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길 교수 불교계 3.1운동 학술세미나서 조명

“3ㆍ1운동과 항일운동에 불교계는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대표적 항일운동가인 백범 김구는 불교계의 경제적 지원을 받기도 했으며 사찰을 안식처로 여기기도 했습니다.”

불교계가 백범 김구의 항일운동에 경제적ㆍ정신적 버팀목이 됐다는 발제에 대중의 관심이 쏠렸다. 백년대계본부 불교사회연구소가 11월 17일 주최한 ‘불교계의 3ㆍ1운동과 항일운동’ 2차 학술세미나에서다. 한상길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는 서울 템플스테이통합정보센터 문수관서 진행된 학술세미나서 ‘백범 김구와 불교’라는 주제로 발제, 이와 같이 주장했다.

당시 불교계의 독립운동은 대부분 비밀리에 진행될 수밖에 없었으며 특히 독립자금 지원은 절대로 증거를 남겨서는 안 되는 사안이었다. 한 교수는 “그럼에도 김구가 백용성의 독립자금 지원에 대해 여러 차례 감사 방문한 흔적이 남아 있고 이종욱의 자금 지원도 후대의 증언으로 남아 있다. 이런 자료들에 비춰볼 때 불교계가 김구의 항일운동에 많은 도움을 줬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백범일지>에 따르면 김구는 난관에 봉착했을 때 <서장>의 게송을 떠올렸고 선택의 순간에서는 시 ‘야설(野雪)’을 썼다고 한다. 김구는 <백범일지>서 치하포 사건을 앞두고 망설여졌지만 이내 ‘현애살수장부아’ 구절이 떠올라 거행할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거사를 앞둔 윤봉길 의사에게도 이 구절을 읊어줬다고 나온다. ‘현애살수장부아’는 <금강경>에 등장해 <서장>으로 널리 알려진 게송이다. ‘야설’은 서산대사가 지은 선시로 김구가 인생의 지침으로 삼아 늘 지송(持誦)했다고 한다. 한 교수는 이를 근거로 김구가 정신적으로 불교에 도움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또한 한 교수는 김구와 만해 한용운ㆍ지암 이종욱과의 인연도 소개했다. 김구가 불교계 스님들과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김구는 당시 부일협력자로 몰려있던 이종욱의 항일운동 이력을 증명해주기 위해 함께 진관사로 대동하기도 했다. 김구는 생전 한용운과 비밀채널로 교류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김구의 출가 승려생활 경력도 불교계의 긍지가 될 만하다. 비록 1년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으나 불교는 오갈 데 없는 도망자 김구에게 안식처를 제공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세미나에선 이외에도 △‘불교청년’의 탄생: 1910년대 ‘불교청년’의 성장과 담론의 형성(이경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중앙학림(김광식 동국대학교 특임교수) △구한말부터 사찰령 전까지 불교계의 항일운동(김경집 진각대학원대학교 교수)이 발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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