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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연재 윤범모 교수의 ‘佛道 기행’
간절한 佛心, 절벽에 불국토를 새겨넣다20. 맥적산 석굴
  • 글= 윤범모 동국대 석좌교수, 사진=황헌만 작가
  • 승인 2017.11.13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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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적산 석굴 제13호굴의 대불. 15m의 크기로 맥적산 석굴을 대표하는 불상이다.

실크로드 선상의 천수(天水, 텐수이). 중국 고대의 전설 속에 나오는 삼황오제의 하나인 복희씨(伏羲氏)의 고향. 진시황의 조상이 살았다는 지역. 거기가 천수이다. 당나라의 수도였던 장안에서 출발하면 이곳에서 첫날밤을 보내야 한다. 인도로 구법여행 가던 현장법사도 대장정의 첫 여장을 이곳에서 풀었다. 국외 출국금지령 무시하고 오로지 구도(求道) 행장을 꾸렸던 현장, 그의 첫 여정이 이곳 천수였다니, 감회 새롭다.

실크로드 길목 天水에 자리한
수직 바위 절벽의 맥적산 석굴
수 문제 조성 15m 大佛 ‘눈길’
이젠 관광지 된 성지 안타까움


천수시에서 동남쪽으로 60km 가면 보리짚단을 쌓아놓은 듯한 바위 산 하나가 우뚝 솟아 있다. 그래서 맥적산(麥積山)이라 부른다. 그렇고 그런 산 능선을 아래로 깔고 특이한 바위산 하나가 우뚝 솟았다. 신비로움의 현장이다. 숲이 우거져 있고 경치 또한 수려하여 가끔씩 구름이 와서 노닌다. 이런 신비의 장소를 그냥 놔둘 리 없다. 그래서 옛사람은 맥적산을 불교성지로 만들었다. 절벽에 석굴을 뚫고 사원을 경영한 것이다. 바로 맥적산 석굴이다. 돈황, 용문, 운강석굴과 더불어 중국 4대 석굴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맥적산 정상은 거의 삼각형 형태의 바위산이다. 뽀족한 정상은 하얀 탑 하나로 성지(聖地)임을 알리고 있고, 푸른 나무들은 모자를 씌우고 있다. 녹음 짙은 나무들 덕분에 바위 색은 더욱 짙어 무겁게 보인다. 홍사암(紅砂巖)의 산은 거의 수직 절벽이다. 단애(斷崖), 이런 절벽에 어떻게 석굴 팔 생각을 했을까. 아무리 신비로운 성소로 보인다 해도, 막상 절벽에 매달려 굴을 파고 불상 조성하는 일은 고역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거대한 바위산을 불교 석굴사원으로 만들게 했을까. 신심이라는 단어 하나로 답변할 수 있을까. 상상 밖의 일이다. 맥적산을 가까이 가 본다. 정문에 서면 우선 하단부분의 거대한 삼존불이 시선을 장악한다. 제13호 석굴로 수 문제(文帝)가 조성한 것, 높이 15.7m의 규모이다.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의 삼존상이다. 대규모여서 그런지 섬세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특히 본존상의 표정이 밝지 않아 안타깝게 하지만, 맥적산의 상징과 같은 도상이다.

거대한 불상은 절벽을 새롭게 보게 한다. 대불 주위로 지그재그의 계단식 통로가 마치 현대의 설치미술과 같다. 절벽을 사각형 구멍으로 뚫어 각목을 넣고 만든 길, 그런 길을 잔도(棧道)라 부른다. 절벽에 나무를 나란히 박고 그 위에 널판을 깔아 만든 길이다. 지금도 곳곳에 잔도의 각목을 박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맥적산 석굴은 높이 142m 절벽에 석굴과 불감(佛龕) 194군데를 조성했다. 소상(塑像) 3,513기 등 7,200기의 불상이 있다. 석굴은 오호십육국의 하나인 요진(4세기)시대부터 파기 시작하여 수당시대 그리고 송대에 이르기까지 조성했다. 이들 작품은 중국 조소역사에서 좋은 표본으로 꼽히고 있다.

제80호의 경우, 북위시대 작품인 왼쪽 협시보살입상의 늘씬한 모습이 눈길을 끈다. 왼손에 정병을 들고, 오른손은 가슴 부분에서 인동초(忍冬草)를 들고 있다. 은은한 미소와 온화한 표정이 일품이다. 늘씬한 신체 표현은 제121호의 비구상과 비구니상을 들 수 있다. 제142호는 다양한 내용을 지니고 있다. 교각보살상은 미륵불로 몸의 장식이 화려하다. 당당한 자세와 운동감 있는 조각 솜씨를 보여준다.

제3호 석굴은 구획된 공간에 열을 맞추어 37미터 길이에 4단 구조로 천불을 조성했다. 장관이다. 비슷한 불두와 자세의 나열이다. 맥적산은 석각 이외 벽화도 많이 제작했으나, 현재는 대부분 파괴되어 900㎡ 정도만 남아 있다. 그림 내용은 불상, 비천, 공양자상 등 다양하다.

