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회 - 봉정암 가는 길

봉정암 석탑을 뒤로 해가 저물고 있다. 자연은 평등하다. 시간도 평등하다.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석탑은 우리에게 그 진실을 전해준다.

걷는길 : 백담사 - 영시암 - 오세암 - 봉정암 - 구곡폭포 - 영시암 - 백담사

걷는시간 : 7시간

자장은 왜, 저 높은 곳에 탑을 세웠을까? 백담사에서 영시암에 이르는 어두운 숲에 가끔 눅눅한 바람이 지나갔다. 도반들이 짊어진 배낭이 그때처럼 축 늘어진 커튼처럼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가끔 웃음소리가 들리기도 하였지만 비 그친 숲에 드문드문 돋아나는 검버섯 같았다.

영시암에서 국수 삶는 냄새가 났다. 작년에 내가 봉정암에 오를 때도 영시암에서는 국수를 삶았다. 어렸을 때 국수 뽑는 집을 지나다 본, 빨랫줄에 널어놓은 가느다란 국수였다. 하늘이 멍자국처럼 푸르뎅뎅하더니 금세 날이 저물었다. 아으, 칼국수처럼 풀어지는 어둠! 기형도 시인의 폭풍의 언덕에서처럼 오세암으로 가는 숲길에 비를 품은 바람이 지나다녔다. 그 바람이 잠자리를 훼방하는 듯 오세암 방사마다 전등불이 켜져 불야성이었다.

부처의 사리 담은 석탑
삶·죽음의 평등함 전해
시공간 넘은 진리에 감탄

정채봉이 쓴 오세암은, 동화로 아름답게 꾸며내긴 했어도 설악산 깊은 암자에 버려진 고아가 어느 겨울, 스님도 없는 빈 절에서 굶어 죽었다는 이야기이다. 아이는 꿈속에서, 아니 이생의 끝자락에서 관세음보살로 현현한 엄마 품에 안기고, 오세암은 눈 내리는 설악산 품에 안긴다. 어린아이를 저 세상으로 보낸 오세암은 겨우내 푹푹 내리 쌓인 눈에 길이 끊긴 지 오래였다.

오세암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하고 배낭을 내리자 마침내 빗방울이 듣기 시작했다. 방사에서 곰팡내가 심하게 풍겨왔다. 방바닥은 습기를 머금었고 이불은 눅눅했다. 순례자들이 서로의 신변을 묻거나 법담을 나누는 소리가 빗소리에 섞였다. 방사 봉창으로 사선을 그리며 내리는 빗줄기가 보였다. 피로한데도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다. 눈을 감았으나 비가 지붕을 치고 벽을 때리는 소리에 깊은 잠이 들 수 없었다. 이따금 가벼운 천둥이 치고 번개가 봉창을 긁고 지나갔다.

사리탑서 바라본 용아장성

선잠에서 깨어나 봉창을 보니 빗줄기가 수직을 긋고 있었다. 날이 밝기 이른 시간이었지만 방사 밖으로 나와 어디선가 들려오는 희미한 염불소리를 들었다.

백의관세음보살 앞에서 삼십 대로 보이는 젊은 처자가 천수경을 독경하고 있었다. 방사 바깥에서 들은 목소린가 보았다. 몇 사람이 더 관음전 안에 있었으나 오직 그녀에게만 눈길이 갔다. 무슨 사연이기에……?

숨은 사연을 처연하게 독백하는 것처럼 들리는 천수경 소리와 더불어 날이 밝았다. 바깥으로 나오자 가늘고 질긴 빗줄기가 밤새 비에 젖은 흙과 바위와 수풀을 또 적시고 있었다. 밤새 비에 젖어 있던 내 귀와 내 눈도 다시 비를 맞았다. 빗소리 외에는 사방이 고요했다.

자연은 빗줄기에 말없이 잦아들었지만, 사람은 달랐다. 사람만이 빗줄기 앞에서 우왕좌왕했다. 새벽녘 봉정암으로 떠날 채비였던 순례자들은 빗줄기를 보며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때였다.

“오세암까지 왔으니 내는 직여도 봉정암에 갈랍니다. 봉정암 갈라꼬 일년을 기다렸어예.”

경상도 노보살을 필두로 비를 뚫고라서도 봉정암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었다. 그렇지만 빗줄기를 바라보기만 할 뿐 막상 걸음을 떼놓지는 못했다. 각자 무얼 생각했을까. 나는 숲에서 수행하는 고대 인도의 수행자들이 우기 때면 나뭇가지나 풀을 엮어 만든 움집에 들어선다는 안거(安居)를 떠올려보았다. 그들은 비를 피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 속에 들어 앉아 선정에 들었다. 그들의 눈앞에서, 생각에 잠긴 눈꺼풀 밖에서 내렸던 1,500년 전의 비를 상상하며 나는 천천히 우비를 입었다. 당신은 한순간이라도 모든 것을 버리고 길을 나선 적이 있는가. 나는 오세암에 내리는 빗줄기와 더불어 그 길을 가고 싶었다.

오세암 공양간 앞 푯말

나는 오세암 공양간 옆에 표시된 이정표를 향해 첫발을 내디뎠다. 그러자 준비라도 한 듯 나머지 사람들도 내 뒤를 따랐다. 그중에는 아들이 대학에 들어가기를 봉정암 사리탑에 간절히 기도하려고 뒤따르는 학부모도 있었다.

