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후회스러운 선물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낙향한 지 17년째다. 산중생활의 호사 중에 하나는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별도 계절에 따라 그 모습이 다르다. 봄밤의 별은 오순도순 따뜻하다. 여름밤의 별은 물소리처럼 돌돌돌 소리가 나는 듯하다. 가을밤의 별은 산짐승의 맑은 눈처럼 또록또록하다. 겨울밤의 별은 찬바람, 기러기 울음소리에도 파르르 떠는 듯하다. 이처럼 별의 모습은 계절에 따라 다른 느낌을 준다. 그러나 어느 계절의 별이든 별은 아름답다.

나는 별을 보고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밤하늘이 왜 아름다운가’이다. 샛별을 보시고 위없는 깨달음을 얻으신 부처님과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나는 나대로 ‘아!’하고 무릎을 쳤던 적이 있다. 밤하늘이 아름다운 까닭은 크고 작은, 밝고 희미한 별들이 모두 제자리에서 반짝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아름다움이란 제자리에서 자기 몫을 다하는 그 자체가 아닐까? 그럴 때의 실존은 아름답지 않을 수 없다.

언젠가 나는 인사동 골동품 가게를 지나다가 가야토기를 두 점 산 적이 있다. 월급봉투를 털어 샀기 때문에 아내에게 한 소리를 들었다. 마음에 들면 한 점만 사야지 왜 두 점을 샀느냐는 잔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내가 두 점을 산 까닭은 법정 스님께 선물하고 싶어서였다. 평소에 스님은 화려하고 번지르르한 그릇보다는 꾸밈이 없는 질박한 그릇을 더 좋아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러스트 정윤경.

나는 날을 잡아 설레는 마음으로 불일암을 가기 위해 서울역에서 기차를 탔다. 가야토기가 깨질세라 비닐을 몇 겹으로 둘둘 말아 박스에 넣어 들고 갔다. 불일암에 도착하여 차방에 들어가 인사를 드리고 난 뒤 박스를 열고 비닐을 풀었다.

“인사동을 지나다가 가야토기가 마음에 들어 사 왔습니다.”

그런데 스님의 표정은 시큰둥했다. 이윽고 가야토기가 그 자태를 드러냈을 때도 스님은 엉뚱한 말씀을 하셨다.

“토기는 다 무덤에서 나온다던데?”

“신분이 높은 사람의 무덤에서만 나온다고 합니다.”

스님께서 고개를 저으며 한 말씀하셨다. 물건은 제 자리에 있어야 빛이 나는 법이라며 토기도 무덤에 있어야 제 값을 발휘한다고 충고를 하셨다. 나는 다시 가지고 돌아가라는 말씀인 줄 알고 당황했다. 그러자 스님이 나를 안심시켰다. “가지고 온 것이니 놓고 가세요.”

차를 마시며 스님께서 한 마디 더 덧붙였다. 요즘 도회지 찻집을 가보면 문짝이 장식용으로 벽에 걸려 있는데, 이렇게 가다가는 요강이 천정에 붙어 있는 날이 올지 모르겠다며 씁쓰레하셨다.

그러고 보니 물건들이 제 자리에 있지 못한 것은 비정상이었다. 물건을 만든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 듯했다. 내가 가져온 토기도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망자의 것이지 내 소유가 아니라는 자책이 들었다. 선물을 하고 후회해보기는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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