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담문화원 11월 28일 뮤지컬 주어사 공연

 

아리담문화원이 11월 28일 공연한 '뮤지컬 주어사'의 한 장면. 스님들이 관군으로부터 실학자들을 보호하고 있다.

푸른빛이 무대를 감싸고 핀 조명이 하얀 도포를 입은 선비를 밝힌다. 나이 지긋한 선비는 홀로 주어사를 찾는다. 바로 조선의 실학자 정약용이다. 주어사는 그가 젊은 시절 뜻을 함께한 실학자들과의 추억이 담겨 있는 곳이다. 그는 그리움을 담아 시 한 편 써내려간다. 주어사의 추억을 떠올리는 정약용의 눈앞에 과거가 현실처럼 펼쳐지면서 뮤지컬은 역사의 현장 속으로 관객을 안내한다. 아리담문화원 뮤지컬 ‘주어사, 생명이 중헌디’는 시종일관 관객을 감동으로 이끌었다.

차별 없는 세상 발원하며
조선시대 실학자 도왔다가
박해받은 주어사 스님들
뮤지컬로 아픈 역사 조명

아리담문화원(원장 송탁)은 11월 28일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뮤지컬 ‘주어사, 생명이 중헌디’를 공연했다. 이 뮤지컬은 주어사의 올바른 역사를 이해하고 다종교가 공존하는 화합과 포용의 길을 제시코자 아리담문화원과 제스트컴퍼니가 기획했다.

주어사는 경기도 여주군 산북면 앵자봉 중턱에 자리한 폐사지로 조선시대 박해를 피해 숨어든 실학자들을 스님들이 보호했다가 함께 해를 당한 아픔이 서린 곳이다. 역사적으로 1779년 성호학파의 실학자인 권철신 선생이 정약전 등의 제자들과 함께 머물며 강학을 했던 장소다. 이는 한역 서학서를 통한 천주교 교리의 검토도 집중적으로 이루어져 천주교 신앙에까지 이르게 된다.

주어사가 강학의 장소를 제공한 것은 유교ㆍ불교ㆍ천주교의 화합과 공존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 당시 사회의 봉건적 신분제도를 타파하고 박애와 평등의 인간 존엄을 천명한 것이기도 하다.

뮤지컬 주어사는 실학자들과 스님들이 함께 평화의 노래를 부르는 종교 화합의 모습으로 막을 내린다.

‘뮤지컬 주어사’의 젊은 실학자들은 새로운 사상을 모색해 많은 백성들을 살리겠다는 원으로 주어사에 모였다. 스님들은 오갈 데 없는 학자들을 받아준다. 그러던 어느 날 실학자들의 스승인 이벽이 서교가 담긴 책을 가져온다. 책을 받아든 실학자들은 제사도, 계급도 없는 전혀 다른 사상에 놀란다. 학자들은 서교의 본질에 대한 고민에 빠진다. 이 와중에는 유교사상에 위배된다며 자리를 박차고 떠나는 학자도 생긴다.

당시 서학은 접하는 것만으로도 사문난적으로 오해를 받을 수 있는 학문이었다. 그러나 당시주어사에 모인 실학자들은 강학을 통해 새로운 사상체계를 모색하고 백성의 평등과 자유를 위해 힘썼다. 엄연한 역적행위지만 주어사 스님들은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갈 곳 없는 이들을 내치지 않았다. 결국 주어사는 발각되고 실학자들과 스님들은 관군에 의해 처형된다. 뮤지컬은 이 과정을 보여주고, 실학자들과 스님들이 함께 평화의 노래를 부르는 종교 화합의 모습으로 막을 내린다.

 

후에 정약용이 <여유당전>서 읊은 시문.
주어사의 한 때를 회상한 것이라고 추정된다.


실같이 좁은 돌길 걸어오니

그 옛날 아이적 노닐던 곳일세

단풍이란 시 짓던 곳인데

되돌아 온 나그네 수심만 가득하네

호걸과 선비들 강독하던 이곳

상서 읽고 태워 마시며 공부했는데

황폐한 요사에는 풀빛만 짙어가고

참선 등불 켜던 절은 사라지고 말았네.

