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마나 작가.

천천히 걸었다. 그렇게 걷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몇 걸음이라도 빨리 걸으면 곧바로 머리가 어지럽고 숨이 차서 걸을 수 없었다.

‘선내일(仙乃日)’ 설산이 오른쪽에서 그윽하게 나의 더딘 발걸음을 굽어보고, 왼쪽으로는 ‘사량둬지(夏落多吉)’가 송곳처럼 솟아 있다. 두 산 사이로 멀리 ‘양마이용(央萬勇)’이 하얀 구름을 하늘로 뿜어내고 있다.

1928년 영국의 루커가 발견한 야딩(亞丁)은 ‘신선의 땅’ 또는 ‘최후의 샹그릴라’라고 불린다. 특히 티베트인들은 6,000m 높이의 선내일, 사량둬지, 양마이용, 세 설산이 品자로 위치한 이곳을 관세음보살, 금강보살, 문수보살의 삼신산(三神山)으로 받들며, 세계 24 불교 성지 중의 하나로 꼽는다.

이 성산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길고 힘든 여정이었는지 모른다. 언어가 통하지 않은 오지, 더욱이 해발 4,600m의 우유해(牛乳海)까지 오르려면 고산병이 큰 문제였다. 서울을 출발하여 중국의 곤명, 대리, 리장, 중전(中甸)의 도시를 거치면서 고도를 서서히 높여 나아갔다. 중전에서 야딩의 관문인 도성(稻城)까지 거의 비포장 산길을 버스로 12시간 달렸고, 도성에서 야딩 입구까지는 다시 택시를 대절하여 3시간을 달렸다. 그곳에서부터는 오로지 두 발로 긴 순례를 하였다.

5,000m가 넘는 산들이 에워싼 광야를 묵묵히 걸었다. 발밑이 아스라한 계곡을 벌벌 떨면서 건넜고, 얼음 덮인 고갯길을 수없이 넘었다. 바람은 거칠고 햇빛은 눈부셨다.

구름은 하늘의 쪽빛에도 흰색을 물들이지 않았다. 내 몸 안의 허파 만이 산소를 갈망하며 헉헉거렸다. 정신이 육체를 토닥이지 않았다면 두 발은 결코 걸음을 옮기지 못했을 것이다.

드디어 피라미드처럼 우뚝 솟은 양마이용이 눈앞에 나타났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문수보살의 모습이 환하게 드러났다. 차마 쳐다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순간 53 선지식을 찾아 헤매다가 문수와 보현보살을 만나 입법계(入法界)에 들었다는 선재동자를 떠올렸다.

“문수보살이시여, 이끌어준 안내자도 없이 그 멀고 높은 길을 걸어왔습니다. 헐떡이는 이 가슴을 진정시켜 주십시오.” 나의 기도는 간절했다.

눈을 살며시 떴다. 문수보살을 덮은 하얀 눈 속에서 푸르른 빛이 새어나왔다. 문수보살을 보필하며 좌우로 늘어선 뾰쪽한 봉우리들 사이에서 푸른빛은 더욱 선명했다.

만년설에 뒤덮여 존재를 드러내지 않은 얼음이었다. 햇빛이 내려쬐어 눈은 녹아 흐를지라도 눈 속의 푸른얼음은 그 모습 그대로 빛났다. 태초부터 있어왔던 청정 법신(法身)이다. 얼음이 흰 눈을 쏟아내고, 흰 눈은 녹아 흘러 우유해를 이룬다. 산 위에 떠 있는 바다 같은 호수는 가운데가 푸른빛이고 바깥 원은 우윳빛이라서 우유해이다.

얼음과 눈과 호수의 물은 하나이다. 예쁜 꽃들이 들판에 가득 피었다. 야생화를 키운 우유해의 근원은 푸른얼음이다. 만법의 바탕인 법신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온 세상에 가득하다. 삼신산을 덮었던 푸른빛 서기가 내 가슴 안에서 맴돈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