⑪ 종교, 꼭 필요한 것일까?

오늘 젊은 세대들은 대체적으로 종교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다. 먼 미래의 극락왕생보다는 지금 어떻게 잘 먹고 잘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더 시급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현재의 삶이 너무 절박하고 막막해서 답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종교를 찾게 된다. 평소에는 다른 것들 보다 우선순위에서 밀리지만, 최후의 순간 최종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종교라는 것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매우 강력하다.

종교에 관심없는 요즘 젊은이들
신심 부재·결여가 가장 큰 원인
‘선정 체험’통한 신심 증장 필요

내 삶을 행복·긍정으로 채우려면
꾸준한 수행 통해 선정 들어보길

우리 인간들은 참으로 나약한 존재이다. 매사에 자신감이 있던 사람들도 삶이 힘들고 지칠 때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의지하고 싶어진다. 사람의 힘으로 도저히 안 되는 영역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삶의 기나긴 여정 가운데 어디로 가야할지 길을 잃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그때 찾게 되는 것 또한 종교이다.

극한 순간이 되면 우리들 내면의 본능이 눈을 뜨는 것 같다. 마치 어린 아이가 배가 고플 때 울며 엄마를 찾듯이 말이다. 이것을 종교성(宗敎性)이라고 한다. 이러한 종교성을 가진 우리들을 ‘종교적 인간(Homo Religious)’이라고 일컫는다. 우리는 종교성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마음과 영적세계에 대해서 찾게 된다. 궁극적으로 찾게 되는 최고의 가르침(敎)이 바로 종교가 되는 것이다. 가장 꼭대기라는 의미의 ‘마루 종(宗)’자를 써서 종교(宗敎)라고 부른다.

불교에서는 내가 힘들고 절박하게 찾게 되는 절대적 존재를 ‘부처님’ 또는 ‘보살님’이라고 한다. 이러한 불보살님들은 지혜와 자비의 손길로 우리의 어두운 눈을 뜨게 해주시고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안내해 주신다. 그리고 매 순간 우리들이 갖는 두려운 마음을 없애 주시며 편안하고 행복한 마음을 갖게 해주신다. 불보살님께 의지해서 나의 문제가 해결되면 신심(信心)이 생긴다. 이 신심은 우리가 종교적 삶을 유지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부처님께서는 〈화엄경〉 ‘현수품’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믿음은 진리의 근본이요 공덕의 어머니이다. 모든 착한 법을 길러주고 의심의 그물을 끊어 주며 애정을 벗어나게 해주고 열반에 이르는 길을 열어 보인다.”

그리고 〈숫타니파타〉에서도 “세상에는 믿음이 으뜸가는 재산이요, 생사의 거센 흐름을 건너게 해준다” 라고 하시며 믿음을 강조하셨다.

부처님 말씀을 통해 신심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이러한 신심이 생기지 않으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사실상 오늘날 절과 교회와 성당을 찾는 신도의 수가 줄어드는 이유는 이 신심의 부재와 결여 때문일 것이다.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불보살님 보다 더 큰 신심을 주는 것들이 많다. 대중매체와 소셜미디어를 통한 문화 콘텐츠 그리고 다양한 정보와 놀거리의 홍수 속에서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나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경제적 활동을 해야 하며 재테크에도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종교는 이제 젊은 세대와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을 위해 어떤 신심을 느끼게 해주어야 할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불교에서는 무엇을 제공해주어야 하는 것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선정 체험’이라고 생각한다. 부처님의 어린 시절 농경축제가 열리고 있을 때, 나무 아래 앉아서 잠시 고요한 선정에 드신 적이 있다. 그때 느낀 선정 체험이 계기가 되어 나중에 보리수 아래에 앉아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은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통해 맛본 ‘행복의 체험’이었다.

법회의 식순에 늘 빠지지 않는 것이 ‘입정(入定)’이다. 법사(法師)님의 말씀을 듣기 전에 마음을 편안히 하고 몸을 경건히 하며 바른 가르침을 듣기 위한 준비이다. 찬불가도 중요하고, 반야심경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입정의 순간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요가 수행과 고행 끝에 찾지 못한 깨달음의 정수를 선정(禪定)을 통해서 찾게 된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아무리 훌륭한 가르침이라 하여도 내가 선정상태에 들어가 있지 않으면 공허한 메아리로 들릴 수밖에 없다. 선정에 들어간 경험이 쌓이고 쌓이면 찬불가를 부를 때든 염불을 할 때든 법문을 들을 때든 일상생활을 할 때든 모든 때와 장소에서 행복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신심을 있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신심을 일으키게 하는 선정 체험이 이루어진다면, 그 사람은 오지 말라고 말려도 늘 절을 찾게 될 것이다. 절 만큼 고요하고 편안하게 집중할 수 있는 장소도 드물기 때문이다. 그리고 함께 수행할 수 있는 도반과 스님들이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선정에 드는 방법이 반드시 호흡 관찰이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절수행도 있고 염불과 간경, 참선 등 많다. 자신에게 맞는 수행법을 찾아 꾸준히 수행하면 선정에 들 수 있을 것이고 그로 인해 생기는 신심이 나의 삶과 주변을 긍정적으로 바꾸어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어떤 종교를 믿어야하는지 잘 모를 때 기억해야 할 세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다.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 인도에 삿된 도를 주장하는 종교들이 많았다.

첫째, ‘사람이 지금 이 세상에서 하는 모든 행위는 전부 지난 세상에 결정 된 것이며 바꿀 수가 없다?’

둘째, ‘이 세상 모든 것은 절대자와 같은 전지전능한 존재가 창조했고, 인간의 행불행은 그런 존재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셋째, ‘이 세상 모든 것은 그 어떤 원인이나 조건이 없이 그냥 멋대로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우연의 연속일 뿐이다?’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종교의 가르침으로 인해서 아무런 이익도 얻지 못한다고 정리해 주셨다. 꼭 불교를 믿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이 세 가지를 주장하는 종교는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해진 운명대로 살아가야 하고 바꿀 수 없다는 가르침은 우리의 삶을 허무하고 무의미하게 만든다. 내가 수행하고 노력해서 운명을 개척하는 것이 인간이 가진 권리이자 수승한 가치이다. 전지전능한 절대자에 의해 행복이 결정된다는 가르침은 나 자신을 종과 노예로 전락시킨다. 내가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삶이라야 행복할 수 있으며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다. 모든 것이 인과관계 없이 우연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가르침은 무책임과 무분별한 마음을 확산시킨다. 나의 행동과 생각이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인해 우리의 모습과 인생이 바뀐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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