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벌어진 고속도로 표지판에서 사찰명 삭제 문제는 시대를 역행하는 행위다.”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이 11월 21일 김종진 문화재청장에게 일갈한 내용이다. 취임 인사차 방문한 정부 관료에게 신임 총무원장 스님이 뼈아픈 지적을 한 것은 그만큼 현재 사태에 문제가 많기 때문이다.

고속도로 표지판에서 지역을 대표하는 사찰과 문화재가 사라진다는 사실은 지난 10월 17일 한국도로공사 국정감사에서 주호영 바른정당 의원(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이 제기하며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본지의 취재에 따르면 한국도로공사가 고속도로 표지판에서 한국불교 명찰(名刹)들의 이름 등을 삭제를 추진한 것은 현행 ‘도로표지 제작·설치 및 관리지침’에 어긋났기 때문이다.

2003년 5월 31일 관리지침이 개정되면서 고속국도에서 국가지정문화재 중 건조물·사적지·경승지 표지가 제외됐고, 2006년부터는 국가지정문화재뿐만 아니라 유네스코에 등록한 세계문화유산도 표시할 수 없게 변경됐다. 이렇게 될 경우 해인사, 불국사 등 세계 유산을 보유한 사찰부터 지역 명찰(名刹)들은 고속도로 표지판서 사라지게 된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불교계는 반발하고 나섰고, 결국 한국도로공사는 표지판 철거를 잠정 중단키로 했다. 현재 국토부는 관련 지침에 대한 개정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교계의 불만은 좀처럼 사그러지지 않고 있다. 조계종 교구본사주지협의회는 11월 16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전통사찰은 온 국민과 세계인이 함께 향유하는 전통문화의 보고다. 안내를 부정하는 것은 고유의 문화적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철거된 68개의 사찰 표지판을 복원하고 현 지침을 조속히 개정할 것을 촉구했다.

국토부는 이미 불교계와 극심한 갈등을 빚었던 전력이 있다.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 당시 국토부가 국가 제작 전자지도에서 사찰을 삭제한 ‘알고가’ 사태가 바로 그것이다. 이는 ‘8.27범불교도 대회’로 이어졌다.

하지만, 국토부는 공청회를 거치고, 종교계의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는 국토부가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팔만대장경, 석굴암 등을 단순한 ‘종교 시설물’ 정도로 여기고 있다는 방증이다. 불교문화유산과 직접 연결된 고속도로 표지판 문제를 타종교계에 대해 의견 수렴을 하겠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어떻게 주변에 널려 있는 빨간 십자가와 유구한 역사를 지닌, 선조들의 얼이 담긴 ‘문화유산’을 동일선상에 놓고 생각할 수 있는가.

국가에서 수많은 불교문화유산들을 국보와 보물로 지정한 것은 그 가치가 높고, 보존의 필요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토부는 이를 문화유산이 아닌 시설물정도로 보고 표지판에서 넣고 빼고를 판단하려 했고,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잘못된 것은 빠르게 바로 잡는 것이 상책이다. ‘장고 끝에 악수를 둔다’고 했다. ‘제2의 알고가 사태’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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