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정암 삼보일배 등반 고행기

무한도전, 봉정암 삼보일배 순례

설악산 봉정암으로 삼보일배를 다녀와 다음날 내 하루 일과 수행인 3백배를 마치고 가뿐한 몸과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도반들과 함께 수행하는 ‘금강카페’에서는 매해 11월 중순 쯤에 봉정암으로 삼보일배 순례를 떠난다. 동심거사를 주축으로 거행되는 이 순례가 어느덧 10년 가까이 된다. 나는 세 번째 도전이었다. 몇 년 전 참가했던 두 번은 모두 날씨가 고르지 않아서 중도에 내려와야 했기 때문에 첫 도전이나 마찬가지였다.

봉정암 삼보일배 결전의 날, 새벽 3시에 아홉 사람이 백담사 법당 앞에 모였다. 전날 저녁예불을 올리고 숙소로 돌아갈 때 실눈이 내려 올라갈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하늘에 별이 총총했다.

“허리가 끊어질것 같은 큰 고통

엎드려 그대로 있고싶은 생각 뿐”

15시간 긴 여정서 싹튼 佛心

이번에 함께 하는 도반들은 동심, 현로, 경란, 정진, 보리씨, 이정, 전여, 박보살, 그리고 나다. 일행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먼저 동심거사. 이 순례단의 리더로 열다섯 번 정도 삼보일배로 봉정암을 다녀왔다. 삼보일배를 하며 생사의 기로를 넘기기도 한 사십대 중반의 백전노장이다. 그가 아니었으면 매해 진행되는 이 순례는 존재할 수 없을 만큼 풍부한 경험과 끊임없는 수행으로 보살의 삶을 실천하며 출가자처럼 사는 도반이다. 다음은 오십대 초반의 헤어디자이너 현로거사. 작년에는 아내와 함께 왔던 애처가이자 티벳승 같은 분위를 지니고 있다. 실제로 틈만 나면 인도의 다람살라, 티벳, 안나푸르나 등을 내 집처럼 드나들며 그곳 수행자분들의 겸손한 삶을 배우고 수없이 절하며 수행한다. 한 번만 해봐야지 했던 봉정암 삼보일배가 이번이 어느덧 여덟 번째라는 경란보살. 절수행으로 인생을 바꾼 사람으로 2회 연재에서 소개한 바 있는, 매사 겸손하고 남에 대한 깊은 배려가 몸에 밴 도반이다. 설악산의 품안인 원통에 사는 정진보살, 도반들이 설악산에 올 때마다 온갖 뒷수발을 다 하며 여러 차례 삼보일배에 동참한 분이다. 설악산이 좋아 설악산에 사는 남자에게 시집왔을 만큼 설악산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불교방송 아나운서인 보리씨보살, 대학생과 고등학생 남매를 둔 엄마임에도 긴 생머리의 청순함을 자랑하는 그녀는 극한 도전을 즐기는 탓에 이번에 처음 도전했다. 꾸준히 마라톤으로 체력을 키워온 그녀는 이번 처음 출전의 삼보일배를 가볍게 완주했다. 오십대 초반의 직장인 부부인 이정보살님과 전여거사님, 두 분도 처음 출전이었는데, 앞서거니 뒷서거니 서로를 위로하고 챙겨주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마지막으로 박보살. 동심거사의 직장 동료로 이번 참가자 중 최연소이자 유일한 비불자다. 큰 키에 늘씬한 몸매, 수줍어하는 모습으로 보아 삼십대 미혼인줄 알았더니 연년생 고등학생 남매를 둔 엄마라고 했다. 출발하기 전날, 사십대 초반의 기독교인이라는 그녀와 함께 자면서 참가하게 된 동기를 물어보았더니, ‘내 종교와 다른 어떤 것을 경험해보고 싶어서요!’라고 짧게 대답했다. 이교도가 경험하는 삼보일배 수행은 어떨까, 취재자로서 나의 호기심을 가장 자극한 동참자였다. 돌아와 메일로 그녀는 참가하게 된 동기를 성심껏 적어 보냈다.