맥적산 석굴은 돈황, 용문, 운강석굴과 비교하여 규모가 작다. 하지만 수직 절벽에 석굴을 뚫고 불상을 조성했기 때문에 난공사의 고통을 생각하게 한다. 절벽에 매달려 공사를 해야 했으니, 나무 꼭대기에 제비집 짓는 것과 얼마나 달랐을까. 신앙생활의 일환이 아니라면 불가능했을 석굴사원. 이를 오늘의 관광객은 단순 구경거리로 계단을 오르내린다.

비록 가쁜 숨을 몰아내 쉬게도 하지만, 또 절벽 아래의 경치가 아찔하게도 하지만, 등산객처럼 인파에 휩싸인다. 게다가 석굴 내부에 향화(香火)가 꺼진지도 오래되어 퇴락의 분위기가 안쓰럽게 한다. 단순 관광자원으로 격하된 사원, 안타까움의 현장이다. 그건 그렇고 맥적산 석굴은 절벽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사실 재미가 별로 없다. 불경스런 표현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4대 석굴사원 가운데 특히 그렇다. 아무리 실크로드의 길목이라 해도 할 수 없다.

맥적산 석굴 중 하나. 맥적산에는 높이 142m 절벽에 석굴과 불감 194군데를 조성했다. 소상(塑像) 3,513기 등 7,200기의 불상이 있다.

그래서 나는 사천성의 대족(大足, 따주)석굴을 그리워한다. 북쪽에 돈황이 있다면, 남쪽에 대족이 있다는, 바로 그 대족 말이다. 경이로움의 현장이다.

대족석굴은 사천성 중경에서 160km 떨어진 지역에 있다. 보정산, 북산, 남산 등으로 나누어 다양한 조각을 남겼다. 70여 군데에 6만 건 이상을 조성했다. 북산은 벌집 형태로 길이 400m로 만당(晩唐)시대인 892년부터 개착하여 남송시대까지 250년 동안 조성했다.

<공작명왕경> 석굴은 ‘석조 궁궐’로 칭송이 자자하다. 특히 보현보살상은 중국의 비너스로 꼽힐 정도로 아름답다. 보정산 석굴은 송나라 때 만들어졌다. 대족석굴은 무엇보다 ‘예쁘다’라는 단어를 계속 꺼내게 한다. 중국 그 어느 석굴보다 예술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다양한 소재와 주제 그리고 표현형식의 거리낌 없는 기량은 대족의 명성을 높여주고 있다. 어쩌면 이렇게 조각을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탁월한 상상력과 그것의 표현기량은 가히 세계적이다. 정말 대족은 대만족으로서의 대족이다.

보정산 석굴이 순례자를 놀라게 하는 것은 조지봉(趙智鳳)이란 인물 때문이다. 조지봉은 남송시대 밀종(密宗)대사로 조각승이기도 했다. 그는 70년(1179-1249)동안 석굴 조성에 매진했다. 보정산 석굴은 상상력의 승리라고 칭송할 수 있는 곳이다. 인간의 다양한 모습과 상황 그리고 불교세계의 역시 다양한 모습들, 놀라울 정도로 다채롭고 또 표현형식의 자유자재를 주목하게 한다.

어쩌면 이럴 수 있을까. 육도윤회상, 열반상, 지옥장면 등 스토리텔링의 현장이다. 이렇듯 다양한 이야기의 현장은 대족의 특색이다. 그것도 불교만을 위한 것도 아니다. 유불선을 보듬어 안고 있고, 참배자의 눈높이에 맞추어 제각각 감동을 안게끔 설계되어 있다. 대족석굴은 바위를 파 그림을 새겨 넣은 것 같다. 그만큼 조형성이 뛰어나다는 의미이다. 미술사적 조형성의 압권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모범생처럼 규격 안에서 경직된 병령사 석굴이나 맥적산석굴과 비교하면 특히 그렇다. 조지봉은 수도승이라기보다 예술가 같다. 그만큼 대족석굴은 예술성이 뛰어나다. 감동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조지봉 스님 개인의 위대함에 경의를 표하고자 한다.

나는 예전에 북구여행을 하면서 노르웨이 오슬로에 간 적 있다. 오슬로에는 상징과 같은 비겔란 조각공원이 있다. 구스타프 비겔란(1869~1943), 그는 평생 조각공원 조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인간의 본질문제를 주제로 삼아 갖가지의 인물상을 조각했다. 청동, 대리석, 화강암 등의 재료로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표현했다. 그것의 집성은 비겔란조각공원의 석상 등 200여점이다.

공원 중앙에 높이 17m의 270톤 규모의 화강암 석상이 서있다. 121개 조각으로, 36개 군상을 집약한 작품이다. 인간의 생로병사가 거대한 기둥 하나로 표현되어 있다. 비겔란 조각의 압권이다. 평생 작업, 이런 표현은 소중하다. 집념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대족 석굴이나 비겔란조각공원에서 나는 평생 집념의 작품이라는 개념을 생각한다. 나 같은 경우는 흉내조차 낼 수 없을 강 건너의 그 무엇이다. 그래서 대족이나 비겔란 앞에서 감탄사조차 함부로 낼 수 없는 입장이다.

글= 윤범모 동국대 석좌교수, 사진=황헌만 작가  hyunbulnews@hyunb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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