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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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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님과 〈가사체 금강경과 조계종 금강경〉 출간대심 조현춘 거사
대심 조현춘 거사는 〈금강경〉을 보는 순간 불교에 심취했고, 이를 다른 이들에게 쉽고 정확하게 알리는데 천착했다. 그가 ‘가사체’를 통해 〈금강경〉을 풀이하는데 40년의 세월을 보낸 것은 ‘가사체’가 부처님 당시 설법을 그대로 표현하는데 가장 적합했기 때문일 것이다. 대심 조현춘 거사에게는 〈가사체 금강경과 조계종 금강경〉이 마치 자식과 같아 보인다.

‘가사체 불경’의 선봉장

부처님 당시 전법 고려

현대논리와도 맞는 ‘가사체’

경전 독송 전 이해 필수

한문번역 오류 태반

 

무비 스님은 평생 스승

〈금강경〉 초역본 가져가자

“바로 출간하라”

감수에서 공역으로

“스님 계셔서 신바람”

 

심리학 애정에 불교 공부

“서양공부 전에 동양공부하라”

지도교수 가르침에 불교에 투신,

〈금강경〉 접하고 매료, 연구

‘행복훈련’서 번뇌해답 찾아

 

학자 모임에서 ‘절차탁마’

불교 관심있는 학자 모임

‘화엄경과 화이트헤드 연구회’

함께 불교경전 번역 진행

 

불교의 역사는 ‘역경’(易經)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당시 사람들의 언어로 바꾸는 것은 전법교화와 수행정진의 밑바탕이기 때문이다. 훈민정음 창제 이후 한국불교도 꾸준히 우리말로 바꾸는 작업이 진행돼 왔다. 경전의 한글화는 지금 이 시대 사람들에게 부처님 가르침이 어떻게 다가갈 지를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과업이다.

하지만 경전 한글화는 수많은 번역, 분분한 해석으로 ‘정설’이 없었다. 독경할 때 문맥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거나 용어가 적절치 않아도 이른바 ‘그러려니’하며 봐 온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바른 경전 읽기는 어불성설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40년 간 원전을 탐독, 우리 시대 말로 〈금강경〉을 풀이해 온 한 불자가 있다. 바로 가사체금강경독송회장 대심 조현춘 거사(전 경북대 심리학과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대심 조현춘 거사는 무비 스님과 〈가사체 금강경〉을 내고, 가사체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가사체(歌辭體)는 조선 초 만들어진 3×4조나 4×4조를 기본으로 한 운문과 산문의 중간 형태의 문학으로 특유의 음률이 있는 문체를 지칭한다. 특히 대심 조현춘 거사는 ‘유통되고 있는 구마라집 한문 금강경’을 9종의 다른 금강경과 대조, 교감해 가장 적절한 문장과 어휘, 글자를 선택하고, 다시 이를 현대 한글로 번역하고, 독송하기 좋게 가사체로 다듬어 왔다.

 

대심 조현춘 거사는?가사체 금강경 독송회 조현춘 거사의 법명은 대심(大心). ‘동서양 통합 상담심리학’을 세우기 위해 금강경 공부를 시작해 총 40년 교수생활 30년 중에 계속 ‘불교경전과 상담심리학’이라는 주제의 논문을 썼다. 한국동서정신과학회, 법륜불자교수회, 한국정서행동장애아 교육학회, 대한문학치료학회 회장, 한국교수불자연합회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지금은 ‘화엄경과 화이트헤드 연구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양 정신유산 탐구에 청춘을

번역일은 여간 깐깐하지 않으면 하기 어려운 일이다. 대심거사는 번역을 하는 이들이 깐깐한 성격을 지닐 것이란 선입견을 여지없이 깨뜨렸다. 직접 만난 대심거사는 너털웃음을 자랑하는 마음 편한 이웃집 아저씨 같았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교수라는 권위의식을 찾기 힘들었다. 허심탄회한 이야기와 웃음 속에서 자연스럽게 마음이 열리는 것 같았다.