이처럼 주어사는 박해라는 아픔과 동시에 종교화합의 의미를 갖는 장소였다. ‘뮤지컬 주어사’는 당시 두 종교가 하나 된 감동적인 역사적 사실과 그 현장을 생생하고 가슴 뭉클하게 관객에게 전달했다. 다양한 종교계서 참석한 관객들은 공연을 보는 내내 스님의 자비와 포용에 놀라기도 하고 박해받는 장면에 한숨짓기도 했다.

이번 공연을 주최한 아리담문화원장 송탁 스님은 “주어사는 현대사회의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아름다운 역사의 현장이다. 당시 조선의 모순을 극복하고, 백성들에게 희망을 만들어주려던 신진학자의 마음을 사찰에서 포용해 문을 열어줬다. 그 역사를 통해 현대 우리사회가 나아갈 화합과 포용의 길을 제시하고 싶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뮤지컬 공연에 이어 4개 종교가 어우러진 토크쇼도 진행됐다. 토크쇼에는 자비명상 대표 마가 스님, 코리안아쉬람 대표 이명권 목사, 김영택 한국예수회 신부, 권도갑 원불교 교무, 민학기 조계종 제2교구 신도회장이 참여해 종교간 소통의 장을 만들었다.

뮤지컬이 끝나고 4대 종교인들이 함께 토크쇼를 진행했다. 주어사의 종교화합 의미를 되새기는 자리였다.

4대종교 토크쇼도 열려
주어사 ‘종교화합’ 되새겨
“부처님 ㆍ하나님도 아닌
민중 위한 종교역할 느껴”

마가 스님은 “주어사 스님들이나 실학자들이 모시는 신은 하나님도, 부처님도 아닌 ‘민중’이었다는 것에 방점을 두고 싶다”며 “200여 년 전에 일어났던 그 사건이 오늘날 한국사회를 다시 맑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영택 신부는 뮤지컬에 대해 “슬프지만 아름답다”고 표현하며 “예수님과 부처님이 보시면 아주 기뻐하셨을 것이다. 뮤지컬을 보니 요한복음 15장 ‘벗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 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는 말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김 신부의 말을 들은 이명권 목사는 “예수님은 생전 ‘나를 위해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라고 했다. 이때 ‘나’라는 개념을 진리로 해석하면 뮤지컬과 연결된다”며 “당시 인물들은 진리를 위해 죽었다. 그러나 그때 진리를 위해 죽은 사람들이 뮤지컬 속에서 살아났다. 그 부활의 현장을 오늘 느꼈다”고 덧붙였다.

권도갑 교무는 “우리는 서로 다른 제복을 입고 있지만, 자주 만나면 형ㆍ아우다. 함께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 정말 행복하다. 종교 화합은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마가 스님은 “껍데기로 너와 내가 구분돼 있지만 실상을 보면 모두 같다. 나와 다른 종교의 성직자들을 보면 오히려 우리 모두의 본질이 같다고 느낀다”고 덧붙였다. 이 말을 들은 김 신부는 “나도 가끔 조용한 것이 좋아 절을 찾곤 한다”고 동의의 뜻을 전했다.

자신을 성보살이라고 밝힌 한 관객은 뮤지컬을 극찬하며 “불교인으로서 주어사의 아픈 역사에 대해 바로 알 수 있게 돼 감사한 시간이었고, 현재 우리가 살아가면서 지켜나가야 할 점들을 느끼게 해준 뮤지컬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토크쇼에 대해서는 “종교인으로서 솔직한 이야기를 해줘 흥미로운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다른 관객 등명 스님은 “뮤지컬을 보며 종교화합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다. 주어사가 상징성을 갖는 좋은 성지임도 이번에 알게 됐다. 배우들도 종교화합에 관심 갖고 열심히 하는 듯 보여 좋은 분위기를 이끌어준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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