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후회스러운 선물

법정 스님께서는 강원도 오두막에서 서울에 오시면 꼭 전화를 주셨다. 특별한 용무가 없을 때도 부르셨다. 길상사 행지실로 올라가 보면 보통 서너 사람은 나처럼 부름을 받아 온 이들이 먼저 와 있기도 했다. 그날 나는 스님과 다음과 같은 대화를 했다.

“요즘도 스님 책을 찾는 독자가 꾸준합니다. 다른 책과 달리 생명력이 있습니다.”

“초기에 냈던 책들을 보면 문장이 거칠어요. ‘것이다’를 남발해 거칠어요. 때가 되면 수정해야겠어요.”

단정적이고 설명적인 문장이 눈에 거슬린다는 말씀이었다. 그러나 내가 드리고 싶은 질문은 다른 데 있었다.

“스님의 글 속에 사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사상이 녹아 있어서 독자들로부터 꾸준히 사랑받는 것이지 아름다운 문장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생명주의 사상입니다. 인본주의를 넘어선 모든 생명과 함께 공존하고 상생하자는 사상입니다.”

일러스트 정윤경.

나는 스님의 산문집을 열 권 정도 만들면서 느낀 바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스님의 책을 내면 대부분 10여만 권이 나갔다. 샘터사에서 발간하는 책의 판매부수에 3분의1 정도였다. 샘터사를 세상에 알리고 떠받드는 기둥 중에 하나인 셈이었다. 물론 몇 만 권에 그친 책도 있었다. 책 내용은 스님의 다른 산문집과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았는데, 서점을 관리하는 직원은 한자제목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샘터지에 연재하는 〈산방한담〉이라는 꼭지제목이었으므로 스님의 동의 없이 바꿀 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날 내가 스님께 말씀 드리고 싶었던 것은 책 제목 같은 궁금증이 아니었다. 스님의 산문집은 왜 베스트셀러가 되는가? 독자들은 대부분 스님을 탁월한 에세이스트라고 평했다. 지금도 실려 있는지 모르겠지만 스님께서는 어느 명문대학교의 교양국어 책에 스님의 수필 ‘쥐 이야기’를 넣고 싶다는 제안을 전화로 받으신 적이 있다. 마침 스님의 옆자리에 내가 있었으므로 통화하는 내용을 자연스럽게 들었던 것이다. 전화한 대학교수는 스님의 개성적인 문체는 수필로써 귀감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름다운 문장만으로 독자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아왔을까?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차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언컨대 스님은 수행자이지 수필가는 아니었다. 하루에 글 쓰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새벽에 일어나 혼자 예불하고, 채마밭을 가꾸고, 좌선하고, 차를 마시고, 선어록 같은 책을 읽고, 해제 때는 만행하는 등 보통스님의 일상을 조금도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길상사 행지실에서 머뭇거리다가 스님께 “스님, 기회가 되면 스님의 사상적인 내용만 뽑아서 책을 만들어 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스님께서는 미소만 지었다. 긍정도 부정도 아니었는데 스님께서 갑자기 입적하시는 바람에 그 일은 영원히 유예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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