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사·남도불교문화硏, 전문가 조사 발표

7차 조사서 고려양식 확인

추가 하층조사 기대 높아

법화 스님 “복원불사 필요”

 

강진 월남사가 백제시대 전형적인 가람구조를 갖춘 사찰임을 확인하는 학술대회가 열렸다.

조계총림 송광사(주지 진화)와 남도불교문화연구회는 11월 10일 강진 시문학파기념관에서 학술대회를 열고, 백제시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월남사의 가람과 중요유물인 진각국사 원조탑비의 성격에 대한 전문가 조사 발표를 진행했다.

학술대회에는 △월남사 발굴조사 현황 및 성과(김진희 민족문화유산연구원 연구부장) △월남사 가람 배치에 관한 고찰(천득염 전남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월남사 진각국사 원조탑비의 내용과 성격(전라남도 문화재전문 김희태 위원) △월남사 진국국사 원조탑비의 양식과 특징(신용철 양산시립박물관장) △월남사 진각국사 원조탑비의 서체와 서풍(정현숙 원광대학교 서예문화연구소 교수) 등이 발표됐다.

김진희 연구부장은 “1~7차 발굴조사 결과를 통해 월남사의 가람 배치를 일부 확인할 수 있었다. 월남사는 평지 가람으로 중문, 쌍탑, 금당, 강당과 주위에 회랑을 두르는 삼국시대 전통을 계승한 형태로 조성됐다”며 “13세기 진각국사가 무신정권 실력자와 연관되면서 사세가 확장되고, 조선시대에 점차 쇠퇴하면서 16세기말 경 폐사된 것으로 추정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토론자로 나선 황효균 전남대 학예사는 “7차 발굴조사의 가장 큰 성과는 고려후기 이전의 건물지를 일부 확인한 것으로, 앞으로 하층 조사를 더 진행하다 보면 1~2년 안에 분명히 백제시대 건물지가 그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월남사의 가장 중요한 유물 중 하나인 진각국사 원조탑비에 관해서 김희태 위원은 발표를 통해 “진각국사비는 왕명으로 비명 병서를 짓고 글씨를 썼다. 전서 또한 왕명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진각국사가 입적한 뒤 승탑은 송광사에 바로 세워지지만, 탑비는 1250년이 되어서야 월남사에 세웠다”며 “이번 진각국사 원조탑비에 대한 조사와 결과물이 불교 문화사와 향촌 사회사까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진각국사 원조탑비의 형식과 특징에 대해서 신용철 관장은 “진각국사 탑비는 신라하대에 성립해 고려중기까지 끊임없이 제작된 한국형 귀부의 사실상 마지막을 장식한 작품이라는데 의미가 각별하다”고 평가했다.

진각국사 원조탑비에 새겨진 글씨에 대해서도 발표가 이어졌다. 정현순 교수는 “탑비는 고려시대 안진경풍과 저수량풍을 바탕으로 자가풍을 이룬 송 사대가 글씨 유행”이라며 “탑비가 세워진 전라도는 옛 백제 땅인데, 백제는 대대로 구양순풍보다는 곡선미가 돋보이는 저수량풍을 선호했다. 여러 정치적, 종교적 배경과 더불어 글씨의 우월함 때문에 김효인과 탁연이 쓴 이 비는 고려 서예사에 매우 의미 있는 금석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말했다.

월남사 주지 법화 스님은 학술대회에 앞서 “7차에 걸친 월남사지 발굴조사로 가람배치를 확인하고 수많은 불교 유물과 유구를 발굴해 월남사의 옛 모습을 찾을 수 있게 됐다”며 “발굴조사와 함께 하루빨리 복원불사를 펼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강진 월남사지는 13세기 초반 진각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졌으나, 1~7차의 조사를 통해 백제시대 유구와 가람터가 추가적으로 발견돼 학계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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