“그동안 나는 불상을 하나님의 절대 권력에 반하는 가장 최고의 우상으로 여겨왔다. 미명의 새벽에 불상 앞에 정한수 한 사발을 떠놓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오직 자식들과 가족의 안녕만을 비는 종교가 불교라고 생각해왔다. 그랬기에 내 종교와 다른 이유를 찾거나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한 불교에 대한 막연한 오해와 무지를 불자인 동료를 통해 조금씩 거둬내게 되었다. 묵묵히 현실에서의 삶에 충실하며 신실하게 보살행을 실천해 나가는 그 분을 통해 삼보일배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되었다. 두 발로 산에 오르는 것이랑 별반 다를 게 없을 것이라는 단순무지한 호기심이 발동해, 단지 그 동안 내가 접해보지 않은 새로운 어떤 일에 동참한다는 것에 의미를 담고 처음 시작했다. 이번이 두 번째로 내 자신과 약속대로 끝까지 완주해보자는 마음으로 다시 참여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힘든 내색을 비치지 않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끝까지 완주한 그녀는 우리들에게 가장 많은 박수를 받았고, 그녀로 인해 우리는 다른 종교에 그렇게 마음을 열어놓은 일이 있었는가를 돌아보게 되었다.

 

열다섯 시간의 긴 여정에서 깨달은 것들

백담사 법당 앞에서 간단한 예식을 올리고 새벽 3시 20분에 출발했다. 세 걸음을 걷고 첫 절을 경내 마당에서 했다. 온몸을 낮추고 이마를 대지에 대면 비로소 나를 진정으로 가장 낮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방석에 이마를 대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경건함이 있다. 한 시간 단위로 50분 동안 삼보일배를 하고 십 분씩 쉬기로 하고 길을 떠나는데, 뒤에서 보니 아홉 명의 행렬이 말할 수 없이 경건해 보였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힘들게 절을 하며 그 높은 산을 올라가는 것일까.

언젠가 경험자들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렇게 결론지은 적이 있다. “그냥 한다!” 이보다 더, 적절한 답은 없을 것 같다. 나는 ‘그냥’이라는 이 말이 무언가에 갇히지 않은 말 같아서 참, 좋다. 아무리 좋은 것도 목적을 설정해놓으면 거기에 갇히기 쉽지 않은가.

백담사에서 봉정암까지는 해발 1700미터, 보통 걸음으로 걸어가면 5시간, 삼보일배로 가면 15시간이 걸린다. 말이 열다섯 시간이지 5~6천배를 하며 가야하는 긴 고행의 길이다. 나는 이렇게 결심하고 첫 절을 했다. 영시암까지는 오보일배, 그 다음은 자유롭게 걷다가 절하고 걷다가 절하고 천천히 설악산을 음미하면서 가리라. 외국 여행 중 일주일을 넘기다 면 슬슬 내 나라의 산하가 그리워지기 시작하는데,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산이 봉정암이 있는 설악산이었다. 언젠가 한번은 절을 하며 봉정암에 오르고 싶었다.

첫 번째 휴식 시간을 가질 때, 깜깜한 숲속에서 모두들 탄성을 질렀다. 별빛 때문이었다. 별들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숲속에서 우리는 걸음을 한참 떼지 못했다. 자갈길, 흙길, 낙엽진 길을 번갈아 걷으며 다시 길을 떠났다.

경험자, 초보자 할 것 없이 다들 경건하게 완벽한 자세로 절을 했다. 반듯한 길이 아닌데도 마치 평지인양 한 배 한 배 정성을 다해 절하는 모습이 엄숙한 의식으로 다가왔다. 영시암까지 걸어서는 보통 한 시간쯤 걸리는 거리인데, 도착하니 8시가 넘어있었다. 봉정암까지의 삼분의 일 거리인 영시암까지 5시간 걸린 셈이다. 경험자들은 이 처음 3.5킬로미터가 가장 힘들다고 한다. 허리가 약한 편인 경란 보살이 의외로 힘들어했다.

“어휴, 허리가 끊어질 것 같네. 여기까지도 왔는데, 어떻게든 남은 길도 가게 되겠지.”

정진 보살이 준비해 온 꼬마김밥으로 아침을 먹고 다시 길을 떠날 때, 첫 번째 삼보일배에서 새끼발가락이 빠졌다는 그녀가 혼잣말로 한 저 말이 마치 인생을 두고 말한 것 같아 아직까지 긴 여운으로 남아 있다.