다행히도 폭우가 앞길을 막지는 않았다. 폭풍을 동반한 장대비가 아니어서 더더욱 다행이었다. 자, 우리는 가야 한다. 부처가 있는 봉정암으로 가야 한다. 부처는 늘 거기 있으리라고 했다. 우리가 가는 곳이 비록 부처가 늘 거기 있으리라고 말한 룸비니, 보드가야, 사르나트, 쿠시나가르의 사대성지는 아닐지라도 거기서 캐온 부처의 씨앗이 동방의 연꽃으로 만개한 봉정암 아닌가.

앞서 가던 경상도 노보살이 하염없이 뒤처지고 있었다. 나는 선두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노보살을 부축했다. 노보살이 고맙다면서도 당신의 늙은 몸을 한탄한다.

노보살의 몸도 비에 젖어 있었다. 더 이상 관리되지 않는 살과 뼈가 젖은 옷에 드러나서 제멋대로 덜렁거린다. 살과 뼈가 다른 살림을 차린 모양새이고, 내 집이 아닌 다른 집에 내가 살고 있다고 늙은 몸은 말하고 있었다. 남의 일이 아니다. 누구나 노보살처럼 생로병사에 익숙해질 터인데도 옷과 집의 보호를 무한정 받는 양 몸을 아낀다. 너무나도 성스러운 내 몸을 위해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든 치장하고 싶다. 비와 바람과 안개를 차단하려고 견고하게 담을 쌓거나 두터운 강화유리벽을 두른다. 그렇게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치매에 걸릴 때까지 사는 삶도 불행하지만, 죽음이 임박해서야 생로병사의 무상함을 깨닫는 삶도 그에 못지않다.

오세암을 통해 봉정암으로 오르는 길은 유난히 구불구불했다. 뒤에서 보니 길이 비구름과 안개를 번갈아 드나드는 것 같았고, 순례자들이 배낭 대신 비구름의 집을 등에 짊어지고 힘겹게 걷는 것 같았다.

느낌과 의식과 언어에 끄달려 항상 노예처럼 절절매고 살아왔던 몸, 깨달음이 없이 지탱해온 이 몸이야말로 버려야 할 거추장스러운 집이 아니고 무엇이랴. 나를 감싼 욕망의 껍데기를 부수는 일이라면 빗줄기뿐 아니라 천둥과 번개라도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오를수록 경사가 점점 더 심해졌지만 빗줄기는 늘지도 줄지도, 굵어지지도 얇아지지도 않았다. 얇은 우비 한 장에 가린 내 몸속으로 비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폐장과 심장 사이에서도 빗소리가 났다. 비에 젖은 숲도 스며든다. 나뭇잎과 돌들이 내 몸에 들락거리는 소리도 났다. 나는 온전히 빗소리와 독대하고 있었다. 느낌과 의식과 언어에 끄달려 항상 노예처럼 절절매고 살아온 내 몸의 주인은 내가 아니었다. 나의 주인은 과연 누구일까?

선두가 봉정암으로 넘어가는 ‘깔딱고개’ 앞에 멈추었다. 거기서 마지막으로 쉬었다가 봉정암으로 갈 요량인가 보았다. 경상도 노보살은 더 참지 못하고 바위에 박은 쇠파이프 손잡이를 두 손에 거머쥔 채 털썩 주저앉았다. 하얗게 세다 못해 듬성듬성 머리카락이 빠져나간 정수리를 보이면서 노보살은 겨우 말했다.

“하이고, 내는 이자 봉정암 올라가삘면 더는 몬 올라가예.”

“그래도 내려가면 생각이 달라지실 걸요.”

내가 웃었지만 노보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세암 관음전의 관음보살상

“영감이 아파서 올라왔어예. 영감 저승 가뿔기 전에 부처님께 인사 대신 드릴라꼬예. 전엔 봉정암에 노상 같이 왔지예.”

남편을 위한 봉정암행이란 말에 짠한 감동이 가슴을 찔러왔다. 이제 우리는 일어나 깔딱고개를 넘어야 한다. 사는 일은 얼마나 힘든 고갯길이었나. 그러나 굳이 깔딱고개를 넘어 사리탑에 이르지 않아도 빗줄기를 뚫고 봉정암에 오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눈이 밝아지고 가슴이 훤히 열렸다. 나는 비에 젖은 파이프를 움켜준 경상도 노보살의 쪼글쪼글한 손에서 부처를 보았다. 그 순간, 비가 개었다.

부처의 사리는 골고루 나누어졌다. 신라의 자장이 봉정암 사리탑에 넣은 사리는 그때 그것이었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사리가 아니라 부처의 평등정신이다.

“아난다여, 내가 깨닫기 전에 받은 수자타의 공양과 지금처럼 열반을 앞두고 받은 춘다의 공양은 그 공덕이 같구나. 이 말을 춘다에게 전해다오.”

봉정암 사리탑에 올라 108배를 드리는 동안 부처가 아난다에 전한 이야기를 나도 들었다.

삶과 죽음은 평등하다. 내가 살아있는 것은 남의 죽음을 대신 완성하기 위해서이다. 우리 곁에 아직도 경상도 노보살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가. 그녀의 쪼글쪼글한 손이 남편뿐 아니라 자연계의 모든 생명을 보듬어 줄 수 있기를 나는 소망한다. 〈끝〉

 

연재를 마치면서

우리나라는 국토 전체가 불교순례길이라 여겨 8년째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 길에서 현대불교신문을 만나 1년을 함께했지요. 이제 봉정암 가는 길을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마지막 글에서 암시했듯이 제 진정한 도반은 저와 함께 순례길을 걸은, 중생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입니다. 모두가 행복하게 불교순례길을 걸을 수 있기 바랍니다. ‘저 절로 가는 길이 저절로 가는 길’이길 저는 소망합니다. 혹, 저와 함께하고자 하는 미래의 도반은 연락 주세요. 조계종산악회 (02)720-7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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