대심거사는 어떻게 40년간 〈금강경〉 공부를 하게 됐을까.

“한번은 서울시립정신병원 임상심리사로 심리치료를 하던 어느 날 지능이 아주 낮은 청년을 만나게 되었지요. 그런데 그 청년의 얼굴은 환자임에도 밝고 평화스러웠어요. 남부러울 것이 없는 저는 힘겨움과 짜증으로 찌든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그 순간 제 오만과 편견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학자로 최선을 다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돌아보지 못했음을 느낀 순간이었다. 스스로에게 실망감을 느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의 학문에도 의문이 드는 순간, 대학 지도교수셨던 이장호 교수의 말이 떠올랐다. 동양의 정신 유산이 밑바탕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심리학에 대한 애정이 가득 찬 젊은 시절 대심거사는 ‘동양정신이 없는 서양과학은 살벌하고, 서양과학이 없는 동양정신은 산만하다’고 생각했다. 서양이론인 심리학을 우리 땅에서 펼치기 위해서는 먼저 유불도와 풍류의 동양사상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대심 거사는 서양 상담심리학, 심리치료학을 공부하는 한편, 도덕경, 논어, 천자문 등을 통한 동양사상을 닥치는 대로 탐구했다.

“기체조, 명리학 등 젊은 시절 동양사상은 모두 접했죠. 유불도와 풍류를 모두 겪은 뒤 불교가 가장 고도의 논리이자 사상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알려고 하면 할수록 불교는 어렵기만 했어요.”

대심거사는 용타 스님이 지도하는 동사섭 법회에 참석했다. 그와 스님과의 만남은 두 세계의 부딪힘이었다.

서양의 학문인 심리학을 서양의 시각으로 공부했지만 동양적인 시각을 담아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절실해졌다.

대심거사는 국내외의 상담기법을 우리의 정서에 맞도록 새로운 방법의 상담기법으로 만들었다. 4박 5일간의 과정으로 집단상담 프로그램으로 그 틀이 만들어졌다. 1992년 1월, 9명이 이 과정에 참여했는데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

“참가자들의 반응에 제가 오히려 놀랐습니다. 결국 심리상담이 기여하는 것은 ‘행복’이라는 생각에 ‘행복훈련’으로 이름 붙였어요. 각계 각층이 참여한 행복훈련의 성과를 정리하며 또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경험, 치료가 오래 지속되는 방법은 없을까란 것이었죠.”

근원적인 해결방법에 고뇌가 깊어갈 때 다시 〈금강경〉에서 답을 구하기로 했다. 다시 동양사상을 알고자 닥치는 대로 유불도와 풍류의 각종 서적을 읽어 갔다.

“수백 번 읽고 독송하는 동안 그 의미가 다가오고 자신을 다르게 만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한글로 풀이된 〈금강경〉이 영 낯선 것이었습니다. 교수인 저 마저 한글로 읽는 것이 한문으로 읽는 것 보다 더 어렵게 느껴지니 문제였죠.”

‘왜 요즘 우리말로 된 〈금강경〉이 없을까’란 화두가 생겨난 순간이었다. 그는 〈금강경〉을 제대로 읽고 싶었다. 그래야 수십년간 공부해온 심리학을 제대로 연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비 스님은 스승이자 도반으로 큰 힘이 됐다.

무비 스님의 격려, 또 다른 날개를 달다

처음에는 혼자 〈금강경〉을 읽고 앞뒤 말을 연결하며 해석해 나갔다. 영어로 된 〈금강경〉과 산스크리트본도 구하고 사전도 구해 대조하며 다시 번역했다.

