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금버금한 또래 중에서 5학년 1반의 52명이나 되는 남녀 학생 중에서 싸움 잘하기로 으뜸인 태식이만 빼고 불알이 마치 어른 같다 해서 별명이 어른 불알인 태식이만 빼고 다른 아이들은 나의 착실한 백성, 음모도 반란도 없는 순하디 순한 백성이었지. 설령 껄적지근한 놈이 먼저 자라는 콩나물 대가리처럼 삐져나오면 콩나물 대가리에다 정조준해 박치기로 한 방, 쎈 놈은 두 방, 질긴 놈은 세 방, 그런데도 땅개라는 별명의 영만이 자식, 어른 불알보다도 무섭고 징허디 징한 땅개 같은 자식이 마치 우리 반에 충치처럼 박혀 있어서 하마터면 급장선거에서도 떨어질 뻔했지, 땅개가 길자라는 년과 눈이 맞아서 기호 2번 대철이 쪽으로 기울뻔 했지. 바라만 보아도 좋은 은경이에게 아무도 모르게 쪽지를 적어 장래 크면 은경이랑 결혼하고 싶다고 수작을 건 후 길자년 단속을 은근슬쩍 부탁했었지. 그런데도 우체국장 집 아들인 대철이가 워낙 예쁘고 착해 가스나들은 대철이 쪽으로 기울고 있었지. 키 크고 공부 잘하는 은경이의 하늘같은 협력으로 아슬아슬하게 바지에 오줌 두어 방울 지리며 승리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지. 빈 말이 아닌 진짜로 은경이와 결혼하여 은혜를 갚겠다고 다짐을 굳히고 있는데도 나쁘디 나쁜 자식 땅개 같은 자식이 은경이에게 사탕 주며 벌쭉벌쭉 웃으며 접근하는 꼴이라니, 헤프게 선심 베풀며 싸가지 없이 수작 거는 꼴이라니. 세월이 흐른 뒤에 돌이켜 생각하니 어느 곳, 어디서나 어른 불알이나 땅개같이 미운 놈이 끼어있기 마련, 충치처럼 눈곱처럼 끼어있기 마련, 미운 며느리 년의 속옷 가랑이에 낀 땟국물처럼 끼어있기 마련.
 

진리는 편안이며 자유의 그 자체

覺者, 명예·재색으로 윤회 않는다
 

어린 나이에 절집에 온 나는 어른 불알이나 땅개 같은 놈이 되기로 작심한다. 어금버금한 또래는 멀리하고 <탈무드>의 가르침처럼 두 세 곱 위의 선배들 곁으로 다가가 키 높이를 평준화 하도록 노력했다.

함께 글 쓴다는 구실로 석성우, 김정휴, 조오현 스님 등을 자주 찾았고 불교신문사에서 심부름을 하면서도 바른 길, 옳은 일이면 황소고집으로 밀어붙였다. 총무원에서 심부름을 할 때는 기본에 충실하고 원칙을 지키자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채찍질을 이어왔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10년쯤의 선배 스님들 에게도 땅개 같은 자식, 어른 불알 같은 존재로 미운털이 되어 살았다.

그러다가 늦게야 철이 든다. 영혼이 있는지, 내생(來生)이 있는지, 부처님의 깨달음의 내용은 무엇인지, 진정한 의미의 무아(無我)는 무엇인지, 그리고 난해(難解)하기 이를 데 없는 조사어록(祖師語錄)의 의미는 무엇인지, 사무치게 철이 드는 것이다.

영어를 할 줄도 쓸 줄도 모르던 나는 인도에서 3년 머물며 천민취급을 당하며 질기게도 간절심 하나로 외진 길을 걷게 된다. 말라리아의 병에서 죽을 고비도 넘기면서 미치고 환장할 것 같은 향수병도 견디면서 길에서 길을 걸으며 진정한 의미의 길을 찾는 혹독하고 매서운 나날이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밤 11시경 담장 밑의 희미한 불빛 아래서 천지개벽하는 깨달음의 순간을 맞이하는 것이다. 빛으로 충만한 환희의 세계에는 의혹도 장애도 말끔히 사라진 평화와 행복, 자유 누림의 시작이었다. 찰나지간에 이룬 종교적 아름다운 체험이었지만 누구에게나 좋은 스승, 착한 벗이 되는 순간이었다.

진리는 편안한 것이다. 평화이며 행복이며 자유 그 자체인 것이다. 진리는 멀리 있거나 높이 있거나 숨어있지 않는 것이다. 진리는 항시 드러나 있는 것이다. 물처럼 공기처럼 자갈처럼 주변에 널려있고 생활 주변에 드러나 있는 것이다. 다만, 집착의 병, 습관의 고리를 끓지 못하는 간절심 부족이 진리와 한 몸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깨달은 사람은 참사람을 의미한다. 명예나 재색(財色)으로 윤회하지 않는다. 누가 무엇을 언제 물어도 망설이거나 머뭇거리지 않는다. 남을 속이거나 자신을 속이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은 할 일 없는 늙은이로 있는 듯이 없는 듯이 살고 있다. 평화와 행복, 자유 누리며.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