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이 저물어 간다. 아침에 일어나 한 시간을 헐어 사용하면 하루가 금방 사라지듯, 정월이 지나면 한 해도 빠르게 흘러간다. 알차게 살아갈 것을 다짐했던 새해 아침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2월의 끝자락이다. 그 많던 나날들을 어떻게 살아왔을까?

우리는 새해의 결심을 이루지 못하고 한 해를 흘려보낸 것을 아쉬워하며 지난날을 뒤돌아본다. 그러나 지난해를 후회하며 뒤돌아보는 것은 해마다 되풀이 되곤 한다.

왜 우리는 지난날들을 뒤돌아보는가? 오랜 세월 동안 과거를 뒤돌아보았지만 새롭게 변한 것이 없다면 그만 뒤돌아보고 내일을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 과거라는 어두운 밤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그 곳을 기웃거리는 것은 훈습에 젖은 나의 습성이 잡아끌기 때문이다.

성경 창세기에 여호와가 소돔과 고모라를 멸할 때 롯의 가족들을 피난시키면서 뒤돌아보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롯의 아내는 소돔 성에서 살아왔던 삶에 대한 애착과 미련 때문에 뒤돌아보아 소금기둥이 되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오르페우스는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케가 뱀에 물려 죽자 저승으로 내려가서 음악으로 저승의 신을 감동시켜 아내를 지상으로 데려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그러나 지상의 빛을 보기까지는 절대로 뒤돌아보지 말라는 경고를 지키지 못해 아내를 데려오지 못하고 슬픔에 잠겨 지내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오르페우스의 치명적인 실수는 욕망이었다. 그는 진리의 밝은 빛으로 에우리디케를 이끌어 내야 했다. 그러나 그는 밤의 어두움 속에서 그녀를 갖고 싶은 욕망과 초조함 때문에 그만 뒤돌아봄으로써 그녀는 물론이고 자신마저도 죽음을 맞았다.

어쩌면 저승의 신 하데스는 오르페우스가 아내를 지상으로 이끌어가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욕망이 잡아끄는 갈애로부터 벗어날 자는 없기 때문이다.

욕망이란 부족함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하려는 마음이다. 그런데 이 욕망이라는 것은 내가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 어리석음에서 기인한다.

인간은 나라고 하는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오온(五蘊)이 조건에 따라 연기(緣起)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변하는 나는 무아(無我)이다. 그런데도 거짓 나는 실체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 오욕(五慾)에 집착하여 더 큰 욕망을 갈구한다.

인간은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삼독(三毒)의 덫에 갇힌 수인과 같다. 세세토록 탐진치(貪瞋癡)의 동굴 속에 갇혀서 그만 바깥세상의 광명한 빛을 망각하고 삼독에 물든 마음이 나인 줄 알고 살아간다. 따라서 삼독의 훈습에 젖은 나는 그것에 이끌려서 무의식적으로 뒤를 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뒤돌아보는 것을 그만 멈춰야 한다. 나라는 실체가 없는데 지난해가 있고 새해가 있을 까닭이 없다. 우리는 영원한 오늘을 살고 있을 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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