대심거사는 타종교인과 심리학 전공자를 비롯해서 다양한 전공 영역을 가지고 있는 학자들과 함께 ‘화엄경과 화이트헤드를 연구하는 모임’을 조직했다. 1996년 조직된 이 모임은 서양사상과 불교사상을 비교하는데 20년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매주 월요일 오후 5시부터 9시까지 계속되는 교수들의 공부자리다. 학자 10여 명이 모여 경전을 꼼꼼하게 검토하고, 그 다음날에도 의문이 남으면 서로 토론하니 그 진지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학자들의 모임답게 한자 한자, 한 문장 한 문장 읽어가며 그 뜻을 밝혔다. 경전 한 줄의 해석을 놓고 몇일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서로 많은 부분들을 지적하고 또 같이 고민도 하면서 힘이 되어 주었다.

평소 108배와 수행정진을 해왔지만 제대로 공부하려 하자 이른바 겉핥기식 공부였다. 신심보다는 철학적 접근이었다.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심거사는 자신의 공부 방향을 누군가 점검해주길 바라고 주변에 스님을 수소문했다.

당연히 대강백인 무비 스님에 대한 추천의 말이 나왔다. 그런데 그냥 찾아갈 수는 없었다. 무비 스님의 〈금강경 오가해〉를 참고하면서 나름대로 금강경을 현대어로 바꾼 뒤에 스님을 찾아뵙기로 하였다.

대심거사는 2년 후 나름대로 자신이 정리한 〈금강경〉 번역본을 가지고 무비 스님을 찾았다.

아무런 인연도 없고 면식도 없이 〈금강경〉 번역본을 들고 찾아간 대심거사를 스님이 반겼을 리 없었다. 대심거사는 번역본을 놓고 스님의 방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3주후 다시 뵈었을 때에는 상황이 완전히 반전 되었다.

3주 후 다시 스님을 찾았을 때 스님은 대심거사를 참으로 친절하게 대접했다.

스님은 너무도 친절히 〈금강경〉에 대한 가르침을 전해주었다. 스님의 번역에 이의를 제기했음에도 스님은 뜻밖에도 너무나 좋아하시었다. 4시간 가까이 지도하신 후에 일어서는데, “내일 출판사에 가서 독송용으로 출간하도록 하세요”라고 하셨다. 어리둥절해 하는 대심거사에게 다시 “모레 죽을 사람도 있으니 일단 출간해서 보도록 하고, 부족한 부분은 다음에 보완합시다”라는 말로 확실한 격려와 독려를 같이 하였다. 그 후에도 스님께서는 ‘가사체로 다듬어 보라’, ‘이왕이면 한문본도 만들어보라’ 등으로 중요한 나침판 역할을 하셨다고 한다. 대심거사는 “저는 막 노동만 했을 뿐입니다”라고 표현한다.

 

스님의 독려에 대심거사의 원력은 배가 됐고, 그 때부터 무비 스님은 대심거사에게 가장 친절하고 든든한 스승이요, 감수자가 됐다.

“스님이 뒤에 딱 계시니 어깨가 으쓱했죠.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잖아요. 학자인 제가 공부한 것을 인정해주시고 꼭 필요한 것이라고 해주시니 신바람이 저절로 났습니다.”

“화엄경과 화이트헤드 연구회 학자분들이 다 번역하고, 저는 정리한 원고를 들고 스님께 왔다갔다하는 심부름만 했을 뿐인데 결과적으로는 제가 공덕을 가로 챈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반야심경〉만 해도 몇 년간 수 십번이나 점검하고 검토하고 무비 스님께 가지고 갔습니다. 3∼4시간을 자세 한번 흩트리지 않고 점검 하신 적도 수 없이 많습니다.”

무비 스님도 이런 과정을 알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번역물을 믿고 맡기고 때로는 부탁까지 하시게 됐고, 처음 감수역을 맡았던 무비 스님은 공역자의 자리에까지 내려오게 됐다.

대심 거사는 부처님 당시의 설법과 같이 육하원칙에 맞춰 각 불교경전을 새롭게 풀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 불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야 함을 역설했다.

