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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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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연재 고원영의 ‘저 절로 가는 길’
부처가 되는 ‘달의 길’, ‘용의 길’망월사에서 회룡사 가는 길
  • 고원영(조계종 산악회 부회장)
  • 승인 2017.12.01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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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 봉우리에 둘러싸인 망월사 영산전

달이 보이지 않으면 어둠을 탓한다. 달이 보이지 않은 것이 달 때문이란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는다. 해와 지구 사이에 달이 끼어들어 햇빛을 가릴 때 달이 보이지 않는다고 고등학교 과학 시간에 배우긴 했었나? 하지만 그걸 누가 기억하리. 달은 해처럼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한다. 달에 반사된 햇빛이 달빛이란 사실에 쉬이 생각이 가닿는 중생은 드물다.

가파른 비탈 오르면 하심돼

달 바라보며 해탈 경지 읊다

깨달음의 동선으로 구성된 도봉산

중생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다. 망월사(望月寺)에 이르기까지 적이 다섯 번은 망월사를 가리키는 표지를 보았다. 망월사에 가려고 서울을 벗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주저 없이 수도권 전철역인 망월사역에 내린다. 역 이름이 절 이름인 것으로도 망월사를 찾는 잦은 발걸음을 감지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전철에서 내린 나는 등산객들에 휩쓸리듯 망월사 초입인 원도봉 탐방길로 걸어갔다.

그 북새통에서 춘성(春城)스님의 단속한 삶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았다. 춘성은 스승으로 모셨던 만해가 3·1운동으로 수감되자 옥바라지를 위해 서울 도봉산 망월사로 옮겼다. 춘성은 땔감이 가득한데도 스승을 생각해 냉방에서 이불도 덮지 않고 잠을 잤다. 이불을 덮지 않는 춘성의 잠은 그후로도 계속됐다. 춘성은 이불을 ‘이불(離佛)’이라면서 부처와 이별하는 물건이라 불렀다.

춘성의 눈에도 달이 보였을 것이다. 어땠을까, 선승의 눈에 비친 첩첩산중의 달은? 달을 보는 사람이 없다면 달이 거기에 존재하겠느냐고 아인슈타인은 반문했다. 내가 달을 보므로 달이 거기에 있다는 사실은, ‘대승기신론’이 말하는, ‘세상은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이다(三界虛僞 唯心所作)’와 비슷하다. 그러나 마음처럼 복잡미묘한 세상은 어디에도 없다. 선승이 깊은 산중에 몸을 두는 것은 세상을 피해서라기보다, 마음이라는 무서운 세상을 피해 숨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렇게 마음으로부터 멀어지려 애쓰는 선승 위로 달이 뜨고 진다. 춘성이 보았을 세속의 달을 망월사를 지은 신라의 스님 해호(海浩)가 보았고, 신라의 마지막 태자가 보았고, 부도탑을 남긴 혜거(慧炬)가 보았으리라.

두꺼비 바위란 곳을 지나서 올려다보자 망월사는 그 옛날 월성(月城)이라고도 부른 신라의 수도 경주를 바라보는 자세로 산 중턱에 걸터앉아 있다. 달리 보면 고개를 약간 쳐들고 달을 바라보는 자세이기도 하다. 1957년 사학자 이종각은 경주를 망경(望京)한다는 뜻에서 망월사가 생겼다고 경향신문에 썼다. 탈속한 선승의 거처이거나 기껏해야 운수납자(雲水納子)들이 쉬어가는 절로 어울림직한데도 어딘지 속세를 그리워하는 우수 어린 느낌으로 망월사가 내 눈에 비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바람이 나뭇가지를 세차게 흔들자, 머리 위로 어지러이 나뭇잎과 눈가루가 흩날린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걸음을 멈추고 서 있어야 했다. 망월사를 선명하게 가리키는 마지막 푯말과, 방향도 계통도 없이 불어 닥친 초겨울 바람 사이에서 나는 어디에도 소속하지 못한 채 길을 잃었다. 표지판도 바람도 무상하다. 그러나 나는 저기 저, 아름드리 참나무 뒤로 난 가파른 계단을 밟아 해탈문으로 올라야 한다.

망월사는 여섯 개의 좁은 문으로 바깥에서 안이 연결되거나 안에서 바깥, 안에서 안이 연결되는 절이다. 해탈문, 통천문, 자비문, 여여문, 월조문, 금강문이 그것들인데, 모두 겨우 사람 하나 지나다닐 넓이였다. 해탈문은 고개를 꺾고 지나야 할 만큼 높이도 낮았다. 해탈하려면 하심을 품어야 한단 뜻인가.

망월사에 다녀온 사람마다 기억에 남는 풍경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대개는 영산전이 있는 자리가 망월사에서 가장 아름답다지만, 어떤 사람은 그 뒤로 우뚝 솟은 자운봉·만장봉·선인봉에 눈길이 오래 머무른다. 나로 말하자면 자비문을 통해 만난 무위당이다. 무위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지장전이다. 무위당을 기억의 1순위로 꼽는 건 예사롭지 않은 벽화 때문이다. 1994년 화백 이연욱은 마치 어린이가 쓱쓱 낙서하듯 벽화를 그렸다. 이연욱의 벽화에서라면 부처의 대열반도 윤회를 끊지 못한 미완성의 모습이다. 완전한 깨달음이란 없다는 뜻일까? 무위당 편액 바로 아래 망월사 편액이 걸렸는데, 거기에 쓰인 광서신묘중추지월 주한사자원세개(光緖辛卯中秋之月 駐韓使者袁世凱), 중국의 초대 대통령 위안스카이가 1891년에 다녀간 흔적도 이연욱의 거침없는 무위에 가려 보일 듯 말 듯 할 뿐이었다.

