어 놓은 거예요. 또는 여러분이 만들어 놓고 여러분이 또 거기에 숭배를 하고 있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중생은 부처가 스승이고, 부처는 중생들이 스승이에요. 그래서 평등 진리죠. 따지고 본다면 어떠한 회사의 사장이라 하더라도 직원들이 일 안 해 주면 사장이 어딨습니까? 사장이 없으면 직원들도 없고요. 이것은 모두가 같이 먹고 같이 사는 겁니다. 그러니까 모두 하나서부터 열까지 귀중합니다. 그것을 깨달아서 우리 앞으로 어떠한 일이라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건질 수 있는 그런 마음을 가지신다면 여러분의 능력은 발전할 겁니다. 지금 시쳇말로 이러는 거지, “깨달을 겁니다” 이래야 되는데 “발전할 겁니다” 한 것은, 우리가 생각을 내고 실생활에서 활용을 하니 이게 발전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이 다 여기 와서 나를 꼭 만나야만 하는 줄 아시지만 여기 스님네들한테 “이러이러해서 급합니다. 이렇게 이렇게 해서 좀 더 한마음 내 주십시오.” 하고만 가도 됩니다. 또는 내가 만약에 여러분하고 꼭 봐야 하고 여러분한테 꼭 목탁을 쳐서 해 줘야만 하는 그러한 사람이라면 나는 여러분하고 이렇게 앉아 있지도 않아요. 나는 결심했거든요. 여러분한테 내가 얻어먹는 그러한 사람이 된다면, 피해나 끼치는 사람이라면 차라리 내려가지도 않고 혓바닥을 깨물고 죽겠다고. 그리고 죽어서 천당엘 가려고 내가 이런다면 아예 살지를 않겠다고요. 그랬더니 살지를 않아도 고만, 살아도 고만입디다, 나중에 보니까. 하하하. 그래서 야, 왜 그런가 했더니 이렇게 연결이 되어 있어요.

여러분도 그렇게 같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만 얘기해 드리죠. 여러분이 죽으면 별이 떨어지고 별이 떨어지면 여러분이 죽는 겁니다. 그러니 이런 소리를 하고 또 천백억화신으로서 나툰다 하는 것은 별의별 게 다 돼서 별의별 이름을 다 가지고 서로 상응하기 때문입니다. 서로 공존하고 말입니다. 여러분 열심히 하시고 공부하다가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라도 여기 스님네들한테 연락하시면 하시라도 빛보다 더 빠르게 심부름꾼이 되겠습니다. 천 리라도 좋고 만 리라도 좋고 강이 끼어도 좋고 산이 높아도 좋습니다. 산이 높아서 못 갈 일도 없고, 물이 깊어서 못 갈 일도 없고, 불구덩이라서 못 갈 일 없고, 죽은 세상이 돼서 못 갈 일 없고, 누가 못 가게 한다고 못 갈 일 없으니까 걱정 마시고 그렇게 하세요. 감사합니다.

질문자1(男)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득도한 사람이 죽어서 동물의 몸을 받고 태어날 때 그 사람의 의식 수준이 득도했을 때의 높은 의식 수준으로 태어나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동물의 의식 수준으로 태어나는 것인지 거기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큰스님 득도한 사람이 왜 동물이 돼요, 또? 득도한 사람은 두 가지 여건이 있어요. 만약에 그 업식으로 잘못 저질러서 동물이 되는 것이 있는가 하면, 득도를 했으면은 벌레까지 된단 말입니다.

질문자1(男) 벌레가 됐을 때의 의식 수준은 어떻습니까?

큰스님 이거 보세요. 만약에 이 방에 이렇게 여러분이 앉아 있는 거와 같이 여러분 속에 들어가 보면은 한 세상이 오대양 육대주처럼 그렇게 장광하게 벌어져 있습니다. 그러면은 거기에서 실오라기 머리카락 같은 그런 거, 의학적으로도 할 수 없는 그런 것을 다 집어내서 이어 놓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을 건질 수 있는 그 마음을 자꾸 지혜롭게 만들어 주거든요. 왜냐하면 같이해 주니까. 그래서 벌레도 건질 수 있는 거죠.