다시 50분 동안 삼보일배를 하고 쉬는 시간, 티벳에 여러 번 다녀온 현로거사에게 순례의 길에서 만난 한 청년의 이야기를 들었다. 한쪽 몸이 마비된 성치 않은 몸의 삼십대 청년이었는데, 라싸까지 이르는 4500킬로미터의 순례 길에서 남이 주는 밥을 먹고 자며 삼보일배를 하고 있더라고 했다. 왜 이렇게 힘든 길을 가느냐고 물으니, “그냥!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가는 것은 나와의 약속이니까.”

3년이 꼬박 걸리는 그 길에서 그 청년은 무엇을 깨달았을 지는 경험해보지 않고는 짐작조차 못할 것 같다. 쾌청한 날씨에 잘 먹어가며 가는 우리들 15시간의 삼보일배가 초라해지는 순간이었지만, 우리들에게는 또 우리들 만의 소중한 삶이 있지 않은가. 다시 힘을 내 길을 떠난다.

오후 1시에 산속 바위에 점심상이 차려졌다. 정진보살의 평생도반께서 준비해온 굵고 실한 김밥과 과일로 원기를 보충하고 다시 길을 떠난다. 6시 쯤 도착할 예정이라 하니 앞으로 네 시간은 더 남은 셈이다. 점심을 먹고 난 후 2시간은 몸이 무거워져서인지 힘들게 느껴졌다. 그리고 오후가 되어 기온이 내려가자 바위와 땅이 더 차갑게 느껴져 무릎을 대는 것이 부담스러워졌다. 울퉁불퉁한 찬 돌들에 무릎을 댈 때마다 내 무릎이 성하려나, 냉기가 스며들어 냉병이라도 들지 않을까 하는 잡생각이 올라오기도 했다. 편히 걸어올라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올라왔지만, 뒤에서 포기하지 않고 정성을 다해 삼보일배로 올라오는 도반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꾹 참고 십보일배를 했다. 평지를 걷듯 가볍게 올라가는 동심거사를 제외하고는 봉정암이 가까워오는 깔딱고개를 전후로 모두 힘들어했다. 박보살은 ‘숨이 차올라서 무릎을 꿇은 자세로 엎드려 그대로 멈춰있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도반님들이 기다려주고 용기를 준 그 힘으로 높다란 계단을 다시 한 번 한번 무릎을 낮추었다. 그리고 한 발 한 발 내딛는 발자국 위에 두 손을 모아 몸을 낮추는 그 순간만을 바라보고, 내가 아닌 다른이의 참 평안을 잠시라도 생각해보라는 동료의 충심어린 생각을 떠올리곤 했다’고 했다.

봉정암까지 200미터를 앞두고는 정말 힘들었다. 다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고 한마디씩 했다. 드디어, 오전 6시 20분. 정확히 15시간 만에 아홉 명 모두 무사히 도착했다. 마지막 절을 나는 사리탑 부처님을 향해 했다. “감사합니다.” 아무 장애 없이 올라올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봉정암에서 제공하는 뜨끈한 미역국으로 저녁을 먹고 저녁예불도 하지 못한 채 모두 방에 쓰러지듯 누웠다. 뜨끈한 방에 몸을 뉘였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전날 백담사에서도 잠이 오지 않아 뜬 눈으로 밤을 새워서 푹, 자고 싶은데 어쩌면 그렇게 잠이 오지 않는지 곁에서 크고 작은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는 도반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동안 나를 지켜준 내 신체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을 보냈다. 새벽 세시 예불에 맞춰 간단히 세수를 하고 법당으로 올라가 기도 스님의 염불소리에 맞추어 108배를 하며 염원했다.

“세상의 모든 생명이 행복하기를!”

미역국으로 아침을 먹고 오전 7시에 모여 사리탑에서 감사의 회향식을 가졌다. 내려오는 길,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설악산의 풍경을 감상했다. 저 멀리 여명의 태양빛에 의해 금빛으로 드러나는 산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힘든 것을 해낸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이 여유로움과 감사함, 어쩌면 우리는 이 감사함이 삶에서 절대적인 것임을 확인하기 위해 이 길을 걸었는지도 모른다. 서로를 배려하며 함께 했던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 내 곁의 아름다운 사람들이 나를 만든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편한 길을 제공하기 위해 험한 산 속에 다리를 놓고 평평한 돌로 길을 만든 고마운 손길들, 우리를 말없이 외호해주었던 자연이 나와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 걸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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