합송 쉬운 가사체, 불교 전법에 ‘딱!’

경전 번역의 중요한 원칙은? ‘순리’

대심거사는 요즘도 〈금강경〉과 하루 8시간 이상 씨름한다. 번역보다 수행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고 한다.

 

“수보리∼ 장로님∼ 수보리∼ 장로님∼ 보살의길 가려하는 선남자와 선여인은 ‘일체중생 열반으로 내가모두 제도한다’ ‘알로생긴 중생이나 태로생긴 중생이나 습기에서 생긴중생 변화하여 생긴중생 형상있는 중생이나 형상없는 중생이나 생각있는 중생이나 생각없는 중생이나 생각이∼ 있다없다 할수없는 중생들을 고통없고 행복가득 무여열반 이르도록 한중생도 빠짐없이 내가모두 제도한다’ 이와같은 큰발원을 해야하는 것입니다.”

 

는 부분은 언제 읽어도 환희심이 납니다.” 이런 신심이 있기에 대심거사는 〈금강경〉 번역에 있어 하나의 원칙을 갖고 있다. 바로 부처님 당시 상황과 맞는가를 항상 고민하는 것이다.

“경전을 번역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원칙을 먼저 세웠습니다. 경전이 설해지는 부처님 당시의 상황을 충실하게 따르는 것이 첫번째 원칙입니다. 부처님이나 제자들이 ‘반말’이 아닌 ‘존댓말’을 사용했을 것이라는 정황으로 이를 풀이해 내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금강경〉의 장로 수보리는 부처님보다 40년 연장자입니다. 과연 부처님은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했을까요?”

또한 육하원칙인 육성취(경전을 구성하는 여섯 가지 원칙)로 번역을 구성한다. 이와 함께 우리말이 지닌 고유한 리듬감을 살려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쉽도록 경전의 흐름을 정리하는 원칙을 갖고 있다.

“바꿔서 생각해보십시오. 부처님께서는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아주 자상하게 정말 쉬운 말로,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조계종의 표준 금강경과 대조해, 한문 및 우리말 번역이 서로 어떻게 다른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수였다.

일단 〈구마라집 금강경〉을 1차 저본으로, 각묵스님께서 소개한 콘제의 범본, 전재성 박사님이 소개한 물러의 범본, 보리유지본, 진제본, 달마급다본, 현장본, 의정본, 티베트어본, 몽고본 등을 참고해 현재 조계종에서 표준본으로 제시한 한문에서 약 500여 자를 수정 보완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약 10분의 1에 달한다.

대심거사는 “‘나무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 명호 만을 염송하기보다는 〈가사체 관음경〉이나 〈가사체 아미타경〉 한번이라도 독송한 후에 ‘나무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을 염송하기”를 강조했다. 경전 독송을 통해 부처님 가르침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금강경〉을 독송하다보니 근원도 알 수 없는 나 자신의 저 깊고 깊은 곳에서 생명의 빛이 흘러나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전에 갖고 있는 모든 지혜가 한 방울의 물이라면, 그 빛의 크기는 바다보다도 더 큽니다.”

2012년 가사체 한글금강경을 펴낸 그는 2015년 가사체 한글금강경과 교감본 한문 금강경을 발간했다. 가사체의 특징인 운율을 살려 음반도 냈다. 중간 결론으로 ‘가사체 금강경과 조계종 금강경’을 출간하엿다.

“남은 과제는 보다 많은 이들이 가사체 금강경을 접하도록 하는 겁니다. 대중이 함께 운율이 섞인 가사체를 독송하며 신심을 증장하는 그날을 기다려 봅니다.”

대심거사는 오늘도 특유의 트레이드 마크인 ‘허허허’ 웃음을 지으며, 불자들에게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대심 거사는 가사체 금강경 독송회 회장으로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노덕현 기자  noduc@hyunb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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