부처는 천백억화신으로서 때에 따라서는 소를 건지려면 소가 되고, 돼지를 건지려면 돼지가 되고, 벌레를 건지려면 벌레가 되고, 불쌍한 거지를 도우려면 거지가 되고 이렇게 장광하게 그 아니 되는 게 없습니다. 잘못해서 벌레가 되는 것과 자기 위해서 벌레가 되는 건 또 다르죠? 그러니 그 마음이 어떠냐고 묻는다면 깨달아 봐야 그 마음을 알지 어떻게 압니까? 그거는 말로는 내가 할 수 없어. 왜냐. 내가 아무리 말을 해 줘도 여러분은 뜨거운지 찬지를 몰라요. 이 물컵을 내가 줘도 “찹니까, 뜨겁습니까?” 하고 물어보는 말은 소용이 없어. 직접 자기가 먹어 봐야 이게 뜨거운지 찬지 그거를 감을 잡을 수가 있는 거죠.

질문자1(男) 질문 한 가지 더 하겠습니다. 사람이 죽어서 다시 몸을 받아서 태어날 때까지의 그 의식 변천 과정이 어떠한 것인지요.

큰스님 이런 얘길 한번 하죠. 그것도 맛에 불과한 거지만 그 느낌을 제삼자가 얘길 해 주려면 말을 해야 되겠어요. 또 부처님이 그런 말을 할 수도 없고, 부처님이라 할지라도. 원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남편도 일찌감치 잃고 외딸을 혼자 키웠어요. 아주 애지중지 길러서 대학원까지 졸업을 시켰죠. 이건 현실에 있었던 얘깁니다. 그런데 이게 그만 사고가 나서 죽었단 말입니다. 죽었으니 어떡합니까? 사십구재(四十九齊) 때도 그냥 몸부림을 치고 울고 그래요.

그런데 그때만 하더라도 “스님, 스님께서 우리 딸을 천도 좀 시켜 주세요. 죽었어도 어디로 갔는지, 저를 좀 알게….” 이렇게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것도 한 번만 그런 게 아닙니다. 여러 날을 두고 그냥 성가시게 구는데 못살겠어요, 정말. 그래서 할 수 없이 “그분을 살리기 위해서 당신 딸이 아무개네 집에 태어날 테니까 이다음에 그 어린애를 낳걸랑은 수양 손주로 삼든지, 그렇게 해가지고 재산 있는 것을 그쪽으로 넘겨주십시오, 그렇게 애지중지하신다면.” 그랬어요.

그러니까 아까까지는 죽는다고 하더니 그 말 한마디에 그만 죽질 않고, 이제 재산이 있건만도 뭐 팔러 다니는 척하고 그 집을 자꾸 드나들었던 모양이죠. 그 집을 다니다 보니까 아들을 낳았는데 자기 딸 얼굴하고 똑같아, 똑같아, 아주. 점 하나 요기 (목 부근을 짚어 보이시고) 있는 거까지 똑같아. 그래 어머니가 너무 못 잊어 하니깐 그렇게 태어났던 모양입니다. 또 그렇게 인도를 했고요. 길잡이는 그런 거 하는 사람이지 뭐, 귀중한 사람 아니에요. 하하하. 밑도 씻겨 줘야 되거든요. 그러니까 똥 친 막대기라는 소리도 들을 만하죠. 부처님이 그랬을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의 능력으로서 참 그 딸이 그렇게 돼 가지고서는 그 집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수양 손주로 삼아 가지고 그 수양 손주한테 재산을 다 그냥 준 거예요. 만날 업고 다니고 그랬다고요. 그런데 이젠 돌아가시고 없겠죠.

질문자1(男) 그러니깐 자기가 체득을 하지 못하면 전혀 짐작을 못하게 되는 겁니까, 어떻게 되는 겁니까?

큰스님 그거는 열심히 공부해서요, 그걸 알려면요, 그거 한 가지만 알아서도 아니 되니까 여러 가지 다 알려면 벌써 나부터 알아야 돼요. 당신이 당신부터 알아야 앞으로의 전체를 알 수 있으니깐요.

질문자1(男) 저를 아는 게 중요한데요, 아는 과정을 좀 더 앞당기고 싶어가지고…. 하하하.

큰스님 앞당기려고 한다면 절대 그것은 알 수가 없어요. 죽은 세상에, 내가 과거로 돌아가는데 지금 내가 현실에서 과거로 돌아가려고 할 때 나를 죽이지 않으면, 그 마음을 전체 놓지 않으면 안 돼요.

※위 법문은 대행 스님께서 1988년 12월 18일 정기법회에서 설법하신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 hanmaum.org)에서도 같은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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