금강문을 빠져나와 포대능선을 향해 걸었다. 망월사를 다녀간 정대 스님은 문을 소재로 임종게를 남겼다.

올 때도 죽음의 문에 들어오지 않았고

갈 때도 죽음의 문을 벗어나지 않았네

천지는 꿈꾸는 집일지니

우리 모두 꿈속의 사람임을 깨달아라

망월사를 뒤에 두고 포대능선으로 올라 도봉산의 주봉인 자운봉을 한번 바라보고는 그 반대쪽으로 걸었다. 사패산 쪽으로 향하는 능선이다.

망월사 혜거국사 부도

사패산은 수락산과 도봉산을 잇는 산이다. 세계에서 가장 긴 광폭터널이라는 사패산터널을 한때 승단에서 반대하여 이름이 더 알려진 산이다. 사패산 계곡 한켠에 오롯이 자리 잡은 비구니 사찰 회룡사(回龍寺)도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나는 지금 그 회룡사를 거쳐서 하산하려는 것이다.

원도봉산의 숨은 진경을 보러 일부러 절벽이 많은 안말능선으로 내려갔다. 안말능선이 감춘 계곡에서 물소리가 세차게 들려온다. 숨은폭포는 북한산 숨은벽처럼 잘 보이지 않은 데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조선의 재상 채재공은 일찍이 이 계곡을 발견하고는 회룡사관폭기(回龍寺觀瀑記)란 글을 남겼다. ‘지금은 물이 바위에 속아서 그 기세가 크게 다투어가는 듯하고, 그 모습이 크게 미친 듯하다’ 바위를 만나 더듬거리던 물줄기가 출구를 찾아내자 다투어 다발로 묶인 듯 흘러간다고 채제공이 묘사한 폭포를 보며 계곡을 따라 내려왔다.

물길이 낮아질수록 물소리가 작아지더니 이내 고요해졌다. 물길이 땅을 파헤치고 모조리 땅속으로 스며들어버린 모양이었다. 회룡사가 보인 건 바로 그때였다. 텃밭을 거느린 약사전을 먼저 만났다. 등산객으로 북적댔던 산 위에서와 달리 휴일의 절집은 이상하게 잠잠했다. 그 알 수 없는 적요 때문인지 햇빛이 쨍쨍한데도 텃밭 고랑들이 어두워 보였다.

우리나라 절은 그 절반 이상을 원효와 의상, 도선이 지었다. 절을 소개하는 안내문 만을 읽으면 분명히 그렇다. 그러나 그 많은 절을 세 스님이 창건했다는 사실에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다. 회룡사도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적혀 있지만 그걸 입증할 문헌이나 비문은 보이지 않는다. 동진, 혜거 같은 고승이 절을 중창했다는 이야기도 다만 이야기에 그칠 뿐이다. 고승의 이름을 언급할수록 권위가 서리란 생각이 출처불문의 이야기를 양산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조선 건국에 관여한 무학이 회룡사에 어떤 영향력을 미친 것은 사실로 짐작된다. 조선 전기에 편찬된 ‘신중동국여지승람’ 권11의 양주목 불우조(佛宇條)에 망월사·영국사와 함께 도봉산에 있는 절로 회룡사를 소개했다. 무학이 망월사에 거처했을 근거가, 무학의 오랜 동지인 이성계가 회룡사에 왕래했을 개연성과 함께 충분하다. 이방원을 미워하여 멀리 함흥으로 떠났던 이성계가 도성인 한양으로 돌아오면서 들렀을 수도 있다. 적어도 절 이름이 회룡사니 말이다.

이연욱 화백이 그린 망월사 무위당 벽화

회룡사가 꼽는 성보 가운데 으뜸은 돌확이라고도 부르는 석조(石槽)이다. 서산 보원사지 석조에 버금가는 대형 물그릇으로 물론 돌로 만든 것이다. 절에 가면 저마다 다른 이름을 현판으로 내건 전각들이 보인다. 대웅전이나 관음전처럼 불보살을 모신 전각에는 전(殿)자를 붙인다. 산신각이나 칠성당처럼 불보살과는 다른 신격체를 모신 건물에는 각(閣)이나 당(堂) 자를 붙인다. 옛 스님들은 우물이나 약수에도 전각을 지어 수각이라 불렀다. 물 또한 불성이 깃들었으므로 경배해야 할 대상이라는 스님들의 자연관이다.

서울시 도봉구와 경기도 의정부시와 양주시, 세 도시가 경계를 이루는 도봉산은 잘 알려진 우리나라의 명산으로, 등산객들은 너나없이 이 봉우리와 저 봉우리를 넘나든다. 그러나 불법에 의지해서 사는 사람이라면 망월사와 회룡사를 축으로 한나절에 부처께 다가가는, 깨달음의 동선(動線)을 그려볼 수도 있다. 들머리와 날머리가 한 구간의 도시철도로 연결된 이 산길을 불자들에게 기꺼이 추천한다.

걷는길 : 망월사역 - 엄홍길 생가터 - 덕재샘 - 망월사 - 포대능선 - 사패능선 - 안말능선 - 숨은폭포 - 회룡사 - 회룡역

거리와 시간 : 9km정도, 4시간 예상

고원영(조계종 산악회 부회장)  noduc@hyunb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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