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들의 오도기연(悟道機緣)에는 온갖 사연들이 소개되어 나온다. 참으로 매력 있는 선공부 특유의 일화들이 때로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를 초월해 설해져 있는 것이 많다. 깨침의 순간을 ‘한 생각이 툭 터진다.(一念爆破)’고 표현한 말이 있듯이 직관(直觀)이 터지는 계기가 매우 다양하다는 이야기다.

반산보적(盤山寶適)은 생몰연대가 밝혀져 있지 않지만 마조도일(馬祖道一:709~788)의 제자로 나와 있다. 『오등회원(五燈會元)』 권3 〈반산보적장〉에 의하면 보적이 하루는 절 밖으로 외출을 하여 길을 가다가 상여행렬을 만난다. 장송곡을 선창하는 사람이 요령을 흔들며 구성진 목소리를 내뽑으며 이렇게 창을 하듯이 읊조리고 있었다.

“붉은 해는 틀림없이 서쪽으로 가라앉겠지만 이 혼령은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구나!”

그러자 상여 뒤를 따라가던 상주들이 ‘아이고! 아이고!’ 하며 곡을 하고 있었다. 이 소리를 듣는 순간 보적이 홀연히 마음이 열려 뛸 뜻이 기뻐하였다. 마조에게 돌아와 그 사정을 말해 주었더니 마조가 보적을 인가하였다고 되어 있다.

보적은 그 후 반룡산(盤龍山)에 들어가 선풍을 크게 드날렸다. 반룡산을 줄여 반산이라 하는데 이 산 이름이 그의 호가 되었다. 반산에 의해 제시된 공안이 여러 개 있다. 그 중에 ‘심월고원(心月孤圓)’아라는 공안이 유명하다.

『선문염송설화』 250칙에 반산이 대중에게 말한다.

“마음의 달(心月)이 홀로 둥그니, 광채가 만상(萬象)을 삼킨다. 광채는 경계를 비추는 것이 아니요, 경계 또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니, 광채와 경계가 모두 없어지면 이것은 다시 무엇인가?”

그리고 동산(洞山:良价)이 한 말을 이어 놓았다. “광채와 경계가 사라지기 전엔 다시 무엇인가?” (盤山示衆云 心月孤明 光呑萬象 光非照境 境亦非存 光境俱亡 復是何物 洞山云 光境未亡 復是何物)

두 사람이 광채와 경계를 가지고 서로 반대로 물었다. 없을 때는 무엇이고 있을 때는 무엇인가? 상대적인 두 말을 양립시켜 유(有)와 무(無)를 동시에 뚫고 나가라는 공안이다. 사량분별이 끝났을 때의 마음의 정체를 파악하라는 메시지다. ‘마음의 달이 홀로 밝고 그 광채가 만상을 삼키다’는 말은 선어록을 즐기는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명구이다.

여기에 대해 여러 사람이 읊어놓은 송이 소개 되어 있는데 정엄(淨嚴)은 이렇게 읊었다.

“눈앞에 가득한 만물이 철저히 공한데 모두가 공했어도 공하기 전과 같네. 그 안에는 이름 붙일 필요 없나니 천고로부터의 떨치는 조사가풍이라네.”

(滿目森羅徹底空 俱亡還與未亡同 箇中不用安名字 千古由來振祖風)

〈설화〉에는 청량국사의 〈화엄경소〉의 내용을 인용하여 부가설명이 나온다. ‘마음의 달(心月)’이란 시각(始覺)이 원만한 것이 마치 밝은 달과 같기 때문이다.

‘홀로 둥글다(孤圓)’한 것은 마음은 홀로인 것이어서 둘도 없고 잡됨이 없으며, 어떠한 덕도 원만 하지 않음이 없다는 뜻이다. ‘광채(光)’는 지혜의 비춤이며, ‘삼킨다(呑)’하는 것은 증득함을 얻는 것이요, ‘만상(萬象)’이라는 것은 삼세간(三世間) 곧 화엄경에서 말하는 기세간(器世間), 중생세간(衆生世間), 지정각세간(智正覺世間)이 모두가 무량한 법문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제불이 증득한 경계이다. 그러기에 옛사람이 이르기를 “모든 법은 움직이지 않아 본래 고요하다(諸法不動本來寂)” 하였다. ‘광채는 경계를 비추는 것이 아니다(光非照境)’라고 한 것은 증득하는 지혜가 안다는 상이 없기 때문이요, ‘경계 또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境亦非存)’한 것은 증득한 경게 또한 상이 없기 때문이다.

‘광채와 경계가 모두 없어진다(光境俱亡)’라고 한 것은 증득하는 이와 증득하는 것이 모두 없어졌다는 뜻이요, ‘다시 무엇인가(復是何物)’한 것은 모두 없어진 그 때엔 그것이 어떤 물건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뜻이니 생각건대 반산이 경문을 인용하여 선화를 삼은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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